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경제’에서 ‘우리’를 지키는 방법

‘관심경제’에서 ‘우리’를 지키는 방법

The Guide to getting lost : I would prefer not to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28), 2022.2.16,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키워드: 관심경제, SNS, 길잃기, 관심, 피로

1.머리말

2.‘아무것도 안하는’ 혁명

3.봐야할 것을 보는 것

4.적극적 길 잃기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연구자님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집중을 잘하는 편이신가요? “어떤 일을 하려고 앉으면 할 일만 빼고 모든 게 다 흥미롭다”는 말이 있는데요. ‘잠깐’ 뭔가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집었는데, 어느새 몇시간이 훌쩍 지나있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 게으른 나를 탓하곤 하지만, 이는 꼭 개인의 자제력 문제라고 볼수만은 없습니다. 왜냐면 관심경제에서는 우리가 한눈 파는 이 ‘잠깐’(체류시간)이 길어질수록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관심경제란 개인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산업을 뜻하는데요. 우리의 딴짓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SNS나 인터넷 서핑, 유튜브 등이 대표적인 관심경제 사업에 속합니다.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관심을 오래 붙잡아둘수록 광고주로부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선 수많은 전문가들이 어떻게하면 인간의 본성을 활용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간을 붙잡아둘 수 있을지를 궁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봤자 마치 기름이 발린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는 것처럼 허망한 일이 되고 마는데요. 이런 관심경제의 작동구조를 그려낸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가 과거 주목을 받기도 했었죠.

<fig.1>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2020)에서 한 사람이 소파에 누워서 뉴스피드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혐오, 광고, 사건 기사, 스포츠, 재난 소식 등이 뒤죽박죽이 되어있습니다. 영상 갈무리.

‘좋은 게 좋은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플랫폼들이 내 관심을 끌기 위해선 ‘우리가 좋아할만한 콘텐츠(광고)’를 추천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 알고리즘이 이끈 곳은 제가 좋아할만한, 흥미롭고 자극적인 콘텐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내가 구독하는 다양한 유행하는 정보, 소식들까지 더하면 정보의 홍수를 넘어 정보의 망망대해 수준인데요. 사람들은 죄책감과 의무감 사이에서 짓눌려 방황하곤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관심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만약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십거리에 주목하고 있다면, 그만큼 중요한 다른 일에는 관심을 덜 쏟게 될 것입니다.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적인 감정들에 항상 노출되어있다면 무력감에 젖기도 쉽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정말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생각과 주제들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과연 관심경제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 세상의 모든 흥미롭고 자극적인 정보와 기사들을 하마처럼 먹어치우겠다는 각오로 살아가면 되는 걸까요? 혹은 그것들에서 ‘유익한’ 정수만을 뽑아내어 영양제처럼 한알씩 규칙적으로 먹으면 되는 걸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과 레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 등을 지팡이 삼아, 관심경제 시대에 관심의 주체성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해찰해보려고 합니다.

【2.‘아무것도 안하는’ 혁명】

옛날에 한 필경사(서류를 베끼는 업무를 하는 사람)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사무실에 출근해 ‘아무것도 안하고’ 그 자리에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그는 업무는 커녕 아주 간단한 심부름마저도 거부한 채 그저 조각상처럼 앉아만 있었죠. 결국 그를 고용했던 변호사는 그를 쫓아내는 걸 포기하고 사무실을 옮겼고, 다음 세입자는 그 필경사를 경찰에 신고해 교도소로 보냅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허먼 멜빌이 쓴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바틀비는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지시에 “I would prefer not to”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이는 한국어로 옮기면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요. “못하겠습니다” 혹은 “안하면 안될까요?”도 아닌 이 엉뚱한 말은 사실 그 안에 폭탄을 품고 있습니다. 바틀비는 ‘월급루팡’과는 다르며, 월급루팡보다 주변 사람의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왜냐면 월급루팡은 적어도 딴짓이 잘못된 것임을 알기 때문에 눈치를 보며 체제에 순응하려고 하지만, 바틀비는 ‘고의적으로’ 현 체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법>은 효율성이 최우선이 되는 관심경제에서 바틀비같은 “아무것도 안하기”식 저항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는 책입니다.

