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현 작가, 을지로 김치말이 핑크 /

안녕하세요, <중심잡지>의 에디터 릳(a.k.a. RD)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다들 여름 잘 이겨내고 계셨는지요? 제가 잠시 휴식을 위해 <중심잡지>를 떠났던 것이 6월이니까, 벌써 그새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와,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중심잡지>를 몰라와 청두에게 잠시 맡겨두고 떠나있었던 동안, 저는 눈 수술이라는 작다면 작은, 크다면 큰 일이 있었습니다. 시력에 치명적이거나 한 문제는 아니었고, 다만 수술만 잘 진행되면 별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종류의 수술이었어요. 수술은 무사히 잘 진행되었고, 이제는 멀쩡한 눈으로 일도 다시 시작하고, 이렇게 여러분께 뉴스레터도 쓰고 있습니다.

일을 쉬던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반 강제적으로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제가 쓰지 못하는 부분이 ‘눈’이라는 것이 ‘휴식을 하기엔’ 너무 치명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쉴 때 어떤 것들을 하시나요? 독서, 운동, 게임, 넷플릭스, 등등 아마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텐데, 저는 ‘눈’을 조심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저것들 중 어느 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에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시야’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었습니다. 쉬고 싶어도, ‘시야’가 없으면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비단 쉬는 것을 떠나서 우리는 일을 할때도 끊임없이 눈을 사용하죠. <중심잡지>가 전달해드리는 여러 가지 작품과 전시, 큐레이팅에 대한 것들도 모두 ‘보아야만’ 인식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더불어, 우리의 생활, 사회, 인식체계가 얼마나 ‘시각중심적’으로 구성되었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시각에 집착하고 있고, 오감 중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그것을 우선시하고 있나, 그런 생각들 말이죠.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쓸모를 가진 것들이 널려 있지만, 심지어 어떤 것들은 ‘보기 위해’ 존재하는 종류의 것들도 있고, 우리는 거기에 때때로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에게 휴식은 어떤 것인가요? 육체적 휴식, 혹은 정신적 휴식을 위해 어떤 것들을 하시나요? 그리고 거기에서 ‘시각’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요? 긴 시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면서 들었던 질문들을, 조심스럽게 여러분께도 드려봅니다.

오랜만에 (에디터 릳이) 돌아온 <중심잡지>, 오늘은 옷을 구조로 보고 행위를 실험하는 권지현 작가의 이야기와, 을지로를 상징하는 것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음식’에서 뽑아낸 핑크색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33호, 시작합니다.

#권지현

<Blueprint>, 단채널 비디오(25'33''), 2020, Korea
한 사람이 걸어들어온다. 그는 매듭을 하나씩 풀어 옷 조각들을 바닥에 펴놓는다. 바닥에 내려놓은 반듯하게 펴진 다섯 개의 옷 조각들은 마치 카페트처럼 보인다. 각각의 옷 조각들은 잠자기, 먹기, 배설하기, 운동하기, 기록하기를 위해 디자인되었다. 옷 조각들 위 도형들의 모양, 배치된 순서, 폭과 너비 등은 퍼포머가 각각의 행동들을 할 때 따라야 할 순서와 움직임의 범위 등을 표시하고 있다. 옷 조각에 들어서는 것을 시작으로 퍼포머는 표시에 따라 잠을 자고, 먹고, 배설하고, 운동하고, 기록한다. 다섯 가지 행동을 모두 끝마친 그는 다시 옷 조각을 들어 올려 몸에 둘러 묶어 입고 떠난다.

옷은 사람의 몸과 피부에서 상호작용한다. 또한 움직임과 생각, 정체성 등 우리를 규정하는 많은 것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어린아이의 완력으로도 찢어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약하다. 권지현은 옷을 만든다. 여기서 옷은 오브젝트이자 동시에 작가가 설계하는 시스템이다. 작가는 자신의 내외부의 잔존하는 구조를 설계하고 그 시스템을 재생산한다. 기존의 구조들을 재배열하는 과정은 과거와 행위에 대한 몰입이자, 자신의 기억의 재배치처럼 보인다. 

