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방금 저녁 식탁 앞에 앉은 참이었어요. 오크 씨 부부, 하루 이틀 놀러 와 묵고 있던 연극배우 친척, 서너 명의 이웃이 있었지요.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고, 노란 촛불 빛이 저녁의 회색빛과 매력적으로 어우러지고 있었어요. 오크 부인은 몸이 좋지 않았고 그날 내내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투명하고, 낯설고, 멀었지요. 그녀의 남편도 이 연약하고 부서질 듯한 존재에게 갑작스레 다정한 마음이 돌아오는 모양이었어요. 차라리 측은지심에 가까운 감정 같았지만요.
우리는 별 관심 없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크 씨가 돌연 아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기 자리 맞은편의 창문을 잠시 꼼짝도 못 하고 바라보았습니다.
“저기 창문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며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저 친구가 누구요, 앨리스? 뻔뻔스러운 놈 같으니!” 그는 이렇게 외치며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가 벌컥 창을 열어젖혀 넘더니 황혼 속으로 내달려 나가버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지요. 몇몇 손님은 인상이 나쁜 사람들을 주방에 얼쩡거리게 두는 하인들의 부주의를 지적했고, 또 다른 이들은 강도며 부랑자의 이야기를 늘어놓았어요. 오크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야윈 뺨에서 예의 아득히 먼 곳을 보는 듯 이상한 미소를 보았지요.
일 분쯤 지나 윌리엄 오크가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냅킨이 들려 있었어요. 들어와 문을 닫더니 조용히 자기 자리에 다시 앉았습니다.
“아니, 그게 누구였습니까?” 우리가 물었지요.
“아무도 아니었어요. 내가, 내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얼굴을 진홍빛으로 물들이며 분주하게 배를 깎았습니다.
“러브록이었겠지요.” 오크 부인이 딱 그녀가 할 법한 말을 던졌습니다. “정원사였거나요.” 그러나 그 희미한 쾌감의 미소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얼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시끌벅적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린 연극배우 친척을 제외하면 손님 중에 러브록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시종이나 소작농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화두는 그걸로 끝났습니다.
그날 밤부터 상황은 좀 다른 면모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완벽한 체계의 시작이었어요. 어떤 체계냐고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도 정말 모르겠네요. 오크 부인 쪽에서 보면 음침한 장난들로 이루어진 체계였고, 남편 쪽에서 보면 미신과 뒤섞인 망상의 체계였어요. 그리고 이들과 달리 이승의 존재가 아닌 어떤 오크허스트의 거주자 쪽에서 보면 신비스러운 박해의 체계라 해야겠지요. 네, 그래요. 뭐, 그럼 안 되나요? 우리는 모두 유령의 이야기를 들었고, 유령을 본 적이 있는 삼촌이나 사촌이나 할머니 들이 있잖아요. 우리 모두 영혼의 밑바닥에 유령에 대한 공포를 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유령이 있으면 안 되죠? 나는 솔직히, 무엇이든 불가능하다는 걸 오히려 의심하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여름 한철 내내 오크허스트의 오크 부인 같은 여자와 한집에서 지내고도 살아남은 남자라면, 그 여자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황당한 것들을 아주 많이 믿게 된단 말입니다. 정말이라니까요.
게다가 생각해보면 또 말이 안 될 건 뭡니까? 250년 전에 연인을 살해한 여인이 다시 태어난, 누가 봐도 이승의 것이 아닌 기이한 존재라면, 그런 생명체라면(이승의 연인들과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할 테니) 전생에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남자를 제 곁으로 불러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게 뭐가 그렇게 놀랍습니까? 나로서는 꽤 확신이 있는 짐작인데, 오크 부인 본인도 그 사실을 믿었어요. 아니, 반쯤은 믿었다고 할까요. 실제로 내가 반쯤 농담을 섞어 넌지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부인은 아주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인정하더군요. 어쨌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 여자의 전체적인 성격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거든요. 그 노란 방에서 혼자 처박혀 몇 시간이고 흘려보내는 걸 해명해주었지요. 어지러운 꽃과 오래된 향수가 뿌려진 물건들로 가득 찬 그 방의 공기는 냄새만 맡아도 유령이 느껴졌어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는 그 미소도, 그 커다랗게 뜬 연한 눈에 떠오른 아득하고 먼 시선도 이해된단 말입니다. 나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고, 그런 얘기를 하며 그녀를 놀리는 게, 아니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 불쌍한 남편이 그런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내가 어떻게 미리 압니까?(80~8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