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ELLE VOICE 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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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책을 좋아한다. “저 책 안 읽는데요?” 하는 사람도 사실은 책이라는 물건을 좋아한다. ‘뭐래? 난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야기하다 보면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읽은 책인데…” 한다. “책은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일생 모은 책이 집에 너무 쌓여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의 구박을 듣는 장서가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단지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동거인에게 불평거리를 지닌 독설가일 뿐이라 이들에게 “맞아! 책은 쓰레기지! 요즘 누가 책 읽냐?”고 진심 어린 맞장구를 친다면 눈치 없이 가족 욕을 한 사람과 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인류의 잠재적 사랑에도 불구하고 책은 유망하지 않다. 점점 많은 사람이 책을 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속상한 일이다. 어쨌든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길이 생긴다. 서울 아트북 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이하 UE)은 그렇게 생긴 놀라운 길 중 하나다. UE는 팬데믹 시기에 온라인으로 잠시 전환되기도 했지만, 2009년부터 매년 꾸준히 열린 독립출판 창작자들의 축제로 올해 다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제14회를 맞았다.
 
이 행사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더 다양한 출판물을 창작자가 직접 가지고 나와 판매한다. 올해는 3일간 189팀의 창작자가 2만3449명의 관람객을 만났다. 약하고 강하고 반갑고 뜻밖인 책이 늘어선 부스 사이를 누비며 눈을 빛내는 손님들 또한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창작자이자 판매자인 부스 지킴이들은 관람객이 책에 어떤 애정을 품고 이곳에 왔을지를 탐색하며 부지런히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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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을 시작한 2016년부터 매해 이곳에 우리 책을 차렸다. 서서히 출간작이 늘어나 올해는 22종,  판매용 재고를 어림잡아 준비하니 수백 권이었다. 사무실이 있는 주상복합건물 로비 구석에서 대형 박스 아홉 개 분량의 책을 재분류하는 해체 쇼를 감행하는 등 소소한 고충도 있었지만, 만만치 않은 질량을 뽐내는 책들을 이고 지고 행사장에 향하는 걸음에는 명백한 동력이 있었다. 지나치게 순정으로 들릴까 봐 쑥스럽지만, 바로 독자다. 나는 독자들의 응답을 받기 위해 UE에 간다.
 
독자의 응답이란 무엇인가? 책이라는 모양으로 발신한 나의 신호가 사람들과 만나 발생하는 모든 반응이다. 우리 책들과 완전히 초면인 잠재 독자가 매대 위의 책에 드러내는 호감, 이미 무언가를 읽은 독자가 전하는 짧은 감상, 어떤 한 권이 예비 독자에게 선택되는 순간 등 모든 것이 즐거운 응답이다.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경험을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러이러한 생각과 기대로 만든 것을 누가 어떠어떠한 생각과 기대로 받아들이느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험이 없다면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반응에 귀 기울이면서는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기 어렵다.. 세상에는 선의와 존중만큼이나 길 잃은 반감과 악의적 곡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UE는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독립출판이라는 유망하지 않은 시장에서 고집스럽게 함께하는 주최자, 창작자, 방문자들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질서 덕분이다. 완고한 소비자의 태세가 아닌 즐거운 조력자의 심정으로 지갑을 여는 사람들은 그저 물건을 산다기보다 구매로써 창작자에게 공감을 전하고 그의 세계 일부를 잠시 공유하러 이곳에 온다.
 
행사 3일간 부스 판매를 하면서 말을 섞은 사람의 수가 1년간 일상에서 대면하는 사람 수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상상만으로 적잖은 피로가 예상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피로가 놀랍도록 기꺼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 매대의  책 한 권을 집어 든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하며 입 속이 말라도 어떤 말을 던지면 낯선 이의 흥미에 잠시 닿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방문객이 천천히 구경할 수 있도록 매대 뒤로 존재감을 지우다가도, 낯선 그에게 이 책이 수수께끼일 것을 생각하면 중개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개입은 적중하기도, 역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즉석에서 책을 고르는 독자의 즐거움을 목격하는 건 대단히 든든한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날이 미약해지던 믿음에 다시 힘을 얻는다. 사람들은 책을 좋아한다. 사실 독립출판물을 구경하러 서울의 북쪽 끝에 자리한 미술관에 오는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매해 의문이지만, 평소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던 수많은 사람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말을 빌리면 책이 특별한 건 “많이 접혀 있기” 때문이다. UE에 대해 지금껏 몰랐지만 이 문장이 앞뒤 없이 마음에 든다면 분명 내년에도 열릴 UE에 오시기를 추천한다. 갖가지 방식으로 접혀 있어 한눈에는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책들을 뒤적이며, 세상에 쓸려 잊혀가는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자.


