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23 / JULY 2022
Editor's Letter
탕수육 먹고 싶다, 닭강정 먹고 싶다
1. 하고 싶은 게 오로지 글쓰기일 때가 있었다. 고료를 주든 안 주든 기고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전부 노크했다. 먼저 이메일을 보내고, 내가 쓴 글을 보내고, 기꺼이 평가를 받고자 했다. 그렇게 쓴 글이 조금 쌓이다 보니 돈을 받고 쓰게 됐다. 초단편소설을 쓰고 2만 원, 에세이 한 편을 쓰고 10만 원, 장편 소설을 쓰고 50만 원.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거나 수필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것들로 돈을 벌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소설 쓰기만큼 재밌는 건 없고, 에세이만큼 쉬운 건 없다고.

2. 에세이만큼 쉬운 건 없다니, 이 말은 참 건방지고 오만한 말이라는 걸 안다. 글을 쓴다는 건 어렵다. 그러니 에세이 쓰기도 어렵다. 내가 쉽다고 말하는 건 내 안에 알알이 박혀 있고, 심해층에 깊게 쌓인 것만 꺼낼 용기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게 아님을 말하고 싶은 거다. (물론 그 과정이 또 어렵긴 하지만)

3. 그래, 도입부에서 어그로를 끌려고 쉽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에세이는 어렵다. 스무살 초반이었나, 글을 처음 쓸 때는 모든 게 쉬웠다. 싸이월드 비밀 다이어리에 쓰던대로 쓰면 되는 거니까(다만 그걸 공개 일기장에 쓴다는 차이는 있지). 그런데 글을 자주 쓰다보니 매일 좋은 얘기만 쓸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친구에게 받은 안 좋은 감정을 쓰려니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친구가 책과는 담을 쌓은 사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에세이나 에세이와 비슷한 것을 쓸 땐 어느 정도로 마음을 꺼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같다. 나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 친구가 봐도 괜찮을까.

4. 에세이에서 완벽히 솔직해질 수 없다보니 도망친 곳이 소설이다.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경험담에서 출발한 그런 글을 썼다. 그 방식은 편하고 안락했다. 단점은 있다. 그 얘기를 소설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소설을 썼다는 자부심이 없다는 것, 용기가 없어서 소설 뒤에 숨었다는 사실. 먼훗날, 언젠가 경험과 무관한 소설을 한 편 써냈을 때 비로소 나도 창작을 하긴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그게 무슨 소설인지 궁금하겠지만 비밀이다.

5. 날이 흐리다.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오면 먹고 싶은 음식은 첫 번째는 닭강정, 두 번째는 치킨, 세 번째는 전기통닭구이다. 하지만 어제 전기통닭구이를 먹었기 때문에 오늘 비가 온다면 닭강정이 가장 떠오를 것 같다.

6. 평생 단 하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음식을 선택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스스로에게도 가끔 해본다. 보통 나의 대답은 탕수육이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적절히 섞여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여름 휴가 때 5일 연속 탕수육을 먹어봤는데 질리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오늘 저녁에 탕수육을 먹는다. 고기 튀김이지만 오히려 좋다. 나는 탕수육을 소스에 거의 찍어먹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이기 때문에 고기 튀김을 더 선호한다.

7. <외계+인> 시사회를 다녀왔다. 자세한 리뷰는 디에디트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아주 간단히 감상평만 적자면, 나는 최동훈이 이번에도 '최동훈'했다고 생각한다. <도둑들>, <암살>처럼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고, 밸런스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데, 아이들이 보면 '환장'할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무협, 외계인, 시간 여행 같은 소재가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만든 건 최동훈이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8. 무신사에서 캐치볼을 20% 세일하길래 이번 기회에세 샀다. 택배를 받아보니 실물이 훨씬 예쁘다. 아직도 세일하는지 방금 다시 들어갔는데 또 보니까 다른 컬러로 하나 더 사고 싶다. 내가 산 건 오리지날 플러스 피크닉(블랙). 다크 그린도 사고 싶은데 추가 구매는 오바쎄바겠지.
p.s. 여름 휴가 때 탕수육을 5일 연속 먹었던 이유: 여름 휴가라고 해도 어디 안 가는 편이다. 서울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서울의 맛집, 카페에 가고, 밀린 잡지를 읽고 밀린 영화를 봤다. 더워서 나가기 귀찮은 날에는 5분 거리에 있는 탕수육 전문점에서 1인분만 포장해서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매일이었다. 매일 더웠고 매일 귀찮았다. 계획을 짜지만 쉽게 미루는 인티제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p.s. 예전에 신촌역 부근에 충화반점이라는 곳이 있었다. 거기 고기튀김과 유니짜장니 기가 막혔는데. 지금은 사라진 충화반점의 음식을 한번이라도 먹어봐서 기쁘기도 하지만 이젠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인생사 다 그런거지.

p.s. 오늘의 이미지는 다음 웹툰 <기프트>의 한 장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적을 수 없다. 야구 웹툰이지만 삶에 대한 태도를 반추하게 되는 좋은 작품이다. 에세이에 대한 글을 쓰니 저 장면이 생각났다. 에세이나 소설이나 어쨌든 글을 쓴다는 건 절대 도망치는 행위가 아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의 마음을 내가 읽으려는 용기가 아닐까. 한 조각의 의미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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