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다





💬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오늘은 19세기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와 20세기 미국 작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를 소개합니다

지난 3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죠. 세계 여성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인 1908, 열악한 노동 환경에 희생된 여성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한 미국의 가두시위에서 유래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이날을 맞아 여성의 권리 향상을 주장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여성이 이 세상에 동등한 인간으로 자리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두 명의 여성 작가는 자신의 삶을 건 글쓰기로 역사의 흐름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같은 꿈을 꾸었던 작가들. 세대를 관통하는 여성의 꿈이란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왜곡되지 않은 그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단 한 편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19세기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평생 여러 면에서 변방이었던 요크 하워스의 집에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주류 문학계와 교류 없이 자매들과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그는 약 180여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었는데, 소설 속 자연 묘사가 도달한 지점은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남성 가명으로 발표되었던 『폭풍의 언덕』에 대한 첫 평가는 좋지 못한 편이었으나, 여성이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잔인하게까지 변모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작가가 에밀리 브론테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세상은 또 한 번 본색을 드러냈다무자비하고 거친 인간의 내면을 여자가 그토록 집요하게 파고들어 갔다는 사실을 마냥 불쾌해했다에밀리 브론테가 마치 시대의 반역자라도 되는 듯 몰아붙였다.”(장영은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에밀리 브론테의 어머니와 다른 형제 자매들은 일찍 죽었고, 그 자신도 서른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죽음과 가까웠습니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했던 야심차고도 예민한 작가이자 젊은 여성이었던 에밀리 브론테, 그에게 외로움과 절망의 감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억압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 들이며, 다만 자신의 영혼은 비겁하지 않다고 되뇝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폭풍의 언덕』을 비롯한 작품들이 재평가되었고시대마다 새로운 가치를 구할 수 있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에밀리 브론테의 언어는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폭풍의 언덕』은 어떤 소설과도 닮지 않았다는 서머싯 몸의 평가는 정확했다버지니아 울프는 에밀리 브론테의 거대한 야심을 꿰뚫어 보았다에밀리는 세상을 한 권의 책 안에 결합시킬 힘을 스스로 발견한 작가였다오직 세상을 견딜 수 있는 용기만을 간구했다.(장영은)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상상력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시는 여성이 가장 솔직하게 자신을 정의하는 것의 힘을 보여 줍니다.

나에게는 어떤 한숨도, 어떤 동정도,
내 영혼을 저급하게 하려는 어떤 소망도 없어라

― 에밀리 브론테, 「성의 숲에서」에서

나 자신에게 진실되고 모두에게 진실하며
늘 건강하기를
그래서 열정의 부름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나 자신의 격렬한 의지를 통제할 수 있기를

― 에밀리 브론테, 「하루 종일 애썼네」에서

잠은 내 상처 입은 마음을
잘 짜맞추려는 소망도 주지 않아
내 유일한 소망은 죽음의 잠 속에서
잊어버리는 거야

― 에밀리 브론테, 「잠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아」에서

내 영혼은 비겁하지 않다
세상 폭풍우에 시달리는 지구 안에서 떨지도 않는다

(……)

죽음의 여지는 없다
그의 힘이 헛되게 해 버릴 수 있을 원자는 없다
네가 존재이고 숨결이며
너의 현재는 결코 파괴될 수 없으므로

― 에밀리 브론테, 「내 영혼은 비겁하지 않다」에서

1929년 태어난 미국 작가 에이드리언 리치는 명문 대학교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시인으로서 일찍이 주목 받았지만,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출구는 책상이 아니라 광장에 있었습니다. 반전 운동과 여성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여성을 사랑하는 레즈비언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진실한 삶을 사는 것과 사회적 파급력을 가진 시 쓰기는 그에게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의 언어는 방언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리치는 흩어진 개인들의 목소리를 회복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가 강제한 여성다움의 범주 안에서 비틀리고 고립된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서로의 진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였습니다. 리치는 이를 위해 동시대뿐만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는 여성 간의 연결을 도모합니다

