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정책을 이야기하는 시간
2019년 7월 19일에 보내는 녹색당 정책 뉴스레터 

쉼과 일, 제자리에 돌려놓기
“되게 바보 같은데, 사랑받는 기분이다? 클라이언트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거나 무서운 윗사람한테 칭찬을 들으면, 프로답지 않게 갑자기 눈물이 글썽 고여. 나는 사랑도 꽤 받고 컸는데 왜 하필 그런 순간들에서 충족감을 느낄까? 미쳤나봐. 고장났나봐.”(정세랑, 보늬)

“언니가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정세랑 작가의 단편소설 <보늬>는 과로사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주인공 보윤은 인터넷에서 언니처럼 야근하다 돌연사한 사람들의 사례를 모으던 중, 생전의 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위의 인용구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냐는 보윤의 질문에 대한 언니의 대답입니다. 보윤은 그런 충족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하지만, 저는 솔직히 그 고장난 것 같은 마음이 무언지 알 것도 같았어요. 어려운 도전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드는 안도감,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나 고마움 같은 감정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감정들로 만들어지는 마음의 상태가요.

“일을 그냥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비단 마음의 문제일까요? 실제로 일은 언제나 일 이상의 것입니다. 일은 나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명줄이고, 성장의 과정이자, 소중한 관계이며, 때로는 나의 신분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특히 금융기관 앞에서 적나라해지더군요.) 이런 식으로 일이 삶의 대부분을 치환해나가다 보면 일을 제외한 삶의 다른 부분이 ‘나머지’인 것 같은 착시마저 듭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정책도 한 몫 한 것 같아요. 한국의 사회보험 정책이나 주거 정책, 금융지원정책을 들여다보면 세상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만 있고 그 외의 구성원들은 ‘나머지’인 것만 같거든요. 온 사회가 착시에 빠져있다면, 내가 제대로 보고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어요.

소설에서 보윤은 언니와 같이 일로 충족감을 주고받는 사람들만 있어도 세상은 유지될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은 부품으로 치면 핵심부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보윤이듯, 세상은 나머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지난 세기를 이끌어 온 핵심논리가 나머지를 계약의 중심에 두지 않았을 뿐이죠. 지난 뉴스레터에 이어 다시 한 번, 우리에게는 새로운 계약이 필요합니다. ‘나머지’라는 공간을 애시당초 만들지 않는 형식의 계약이요.

이런 맥락에서 요즘 정책위원회가 고민하고 있는 키워드는 ‘쉼’입니다. 쉼은 학습이고, 돌봄이자,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이며, 회복의 시간입니다. 배움과 회복, 돌봄 없이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점에서, 쉼이야말로 모두에게 핵심적인 부분이고 그냥 쉼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쉼은 남는 시간, 노는 시간으로 퉁쳐지지요. 소설가 어슐러 르 귄이 말년에 쓴 블로그 포스트들을 엮은 책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에는 이런 모순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르 귄은 고령의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하버드 대학교의 설문조사에 답변하던 중 이해할 수 없는 항목을 발견합니다. 여가시간에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골프, 쇼핑 등등에 이어 창의적 활동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평생 작가로 살아 온 그는 자신의 ‘일’이 ‘여가’로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다가 이내 여가 시간이라는 구분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남는 시간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시간은 전부 할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시간은 삶에 점령되어 있다.” (어슐러 르 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같은 글에서 르 귄은 오늘날 십대들이 여가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부디 그들에게 틈이 있어 자신의 내면 깊이 빠져들어있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어쩐지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미래가 없는데 왜 학교에 가야하는 지 묻는 전세계의 청소년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떠올랐어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 이전에 꿈을 꿀 수 조차 없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들. 기후위기 시대, 책임있는 정치집단이라면 지난 세기의 청사진을 꿈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미래세대가 내용을 채워넣을 수 있는 꿈의 공간을 확보해주는 정치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이 지금까지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가치들과 대립하는 듯 보이는 규제의 정치일 수 밖에 없겠죠. 
선거국면에서 녹색당이 제시해야 할 새로운 사회계약의 미션은 일과 경제성장, 삶의 질 사이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끊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규제의 논리가 개인들의 삶에 있어서는 안전을 보장하고 자유를 확보하는 일과 한 쌍이라는 비전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가 녹색당의 기본소득이 재위치화 될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말이네요. 모두 바쁘고 충만한 쉼의 시간 보내시기를 바라며,
긴 편지를 읽으며 떠오르신 생각들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정책위원회에게 전해주세요. 🌱

고맙습니다.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백희원 드림. 

[기사] 뉴질랜드는 행복이 목표다
" 저신다 아던 총리는 “GDP 성장만으론 삶의 질을 높일 수 없고 위대한 나라를 만들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고 단언하면서, “이제 국가 성공의 정의를 재무 건전성뿐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 그리고 자연 자원을 지키는 것으로 확대한다”고 구체적인 행복 예산안과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칼럼] 기후변화 대응 경사노위 만들자
"중요한 것은 관련 부처와 노-사-정-시민 대표가 구조적으로 참여하여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방안의 적절성과 책임성을 점검하고 그 영향을 소화할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기후변화 대응이 환경 정책이자 산업 정책, 일자리 정책, 복지 정책, 지역 정책임을 분명히 하고, 부담과 희생이 어떤 사회적 집단이나 지역에 부당하게 기울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인터뷰] 저출생 해소 위해서라도 '이상적 노동자상'은 깨져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과 남성 모두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결국 오래 일하는 ‘이상적 노동자상’을 깨야 한다고 윌리엄스는 말한다. “한국의 강력한 경제 엔진을 만들었던 관행들이 이제는 한국 경제를 위협, 저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것입니다. 더 적게 일해야 합니다.” "
[기사] 기업 투자 살린다고 인명 참사 방치하나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일으킨 불똥이 엉뚱하게 한국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노동·환경 규제법이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제기되는 규제 완화 요구가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과도한 규제 탓에 기업 투자가 위축된다"는 주장이야말로 '경제적 논리'가 아닌 '이념적 선전'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다가오는 행사안내
녹색당 정책포럼 3탄, 쓰레기 없는 도시를 위한 오픈 포럼이 열립니다. 

한계에 다다른 도시 폐기물 문제, 개인의 실천과 정책적 대안을 함께 궁리합니다. 함께 대화할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립니다.

  • 일시 : 7/22(월) 19:30 ~ 21:30
  • 장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

녹색당 정책 뉴스레터는 계속됩니다.  
첫 번째 정책 뉴스레터가 나간 뒤 여러 곳에서 관심과 격려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린뉴딜, 여러분의 생각을 묻습니다."에도 발송 당일 여러 분들이 메시지를 전해주셨어요. "뉴딜"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고민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해주셨습니다. 현 상황의 심각성을 정확히 알리고 대전환을 이끌어가 주길 기대한다는 당부와, 현재 작동하고 있는 '도시계획위원회' 같은 곳에 개입할 정치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귀 기울여야 할 의견도 있었습니다. 모든 의견과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녹색당 정책위원회는 앞으로도 좋은 질문을 계속 확인하고 서로 공유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고자 합니다. 관심과 격려로,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녹색당 정책 뉴스레터를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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