제니 오델은 관심이 곧 돈이 되는 경제 속에서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잊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과거 자신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중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던 글(트럼프를 비판하는 분노에 찬 글)에 대해 회상하며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글들은 딱히 유익하지 않다(이 글들이 페이스북에 엄청난 가치를 더해준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반성과 사유에서 나온 의사소통의 형태라기보다는 두려움과 분노가 일으킨 순간적인 반응이다. 물론 이 감정들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 감정을 소셜미디어에 과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주 작은 방에서 터뜨린 폭죽이 다른 폭죽을 터뜨려 곧 방안이 연기로 가득 차는 상황과 비슷해보인다. 절박하지만 목적 없는 글을 이러한 플랫폼에 올리는 것은 우리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광고주와 미디어 기업에는 엄청난 수익이 된다. 이 장치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정보의 내용이 아니라 참여율이기 때문이다.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즉, 관심경제 속 SNS 플랫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메시지의 ‘깊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여부라는 겁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분명 중요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단지 메시지의 강렬함만이 핵심 알고리즘이 되는 생태계 속에서 우리는 하루종일 ‘강한’ 분노와 ‘강한’ 슬픔, ‘강한’ 즐거움 사이를 널뛰듯 움직여야 합니다.

이 부분을 쓰면서도 저는 낮에 잠시 페이스북 피드를 봤는데 여수 사망사고의 기사 바로 아래에 베이징 올림픽 부당 심판 관련 글의 링크가 있었고, 그 아래엔 엄살부리는 시바강아지의 짧은 동영상, 그리고 그 아래엔 시계 광고가 등장했습니다. 각종 SNS에는 다른 커뮤니티의 자극적인 게시물을 복제해 광고를 붙인 글들이 피드를 메우기도 합니다.

<fig.2> 개인화 설정을 하지 않은 상태의 인스타그램 홈 영역. 트위터, 커뮤니티 등에서 복사한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왼쪽) 자녀들의 스마트기기 사용을 엄격히 규제한 스티브 잡스. 인스타그램, MBN 뉴스 화면 갈무리.

뉴스피드 위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결코 멈추지 않는 러닝머신 위에서 영원히 뛰고 있는 사람들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스스로의 가치있는 뉴스피드를 만들고, 친구 신청을 주고받고,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며 그 안에서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보들을 이 잡듯이 뒤져 붙잡고 그것을 재구축하는 것을 통해 트렌드잘알이 될 ‘자유’가 있습니다. 만약 귀여운 강아지 동영상 알고리즘에서 길을 잃고 몇시간이나 빠져있지 않을 수 있다면요.

제니 오델은 그것이 결코 우리의 주체적인 선택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아니며, 비서를 두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맥락이 사라진 정보의 뉴스피드들 속에서 허우적대며 좋은 광고수입원이 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실제 실리콘밸리의 IT 구루들은 정작 본인은 일상에서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자신의 자녀에게 스마트폰, 컴퓨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바틀비처럼 고의적으로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왜냐면 첫째, 관심경제로 돈을 버는 플랫폼, 미디어 기업의 생태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통해 그 생태계의 힘을 약하게 만들 수 있으며 둘째, 이를 통해 우리가 되찾게 될 ‘관심’이야말로 현재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커다란 힘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아무것도 안하기’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자!”라거나, 속세를 떠나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우리는 결국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며, 변화는 우리가 선 자리로부터 오기 때문이죠.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확실히 만약 ‘악마같은 스마트폰과 페이스북만 망하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스마트폰이 발명되기 이전의 기나긴 인류 역사의 암흑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질테니까요.

【3.봐야할 것을 보는 것】

‘아무것도 안하는’ 건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걸까요?

