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스무 번째 흄세레터
TGIF! 끝난 줄 알았지만 끝나지 않은 코세글자와 무더위에 지치기 쉬운 요즘이에요. 이번 한 주도 무사히 보낸 님, 고생하셨어요. 오늘 흄세레터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편집자 흄&세가 꼽은 《도즈워스》 속 장면과,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를 추천해드립니다. 이번 호는 지난 레터들보다 다소 길지만, 훨씬 덜 심각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분량은 길지만 책장은 술술 넘어가는 《도즈워스》처럼요.

《도즈워스》 미리보기 1


“집은 당연히 안 팔지. 6개월 후에 여기로 돌아오면 기쁠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계획을 세우지 말자는 말이야. 오, 샘. 난 마흔에, 아니 마흔하나에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아. 아무도 나를 서른다섯, 심지어 서른셋 이상으로 안 봐. 그리고 이 덜떨어진 도시에서 바보 같은 짓이나 하면서 영영 산다면 내게 인생은 끝난 셈이야! 그러지 않을래. 내 말은 그거야! 당신은 꼭 원한다면 여기 있어도 좋아. 하지만 나는 멋진 일을 할래. 나는 그럴 권리가 있어. 그것들을 이해하니까! 안경 쓴 얼룩 고양이 같은 인간들, 아니 덜떨어진 인간들이 모인 클럽이 내년에 영양학을 연구하든 리투아니아 미술을 연구하든 내가 무슨 상관이람? 잘난 체하는 백만장자 청년 사장들이 모여서 영국 폴로 팀 흉내를 내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영국에서 진짜 폴로 팀을 볼 수 있는데? 그런데도 여기서 계속 살면, 우린 같은 일을 자꾸만 반복하게 될 거야. 제니스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이미 바닥났어. 응, 뉴욕과 롱아일랜드가 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이 불쾌한 나라에선…… 유럽에선 여자 나이 마흔이면 권위 있는 남자들이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 하지만 여기선 그냥 할머니가 돼버리지. 신여성들은 내가 주교의 부인처럼 공경할 상대라고 생각해. 그리고 망할 공경심 때문에 나를 늙은이로 만들어. 내가 댄스파티에서 일찍 자리를 뜨면 걔들이 귀엽게 즐거워하지. 걔들보다 춤도 더 잘 추고, 그래, 더 오래 출 수 있는 내가…….”(52∼53쪽)

흄's pick

동안에다 춤도 잘 추고 인기가 많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미화하는 프랜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잘난 체하는 백만장자 청년 사장들”이나 고작 마흔을 넘어선 여자를 ‘할머니’처럼 대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생을 살아가리란 정말로 지루하고 답답하겠단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미국 문학사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 데이지 뷰캐넌에 비견되곤 한다는 프랜의 엉뚱한 매력에 매료된 것일까요?🤣

《도즈워스》 미리보기 2


샘은 결심했다. 일단 자신을 설득하는 사투를 마치고 엘사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하자 샘은(샴페인 빛깔이 살짝 물든 안개를 통해서) 그녀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상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일 자책하겠지만, 상관없어! 이 여자를 가질 거야! 이제 이 젊은 놈들을 치워버리자! 고민 그만하고, 말을 해! 콘티넨털 호텔에 데려갈 거야! 반드시!’


프랜은 과묵한 남편 새뮤얼이 떠들어대는 걸 봤다면 놀랐을 것이다. 일찍이 샘은 이 젊은 천재들을 막아낼 방법을 배웠다. 그들이 언질을 주기 전 샘 자신이 저속하다는 걸 인정하되 그들이 교양인들 사이에서 차지한 지위보다 샘이 저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높은 지위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 공격에 그들은 흐트러졌고 샘은 쾌활하고 스스럼없이 그들의 말을 반박할 수 있게 됐다. 샘은 에디 게스트가 미국 최고의 시인이며, 터브 피어슨에게서 들었지만 동의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샘이 너무 무신경하게 말하니 피어슨 J. 토머스처럼 덩치 크고 부유한 신사들이 자신의 재산과 배포를 무시하고, 길레스피, 쇼트, 키프의 교양을 우러러보는 데 익숙했던 청년들은 당황해서 비틀거렸다.

엘사는 샘의 말에 전부 맞장구쳤다. 그들과 맞서 편을 들어주자 샘은 열렬해졌다. 엘사는 (자신의 고집이 승리하는 것에 살짝 놀란) 샘이 진공청소기가 호메로스보다 중요하고 만화의 머트 씨가 솜스 포사이트보다 순수한 혈통을 지닌 인물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응원했다.


길레스피, 쇼트, 키프는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샴페인을 마신 뒤 엘사는(들어보지도 못한 술이라고 말한 것을 잊고) 브랜디를 제안했으며, 여러 잔의 브랜디를 주문하자 내야 할 술값을 상기시키는 잔 받침이 샘 앞에 점점 높이 쌓여갔다. 길레스피와 쇼트, 키프 앞의 탁자는 순수한 개척 시대처럼 그때 놓아둔 브랜디 말고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샘은 간사하게 기뻤다. 그것 말고도 그가 콧대가 날카로운 키프보다 능력 있는 연인임을 더 잘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

샘은 청년들을 무시하고 엘사에게만 이야기했다. 이 장밋빛 아이에게 동정심을 갖고, 거의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샘은 그녀의 눈이 실은 매정한 것이 아니라 지적이라고 판단했다.