*2022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10월 28(금)~30(일) 종료되었습니다.  



Writer 이두루
출판사 ‘봄알람’ 대표. 베스트셀러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와 〈김지은입니다〉 등을 펴냈다. 현실 이슈를 다룬 텍스트와 논의가 여성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힘을 믿는다.

- <엘르> 2022년, 12월호 발췌




그녀가 말했다_요주의여성 #76

용기와 용기가 모여서 세상을 흔들기까지.


영화 〈그녀가 말했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의혹을 폭로하는 기사를 내고, 이는 미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미투(#Metoo) 운동의 시발점이 됩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두 여성 기자 조디 캔터(조 카잔)와 메건 투히(캐리 멀리건)가 세상을 뒤흔든 이 기사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신’으로 군림하던 하비 와인스타인의 추악한 행위는 이미 뉴스를 통해 많이 전해졌지요. 마리아 슈레이더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가해자 와인스타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성범죄 장면을 재연하지도 않습니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과 용기가 더해지는 과정입니다. 두 기자가 얼마나 끈질기게 증거를 수집하고 진심을 다해 취재원을 설득해 나갔는지,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기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겁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신인배우나 사회 초년생, 꿈 많고 열정 넘치고 기회와 성공을 원했던 젊은 여성들입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이들을 유인하고 짓밟았습니다. 법과 돈을 이용해 기밀유지 서약서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미래를 방해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두려워합니다.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는’ 현실 그리고 진실을 말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낙인과 손가락질을.
 
영혼을 갉아먹는 그 날의 기억을 홀로 품은 채 살아가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결국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 였습니다.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메건 투히 기자는 망설이는 그들에게 진심을 다해 말합니다. “과거에 겪으신 일을 제가 바꿀 순 없지만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건 우리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자신의 일을 기사화하는 걸 허락한 로라 매든은 이렇게 덧붙이지요. “제 세 딸이 그런 폭력에 순응하며 살기 바라지 않아요.” 

영화 〈그녀가 말했다〉


투철한 직업정신을 지닌 두 기자 역에 캐리 맬리건과 조 카잔이 캐스팅된 건 더없이 완벽해 보입니다. 〈언 에듀케이션〉에서 천진한 소녀의 얼굴로 알려졌던 캐리 멀리건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대단한 배우가 되어가고 있지요. 〈서프러제트〉 〈프라미싱 영 우먼〉 등 여성 이슈와 관련 깊은 작품을 이어가는 행보에서 이번 작품은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만합니다. 다재다능하고 매력적인 배우로 알고 있던 조 카잔(〈왓 이프〉랑 〈빅 식〉 보셨죠?) 역시 지성과 신념을 지닌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영화는 취재 과정과 더불어 두 기자의 사적인 삶에 대한 묘사에도 시간을 들입니다. 메건 투히는 임신 중에 기사에 반대하는 세력의 협박 전화에 시달리기도 하고 출산 후에는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합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조디캔터는끊임없는 업무 연락과 장거리 출장으로 육아에 어려움을 겪습니다(남편들이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장면이 나올까 봐 내내 신경 쓰였으나 다행히 그들은 훌륭한 파트너였습니다). 이들이 특별한 영웅이나 투쟁가가 아니라,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성 중 하나라는 것. 영화에서 더욱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대목입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배우와 실제 기자들이 함께 한 모습. 왼쪽부터 조디 캔터, 조 카잔, 메건 투히, 캐리 맬리건.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권력자와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법 시스템, 뿌리 깊은 성차별 구조에 맞서 싸우는 일은 결코 한두 사람의 결기로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양심과 책임감을 갖고 행동한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걸 영화는 되짚어줍니다. 〈뉴욕 타임스〉의 보조 편집국장 레베카 코벳(패트리시아 클락슨)도그 중 한 명입니다. 어려운 취재를 하는 후배 기자들을 독려하고 지지해주는 ‘시니어’의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하비 와인스타인의 악행을 증언한 피해자 중 한 명이며 기사 첫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도록 허락했던 애슐리 저드는 이번에도 직접 출연해 힘을 보탰습니다. 영화를 통해 당시 그가 이름난 배우로서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그의 결단이 다른 이들의 참여를 이끄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었지요.
 
