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_그럼 언제 놀아?

종이 한 장만 남겨둔 사람

얼마 전, 찾을 게 있어서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결국 찾고 싶었던 건 찾지 못했지만, 과거의 기억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물건들이 많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썼던 뮤지컬 시나리오부터 시작해서 대학 합격증, 4년 만에 연락해서 뜬금없이 선물이라며 그려줬던 초상화, 이상한 기획안만 쓰다가 끝나버린 잡지사 수료증,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로 지내자며 적어줬던 롤링페이퍼 등등. 시간이 흐르면서 까마득히 잊고 지냈는데, 딱 종이 한 장으로 그때 그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야! 우리 이런 때도 있었는데!"라고 보내기엔 너무 가볍고, "안녕.... 잘 지내...?"라고 보내기엔 지나치게 아련한 사이. 한때는 함께 보낸 시간이 꽤 길었지만, 이젠 무슨 말로 연락해도 어색하기만 한 관계. 같이 찍은 사진도 몇 장 없고, 종이 한 장으로만 남은 사람들이라니. 갑작스럽게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다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언젠가는 종이 한 장으로만 남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종이 한 장이라도 남은 게 어디야, 싶기도 했고요.

지금은 종이 한 장뿐인 관계가 되었더라도, 한때 좋아했던 사람들이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휘릭휘릭 넘길 수 있는 종이 한 장이 아니라,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도 선명한 시절을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었어요. 언젠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다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거나 못 본 척 호다닥 지나갈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저도 남은 하루를 잘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 청소도 하고 마음 환기도 하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랄게요!

과거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이 주의 오이김밥 한 줄🍐

영화 <우리들>

포스터부터 여름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영화 <우리들>을 드디어 봤습니다.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던 선이 전학생 지아를 만나고, 둘도 없이 가까운 친구가 되었던 그들은 어느새 서늘한 얼굴을 하고 서로를 마주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만 보이는 어린이들의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영화인데요. 사실 처음엔 초등학생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울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보는 내내 이런 영화를 왜 진작에 보지 않았을까 후회했습니다. 내가 너의 유일한 베스트프렌드이기를 바랐던 마음, 다른 친구와 가까워지더라도 1등으로 친한 친구는 오롯이 나뿐이길 바라는 마음. 친한 친구가 홀수일 때면, 소풍 가는 버스에서 혼자 앉게 될까 전전긍긍했던 마음. 시간이 훌쩍 흘렀다 해서 그 마음을 어떻게 모른다 할 수 있을까요.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야, 비밀 꼭 지켜'라는 말이 수없이 오갔던 시절. 그 약속을 굳게 믿었지만, 다음날이면 비밀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던 시절. 뭐라고 써도 이 영화의 섬세함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날 썼던 메모의 일부를 덧붙여봅니다.

그땐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또 들여다보면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닌 시절.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누구도 사는 게 버겁지 않은 이가 없어서 마음이 시렸다. 각자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 가끔은 서로를 상처입히지만, 또 가끔은 서로가 있어야만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이 세상을 미워하다가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에 출연한 배우들이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는데, 스크린 밖에서도 그들이 행복하기를, 잘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되는 영화. 세상을 미워하더라도 결국엔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주의 레몬맛 탄산수🍋

펀펀페스티벌, 장류진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골똘히 생각했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못할 거야. 가사도 모르면서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그런 일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대체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든 걸까? 이찬휘가 너무 싫어 죽겠는데, 동시에 부러웠다. 왜 나는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을, 저 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된 거지? 어째서?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차이일 뿐인데, 마음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은 대체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 '펀펀페스티벌', 장류진 中

제목이 <펀펀페스티벌>이길래 음악 페스티벌 이야기인 줄 알고 읽었던 소설이 알고 보니 합숙면접 이야기라서 당황했습니다. 하나도 fun하지 않은 합숙면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축제에서 만났던 인물을 소재로 한 짧은 소설인데요. '어떤 사람은 전부 알아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조금만 알아도 다 아는 것처럼 나설 수 있는 걸까.'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는 이 문장처럼, 영어 가사를 다 얼버무리고 딱 후렴구만 알면서도 무대에서 자신있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예요. 너무 싫어 죽겠는데 동시에 부러웠던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머뭇머뭇거리다가 흘려보냈던 순간들을 떠올리다가, 이처럼 온갖 고민과 망설임을 거쳤어도 여전한 내 자신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현실적인 묘사에 웃음이 나다가도 조금 슬펐고, 그래서 조금 더 마음이 쓰였던 이야기. 그렇게 저는 장류진 작가님의 차기작을 또 기대해봅니다✌

이 주의 무지개떡 하나🌷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 유희열 - 조조할인

<나 혼자 산다>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오가면서 평화롭게 보내는 금요일 밤을 좋아합니다. 나 혼자 산다를 보던 도중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채널을 돌렸는데, 좋아하는 뮤지션이 나올 때의 짜릿함이란! 아주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금요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소소한 행복이 있는 금요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애정하는 유스케의 500회 특집 영상을 가져왔습니다. 500회 특집은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 - 심야 음악 토크쇼 역대 MC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꾸려졌는데요. 지난날의 추억을 꺼내보며 함께 웃고 대화하는 모습이 좋아서, 덩달아 즐거워졌던 특집이었어요. 평화로운 금요일 밤을 오래오래 지킬 수 있도록, 심야 음악 토크쇼가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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