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림 활동가  인터뷰
단단해질 동행에 조심스레 전진하여 마침내 해내고야 말 
 동행의 신입 구성원 이기림 활동가를 소개합니다.

소화: 자신을 세 가지 형용사로 표현한다면?

 

기린(동행에서는 이기림 활동을 '기린'으로 부르기로 하였어요. 이하 '기린'  가난한, 다정한, 소란스런!

  가난하면 떠오르는 의미를 물론 포함하여(웃음) 배움도 그다지 깊지 못하고, 무언갈 저축하거나 모아두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서요. 늘 가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부자가 될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고 저를 소개하고 싶어요. 무엇이 되었든 아끼지 않고 나누어야지 하는 마음과, 인색하기보단 차라리 방탕하겠다는 결의이기도 하고요. 가난하기로 결정함으로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자유로워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주식, 코인, 부동산, 정규직과 평생직장에서만큼은 몹시 자유롭달까요?(소화 : 아니, 왜 그렇게까지... 나는 부자될꺼야!) 

두 번째로는 다정한?

이건 제가 저를 소개하기가 참 멋적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증인이 계시겠...?^^;;) 저는 가끔은 제가 좀 철이 없나 싶을 정도로 사람을 매우 매우 많이 좋아해요. 못된 사람, 얄미운 사람, 강한 사람, 약한 사람 할 것 없이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너무 다채롭고 사랑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을 알게 되고, 만나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추억을 쌓고 거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좋아하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떠들고 서로에게 소중해지는 느낌을 통해 삶이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은 감사하게도 저를 꽤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것 같고요. 제가 대단한 무언갈 해 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곁이 되어줌으로써 저 역시 에너지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둥글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기도 하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란스런이라는 단어를 골라 보았습니다.

유사어로 산만한이라는 단어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좀 더 예쁘게 들리는 단어로.(웃음) 저는 생각이 많고 매우 활동적인 편이고요, 오기가 강한 편이라서 평소 쉬지 않고 무언갈 하고 있거나 무언갈 해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끊임없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다소 산만하고 또 늘 소란스러운 일상을 살고있는 것 같습니다. 장점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 같아요. , 어떤 일의 결실을 맺기 위해 길을 떠날 때도 누구나 알만한 최단거리 보다는 들를 곳은 모두 다 들렸다 가고 싶은.. 묘한 번잡스러움(?)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선 매우 비효율적인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런 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실 종종 답답해보이고, 피로감을 주기도 해요.. 가끔은 소란스러움을 넘어 시끄러운 정도의 제 모습은 부끄러워 감추고 싶을 때도 있고요.

 

 소화: 어쩌다가 동행과 연결되었나요? 외부에서 본 동행은?

 

기린 동행을 알게된 것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근무 당시 피해자 법률지원을 의뢰하면서이지만, 사실 정말로 연결되었다고 느낀 순간을 꼽자면.. 학대 행위자로부터 활동가들이 소송공격을 당했을 때 였어요(웃음). 그 전까진 사실 변호사하면 좀 멀게 느껴지고, 약간 어렵고, 또 너무 들이대면 안 될것 같은 거리감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사건을 겪으며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워낙에 기댈 곳이 없다 보니 제가 바짓가랑이를 조금은 구차하게 꽉 붙잡았던 것 같아 다시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 당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도와달라는 제 손을 놓지 않으시고, 또 부족하고 어리숙한 활동가인 저를 그 모양 그대로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변호사님들과 함께 싸우면서 동행과 강하게 연결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동정하는게 아니라 이해받는 기분이었어요. 그 뒤론 좀 더 많이 치대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더 강하게 합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거운 단체구나, 이 안에 굉장한 마음들이 들어있구나 싶어요. 여기(동행)가 굉장히 마음의 밀도가 높고 촘촘해서, 이곳에서 제가 함께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Photo by 소화,
place by 동행의 단골 카페 '그리고 커피'
Photo by 소화

소화: 어쩌다가 이 길에 접어들게 되셨나요? 왜 하필 활동가?

 

기린:   어쩌다라고 하자면 사실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이번 인터뷰를 기회로 돌아보게 되네요. 활동가적인 기질은 사실 좀 타고난 것 같기도 합니다.(정해진 법칙은 없습니다 뭐가 됐든 성취가 우리의 목적! ENTP) 저는 우선, 그 중에서도 장애계 활동을 해 왔으니까 어쩌다 장애계를 선택하게 되었을까부터 되짚어 보았네요.(웃음)

 

저는 사실 어린 시절부터 결핍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의 사정으로 인해 갑작스레 한부모 가정의 장녀가 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학교 밖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예술가를 꿈꾸는 아둔함에 여러 차례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했고, 게으르면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모순덩어리인데다 늘 날이 바짝 서 있으면서 내심 모두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태로 흔들리는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별로였던 것 같아요.