샘은 결국 탁자 아래로 손을 넣었고, 엘사의 손이, 너무나 따뜻하고, 너무나 젊고, 너무나 생기 있는 손이 날아와 샘의 손을 꽉 맞잡으며 샘을 견딜 수 없이 휘저어놓았다. 샘은 두 사람만이 나누는 비밀을 생각하며 매우 명랑해지고 쾌활해졌다. 하지만 작은 방해가 생겼다.

엘사가 콧소리로 말했다. “어머, 잠깐만 실례할게요. 밴 나이스 로드니가 저기 있네요. 저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요. 잠깐만 실례해요.”

엘사는 굉장히 털이 많고 파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가더니 아양 떨던 태도를 싹 버리고 대화에 집중했다.


샘은 자기 탁자의 손님들에게 무시당한 채 앉아 있었다.

삼 분 뒤, 잭 키프가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도 엘사와 밴 나이스 로드니에게 가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다음 길레스피도 하품을 했다. “음, 들어가봐야겠네.” 쇼트가 말했다. “반가웠어요. 저…….” 그러더니 그들은 가버렸다. 샘은 그들이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봤다. 그들에게 좀 더 유쾌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쇼트나 길레스피 같은 자들도 이 명랑하고 외로운 도시에서는 함께할 가치가 있었으니까.

다시 보니 엘사와 키프, 로드니가 싹 사라지고 없었다. 샘은 엘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동안 앞에 엄청나게 쌓인 잔 받침만 친구 삼아 기다렸다. 엘사는 오지 않았다. 샘은 웨이터에게 계산하고 천천히 일어나 굳은 얼굴로 택시를 불러 춥고 외롭게 떠났다.


밤중에 언젠가(꿈인지 생시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프랜이 냉랭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뮤얼, 여보, 이제 알겠지. 내가 그렇다고 하지 않았어? 당신은 쿠르트 같은 유럽인의 열여덟살 적보다도 여자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당신들 미국 남자란! 잘난 체 씨근거리면서 그 쪼그만 창녀를 유혹할 수 있을지 없을지 빤한 질문이나 해대다니! 그러더니 그것조차 못 하다니! 참 꼴좋다! 하지만 쿠르트…… 물론 쿠르트는 처음부터 엘사를 거기서, 기생충 같은 친구들에게서 떼어냈을 거야…….”

프랜의 목소리였지만, 샘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시 깨어보니 프랜이 아니라 샘 자신이 경멸하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거기서 가장 빌어먹을 점은 네가 그 예술가 지망생 쥐새끼들에게서 우월감을 느꼈단 거야. 가엾은 녀석들! 물론 그들은 잘난 체하면서 거만을 떨어야 용기를 잃지 않지. 그들은 실패자니까.”

그리고 다시. “그래, 다 옳은 소리야. 하지만 나는 엘사를 다시 찾아낼 것이고, 이번에는…….”(460~463쪽)

세's pick

'샘(샘 도즈워스)'은 젊은 여성 '엘사'를 꼬셔보고자 애쓰지만 허무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스스로를 책망하고 경멸하지만 이내 다시 엘사를 찾을 거라고 다짐하죠.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믿으며 으스대던 샘이 실은 '찌질한' 남자에 불과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풉)

👀편집자 흄&세의 추천 콘텐츠👍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2022) 
휴가차 그리스를 찾은 교수 '레다'는 해변에서 만난 젊은 여자 '니나'에게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니나는 어린 딸에게 시달리느라 지쳐 있죠. 그런 니나를 보며 레다는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립니다. 아이를 버리고 도망친 과거를요.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고, 현재 상영 중입니다.
《도즈워스》 속 프랜의 외침이 떠오르기도 해요.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되어 예쁘장한 모습으로 카드놀이나 하고 싶진 않아!"
이 영화의 카피는 이렇습니다. "아름답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

장류진,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일의 기쁨과 슬픔》의 수록작이에요. 주인공 '지훈'은 짝사랑하던 '지유'가 일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후쿠오카행 티켓을 끊어 떠납니다. 지유와 함께하는 동안 지훈은 한번 잘 해볼까 싶어 타이밍을 엿보지만, 지유에게 한 방 먹고 말죠. "우리,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음...... 제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닐까요?" 
유쾌한 문체로 현실(찌질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점이 《도즈워스》와 닮았어요.
책 표지를 클릭하면, 해당 작품 전문을 볼 수 있는 문장 웹진 사이트로 이동하게 해두었어요. 하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은 수록작 모두 재밌으니 책으로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2. 이국의 사랑
0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 김인순 옮김

007 그녀와 그

조르주 상드 | 조재룡 옮김

008 녹색의 장원

윌리엄 허드슨 | 김선형 옮김

009 폴과 비르지니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 김현준 옮김

010 도즈워스

싱클레어 루이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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