오델이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곧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입니다. 정말 우리가 관심을 둘만한 곳으로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관심을 거두는 능력뿐 아니라 다른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 관심을 확대하고 증식하는 능력, 관심을 더욱 예리하게 갈고닦는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둘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데요. 생산성, 효율성에 얽매인 뉴스피드-러닝머신에서 내려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순간 우리는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방식의 관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간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관심경제의 알고리즘에 갇혀 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한참을 들여다봐야지만 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이나 ‘아무 소리 없음’이 곧 음악이 되는 존 케이지의 사례를 듭니다. 새나 풀꽃, 숲, 지나가는 사람들 등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들리지 않았던 소리, 보이지 않았던 작은 것들이 내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하죠.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어쩌면 무엇을 보는지보다도 어떤 속도로, 얼만큼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냄비 위 팝콘조각들 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관심경제의 알고리즘에선 불가능한 종류의 관심입니다.

<fig.3> 데이빗 호크니의 작품 'Pearblossom highway, 11-18 April 1986'. 붓질하듯 다른 시점의 사진들을 찍어 이를 콜라주(합성)해 만든 작품입니다. 출처 Arthive.com

그간 많이 이야기되어왔던 주제라고 해서 꼭 그것이 공론장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우리는 항상 유튜브, SNS나 커뮤니티 등에서 정치인의 충격 발언이나 비행, 가십, 사건사고 기사 소식 등을 매일같이 보고 듣고 있습니다. 이렇다고 해서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사회,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관심경제 속에서 어떻게 중요한 문제가 ‘관심 경제에 맞는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중 ‘정치곰 왈도’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시즌2-3화) 입니다.

왈도는 코미디언이 조종하는 파란색 사이버 곰 캐릭터인데요. 이 곰돌이는 코미디 쇼에 정치인을 섭외해서 19금 유머를 빵빵 터트리며 정치인을 얼간이 취급하는 것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습니다. 한 지역구 의원 보궐 선거를 앞두고 왈도는 보수당의 유력 후보 리암 먼로의 유세 현장마다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데, 역시 왈도 특유의 입담때문에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나중엔 급기야 “차라리 왈도를 뽑겠어!”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죠.

<fig.4> 주목을 끌기 위해 보수당 유력 후보 리암 먼로의 유세 현장마다 따라다니는 정치곰 왈도의 홍보차량. 실제로 드라마에서 왈도는 '무소속' 후보로 보궐 선거에 출마해 먼로(1만9000여표)에 이어 무려 1만6700여표를 얻어 2위를 차지합니다. 블랙미러 영상 갈무리.

정치곰 왈도는 선거를 앞두고 정식 후보 토론회쇼 출연 섭외까지 받습니다. 왈도의 ‘본체’인 코미디언은 좌절합니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건 단지 가짜 곰일 뿐인데 토론회에까지 참여를 하라니? 하지만 결국 왈도는 토론회에 참여하고 거기서 왈도가 “정치인들은 다 쓰레기야!”라고 말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유튜브 잭팟을 터트리고 나서 왈도 캐릭터의 해외 진출까지 생각하는 PD에게 코미디언은 분노합니다. 　

“유튜브에서 역대 최고 인기 영상이 뭔지 알아요? 노랫소리에 맞춰 방귀 뀌는 개 영상이예요!”

19금 농담을 마구 뱉어내는 곰은 재미가 있고, 진지한 선거나 정책 이야기에 비해서 쉽게 우리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가십성 기사, 흥미 위주의 검증되지 않은 정보, 오락거리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을 때, 어쩌면 우리 세상에서 중요한 문제들은 간과되거나, 더 최악의 경우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정치곰 왈도에게 밀려난 진짜 정치처럼 말이죠. 재미나 알고리즘, 클릭 가능성만이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만한 정보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관심경제로부터 복원된 틈새에서 정치, 사회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정치, 사회 문제라는 것이 무 자르듯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요. 사소하고 자잘한 관심들로부터 벗어나 생긴 여유 속에선 우리가 정말 생각해보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틈새도 생겨날 것입니다.

【4.적극적 길 잃기】

중요한 것은 ‘무엇’에 관심을 갖는가보다는 ‘어떻게’입니다. 어떤 종류의 관심은 느리고 제한적인 리듬으로만 가능합니다. KTX에 탄 상태로는 가까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듯이요.

