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년간 17조… 탈원전보다 비리·부실이 더 문제다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무려 17조 원의 국민 혈세가 원자력발전소 부실 관리로 공중에서 증발했다. 천문학적인 금액도 금액이려니와 그 이유가 더 기가 막힌다.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9개월간 문제 발생으로 국내 원전이 가동을 멈춘 날이 누적 5568일이었는데, 이로 인한 손실액이 16조 9027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매일 원전 2기가량은 멈췄다는 계산인데, 가동을 멈춘 이유가 부실시공과 납품 비리, 부실자재에 의한 부실 원전 관리 탓이라고 한다. 검증서가 위조된 불량 케이블 납품, 기준치보다 얇은 격납건물 내 방호 철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뇌물·향응 수수 적발 현황을 보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민주당 이훈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 중에서 가장 많은 뇌물·향응 수수로 적발된 곳이 바로 원전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다. 최근 5년간 한수원 직원 31명이 144회에 걸쳐 26억 7148만 원을 뇌물과 향응으로 받았다고 한다. 한 직원은 8회에 걸쳐 17억 1800만 원이나 받아 해임됐다고 하니,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탈원전보다 비리와 부실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올해 상반기 한수원이 550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을 때, 일부 언론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하락한 탓으로 돌렸다. 납품 비리와 부실시공과 같은 적폐는 외면한 채 애먼 탈원전 때리기에만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원전 비리는 천문학적 혈세 낭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차대한 적폐이다. 하지만 원전이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시민의 실질적인 통제 밖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와중에 배타적인 전문성을 앞세워 내부의 카르텔이 형성돼 비리를 저지르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철저하고 투명한 원전 관리를 위해 민관합동감시단의 제도화를 비롯한 특단의 감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과제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