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솔 작가, 을지로 삼공이 화이트앤블랙 /

안녕하세요, <중심잡지>의 에디터 릳(a.k.a. RD)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스물 여섯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아직 5월, 우리가 봄이라고 이야기하는 계절이지만, 이번 주는 환절기를 넘어서 갑자기 여름이 찾아와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한 주였습니다. 어느 새 날씨가 좋아졌나 싶더니, 최근 며칠의 낮 기온은 30도에 육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니까요.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이제 ‘한국의 계절은 여름과 겨울,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더울 때는 찌는 듯이 덥고, 추울 때는 혹한이 몰아치는 환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아마도 이것은,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환경문제 때문이겠죠.

전 세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되었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는 2018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0으로 줄여야 한다는 보고서를 승인했습니다. 말 그대로, 전 세계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그리고 돈을 들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2020년 기준 한국의 화석 연료 의존율은 여전히 80%에 육박합니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개발이 열심히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들여야 할 노력과 예산은 터무니없이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그 궁극의 때가 닥쳤을 때, 이제 더 이상 돈으로 무언가를 해볼 수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환경문제라는 이 비가역과정은, 원하는 물건을 마트에서 찾아서 사는 것처럼 손쉽게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모든 것이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자본주의’ 안에서, 우리는 ‘살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있어 화폐 없이 살았던 기억은 너무나도 멀어졌고, 지금의 인류에게 ‘비자본주의적’ 대상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자본주의를 가지고) 그것을 넘어서는 상상을 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상품과 그것의 유통을 소재로 하여 흥미로운 작품을 구성하는 조예솔 작가와, 을지로 구석구석에서 기억을 만들어나가는 을지로 동물들의 색깔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살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게 하고 그것에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예술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 ‘작가의.노트’는 그 현실을 비틀고, ‘을지의.색’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풍성한 기억들을 안겨줍니다. 과연 어떤 내용들인지 함께 보실까요? 그럼 26호, 시작합니다.

#조예솔

세상살이마트, 가변설치, 혼합재료, 2021
조예솔 작가는 하위문화의 코드와 일상적 사물을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예술과 일상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가 갤러리에 조성한 현장과 사물(마트와 상품)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원에서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간극을 해체하고, 관객의 미적 경험을 확대한다. 여기에는 우리 삶의 내밀한 혹은 저급한 코드들을 예술에 포함시키려는 작가의 시도 역시도 담겨있다.

작가는 ‘흉내내기의 전략’을 통해 신화를 버리고 ‘차이의 전략’으로 점철된 진짜와 가짜의 위계질서를 파괴한다. 작가 고유의 이미지와 세계관으로 구현한 더미(dummy)들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신하고, 이미지들은 전시장 안 관객을 지배함으로써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된다. 즉 이미지들은 현실을 그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을 통해 현실 그 자체를 확인하는 전도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는 일상성이 선명하게 녹아있어, 작가의 인스타그램 속에서 구현되는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쫓아가다보면 그가 만들어낸 <세상살이마트>를 더 입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복제되고 증식된 작가의 ‘분신’들을 만나보자. 

#을지로 삼공이 화이트 앤 블랙

서울 원도심 을지로. 을지예술센터의 PD인 청두는 철공소가 밀집해 있는 골목에 작업실을 만든 지 4년이 되었을 때, 점박이 강아지 ‘삼공이’를 만났습니다.

운길산 기슭에서 「레브라도리트리버」 아빠와 「보더콜리」 엄마 사이에 태어났다는  ‘삼공이’는, 처음에 을지로의 한 조명 가게로 입양되어 이 동네에 왔습니다. 하지만 곧 파양되고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며 골목에서 떠돌이로 자라게 되었죠.

을지로를 오가며 삼공이를 귀여워 하던 청두는, 어느 날 산책을 한번 시켜보라는 사장님들의 권유를 받았고 삼공이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예술가들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청두와 함께 매일 을지예술센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답니다. (유튜브 '미술관댕댕이들'채널에서 발췌)

삼공이는 거의 매일 청두와 함께 을지로를 산책하는데, 산림동 골목과 대림상가 데크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어요. 삼공이는 유년기의 기억 때문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있으니, 조심스럽게 다가오거나 멀리서 그녀의 미모를 감상하시면 됩니다. 을지로는 무채색에 가까운 금속의 색과 원색에 가까운 공구나 간판의 색들로 둘러싸여있어, 삼공이의 매력적인 점박이 무늬는 더 극적이고 시선이 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베이지 색상의 동그란 눈썹도 빼놓을 수 없구요!

