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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읽지]  2021-03-18 #48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우리는 왜 집에 집착하는가
존 S. 앨런 지음, 이계순 옮김
반비 펴냄  

우리 인간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종(homebodies)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집은 우리 종의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저자는 진화의 과정에서 집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설명하고, 집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현생인류의 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고릴라나 침팬지는 어쩌면 매일 잠자리를 만들지만 ‘집’을 만들지 않는다. 인간 종이 진화의 단계에서 습득한, 집을 만드는 기술은 진화를 촉진했다. ‘집’을 중심으로 한 협력과 유대로 사회적 관계를 강화해나갈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종으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인간은 ‘집’이라는 무척 특별한 ‘고정점’에서 수면과 피로회복 같은 생리적 항상성을 얻을 수 있다.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유대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취한다. 집에 대한 막연한 느낌은 삶의 필수 조건으로 생체에 각인된 본능이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정신적 이유, 혹은 재난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취약해지며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는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주거는 ‘권리’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항을 수긍하게 된다. 집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집의 느낌이 강화되고 우리는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집과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한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고 집에 대한 온전한 느낌을 간직하라고 권한다. 집의 느낌을 잃어버렸을 때 앓는 향수병은 의지박약의 증거가 아니며, 더 큰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백신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집’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았다. 그 느낌을 잃어버려 상심한 사람들보다, 문득 잃어버릴 그 느낌조차 없는, 삭막한 주거 환경이 떠올라 슬퍼졌다.

김주원(건축가, 하우스스타일 대표)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섭식일기
최미랑 지음, 오월의봄 펴냄

“가까운 것이라도 구제하고 보는 것이 맞아. 아직 안 되는 건,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야근 도중 저녁 혼밥으로 먹은 치킨 세트는 만족스러웠다. 배를 포근하게 채우는 온기에 취해 회사로 돌아오는 길, 저자는 길고양이와 비둘기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런데, 달구(닭)의 삶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가슴 한구석에 눌러두었던 의문의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제 옳은 것을 옳다고, 불쌍한 것을 불쌍하다고 말하는 삶을 택한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메뉴를 비워내자 놀랍게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열린다. 하루하루 탐구할 영역이 늘어난다. 노루궁뎅이버섯탕, 양배추스테이크, 배추찜, 쑥버무리 등등. 주방을 비건 요리로 채워가겠다는 목표를 세우며 저자는 생각한다. ‘아, 역시 마른 몸으로 살아가지는 못할 거야.’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브뤼노 라투르 지음, 박범순 옮김, 이음 펴냄

“지배계층은 세상으로부터 그들 자신만을 피신시키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기후 문제가 지정학적 이슈의 핵심이며 불의·불평등의 문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뤼노 라투르는 또 한 가지 흐름에 주목했다. 기후변화의 실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체계적인 시도가 그것이다. 기후는 넓은 의미에서 인간과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그는 이 위기의 시기를 신기후체제라고 선언하며 세계나 국가가 아니라 지구를 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묻는다. 문제의 존재를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착지할 장소를 물색할 것인가?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코난북스 펴냄

“어쩌다 보니 이렇게 음식 모형 제작자가 되어 있다.”

언뜻 표지만 보면 맛집 탐방을 엮어낸 만화책 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젓가락처럼 보이는 건 에어브러시고, 숟가락처럼 보이는 건 핀셋이다. 그렇다. 이 만화책의 주인공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심사위원이 아니라, 맛있어 보이는 음식 모형을 만드는 주인공 이세린의 작업 일기다. 주문으로 들어온 캘리포니아롤, 비빔밥, 곶감, 라면 등의 모형을 만들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해당 음식들과 얽힌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읽다 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미움도, 짜증도, 고마움도 아닌, 아직 이름 붙인 적 없는 감정’들이 되살아날 것이다.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으로 잔잔한 감동을 줬던 김정연 작가의 차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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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이 남자는 내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 G가 미성년자 V를 성적으로 학대한다. 당시 G는 50세, V는 14세. V는 이렇게 적는다. “우리의 사랑은 금지된 것이다. 건전한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나도 그렇다는 걸 안다. 그가 줄기차게 내게 그 사실을 되뇌어주니까.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35년이 흐른 뒤 피해자는 소설을 통해 G의 실상을 고발한다. 사람들은 경악한다. G는 85세 가브리엘 마츠네프, V는 49세 바네사 스프링고라. 스프링고라는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는다. “너무도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갇혀 맴돌며, 살인과 복수가 우글대는 꿈을 꿔왔다. 드디어 내 눈앞에 자명한 이치처럼 해결책이 나타나던 그날까지는. 사냥꾼이 쳐놓은 올가미로 사냥꾼을 잡기. 바로 그를 책 안에 가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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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방에서 만난 사람

“…나는 너무 취했다. 흐르는 세월, 술, 어둠에. 내 혈관들은 너무 혹사당했다.”  
헌 책방 주인을 만나자마자 장석주의 시 <완전주의자의 꿈>을 외워 읊은 손님. 작품 전문을 줄줄 외울 정도로 애착이 있던 시집을 그는 왜 소장하지 않았던 것일까?
완전주의자를 꿈꾸었던 소년이 인생의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되기까지...

“직접 읽고 쓰다 보니 저절로 읽기 근육이 길러지더라고요.” 
“100일 프로젝트 중  취업에 성공했어요. 
매일 시사 이슈를 접한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시사 이슈를 따라잡거나 뉴스의 맥락을 읽는 훈련을 해보고 싶은 청년이라면 반 년간 <시사IN>을 무료로 선물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취준생, 비진학 청년, 대학생, 휴학생 누구든 환영합니다!



저의 일요일 마무리는 대부분 집방’(집을 보여주는 방송)과 함께입니다. 월요일 출근을 걱정하면서도 자정을 넘겨서까지 진행되는 모 방송사 집방에서 눈을 떼지 못하곤 합니다. 이게 저만의 취향은 아닌 모양입니다. 얼마 전 임지영 기자가 쓴 글(집이 '사는 곳'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을 보니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편성중인 집방이 고르게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러다간 집방먹방의 아성마저 흔드는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입니다. 인테리어 공유 플랫폼도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더군요.
 
우리는 왜 이렇게 집에 집착하는 걸까요? 남의 집을 구경하며 속물적인 관음증적 욕구를 채우려는 걸까요? 건축가 김주원씨가 추천한 오늘의 책을 보면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전문가들은 오늘날 먹방이 대세인 이유를 정서적 허기에서 찾더군요. 홀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현대인들이 먹방으로나마 함께 먹는 기분을 느끼며 위안을 얻는 것이라고요.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집에 집착하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에 대한 온전한 느낌을 되살림으로써 정서적 허기를 채우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일테니까요.

집이 있든 없든, 사는 곳이 서울이든 지방이든 부동산 관련 얘기만 나오면 모든 사람이 불우해 하는 이즈음, 새삼 집의 문제를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탐욕 내지 상대적 박탈감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는 결국  모두가 집을 통해 얻어야 할 안전감과 충만함을 빼앗기고 있는 셈이니까요.부동산 이슈가 선거 판도마저 바꿔버린 시대, '집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정치권이 정쟁 수단으로만 악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시사IN 서평은 직접 읽어본 사람들이 써서인지 진정성이 느껴져 좋아요.
관심 없는 분야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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