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록산게이 #주말에뭐읽지 #시사인
💌   2021년 11월18일 80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국립극장 
몸과 마음은 결코 나뉘지 않는다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펴냄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사진). 장애인의 공연을 보는 것도 소리극이란 것도 처음이었다. 궁금증뿐 기대는 없었는데 그러나 그 이상이었다. 나무 그림자 뒤에 수어 통역사 두 명과 무대 해설자, 노래와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이 배경처럼 자리한 무대는 단출하면서도 그윽했고 이야기 또한 담백하면서 웅숭깊어 보는 내내 가슴이 시큰거렸다.
시각장애인 옥이는 트랜스젠더 은아의 카페에서 엄마가 녹음해준 이야기를 점자책으로 만든다. 엄마는 지금 의식불명 상태.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전화가 걸려오지만 옥이는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생 자신의 길잡이가 되어준 엄마를 놓치게 된 현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를 대신해 은아는 전화를 받아주고 옥이의 책 ‘바리데기’ 이야기를 읽는다. 태어났을 때 눈에 수백 마리 실뱀이 엉켜 있었던 바리데기, 그래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그러나 아버지가 죽게 되자 생명수를 구하러 다른 형제들 대신 저승으로 떠난 아이. 옥이는 꿈에 바리데기가 되어 저승으로 간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그곳을 지키는 ‘저승’과 ‘범’의 시험을 견디고 마침내 염라대왕을 만날 기회를 얻지만 옥이에게 주어진 건 번호표뿐. 딩동 딩동, 번호표 부르는 신호음을 들으며 옥이는 절망한다. 내 번호는 몇 번인가요? 내 차례는 언제인가요? 번호표를 볼 수 없는 옥이는 도움을 청하다 마침내 소리친다. “내가 보지 못할 거면 소리도 사라지게 했어야지!”  
옥이의 성난 외침이 극장 안에 울려 퍼질 때 나는 울었다. 보지 못하는 그의 처지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그와 다를 바 없는 답답한 내 처지가 떠올라서. 눈을 뜨고도 길을 찾지 못하는 나는 자신을 소외시키는 현실에 분노를 터뜨리는 시각장애인 옥이가 차라리 부러웠다. 어디 옥이만이랴. 구척장신 ‘저승’ 역을 능청스레 해내는 저신장 장애인 배우도, 어눌한 말투와 뒤틀린 몸으로 무시무시한 ‘범’을 연기하는 뇌병변 장애인 배우도 나는 부러웠다. 제 몸의 한계를 웃음의 소재로 삼을 만큼 단단한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한때는 정신이 육체를 좌우한다고 믿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강한 정신력과 빼어난 이성 앞에서 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배웠다. 하지만 살아보니 몸이란 그리 단순하거나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아픔은 몸에 새겨진다. 마음에서 비롯한 고통조차 그 아픔은 몸으로 표현된다. 마음이 울면 몸이 꺾이고 몸이 꺾이면 마음이 운다.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은 거짓이다. 둘은 나뉘지 않는다. 나눌 수 없다. 그게 인간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록산 게이의 〈헝거〉는 이 진실을 보여준다. 〈헝거〉는 몸에 가해진 폭력과 그로 인한 상처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록산 게이는 담담하게, 그러나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눈을 감고 싶을 만큼 통렬하게 자신의 상처 입은 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라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니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할 폭력의 기억을 낱낱이 해부하고 그 기억에 볼모가 돼버린 자신의 찢긴 내면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겪은 성폭력은 그의 영혼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좋아하던 남자애로부터 자기 몸이 싸구려 장난감처럼 다뤄졌던 기억은, 그가 뛰어난 성적으로 유명 대학에 진학하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탁월한 성취를 이루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먹는 것뿐. 먹고 또 먹어 자신의 몸을 불리고 아무도 범할 수 없는 커다란 몸을 만드는 데서 그는 탈출구를 찾는다. 그렇게 만든 몸이 또 다른 폭력의 대상이 되는 걸 알면서도 그는 집요하게 음식을 탐한다.