 

불행했고, 좌절했고, 분노했던 긴 터널 속에서 여러 번 링 밖으로 밀려날 것 같은 기분으로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왔던 것 같아요. 다행인 건 타고난 오기 덕분에(웃음) 자진 하차는 하지 않았달까요?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늘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방황이 깊어지면서 마치 제가 불량품인 것처럼 보일까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였으면 해서, 칭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장애인 관련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그 시간 속에서 제가 되게 자유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에야 다시 생각해보면 저는 봉사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동료 상담을 당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장애가 있어도 저보다 훨씬 지혜롭고 멋진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친구가 되고, 그 안에서 제가 가진 결핍이 이해받고, 때론 제 불행의 무게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다뤄지는 경험을 통해 제 삶이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동료애랄까 연대감이랄까 하는 순수한 의지 같은 것도 조금씩 자라났던 것 같고요. 이후론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이쪽(?)에 머물러 있었어요.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매 순간 어떠한 알 수 없는 바람이 부는 것처럼 조금씩 마음이 가는데로 움직이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그러다 보니 당사자들의 문제가 저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사실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활동가로 산다는 건 전문가가 되는 것보단 현장에서 당사자의 속도로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결국 활동가가 될 운명이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웃음)

 

  소화 : 지금 하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싶었던 일은?

 

기린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아마도 여섯 살이였을꺼에요) 꽤 오랜 시간을 판소리를 배우며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시절에는 "난 당연히 소리꾼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길었죠. 무대에 서는 것이 짜릿하고, 곱고 예쁜 한복과 박수 소리가 꽤 중독성이 있거든요. 여러 사유로 인해 결국은 소리꾼의 길을 가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조금씩 비슷한 목적지로 경로를 수정해가며 성악, 관악기, 작곡 등 곁가지를 펴왔고,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도 음악에 대한 꿈은 완전히 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제가 꾸준히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다면, 혹은 제가 좀 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음악을 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음주가무로 충분한 욕구충족을 하고 있어서인지 딱히 음악이 그립다거나 흔들리거나 하진 않고 있구요.(웃음) 마음 속 깊은 곳엔 언젠간 다시 음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취미로라도?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긴 합니다.

 

소화 : 내가 싫어하는 것 세 가지

 

기린 :   - 모든 종류의 벌레(특히 사마귀); 컨디션이 안좋으면 단골로 꾸는 악몽의 주인공이라

- 권위주의; 본능적으로 싫음. 그냥 싫음. 딱 싫음.

- ; 식감이 싫어요^^;; 떡볶이도 떡국도 거의 먹지 않습니다

 

 

소화: 내가 좋아하는 것 세 가지

 

기린:

- 사람; 앞서 말씀드린 이유로

- 고니; 제 반려고양이입니다. 십이년을 함께 산.. 작고 소중해요

- 음주가무; 취하면 용기가 생겨요! 애정표현이 폭발하는 더욱더 다정한 제가 됩니다(웃음)

소화 : 앞으로 5년간 본인의 계획은?(그 속에 동행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면 함께요)

 

기린 : 제가 여기 오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포함하여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우선 저는 지난 꽤 오랜 시간을 학대 피해 장애인과 함께 살았어요. 그 시간동안 저는 단 한줌의 부끄러움 없이 늘 최선을 다해왔고요. 제발 이 지긋지긋한 학대를 좀 끝내고 이 소중한 사람들의 작고 소박한, 그저 안전한 삶을 찾아내고 싶어서요.

그런데 잘 안됐어요. 매일, 매시간을 정말로 화살처럼 쏘아가면서 사건과 사례에 매달리는데도 안되더라고요. 새로운 학대는 매일 접수되고, 하루는 짧고, 저는 소위 말해 닳아져 가고.. 염전 문제도 또 얼마 전 뉴스를 타고 시끌시끌 하게 되었는데 전 사실은 좀 자조적이에요. 저는 지난 오 년을 매일 비슷한 문제로 뛰어다녔는데, 없던게 지금 다시 생긴게 아니라, 있는데 드러나지 않았던 것 뿐이거든요.

