[뉴스레터] 박상현의 미디어인사이트

광고 속 언더톤(undertone)에 유의하라

실내자전거의 새로운 바람
몇 년 전 부터 미국에서 돌풍을 몰고온 실내 운동기구가 있다. 바로 펠로톤(Peloton)이라는 실내자전거다. 이 단어는 원래 군대에서 소대를 가리키는 플래툰(platoon)의 프랑스어인데, 대규모 도로 자전거 경주에서 함께 몰려다니는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러닝크루 처럼 자전거 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그룹이 만들어지는 것이 좋은데 집 안에 설치한 실내자전거가 옷걸이, 빨래건조대로 전락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런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Peloton Interactive Inc
펠로톤은 그런 실내자전거와 소셜, 혹은 스트리밍 비디오를 결합한 제품이자 서비스다. 매일 매일 코치가 진행하는 자전거 클래스를 녹화해서 업로드하거나 라이브로 진행하면 그걸 보면서 운동하게 된다. 2천 달러가 넘는 제품에 매달 구독료가 40달러이지만 큰 히트를 쳤다. 덕분에 실내자전거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고, 비슷한 “스마트”운동제품이 줄줄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히트상품이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30초 짜리 광고 하나를 선보였다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문제의 광고

The Gift That Give Back l Peloton Bike Commercial
먼저 광고를 보자. 한 여성이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딸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온다. 먼저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펠로톤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리고 운동이 시작된다. 

화면 속 코치는 종종 사용자들의 이름을 외친다. (말하자면 인기 유튜버가 충성 시청자를 언급하는 식이다). 아내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으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그리고 “(이 제품이) 나를 얼마나 바꿔놓을지 몰랐다” 면서 남편에게 “고마워” 라고 말한다. 

펠로톤의 주요 고객은 여성인데 이 광고를 본 여성이 크게 분노했다. “끔찍하다” “성차별적이다”  “내 남편이 나한테 이런 선물을 하면 바로 팔아버리겠다” 같은 반응이 쏟아졌고, 펠로톤은 유튜브 영상 속 댓글을 꺼버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막을 수 없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퍼져나가면서 화제가 되었고, 광고 속 아내 역을 맡은 모델은 토크쇼에 초대받아 등장할 만큼 “펠로톤 까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다정한 남편의 비싼 선물이고, 아내도 고마워하는 모습인데 왜 사람들이 화가 났을까? 바로 문제있는 '언더톤(undertone)'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더톤이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메시지나 느낌 따위를 말한다. 이 광고에서 전달하려고 한 건 드러난 메시지라면, 이 광고가 가진 설정이 암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나 설정이 있다. 거기에서 완전히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 거다. 


여성들에게만 보이는 메시지
1991년에 나온 '신부의 아버지’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의 딸이 부모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인데, 영화 중반에 딸아이가 결혼식을 취소하고 남자와 헤어지겠다며 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는? 결혼을 앞둔 애인이 믹서기(blender)를 선물했기 때문이었다.

Father of the Bride l Charles Shyer
전형적인 남성인 아버지는 “믹서기가 왜 어때서 그러느냐” 고 묻는다. 딸의 대답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여자에게 주방용품을 선물하느냐. 이건 나를 가정주부로 생각하고 내가 속한 곳은 주방이라는 얘기 아니냐” 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딸의 과민반응이었고, 애인은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여기에 문제가 된 것이 여성에게 믹서기를 선물하는 행동이 가진 감춰진 의미, 즉 언더톤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의 여성들이 가정주부의 역할을 박차고 나와 일터로 향했고, 직장에서 유리천장을 깨느라 고전을 하고 있었지만, 남성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언더톤은 그 문제에 민감한 집단, 그 문제로 피해를 입는 약자들에게는 뚜렷하게 보이지만, 주류집단에게는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펠로톤 광고는 어떤 언더톤을 가지고 있을까? 남편이 아내에게 실내자전거를 사준 것은 “살 좀 빼라” 는 메시지, 혹은 “운동 좀 하라” 는 메시지로 들릴 수 있다. 굳이 그렇게 삐딱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소위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와 탈코르셋 흐름이 뚜렷한 시점에 아내가 사달라고 하지도 않는 운동기구를 선물하고, 아내는 일 년 후에 “운동기구가 나를 바꿨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남성중심적 시각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 모델(모니카 루이즈)은 첫 장면에 등장할 때 부터 군살이 없는 건강한 체형이었다. 그런데 열심히 운동해서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건강한 여성에게 자신의 몸에서 흠을 찾게 하는 "body shaming”으로 읽힌다. 겉으로 보면 부유하고 행복한 가정,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광고이지만, 트럼프 정권과 미투운동으로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와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언더톤으로 주요 고객층을 화나게 한 것이다. 