을지로 3, 4가의 골목에서는 삼공이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기집 옥상에서는 한없이 용맹하지만 길거리에서는 겁쟁이인 ‘깐돌이’, 을지예술센터 4층 데크에서 잘 보이는 껍데기집 옥상에서 사는 진돗개 2마리, 골목에서 만나면 덩치가 커서 무섭지만 사실 순하고 낭만적인 ‘삼순이’ 등 나름의 방식으로 을지로에서 공생하는 개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고등어 무늬, 치즈 무늬, 젖소 무늬 등 각자 가문의 위용을 뽐내는 고양이들도 골목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죠.

원도심의 숙명이 개발이라면, 이 곳에 흐르는 시간은 언젠가 멈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을지로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우리의 삶과 사회를 풍성하게 만들 기억들을 생성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을지로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댕댕이가 가진 하얗고 까만 점박이 무늬, 이번 주 을지의. 입니다.

안녕하세요. 모르는게 많은 몰라입니다. 이번 주 을지예술센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소하지만 리얼한 소식! 지금 바로 보시죠.^^ 
첫 번째 소식 : 지인, 새로 산 맥북에 커피 먹여서 맥북 고장나. 덩달아 지인 멘탈도 고장나 

을지예술센터 지인 PD는 일 중독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업무용 노트북도 2개나 되고, 그 중 하나는 산 지 얼마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맥북 프로입니다. 얼마 전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던 지인의 가방 안에는 느슨하게 잠겨있는 커피 텀블러와 노트북이 담겨 있었답니다. 

지인은 산뜻한 마음으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인의 맥북도 지인과 함께 모닝커피를 마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지인의 맥북은 카페인을 소화하지 못했고, 결국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응급실에 보내진 지인의 맥북은 아직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소식 : 바까, 유준의 생일을 위해 소중한 마음을 담은 선물 건네

유준 바까는 서로 너무 잘 통하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평소에 예술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업무 피드백을 나누며 두터운 친목을 쌓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유준의 생일이 있었습니다. 바까유준을 위해 갸륵한 마음을 담아 정성껏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유준의 생일날 사무실로 따뜻한 선물 상자가 배송되었습니다. 

유준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언박싱을 진행합니다. 상자를 열고 세상 밖으로 꺼내진 유준의 생일선물은 ‘독수리팬티’였습니다. 팬티 속 독수리의 눈은 매섭고 부리도 돌출되어 있었습니다. 바까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팬티’는 유준이 입기에는 매우 작은 사이즈였기에, 결국 사무실 벽에 전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 히든 사이드 Hidden Side  ( 신제현   ), 리:플랫 RE:PLAT  ,  2021. 05. 14 ~ 06. 05     .
  • 징울 개인전   ( 징울  ),  스페이스mm  , 2021. 05. 03 ~ 06. 12      .
  • 정수진 개인전   ( 정수진  ),  알렉스룸  ,  2021. 05. 13 ~ 05. 25       .
  • 그 가운데 땅 :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  ( 전민경, 이설희, 강동주, 김수자, 문성식, 문소현, 손경화, 최하늘, 폴린 부드리(Pauline Boudry) & 레나트 로렌즈(Renate Lorenz), 폴 챈(Paul Chan), 폴 매카시(Paul McCarthy), 우 챙(Wu Tsang), 카라 워커(Kara Walker) / 권영우, 이건용(아르코미술관 소장작가)  ),  아르코미술관  ,  2021. 04. 22 ~ 06. 13
  • 황재형 : 회천(回天),   황재형,   국립현대미술관,  2021. 04. 30 ~ 08. 22
  • Solid City 솔리드 시티   (고대웅&박가범, 마민지, 박수환&장성건, 박혜민&김수환, 송주원, 송호철, 아마추어 서울, 이병찬, 후암연립),  세화미술관,  2021. 04. 21 ~ 08. 31
         ☺ 전시명을 클릭하시면 전시정보를 보실 수 있어요!

# 다음호에.만나요

이번 주도 여기까지입니다. 지금 이 뉴스레터를 쓰고 있는 순간도, 기온이 많이 올라 땀이 송송 나는 중입니다. 이제 곧 사무실, 시내 곳곳에서는 에어컨들이 돌아가기 시작할 테고, 거리는 한층 더 달아오를 테지요.

단순히 버튼 하나를 누름으로써(그리고 설치비와 전기료를 냄으로써!) 더위를 해갈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어떤 환경 속에 있는지 한 번쯤 고민하면서 누른다면 무언가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첫 걸음이 되지 않을까요? 

다가올 여름,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천천히 고민하면서 이번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부디 우리의 상상력이, 우리의 가능성이 우리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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