리치는 앞선 시대의 여성의 상처이자 성취를 그 다음에 온 여성으로서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또렷이 인식합니다또한 어떤 여성이든 비슷한 선택과 경험을 한다는 것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여기서부터 여성의 삶이 시작되며, ‘온전한 새로운 시가 가능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마리 퀴리에 대해 읽고 있었다
그녀는 방사선 병으로 아프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정제한 성분으로 인해 수년 동안 망가진 몸
그녀는 끝까지 부인했던 듯하다
자기 눈의 백내장의 원인을
그녀가 더 이상 시험관이나 연필을 쥘 수 없을 때까지
손가락 끝 피부가 갈라지고 고름이 나오는 원인을

그녀는 유명한 여성으로 죽었다 자신의 상처를
부인하면서
자신의 상처가 자신의 힘과 똑같은 근원으로부터 왔음을
부인하면서

― 에이드리언 리치, 「힘」에서

내가 결코 생각지도 않았던 말들이 네게서 번득여
우리는 원본으로 여전히
쓰이는 중인 텍스트를
서로 다른 방언으로 번역한 존재

─ 에이드리언 리치, 「자매의 수수께끼」에서

당신을 만나는 일은 간단했다, 당신의 눈을
내 눈 속에 담는 일은 간단했다, 이 눈은
내가 처음부터 알았던 눈이야라고 말하며…… 간단한 일이었다

(……)

잠에서 깨어
우리가 믿기로 한
낯설지도 않고 친숙하지도 않은 이웃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믿고, 믿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상태로 낮추어, 손 위에 손을
내려놓도록 스스로 허용한다, 마치 발견되지 않은 자들 위에서
흔들리는 밧줄처럼…… 우리는 이렇게 했다. 서로를 인식했다,
내 기억으로는 빛 속에 잠긴
어둠 속에서 서로를 인식했다.
나는 이것을, 인생이라고 부르고 싶다.

― 에이드리언 리치, 「의식과 기원의 역사」에서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
집이며, 방랑객, 장작을
쪼개는 여자 문 두드리는 그녀, 폭풍우 속
이방인, 두 여자, 눈에 눈을 맞대고
서로의 영혼을 측정하는, 서로의
무한한 욕망,
여기서 시작하는 온전한 새로운 시.

― 에이드리언 리치, 「초절기교 연습곡」에서

우리는 여전히 들여다봐야 해
우리의 삶을 향해, 남자들이 말하려 하지 않는,
말할 수 없는 여자들의 부재를―문명이라 불리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구명, 이 번역 행위, 이 반쪽 세상.

― 에이드리언 리치, 「스물한 편의 사랑 시: 책으로 가득한 이 아파트는」에서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다.

― 에이드리언 리치, 「굶주림(오드리 로드에게)」에서

에밀리 브론테(1818-1848)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잉글랜드 북부 요쿠 주에서 태어났으며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하워스 교구에서 자랐다. 월터 스콧, 바이런, 셸리 등의 작품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짓고 일기 쓰기를 즐겼다. 1846년 언니 샬럿이 에밀리의 시를 발견하고는 샬럿, 에밀리, 앤 세 자매가 남자의 가명으로 공동 시집을 냈다. 1847년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동생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 샬럿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었다. 에밀리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잇따른 죽음을 경험해야 했지만 상상력을 통해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불렀으며, 피아노와 외국어를 독학하면서 좁은 집에 머물렀지만 "성스러운 목소리로, 현실의 세상에 대해 속삭"였다.    
         
에이드리언 리치(1929-2012)

1929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19세기 영국 대표 시인들의 시를 즐겨 읽은 리치는 후일 하버드 대학교로 통합되는 레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시를 썼고, 졸업하던 해인 1951년에 첫 작품집 『세상의 변화』로 예일 대학교에서 수여하는 ‘젊은 시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리치는 세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결혼 생활 과정에서 레즈비언인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1968년 이후부터 이제껏 여성다운 삶으로 찬양받았던 것들을 재고하여 해체하기 시작한다. 『변화에의 의지』,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문턱 너머 저편』 등 리치의 작품에서 여성의식 및 페미니즘은 일관된 주요 주제였다. 리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은 방언처럼 흩어진 여성의 언어를 공통 언어로 변화하여, 그 연대의 힘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 바라는 리치의 열망이 정제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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