실패한 광고 이용하기
그런데 펠로톤 광고의 스토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광고 속에서 "남편에게 개스라이팅(gaslighting) 당하는 아내” 처럼 등장한 모델이 각종 인터뷰와 토크쇼에 등장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얼굴이 시청자들에게 오해를 사는 데 한 몫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눈과 눈썹이 다소 불쌍해보이는 표정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 바람에 이 모델은 삽시간에 “불쌍한 아내” 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펠로톤 와이프” 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상황에서 기회를 발견한 회사가 있었다. 에이비에이션 아메리칸 진(Aviation American Gin)이라는 주류회사다. 영화 '데드풀(Deadpool)’로 유명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2018년에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유명한 이 회사는 “펠로톤 와이프” 모니카 루이즈를 재빨리 섭외해서 간단한 광고를 만들어냈고, 많은 팔로워를 가진 라이언 레이놀즈가 직접 광고를 유튜브에 올렸다:

The Gift That Doesn't Give Back l Ryan Reynolds
펠로톤의 실패한 광고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광고가 뭘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는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 광고는 “펠로톤 와이프”가 남편에게서 탈출에 성공해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중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운데 앉은 주인공은 옷차림 부터 다르다. 양쪽 친구들은 잘 차려입고 있지만, 주인공은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도망나온 사람 처럼 커다란 외투를 입고, 정신이 나간 듯 카메라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안전해(You’re safe here).”  남편이 여기는 못 찾아온다는 뜻이다.

“술이 참 부드럽네” 하면서 자신의 잔을 단숨에 비운 주인공에게 다른 친구가 자신의 잔을 건네주자 그것도 바로 비우는 것을 보고 두 친구는 긴장한 표정이다. 광고가 끝날 때 한 친구가 “근데 너 좋아보인다(You look great, by the way)” 라고 하는 말은 “펠로톤으로 운동 많이 했구나”  혹은 “너는 굳이 펠로톤으로 운동하지 않아도 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광고 표면에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광고 모델의 계약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광고는 뻔히 아는 얘기를 시치미떼고 모른 척하는 "텅인칙(tongue in cheek)” 의 농담을 사용했고, 무엇보다 '곤경에 빠진 친구를 돕은 여성들의 단결'이라는 언더톤을 가지고 있다. 

이 광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대성공을 거뒀다. ‘데드풀’ 에서 카메라를 보고 독백을 하는 배우 레이놀즈의 성격과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광고이기도 하지만, 펠로톤 광고로 기분이 상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 상황을 뒤집는 데 성공한 탓이다. 

펠로톤과 에이비에이션 진은 모두 밀레니얼 여성층을 겨냥했지만, 하나는 실패했고 다른 하나는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 모두 광고가 “내세운” 메시지(혹은 텍스트) 때문이 아니라, 언더톤(혹은 서브텍스트)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광고의 시청자들은 젊을수록 이렇게 숨은 메시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여기에 둔한(tone deaf) 광고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처럼 바이럴이 쉽게 일어나는 소셜 공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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