저는 제니 오델의 ‘아무 것도 안하기’가 어쩌면 ‘길 잃기’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을 잃는다는 건 정해진 목적을 놓고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최단코스로 뛰어가는 대신, 정처없이 걷다가 내게 다가오는 풍경에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효율적이고 직선적인 삶에서 속도와 방향을 놓아버리는 것이죠. 　

레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는 길 잃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른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솔닛은 길 잃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잃는다는 것에는 사실 전혀 다른 두 의미가 있다. 사물을 잃는 것은 낯익은 것들이 차츰 사라지는 일이지만, 길을 잃는 것은 낯선 것들이 새로 나타나는 일이다. 물체나 사물은 우리 시야에서, 혹은 지식에서, 혹은 소유에서 사라진다[...]그래도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여전히 잘 안다[...]길을 잃을 때는 다르다. 그때는 세상이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커진 셈이다.

-레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즉, 어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과는 달리 길을 잃는 것은 곧 낯선 것들이 내게 다가오면서 한층 더 세계가 커지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예전에 깜빡 졸다가 버스 종점에서 내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커다랗고 까만 나무들로 둘러싸인 도로에 내려서니 나무 구멍으로 떨어진 앨리스가 된 것같은 비현실적인 기분이었습니다. 멀리서 개가 컹컹 짖는 소리, 흙 냄새 등이 아주 낯설고 선뜩하게 다가왔습니다. 곧 스마트폰을 켜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내 위치를 표시한 뾰족한 세모 모양 아이콘이 뜨고, 지도 앱은 집으로 가기 위해서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몇km를 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생각보다 집에서 그렇게 멀진 않은 곳이었습니다. 안도감과 동시에 왠지모를 작은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그저 쉽게 지나쳤던 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주변은 더이상 ‘풍경’이 아닌 독자적인 존재감과 이름을 가진 사물들이 되고, 풍경은 우리를 압도합니다.

오델은 주로 자연 속에서의 관찰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길 잃기의 장소는 꼭 숲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우리는 도시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도시 산책자’ 발터 벤야민은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에도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fig.5> Le Passage Choiseul shopping arcade in Paris, circa 1900. Photograph: Roger-Viollet/AFP

길을 잃는다는 것은 내가 중심이 되는 안전한 세계에서 한발짝 나가는 일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 나를 맡기기로 결심하는 일, 그리고 바깥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경험입니다.

약간 알쏭달쏭하고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일상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이런 ‘길 잃기’를 얼마든 시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항상 빠르게 지나쳤던 작은 가게에 들어가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든지, 천천히 골목길을 걸으며 바뀐 간판들을 유심히 쳐다본다든지 등을 통해서요.

저는 어쩌면 긴 호흡의 독서 역시 길을 잃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푹 젖어들고, 그 책을 읽은 뒤의 내가 책을 읽기 전의 나와 달라질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분명 그런 종류의 길 잃기는, 맥락을 잃은 공격적인 가십거리나 남을 매도하는 격양된 말들, 자극적인 짤방을 보는 것을 통해서는 불가능하겠지요.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예측 가능한 안전함’으로부터 떨어뜨리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 안에서 길을 잃을 수 있을 기회를 열어두는 것. 우리가 펼쳐둔 신문 기사 위를 빠르게 훑는 냉정한 사람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파고들어 머무르고 소통하려는 노력들이야 말로 가장 급진적인 ‘길 잃기’이자 관심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의 ‘혁명’ 일 수 있습니다.

【5.맺음말】

관심경제 속 사람들의 초조함을 보여주는 ‘FOMO(기회를 놓치는 것의 두려움·The fear of missing ou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현 사회는 우리에게 모든 사건과 기회를 붙잡으라고 합니다. 온갖 알고리즘, 매체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국제 분쟁부터 정치 기사, 사이버 렉카 유튜브의 혐오 영상, 부동산 정보, 사건기사, 지구 어느 나라에서 열두쌍둥이가 태어났다는 소식과 연예인 커플 결혼 소식, ‘강아지 방귀 사건’까지- 내 눈 앞으로 가져다놓습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악행과 불행에 눈감지 않으려는, 성실하고 사려깊은 사람들일수록 무감각해지고 무력해지기 쉬운 현실입니다.