이 식욕이 상처 입은 영혼의 허기라는 걸 그는 안다. 이 허기가 자신의 몸을 감옥으로 만들고, 자신을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수인으로 만들었음을 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날 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헝거〉는 이 직시의 기록이다.
록산 게이는 하얗고 매끈하고 날씬한 몸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아이티계 미국인·성폭력 피해자·초고도 비만인인 자신의 흉터투성이 몸을 본다. 자신의 몸에 고통을 가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겪는 몸의 고통을 직시한다. 고통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아프다고 하소연하지도 않고 극복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을 피해자나 생존자 어느 하나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그렇게 양분되지 않으며 인생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으므로. 몸에 새겨진 깊은 상흔은 인생의 흐린 날마다 아픔으로 되살아나고 마음은 안식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오랜 방황 끝에 그는 아픈 몸으로도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다. 상처 입은 몸으로 살아왔기에 그는 자신의 몸이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는 걸 안다. 자신의 아픔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몸이 겪는 아픔을 알게 된 그는 이제 서로 다른 몸이 가진 능력을 깨닫고 그 몸들이 누리는 평화를 꿈꾼다. 극복이란 이런 것이다. 몸은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환상이 아니라, 몸의 한계를 아는 마음들이 이룬 새로운 아름다움과 그것이 이룬 평화에 눈을 뜨는 것이다.
내가 부러워한 장애인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아픈 몸 때문에 신음할 것이고 또 다른 벽 앞에 절망할 것이다. 내가 현실의 벽 앞에서 낙담하듯이. 그래서 우리는 다른 몸을 살아도 같은 삶을 살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이 믿음도 없다면 무엇으로 살랴.
 
- 김이경(작가)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금융 버블 붕괴
사와카미 아쓰토·구사카리 다카히로 지음, 구수진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나는 지금의 시기가, 금융 버블이 붕괴하기 직전의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접어든 세계경제가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통화팽창 정책 덕분이었다. 실물경제 부문의 파국이 저지되었고 자산시장은 팬데믹 이전보다 오히려 더 큰 활황을 누렸다. ‘지금의 자산시장 활황이 거품(버블)인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그렇다’라고 단언한다. 세계경제가 이미 거품 폭발 및 붕괴 단계에 진입했으며, 이에 따른 금융위기의 강도 역시 유례없을 정도로 가혹하리라 예측한다. 거품 폭발 과정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이 책의 백미다. 굉장히 ‘쎈’ 내용의 책이지만, 경제 예측 역시 하나의 시나리오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는 것이 좋겠다.  책 자세히 보기 >>
필로소피 랩
조니 톰슨 지음, 최다인 옮김, 윌북 펴냄
“누구나 철학적 질문을 품고 있으며,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음에 와닿는 방식으로 철학 개념을 설명하는 책을 쓰고자 했다.” 그러다 떠올린 아이디어가 ‘미니 필로소피’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철학 개념을 하나씩 간단하게 올리기 시작했다. 픽토그램 한 컷에 간결한 설명을 덧붙이는 식이다. 그게 모이고 모여 책 한 권으로 나왔다. 인스타그램에서 통하려면 짧고, 쉬워야 한다. 일상에서 직면하는 여러 질문에 각각 철학자 한 명, 철학 개념 하나씩 짝지어준다. 책을 미리 맛보고 싶은 분들은 저자의 인스타그램(@philosophyminis)에 먼저 방문해보길 권한다.  책 자세히 보기 >>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윤주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돼.”
저자는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쳤고 그다음엔 신문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직업은 몇 차례 바뀌었지만 ‘글 쓰는 삶’은 지속되었다. 삶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을 ‘쓰는 태도’로 해석하게 됐다.