#을지로 김치말이 핑크

을지예술센터에서 방산시장 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냉면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래옥’인데요. 한국의 유서깊은 식당 상호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 이 우래옥은, 1946년에 개업하여 지금까지 이어온 오래된 냉면집입니다.

평양에서 명월관을 운영하다 1945년 월남한 주인은, 이듬해 을지로의 적산가옥을 사들여 지금 자리에 ‘우래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냉면과 불고기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가게 이름인 우래옥(又來屋)은 “다시 찾아온 집”, 그리고 “또 오고 싶은 집”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슴슴한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우래옥을 처음 찾을 때에는 모두가 평양냉면을 먹게 되지만, 이곳을 두 번째 찾을 때면 꼭 먹게 되는 메뉴가 있습니다. 바로 ‘김치말이 냉면’입니다.

소고기만 사용하는 묵직한 맛의 육수에 쫀득한 메밀면, 그 위에 잘게 썰어 얹은 김치를 한 입 베어물면 이 냉면집이 거쳐 온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기 그릇에 담긴 정갈한 냉면을 한젓가락 두젓가락 먹다보면 아래 깔려있던 밥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밥의 든든함에 지친 일상이 위로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렇게 밥을 먹고 있으면 맑은 육수가 예쁜 핑크색이 되는 마법이 펼쳐집니다.

세상에 이렇게 든든한 핑크색이 있을까요?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 시원하고 든든한 맛을 전해주는, 을지로에서 가장 오래된 김치말이 냉면의 핑크, 바로 이번 주 을지의. 색 입니다.

안녕하세요. 모르는게 많은 몰라입니다. 이번 주 을지예술센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소하지만 리얼한 소식! 지금 바로 보시죠.^^ 
첫 번째 소식 : 을지예술센터 여름을 장식한 《콜렉티브 컬렉션》 전시 끝났다!

을지예술센터에서 올해 5월부터 시작한 <예술기능공간>행사와 《콜렉티브 컬렉션》 전시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전시 마지막 날까지 많은 관람객분들이 관심가져주시고, 전시장을 방문해주셨습니다. 함께해주신 을지로 일대 예술가분들과 관람객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며, 앞으로의 활동들을 기대해주세요! 

혹시라도 6월 6일에 먼저 끝난 <예술기능공간>행사가 궁금하신 분들은 을지예술센터 쇼잉 계정에 잘 아카이빙되어 있으니 언제든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같은 계정에 《콜렉티브 컬렉션》도 아카이빙 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많관부~)

을지예술센터 쇼잉계정 ▶ https://www.instagram.com/c.enter_showing/

두 번째 소식 : 을지예술센터 하반기 예고편

전시가 끝난 을지예술센터는 고요할 줄 알았죠? 전혀 아닙니다. 잔인하게 잡혀있는 하반기 일정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반기에 선보일 을지예술센터의 퍼포먼스들 중 하나를 오늘 살짝 공개해볼까합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쉼’을 취하시나요? 다가올 9월부터 소개될 행사의 주제는 ‘도시에서의 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쉼’을 선물드리기 위해 을지예술센터 식구들은 쉬지 못하고 있다는 모순이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을지예술센터 인스타그램에 9월 소식 올라갑니다잉~! (많관부~)

         ☺ 전시명을 클릭하시면 전시정보를 보실 수 있어요!

# 다음호에.만나요

이번 주도 여기까지입니다. 오늘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무더웠지만, 최근 저녁이 되면 은근히 선선한 바람이 불 때가 있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어제 퇴근하다가 길에서 잠자리를 발견했고요. 어느새, 여름이 저만치 문지방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음 주에는 ‘늦은 장마’ 예보도 있고, 더위가 갑자기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시간은 흐르고, 언제 그랬나 싶게 쌀쌀한 날씨가 다가올 겁니다. 우리는 이 여름에 어떤 일들을 남길 수 있을까요. 부디 남은 여름, 충분한 ‘휴식’으로 채우시길 빕니다. 그럼, 다음 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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