알베르토 망겔은 <책읽는 사람들>에서 과거 호텔방에 앉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때의 경험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연이었던지, 잠깐씩 화면에 잡힌 장면들은 한결같이 살인과 구타 장면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자동차와 건물이 폭파되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그 장면들 중 하나는 드라마가 아니라 발칸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에 관련된 소식이었다. 폭력의 공포성을 희석하는 무수한 장면들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나는 총알에 맞아 정말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무덤덤하게 지켜보았다.”

분노와 슬픔은 중요합니다. 누군가의 불행에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할 때 그것은 연대가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니 오델에 따르면 관심경제의 알고리즘 속에서 빠르게 달아오르는, 과잉된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마저도 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을 인식하고, 거짓 감정과 번잡으로부터 한발짝 물러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레터를 쓰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무력감을 떨쳐내고 정말로 내가 사랑하거나 아파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붙잡겠다는 적극적인 태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락이 끊긴 수많은 허망한, 거짓, 혐오 정보들이 우리 앞에 쌓여있다는 것이 곧 이 세상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사랑할만한 것들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길 잃고’ 해찰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정말 중요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결코 거짓과 혐오 정보가 만연한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는 아닙니다.

만약 어느 유튜버가 누군가를 저격하는 자극적인 영상을 올린다면, 그의 이야기에 솔깃할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이 진짜 맞는지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왜 이런 유튜버들이 계속 출현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 근본 원인을 궁리해보는 일.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가십으로만 소비한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거기에 가려진 중요한 일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일.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관심경제 시대에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일 것입니다. 스스로의 삶과 세상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상처입히지 않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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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써온 역사들은 숨겨진 것, 잃은 것, 간과된 것, 너무 폭넓거나 형체가 불분명하여 사람들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못했던 것일 때가 많았다. 그 역사들은 특정인이 소유한 깔끔한 밭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았으며 많은 밭을 통과하여 구불구불 난 길이나 물길이었다.”

-레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제니 오델, 김하현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pillow, 2020.

-그간 몇몇 분들이 추천을 해주셨어서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와 관련한 자기계발서들이 많은데 (명상, 마음-비우기 등)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월요병을 이겨내기 위한 추진력으로서의 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비효율성, 멈춤 그 자체에 가치를 두고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관심경제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비축하는 몰입과 에너지야말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힘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레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길 잃기 안내서』, 반비, 2018.

-만약 '해찰'을 테마로 하는 회차를 쓰게 된다면 다뤄보고 싶었던 책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읽으면서 이 책이 많이 떠올라서 이번 회차에 함께 엮어보게 되었습니다. long-ing(먼 곳-열망)과 blue(푸름)이라는 이미지가 교차되며 길 잃기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에세이집입니다. 길을 잃는 것은 통상 비효율, 상실 등의 이미지와 이어지지만 사실 길을 잃었을 때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큐] 제프 올로프스키, <소셜 딜레마>, 94min, 2020.

-워낙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여서 아마 이미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아, 내가 항상 앱 위에 떠있는 빨간점만 보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흥분되던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과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당분간 SNS를 멀리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모나 숄레, 박명숙 옮김,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 부키, 2019.

-책 제목이나 표지만 보면 건축이나 집에 대한 책같지만, 이보다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시공간'을 넓게 다룬 느낌의 책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SNS '공간'에 대한 내용도 한 챕터에서 다뤄지는데요('내 집 거실의 군중 : 인터넷 시대에 쓸모가 없어진 문'). 저자는 SNS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조우를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 주로 다룬 내용과 다소 상반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충분히 고려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공간을 테마로 이런저런 해찰을 하기 좋은 책입니다.