출판사 투고란에 글 쓰는 엄마들의 글이 많다는 일화가 인상적이다. 아이라는 귀한 존재를 얻은 대신 자신의 일부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낀 여성들이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다. 글을 썼다기보다 똥을 쌌다고 느껴질 때 마음을 붙잡는 법은 나름 요긴하다. 글쓰기가 두려워질 때마다 저자가 외우는 한마디도 기억하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글은 결국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글이다.’
마음의 문법
이승욱 지음, 돌베개 펴냄
“세상의 모든 연대에 앞서 먼저 자기와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를 칭찬하지 않는 부모. 그저 미숙해서일까? 정신분석가인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바로 주지 않는다고. 그래야 상대를 더 손쉽게 통제하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모르면 휘둘리기 쉽다. 가족, 연인, 국가, 자본…. 그 무엇과 맺는 관계건 예외란 없다. “마음의 증상은 마음이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하는 저자는 메시지를 읽는 마음의 문법을 스스로 익혀갈 것을 권한다. 무기력증, 신경증, 공황으로 개인을 내몰고 청년, 난민, 노동자처럼 ‘가장 나중에 온 존재’를 모욕하는 사회에서 나 자신 그리고 우리를 지키는 법에 대한 실천적 방법론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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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김초엽 작가 쪽에 연락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읽는당신×북클럽 추천도서중 하나로 <사이보그가 되다>가 선정된 만큼 두 저자(김초엽×김원영)께서 북토크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청탁을 드리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김초엽 작가를 대리해 출판사에서 저희에게 문의를 해왔습니다. 문자통역을 제공해줄 수 있겠느냐고요.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김초엽 작가는 고주파 영역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작가가 독자들의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화를 나누려면 문자통역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더군요. 작가가 보청기를 끼고 생활한다고 책에서 읽었던 만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던 저는 그 얘길 듣고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저는 수어 외에 문자통역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죠.
나와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상상력은 사실 이토록 제한적입니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나 할까요? 꼭 장애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질병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 몸의 통증을 가장 날카롭게 지각한다는 ‘새벽 세 시’의 고통을 알지 못하며(<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나이든 몸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날마다 조금씩 쇠락해가는 신체기관을 받아들여야 하는 노인들의 체념을 알지 못하죠. 그러고보면 나와 다른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또는 사고가 나면) 나 또한 지금과는 다른 몸을 가지게 될 것이며,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그 몸과 공존하는 법을 익혀야 할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올 연말에는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를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펼쳐진다는 장애인 연극․무용․전시 등에 관심을 가져볼까 합니다. 혹시나 오프라인 공연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분들은 유튜브에서 데이비드 툴(David Toole)의 영상이라도 검색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는 <사이보그가 되다> 공저자인 김원영 변호사 북토크를 통해 이 영국 무용수를 알게 됐는데요(김초엽 작가는 결국 일정이 맞지 않아 북토크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하반신이 없는 장애를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몸의 특성으로 승화시킨 그의 춤 동작을 혼자 보기란 너무 아까운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추천책을 혼자 읽기 아까운 것처럼요😀
 
무너진 정책 다시 세우고 
흔들리는 대선판을 수리하자
 
내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셨나요?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10월 첫째 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감'을 묻는 질문에 20대의 49%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굴 찍을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2030을 대변해 손희정 문화평론가와 김다은 <시사IN> 기자가 나섰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5년의 리더십과 정책은 과연 무엇일까요?
길을 잃은 MZ공약에 대한 일침부터 MBTI로 보는 대선주자들의 성격분석까지, <시사IN> 유튜브 채널에서 4회에 걸쳐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는 색다른 정치 토크쇼, ‘대선재개발사무소’를 만나보세요!
 
“뉴스레터를 작성하는 기자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계속 뉴스레터 발간해주세요~”
“뉴스레터가 아주 알찹니다. 일단 open하면 ‘색다른데?’ 하고 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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