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제주를 좋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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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안녕하세요.
인간 강혁진입니다. 

저는 지금 제주에 있습니다. 며칠 간 아내와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희 부부는 올해에만 벌써 제주를 3번째 찾고 있네요.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입니다. 김포로 돌아가는 저녁 비행기를 타기 전에 제주 시내의 한 카페에 앉아 님께 이 편지를 씁니다.

지난 주 인간 강혁진에 ‘요즘 인풋이 부족하다.’, ‘영감을 받을 만한 것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 여행을 통해 그 말이 무색해지리만큼 많은 영감을 얻고 갑니다. 묵었던 숙소, 다녀온 산, 둘러본 공간들에서 많은 영감과 자극 그리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를 공유하려 합니다. 조금 식상 할 수도 있겠지만, 한라산을 등반한 이야기입니다. 한라산을 다녀오는 코스는 여러 개가 있습니다. 백록담을 다녀오는 코스로는 성판악 코스와 더불어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관음사 코스가 있습니다. 보통은 성판악으로 올라가 관음사로 내려오거나 그 반대로 하기도 합니다. 올라갔던 코스로 올라가 다시 내려오기도 하죠. 결혼하기 몇 해 전 눈 쌓인 한라산을 보고 싶어 관음사 코스로 올라 성판악 코스로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수월한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바로 영실코스입니다. 백록담까지는 가지 않지만, 백록담이 바로 올려다보이는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올라가는 코스입니다. 비교적 완만한 난이도와 나무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린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코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 제 체력이 어린아이에 비해도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저질이라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비록 백록담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오르다가 조금 힘들다 싶어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경관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멀리 모슬포가 보이고 사계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계리를 대표하는 산방산과 형제섬 그리고 송악산이 마치 장난감 모형처럼 작은 크기로 한 눈에 들어옵니다. 

재미있는 건 경치 구경은 올라갈 때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등산할 때에는 ‘산을 오를 때 경치가 좋은 코스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올라갈 때는 힘이 들긴 하지만 한 번씩 쉬어가며 경치를 즐기고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경치를 볼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힘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올라올 때 이미 경치를 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시선입니다. 산을 오를 때 우리의 시선은 위를 향합니다. 발밑을 조심하며 걷기는 하지만 이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떤 지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수시로 위를 쳐다보며 걷습니다. 내려올 때 향하는 시선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의 시선은 그저 발 밑을 향합니다. 내려가는 길을 쳐다보기에 급급합니다. 주변을 둘러보기보다는 발 밑을 집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넘어지거나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산을 향해 오를수록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표에 한발씩 다가갈 때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잠시 쉬어가며 내가 달성한 성과를 뒤돌아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내려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위를 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발 한발 조심히 내디딜 뿐입니다. 

마치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과도 같은 등산의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느낀 것도 있습니다.

바로 나무와 풀숲의 키였습니다. 영실 코스를 출발할 때만 해도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나무들 덕에 그늘도 만들어집니다. 점점 더 높이 올라갈수록 탐방로 옆 나무와 풀의 키가 낮아지는 걸 느낍니다. 어쩌면 높은 산의 바람과 비를 이겨내기에는 높고 큰 몸집보다는 작고 낮은 키가 유리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키 큰 나무가 정상에 있다면 쉽게 꺾이고 부러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어놓으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 삶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내어놓아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인간관계가 되었건, 시간이 되었건, 자유가 되었건. 나무가 키를 내어준 것처럼 무언가 내놓지 않는 사람은 정상에 다다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내어 놓고 정상에 오를지는 각자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다르겠죠.

내려오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도와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등산 스틱입니다. 접었다 펼 수 있는 등산 스틱을 아내와 하나씩 나눠 들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다리는 두 개였지만 스틱 덕분에 다리가 하나 더 생긴 것 마냥 조금 수월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등산을 한 지 이틀이 지난 지금도 무릎과 종아리에 통증이 느껴집니다. 과장을 좀 보탠다면, 아마 스틱 없이 하산했다면 오늘은 걷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인생의 내리막에도 이런 '스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존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스틱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친구나 연인, 가족이 스틱이 되어줄 수도 있죠. 어떤 형태가 되었건 우리에겐 내리막을 함께 해줄 ‘스틱’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평소에도 늘 ‘스틱'을 만들어 둘 준비를 해야겠죠. 

고작 4시간 정도의 짧은 산행을 하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적은 이야기 말고도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머물렀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이렇게 인간 강혁진으로 함께 나누고, 또 다른 일부는 미래의 제 활동에 참고할 생각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디앤디파트먼트, 제가 묵었던 신화월드 숙소, 오늘 낮에 다녀온 카페 풀베개 등에서도 많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혹시 님이 궁금해하신다면 소개해 드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편지가 조금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지루하지 않게 읽어주셨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간 강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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