【글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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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극단을 먹고 사는 플랫폼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1400자

🖍글 속 한 문장

“SNS에서는 분노, 공포,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유도하는 콘텐츠가 많이 공유되는 경향이 있다. 페이스북은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부정적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치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광고 이익에 침해되지 않도록 문제적 게시물을 신속하게 조치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혐오와 자극적인 선동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사이버렉카를 만든 것 역시 관심경제의 알고리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1.5배속으로 볼 수 있을까?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1600자

🖍글 속 한 문장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마음을 쓴다는 것이며, 어떤 관계는 충분한 시간을 들였을 때만 가능하다. 물론 시간을 들이고 보니 투입된 시간이 아까워지는 일들도 있다. 그런 시간조차 다음 실패를 피하고 감식안을 다듬는 데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전한 낭비는 아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드라이브 마이 카>와 넷플릭스의 '배속기능'에 대한 글입니다. 3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를 과연 1.5배속으로 본다면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 역시도 가끔은 책을 급하게 읽을 때가 있는데요. '보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분노한 사람을 더 오래 분노하게 하라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1800자

🖍글 속 한 문장

“플랫폼 사업자들은 사람들을 더 자주, 그리고 더 오래 플랫폼에 연결시키기 위해 주목을 끄는 게시물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참여를 유도한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추천된 이런 게시물들을 통해 극단주의자들은 서로를 더 잘 찾을 수 있게 되고 분노한 이들은 더 열렬히 분노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근간 <소셜온난화>에 대한 서평입니다. 저자는 플랫폼 알고리즘이 광고를 통한 수익화를 목표로하고 있기에, 더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추천하고 있어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유튜브 프리미엄, 책임은 노프리미엄

독서시간: 약 16분 / 글자수: 약 5500자

🖍글 속 한 문장

“사업적으로 봤을 때 구글·유튜브는 영상플랫폼이 아니라 광고플랫폼이다. 내가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얼마를 벌어들여 얼마의 수익을 배분했고, 매출과 가입자와 관련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통상 관심경제는 N잡, 고수익, 스타 인플루언서 등의 단어와 연결되며 마치 멋진 신세계처럼 그려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은 블랙박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레터(“MBTI 대유행 : 배스킨라빈스16”)에 대해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합니다. 오늘 레터를 읽고도 간단한 감상을 남겨주시면 다음 레터에 함께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양자리-AB형- INFP 연구자님: 레터를 읽다 '많은 사람들은 MBTI에서 어느정도 효용과 재미를 얻고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떠오르는 경험이 있어서 처음으로 회신해봅니다.

성격 차이로 인해 연을 끊게 된 친구가 있어요. 절연 후에 종종 '도대체 그 친구는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생각은 '내가 먼저 그런 말을 한게 잘못이었나?가 되어 '그때 그런 반응을 봤을 때 **하게 행동했어야했나?' 등 자기혐오에 가까워졌어요. MBTI가 유행하게 되고, 나의 MBTI가 무엇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또 다른 MBTI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다보니 '혹시 그 친구는 XXXX여서 그때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고, OOOO인 나는 그 리액션에 상처를 받았었나보다' 와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그 누구의 잘못이었다기보다는 그냥 다른 유형의 사람이어서 맞지 않았던 것 뿐이었던 것이죠.

물론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MBTI 검사지는 권위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제가 직접 그 친구의 검사 결과를 들어서 알게 된것도 아니기에 그저 저의 추측에서 도출된 결론일 뿐이지만은 그래도 좋지 않게 끝난 인연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사라지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몇개의 틀에 규정짓는 것이 싫어서 혈액형이나 별자리만큼이나 MBTI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고 그에 과몰입하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 했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네요. (물론 '과'몰입은 여전히 싫지만!)