 

작년 여름에 제가 일을 시작 하고 초창기에 피해자를 지원했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또다시 학대 사건이 터졌어요. 그때 아 여기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장애인 학대 없어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한 번 슬픔의 물꼬가 터지니까 둑이 무너지듯이 한없이 비관적인 생각만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것까지만 딱 하고 그만둬야지하고 사건이 검찰에 기소되자마자 바로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둬버렸죠.(웃음) 사실은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삼주 정도를 잠을 아예 못잤거든요. 살려고 그만 뒀죠. 근데 그만두고 딱 이주? 정도를 놀아보니까 또 제가 완전히 현장하고 분리가 될 수 없는 사람인 걸 알게 돼버린거에요. 지난 오년 간 아무래도 시속 250km/h 이상으로 달렸던거 같아요. 분명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제동거리가 아직도 한참은 남은 기분.. 영원히 멈출 수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요. 하지만 어쨌든 제가 달리고 있는 중이 아니라 멈추고 있는 중이었기에. 속도가 조금이나마 줄다 보니까 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앞으로 제가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어요.

 

우선, 저는 정말 장애인 학대를 끝내고 싶어요. 그 중 특히 염전 노동력 착취 문제는 무슨일이 있어도 제 손으로 조금이나마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수박 겉핥기 식 실태조사가 아니라 정말 그 속에 갇힌 작은 목소리들과 고통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는 실태조사를 해보고 싶고, 이걸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고, 학대를 예방하는데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올 한 해는 아마 이것을 위해 살지 않을까 싶고요.

 

두 번째는 저도 휴식과 힐링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저에게 인색하게 굴지 않기 위해 적당한 시간을 휴식에 배분하며 살 계획이에요. , 지금은 전일제 직장은 고려하고 있지 않아요. 우선 올 한해 몸과 마음을 충분히 다잡고 제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내년쯤에는 전일제 직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쉬면서 제가 역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가끔 의뢰가 들어오는 강의가 제 스스로 상당한 만족감을 얻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저를 불러주는 곳 어디든 시간만 된다면 찾아가서 제가 느끼는 것들을 나누는 강사로써의 삶도 개척해보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향후 3년간 더 많은 공부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관련해서 공부하는 시간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저는 늘 활동가로써 살면서 외롭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누구도 온전히 제 곁을 지켜주지도, 앞서서 덤불을 헤쳐주지도 않는다고 느꼈어요. 매번 혼자서 싸우는 기분이라 이게 정말 너무 싫었어요. 옹호기관은 인력도, 예산도 너무 적고.. 때문에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얼마 안되서 정말 가루가 되어 떨어져나가버리니까. 물론 쫄병으로 싸우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이 모든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요. 기록은 힘이 있으니까. 그래서 언젠가는 학대 피해장애인을 지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전쟁의 유물이 되고 정말로 우리사회 보편 타당한 인권을 지키는 이 현장이 좀 더 안전하고 괜찮은 곳이 되도록. 그래서 저는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감정(분노, 괴로움, 슬품, 그리움)이 정리되고 나면 제가 생각하고 겪었던 이 시간을 차분히 기록하고 싶어요. 글은 별로 소질이 없으니 천천히 조금씩 써내려가면 오 년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모든 시간 가운데 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동행과 함께하고 싶어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동행이 가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저만의 착각이 아닐꺼라 믿으며. 또 동행이 가는 길은 아묻따(묻지도않고 따지지도 않고) 함께 갈 생각이에요. 이 안에서 제가 얻을 것도 있지만 제가 기여해야 할 부분 또한 크다고 생각해서 마음은 좀 단단히 먹고 있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아니니까 동행이 가진 법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대부분의 직장에서 세금으로(국도지방비) 먹고 살아 와서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이 단체에 적합한 일하기 방식을 잘 모를 지도 몰라요. 근데, 부딪혀보고 싶어요. 결혼이라는게 그렇잖아요. 조건이나 배경을 따지기 시작하면 정말로 딱 맞는 상대가 과연 있을까 싶은. 지난 몇 개월간 저는 동행의 비상근으로 살면서 말하자면 결혼 전 동거를 해본거죠. 같이 살아보니까 같이 살고 싶더라구요. 근데 또 이혼 절대 안한다는 말은 못하는 거니까.(웃음) 함께 사는 동안 모쪼록 큰 다툼 없이 동반자로써 걸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기린님이 걸어가는 길에 동행이
동행이 나아가는 길에 기린님이
함께할 동행의 새모습 둑은둑은!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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