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김종철 #기본소득

시사IN북 뉴스레터 #17

이번 주 소개할 기본소득에 관한 책을 찾아보던 중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이게 웬 우연인가 싶었습니다. 한국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본격적으로 처음 소개한 사람이 바로 김종철 선생이었으니까요.

선생은 문학평론가이자 생태환경 운동가이자 1인 미디어 발행인이기도 했죠. 아마도 <녹색평론>만큼 강하고 오랜 팬덤을 가진 미디어는 드물 것입니다. 전국 곳곳에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 있을 정도니까요. 팬덤 강한 그 미디어를 통해 선생은 최근 몇 년간 지치지 않고 기본소득을 소개해 왔습니다. 전국을 돌며 기본소득을 알리는 강연에 나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죠.

생태주의자인 그는 왜 기본소득 전도사를 자처했던 걸까요? 생전의 그는 이렇게 단언하곤 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경제성장 시대의 사고방식일 뿐이라고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진 시대, 인간이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 시민적 권리로 주어져야 한다고요. 우리가 경제성장에 계속 매달리는 한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주장을 처음 제기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근본주의자 내지는 철없는 몽상가 취급을 받곤 했죠.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겹쳤다고는 하나, 그로부터 불과 5~6년만에 차기 대권을 꿈꾸는 여권 주자에서 보수 정당 지도자까지 입을 모아 기본소득을 얘기하게 됐으니까요. '팬데믹 그 후, 새로운 경제와 사회계약'을 주제로 한 <시사IN> 웹세미나(아래 참조)를 앞두고 독자들이 남긴 사전 질문에서도 기본소득은 단연 관심이 집중된 주제였습니다. 

물론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겠죠. 진보진영 내에서도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고요. 그럼에도 그가 보여주었던 생태적 상상력과 분배적 상상력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평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기를.

                                                                    Image by Pixabay


분배에도 상상력을

 김만권 지음/여문책 펴냄  
  
 
 ‘분배’는 21세기 지구촌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최근 한국을 달궈온 이슈인 국민연금,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세금, 최저임금 등도 하나같이 분배와 관련된 문제다. 
저자는 정치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이지만, 끊임없이 대중과 교감하며 대중서를 출간해왔다. 이 책 역시 그런 역량이 십분 발휘된 저작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단번에 끝까지 읽어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전문적인 이론을 나열하거나 막연하게 당위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궁금해할 수 있는 논점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듯한 경어체 문장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분배는 전문적인 의제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나의 삶과 직결되는 사안이며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문제다. 시민 모두가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추진될 수 없는 의제다. 그런 점에서 대중을 향해 말 걸기를 시도하는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를 표방한다. 자유주의는 개입이나 간섭을 무턱대고 거부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개입이나 간섭은 자유주의와 배치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노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득 배당에서 제외하는 것, 부자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출발선이 다른 것이야말로 자유주의에 반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문제들이 각자 자유롭게 노동하고 소득을 받아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21세기 자본주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파격적인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는 ‘기본소득’과 특정 시점에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목돈을 조건 없이 제공하는 ‘기초자본’이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참 어렵다. 단시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한두 가지 정책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수많은 정책이 실험되어왔지만,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이쯤 되면 좀 더 근본적인 대안에 마음이 기울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급진적 혁명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 증대나 자산 증식에 대한 욕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라는 쉽게 대체되기 어려운 현실을 뒤엎지 않으면서, 자유주의라는 근대적 이념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 그 대안의 실마리가 담겨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는 ‘21세기 분배의 상상력’이다. 
 
홍성수(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 <시사IN> 589호 별책부록 '행복한 책꽂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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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고양이에 대하여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비채 펴냄  

“녀석과 나란히 앉는다는 것은 내 삶의 속도를 늦춰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을 없앤다는 뜻이다.” 

4년 전 고양이 한 마리와 우연히 식구가 된 이후 고양이와 관련된 책이라면 빠짐없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를 글이 메꿀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 같은 ‘집사’가 한둘이 아닌지, 언젠가부터 ‘고양이’를 제목에 매단 책이 끝도 없이 나온다. 대개는 실망했고, 더러 매우 도움이 되었다. 
절판된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1998, 예문) 역시 어렵게 구해 읽었던 책 중 한 권이다. 자자한 소문을 ‘역시나!’ 하며 확인했지만, 번역이 아쉽던 차였다. 그 책이 이번에 담백하고 간결한 번역과 단단한 장정으로 새 옷을 입었다. 기존 원고에 2000년 출간된 〈엘 마니피코의 노년〉을 더해 한 권으로 묶었다. 다정하지만 유난스럽지 않고,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미화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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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모치즈키 이소코 지음, 임경택 옮김, 
동아시아 펴냄 

“많은 독자가 보내준 응원은 뒤집어 생각하면 평소 국민이 언론사에 갖는 불신의 방증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배우 심은경씨가 주연을 맡은 일본 영화 〈신문기자〉의 실제 모델이다. 사회부 기자로 부패 스캔들 기사를 주로 써온 그는 한 기자회견 이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날, 관방 장관에게 그가 던진 질문은 23개. 이 회견 영상은 꽤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앞뒤 없이 돌진하는 한 기자의 성장·취재기를 담고 있다.
나는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실제로 그런 편이다. 일부러 파악하려 하지 않기도 한다. (중략) 앞으로도 이상하다고 느끼면 질문을 던지고 끝까지 파고들 것이다. 집요하다는 말을 듣거나, 심지어 혐오감을 준다 해도 상관없다.’ 이런 캐릭터의 기자. 좌충우돌하며 때로 덜컹거릴지라도, 막 응원하고 싶어진다.
 
 

저기 어딘가 블랙홀 
이지유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이제 선택은 인간에게 달렸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여행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어쩐지 막막하다. 막힌 하늘길이 뚫린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마음껏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볼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가 좁아지던 찰나, ‘논픽션 과학 에세이’라는 장르가 눈에 띄었다. 지구과학과 천문학을 공부한 저자가 세계 여행을 다니며 쓴 글이다. 저자는 여행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생명과 과학을 발견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기록했다. 사바나의 알싸한 풀냄새와 적막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칠레 해변 라세레나의 파란색 코로나 등 저자가 목격한 풍경을 통해 생전 가보지 않은 곳을 잠시 상상할 수 있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저자만의 관점이 돋보인다.  
 
여기 우리가 있다  
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  
 
“국가는 이들의 수난을 조장하거나 방치하였다.”  

지난 2월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다. 청도대남병원에 20년 넘도록 입원해 있던 조현병 환자였다. 삶의 3분의 1을 병원에 갇혀 지낸 정신장애인이 감염병에 가장 먼저 희생됐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할까.
한 의사가 이 부끄러운 질문을 파고들었다. 2018년 이탈리아 정신보건혁명에 대해 다룬 책 〈자유가 치료다〉를 펴낸 백재중 녹색병원 내과 의사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정신장애인 수난사를 다뤘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근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신장애인들이 주류에서 배제당하고 감금당해온 역사,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으며 꿋꿋이 ‘여기 우리가 있다’고 말해온 역사를 조명한다.
 
 '빅매치' 현장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유례없는 팬데믹은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이 지금보다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즈음,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경제학자 장하준 그리고 코로나19 민생 대책의 최전선에 서 있는 박원순 ・ 이재명 ・ 김경수 세 단체장과 함께 새로운 경제와 사회계약을 고민해볼까 합니다.  
 

 photo by 딸기책방,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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