☞김스피 says: 우리는 주변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MBTI만큼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얼마전에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MBTI를 물어보았는데요. 엄마의 MBTI를 듣고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제가 엄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분명 MBTI가 누군가를 완전히 틀에 가두는 것이 되어선 안되지만, 연구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린 서로 다른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라는 이해의 발판이 된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주산주머니곰 연구자님: 저는 인간의 성격이나 성별은 물론 '반려'동물, '축산'동물 같은 구분까지 뭐든 유형화해서 분류하는 걸 몹시 불편하는데요(필요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중심주의의 폐해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같은 이유에서 MBTI도 제 관심사 밖의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하도 제 MBTI를 물어보는지라(심지어 전에 다니던 스타트업에서는 워크숍 때 각자의 MBTI를 공유하고 이것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세션이 2시간이나 잡혀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검사를 해보았죠 - 처음에는 우리말로, 그 다음에는 프랑스어로, 그 다음에는 영어로요. 제가 할 줄 아는 언어를 다 동원해서 세 번 검사를 하다 보니 몇몇 질문들은 언어마다 뉘앙스가 미묘하게(그러나 이 미묘함이 답변에는 명확한 차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라서, 저는 더더욱(ㅋㅋ) MBTI를 믿지 않게 되었답니다. ㅋ.ㅋ.

그러나 스피님께서 후반부에 따뜻하게 짚어주신 것처럼, 이 16가지 조합의 알파벳 네 글자가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나아가 나를 바깥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용은 불충분하나 효능만은 충분한 도구처럼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저도 MBTI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 삽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MBTI를 신뢰하고 지지하는가와는 다른 문제이니까요. 이번 인스피아는, MBTI를 신봉하는 이에게는 '역사적 배경이 이러했다니, 조금은 경계해야겠군' 하는 깨달음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그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면도 있긴 하지' 하는 너그러움을 선사하는 풍부한 연구였습니다.

☞김스피 says: MBTI를 3언어로 했던 결과가 다 달랐다니 놀랍습니다! 레터를 보내고 나서도 또 다시 인터넷 검사를 한번 해보았는데요. '아' 다르고 '어' 다를 수 있는 질문의 언어들을 보며 결국은 내가 원하는 상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지난 레터를 보내고 나서 한국일보에 백승주 교수님의 칼럼(<MBTI와 나>)이 뜨기도 했는데요. 좋은 글이라 함께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위(기)를 보지 않기 : 돈룩업과 탈진실” 회차에 대한 의견입니다)

👥꾸물 연구자님: 이미 지난 회차를 뒤늦게 본 거긴 하지만, 1. 다양한 의견이 공론장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2. 그 의견들이 교차되고 논의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가 세상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세상의 편가르기와 냄비근성, 자극적인 방식으로 내 편 만들기는 건강하지 않은 미디어가 만들어냈습니다. 레터를 읽으면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가 생각났어요. 빅데이터와 추천영상으로 흘러가는 우리의 시선은 양극화를 극대화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 참담하게 느껴졌던 다큐였습니다. 같은 키워드를 쳐도 누군가 '지구온난화'를 검색창에 치면 '지구온난화 북극' '지구온난화 예방법'이 추천검색어로 뜨는 반면 어떤 이에게는 '지구온난화 음모론' '지구온난화 거짓'이 추천됩니다. 공정하고 건강한 공론의 장은 줄어들고 편가르기 바쁜 세상속에서 균형과 다양성, 대화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를 생각해보게 되네요. 또한 저도 감정적 상처가 두려워 '좋은 게 좋은거지'하고 토론을 기피해오지 않았나 싶으면서 개인적으로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김스피 says: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이번화에 <소셜딜레마>를 소개할 수 있었네요! 사실 이번 레터를 쓰면서 탈진실 회차가 많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자극적인 알고리즘은 결국 양극화를 불러오고, 거짓 정보와 진실을 뒤섞는다는 점에서요. 작정하고 해찰(?)하자고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쓰고 있지만, 사실 제각각인 분야나 주제들도 결국은 서로서로 얽혀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해찰의 묘미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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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에서 차후 다뤄볼만한 주제나 좋은 콘텐츠 등의 추천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1.혹시 지난 회차 가운데서 '아, 이 회차에서 이 책(혹은 영화 등)을 다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난 회차의 주제에 대한 책이라도 추천해주시면 검토 후 레터에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간도 구간도 상관 없습니다. 회차명과 책 이름, 그리고 짤막한 추천 이유를 적어서 아래 '💌편지 보내기' 버튼을 통해 보내주세요. 지난 회차의 레터 내용은 아카이브 페이지(💬링크)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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