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여덟 번째 흄세레터
지난 한 주 동안 님이 들은 가장 기쁜 말은 뭐였나요? 팀 흄세는 며칠 전 아주 기쁜 소식을 들었어요. 바로바로...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1 5종의 중쇄 소식! 🎉 흄세가 앞으로 더 많은 분들과 만날 수 있도록 주변에 널리 알려주세요. 늘 감사드려요! 
이번 흄세레터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버넌 리의 《사악한 목소리》를 다룹니다. 흄&세가 꼽은 미리보기 장면과 추천 영화까지 알차게 준비했으니 즐겨주세요. 😊 
수록작 〈마법의 숲〉* 미리보기
* 버넌 리의 창작관이 드러나는 산문으로, 《사악한 목소리》에 부록으로 실렸습니다.

마법의 숲은 희귀하다. 그러나 숲이 존재하는 곳, 현실과 전혀 맞닿지 않는 듯 보이는 그곳은(그 마법은 깊고도 깊다)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친근한 집들과 지척이기 일쑤다. 굳이 광막한 벌판을 가로질러 멀리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


이 믿음은 이제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새롭고 머나먼 장소들을 갈구하는 지병을 낫게 해주려는 모양이다. 여행의 즐거움, 각 지역의 친절한 수호 정령들을 찾아 나선 모험은 아마도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이웃들보다 훨씬 여행 경험이 얕고 또 여행 자체를 위한 여행을 많이 다니지도 않았다. 물론 이웃들이 나를 두고 환상적인 곳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 약간 슬퍼질 때도 있다. 이집트와 스페인과 그리스, 내가 결코 가보지 못할 곳들. 어떤 이름들,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는 말들이 내 심장에 묘한 쐐기를 박아 부드럽지만 퍽 날카로운 갈망을 일으키면, 육신의 눈으로는 결코 보지 못할 산야와 거리를 그리는 향수가 덮쳐온다.


그러나 이처럼 저릿한 가슴앓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행복과 그 부산물을 맞는 준비 과정이 아닌가?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쾌락 속에는, 우리가 산비탈을 오르거나 해풍의 파도를 정면으로 맞는 순간의 그 기분 좋은 숨 막힘, 그와 비슷한 감각이 깔려 있지 않나? 달리 말해, 무엇이든 철저히 소유하려면 다른 것들을 아주 많이, ‘결핍’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포기하고 ‘비소유’해야만 한다. (수도사의 식탁이나 방 같은) 검약과 상대적인 비움이 향유의 참된 애호가들에게는 철칙이 아니던가? 집에 머무르고, 15킬로미터 반경 안을 탐색하고(집에서부터 16킬로미터째로 넘어갈 때 첫 30미터 거리에서 여행의 기쁨은 최고조에 달한다) 드 메스트르처럼 정원이나 침실을 서성거리고 산책하면서 머나먼 어딘가를, 중국이나 페루를 정처 없이 여행하고 싶다는 강렬한 허기를 끌어내야 하나? 저런, 맙소사, 그럴 수는 없지! 저 자신의 행복을 조작하는 것보다 더 헛되고 헛된 어리석음이 또 있을까.(232~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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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넌 리는 젊은 남자처럼 차려입고 거침없이 유럽 전역을 여행하곤 했다는데요, “새롭고 머나먼 장소들을 갈구하는 지병”이라는 표현이 구글 맵과 스카이스캐너를 들여다보는 일이 취미였던 저에게도 강렬하게 와닿았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 상황이 종식돼 “여행하고 싶다는 강렬한 허기”를 채울 수 있길 바라봅니다...😂 (더불어 다음 시즌의 주제는 ‘이국의 사랑’이라는 것을 살짝 말씀드려봅니다!)

수록작 〈유령 연인〉 미리보기
📖〈유령 연인〉 줄거리
화가인 화자는 오크 부부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들이 사는 오크허스트에 방문한다. 남편인 ‘오크 씨’는 편집증과 의처증에 사로잡혀 있고, ‘오크 부인’은 자신의 선조인 ‘앨리스 오크’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흠모하고, 급기야 그녀와 연인 관계였던 시인 ‘크리스토퍼 러브록’을 사랑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어느 날 밤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방금 저녁 식탁 앞에 앉은 참이었어요. 오크 씨 부부, 하루 이틀 놀러 와 묵고 있던 연극배우 친척, 서너 명의 이웃이 있었지요.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고, 노란 촛불 빛이 저녁의 회색빛과 매력적으로 어우러지고 있었어요. 오크 부인은 몸이 좋지 않았고 그날 내내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투명하고, 낯설고, 멀었지요. 그녀의 남편도 이 연약하고 부서질 듯한 존재에게 갑작스레 다정한 마음이 돌아오는 모양이었어요. 차라리 측은지심에 가까운 감정 같았지만요.


우리는 별 관심 없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크 씨가 돌연 아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기 자리 맞은편의 창문을 잠시 꼼짝도 못 하고 바라보았습니다.

“저기 창문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며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저 친구가 누구요, 앨리스? 뻔뻔스러운 놈 같으니!” 그는 이렇게 외치며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가 벌컥 창을 열어젖혀 넘더니 황혼 속으로 내달려 나가버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지요. 몇몇 손님은 인상이 나쁜 사람들을 주방에 얼쩡거리게 두는 하인들의 부주의를 지적했고, 또 다른 이들은 강도며 부랑자의 이야기를 늘어놓았어요. 오크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야윈 뺨에서 예의 아득히 먼 곳을 보는 듯 이상한 미소를 보았지요.