시간은 모든 것을 희석시키지만 어떤 일들은, 어떤 고백들은 잊히지 않아야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뉴욕 타임스〉 보도와 미투 운동이 가져온 변화를 언급하는 자막을 읽으며 현실을 돌아봅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진짜 파도는 일어나긴 한 걸까요? 영화 〈그녀가 말했다〉를 극장에서 만나는 일, 우리 안의 용기와 연대의 마음을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Writer 김아름
전 <엘르> 피처&라이프스타일 디렉터 김아름.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으며 책과 영화, 각종 컬처 콘텐츠를 탐닉합니다.
 - <엘르> 2022년, 12월 웹기사 발췌



🏆2022 ELLE VOICE AWARDS🏆

2022년 한 해, 총 26편의 뉴스레터로 여성의 삶을 전한 엘르보이스.
엘르보이스를 통해 아리님의 일상도 조금은 행복해졌나요?

지난 주 피드백에는 유달리 감사를 전해준 아리님의 목소리가 많았는데요. 담당자도 올해를 돌아 보며 엘르보이스와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했던 순간, 첫 강연으로 아리님들을 만났던 날, 매주 피드백을 확인하던 시간, 아리님과 함께 구독자 애칭을 지었던 일까지.
엘르보이스에도 참 많은 일이 있던 한 해였죠.

오늘은 2022년의 마지막 레터인 만큼 올 한 해
가장 여러분의 마음에 남았던 레터를 투표하는 어워즈를 진행합니다!

여러분과 마음 속 엘르보이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총 30분에게는 연말 랜덤 선물을 보내드릴게요🎁


끝으로 2022년에도 함께해주신 모든 아리님들께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더욱 따뜻한 엘르보이스로 돌아올게요!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엘르보이스 일동 드림-
▼ 2022년 발행되었던 레터들의 링크 ▼
🔊지난주 구독자 보이스🔊
매주 여러분의 목소리 중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모든 분들의 소중한 피드백 하나하나 귀 기울이고 있으니 오늘의 <엘르보이스>가 어땠는지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Writer 에리카님의 한해를 갈무리 하는 글이 참 좋았습니다. 정말 정성스런 편지 한 통이 배달되어 온 느낌이었습니다. 거거익선의 아름다움, 저에게도 스며들길 바라봅니다.

*구독자에 제 글이 있으면 너무나도 기뻐요!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나가다가도 엘르보이스를 읽고 있노라면 몸도 마음도 차분해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D

*연말을 앞두고 연말 평가 및 동료들의 퇴사와 그리고 친구들의 승진을 지켜보며 마음 쓸쓸해지는 나날들이었는데 오늘 엘르 보이스가 유달리 제 마음을 많이 어루만져 주는 기분이었어요. 항상 그랬지만 이번 뉴스레터 정말 좋았습니다

*읽어내려다가 몇 번을 멈추어요. 되새기고 싶은 단어, 구절들이 많아서요. 마음에 남는 소중한 이야기들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님, <엘르보이스> 45번째 레터 어떠셨나요? 
님의 감상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아래 링크에 남겨주시면 정성껏 읽고 다음 레터 준비하겠습니다💕
👋 엘르보이스를 이웃에 소개해주세요! 
더욱 다양하고 반짝이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길 <엘르보이스>, 나만 볼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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