일 분쯤 지나 윌리엄 오크가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냅킨이 들려 있었어요. 들어와 문을 닫더니 조용히 자기 자리에 다시 앉았습니다.

“아니, 그게 누구였습니까?” 우리가 물었지요.

“아무도 아니었어요. 내가, 내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얼굴을 진홍빛으로 물들이며 분주하게 배를 깎았습니다.

“러브록이었겠지요.” 오크 부인이 딱 그녀가 할 법한 말을 던졌습니다. “정원사였거나요.” 그러나 그 희미한 쾌감의 미소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얼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시끌벅적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린 연극배우 친척을 제외하면 손님 중에 러브록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시종이나 소작농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화두는 그걸로 끝났습니다.


그날 밤부터 상황은 좀 다른 면모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완벽한 체계의 시작이었어요. 어떤 체계냐고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도 정말 모르겠네요. 오크 부인 쪽에서 보면 음침한 장난들로 이루어진 체계였고, 남편 쪽에서 보면 미신과 뒤섞인 망상의 체계였어요. 그리고 이들과 달리 이승의 존재가 아닌 어떤 오크허스트의 거주자 쪽에서 보면 신비스러운 박해의 체계라 해야겠지요. 네, 그래요. 뭐, 그럼 안 되나요? 우리는 모두 유령의 이야기를 들었고, 유령을 본 적이 있는 삼촌이나 사촌이나 할머니 들이 있잖아요. 우리 모두 영혼의 밑바닥에 유령에 대한 공포를 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유령이 있으면 안 되죠? 나는 솔직히, 무엇이든 불가능하다는 걸 오히려 의심하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여름 한철 내내 오크허스트의 오크 부인 같은 여자와 한집에서 지내고도 살아남은 남자라면, 그 여자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황당한 것들을 아주 많이 믿게 된단 말입니다. 정말이라니까요.


게다가 생각해보면 또 말이 안 될 건 뭡니까? 250년 전에 연인을 살해한 여인이 다시 태어난, 누가 봐도 이승의 것이 아닌 기이한 존재라면, 그런 생명체라면(이승의 연인들과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할 테니) 전생에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남자를 제 곁으로 불러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게 뭐가 그렇게 놀랍습니까? 나로서는 꽤 확신이 있는 짐작인데, 오크 부인 본인도 그 사실을 믿었어요. 아니, 반쯤은 믿었다고 할까요. 실제로 내가 반쯤 농담을 섞어 넌지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부인은 아주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인정하더군요. 어쨌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 여자의 전체적인 성격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거든요. 그 노란 방에서 혼자 처박혀 몇 시간이고 흘려보내는 걸 해명해주었지요. 어지러운 꽃과 오래된 향수가 뿌려진 물건들로 가득 찬 그 방의 공기는 냄새만 맡아도 유령이 느껴졌어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는 그 미소도, 그 커다랗게 뜬 연한 눈에 떠오른 아득하고 먼 시선도 이해된단 말입니다. 나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고, 그런 얘기를 하며 그녀를 놀리는 게, 아니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 불쌍한 남편이 그런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내가 어떻게 미리 압니까?(80~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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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 사람이 하나도 없는 오크허스트...🏠 의처증에 걸린 남편 오크도, 그런 남편을 비웃으며 과거에 집착하는 오크 부인도 이상하지만, 자신만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고 믿으며 상황을 즐기는 화가도 믿을 만한 화자는 아닌 듯하죠...?

👀 편집자 흄&세가 추천하는 함께 보면 더 좋을 콘텐츠 🙌

벡델테스트라고 들어보셨나요?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고안한 것으로, 남성 중심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성평등 테스트예요. 1️⃣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2️⃣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3️⃣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되지 않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테스트 통과! 오늘은 이 조건들을 가뿐히 충족하는 영화 3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세 편 모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요👀)

윤희에게(2019)
남편과 이혼 후 딸과 살고 있는 윤희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편지의 발신인은 윤희의 첫사랑인 일본인 . 편지를 읽은 윤희의 딸 새봄이 일본 여행을 제안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서로를 묻어두고 지낸 윤희와 쥰, 그리고 둘을 만나게 해주려는 윤희의 딸과 쥰의 고모까지,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이끌어가는 영화예요. 러닝타임이 짧은 편이고(105분), 오타루의 설원을 배경으로 하니 당장 이번 주말에 어떠세요?
벌새(2018)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 은희에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아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부모님, 툭하면 은희를 때리는 오빠... 집 바깥에서 희망을 찾아보려 하지만 우정도 연애도 맘처럼 되질 않죠. 은희가 다니는 학원에 새로온 한문 선생님 영지만이 그런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합니다. 은희야,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초상화가 마리안느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여인 엘로이즈의 초상화 의뢰를 받습니다. (초상화 의뢰를 받고 시작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버넌 리의 〈유령 연인〉과 같네요.) 남자 측에 초상화를 보내 딸을 시집 보내고자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의뢰한 거였죠. 그림을 완성하려 엘로이즈를 관찰하던 마리안느는 그녀에게 빠지고 맙니다. 초상화가와 모델이라는 둘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까지 아름다운 영화예요.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00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박아람 옮김

002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리나 옮김

003 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004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 김선형 옮김

005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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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추첨을 통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10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권(5명)을 드립니다.
흄세레터 8호 이벤트 당첨자는 4월 1일 발행되는 흄세레터 9호에서 발표합니다.

 지난 이벤트 당첨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3명)
홍*주(5950), 양*혁(9359), 김*진(5648) 
선물은 레터가 발송되는 금요일에 문자와 택배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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