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8일
언뮤 뉴스레터 제17호
by 음악학 허물기
의미를 찾는 일은 절대로 끝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도전과 논쟁을 받아들인다.
소설과 시와 그림은 아무리 심오하더라도 개별적인 인간의 삶만큼 풍요롭고, 복잡하고, 도전적이며, 끝도 없이 재평가와 재해석에 열려 있을 수는 없다.

—닉 채터, 생각한다는 착각』 중에서

닉 채터 워릭경영대학원 행동과학 교수의 신간 『생각한다는 착각: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으로 풀어낸 마음의 재해석』(웨일북, 2021)을 읽다 보면 묘하게 위안이 됩니다. 예컨대 우리 뇌는 원래 멍청한 것이라니 가끔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도 슬퍼할 필요 없습니다. 뇌가 즉흥적으로 작동한다는 그의 주장은 끊임없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으로 고민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과정에 집중해 의미를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예술이 인간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는 그의 결론은 역설적으로 예술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저자와 싸우고 싶지만 책을 덮을 때쯤 되면 저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내면세계’에 푹 빠지게 되는 책. 혹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그래서 읽은 건 아닙니다만. 위의 영상은 지난 1일 타계한 피아니스트 넬손 프레이레가 연주하는 바흐 칸타타 마음과 입과 행함과 삶〉(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BWV 147. 자세한 소식은 아래 이어집니다.
1. 발터 라블의 실내악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를 3년 반 진행하면서 덜 알려진 작곡가와 작품들 수없이 소개했지만 오늘 만날 작곡가의 인지도는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178번째 방송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 발터 라블. 그냥 좀 냉정하게 말하면 이름을 들어 봤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작곡가입니다. 작품도 마찬가지. 서른 살에 작곡을 그만두고 전업 지휘자 겸 보컬 코치로 활동하며15곡 남짓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지금은 사실상 완전히 잊힌 작품들이지만 19세기 말 비엔나의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명곡들. 일단 들어 보시죠. 브람스가 보증합니다.
2. 피아니스트 넬손 프레이레 타계
브라질의 피아니스트 넬손 프레이레(Nelson Freire, 1944–2021)가 지난 11월 1일 타계했습니다. 향년 77세. 올 초까지만 해도 12월 내한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던 와중에 접한 부고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앨런에 따르면 프레이레는 ‘음악’과 ‘음악 비지니스’를 구분했던 피아니스트. 말은 그렇게 해도 요즘 같은 산업화 시대에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지요. ‘비지니스’ 말고 ‘음악’하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저변을 늘려 나가는 수밖에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기사로 연결됩니다.
3. 한국은 어떻게 문화 대국이 되었나
저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난 주 『뉴욕타임스』 최상훈 기자의 기사 “BTS에서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은 어떻게 문화 대국이 되었는가”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호들갑 떠는 것 좋아하는 성격이 못 되어 ‘뭘 그렇게까지...’ 싶었는데 맹목적인 찬양 기사는 아닙니다. 읽고 난 후 내린 결론 두 가지. 모르면 배워야 하고, 콘텐츠가 성공하는 데 굳이 ‘한국적’일 필요도, 그렇다고 ‘세계적’일 필요도 없다는 것. 좋은 콘텐츠는 그냥 좋은 콘텐츠이니 본질에 집중하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이 가져온 저변 확대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버튼으로 연결됩니다.
4. 클라라 슈만 되기
음악학자 알렉산더 스테파니악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 교수의 신간 『클라라 슈만 되기: 음악 정전正典 시대의 연주 전략과 미학』이 인디애나대학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클라라의 연주 프로그램과 리뷰를 비롯해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은 1차 문헌을 바탕으로 음악적 정전正典의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클라라가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추적합니다. 케임브리지대학출판사에서 12월 발행 예정인 클라라 슈만 연구』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군요. 두 권 모두 학술서지만 관심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합니다.
5. 음악과 질병, 장애의 문화사 DB 업데이트
음악과 질병, 장애의 문화사’ DB에 영국 작곡가 프레더릭 딜리어스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슈베르트, 도니체티 등 매독으로 생을 마감한 작곡가는 여럿 있지만 1864년 통과된 ‘전염병법’(Contagious Diseases Acts)이 1886년 철회되고 1916년 왕립성병위원회(Royal Commission on Venereal Diseases)가 구성되기까지 영국 의료법의 중대 전환기에 활동한 딜리어스와 그의 작품은 질병과 작곡가에 대한 문화, 사회적 인식이 시대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Medical Humanities > Database (beta)에서 확인하세요.
6. 음악학 연구와 강의를 위한 DB 업데이트
‘음악학 허물기’ DB에 아래 항목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영화 음악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료도 있습니다. Teaching > Resources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7. 공지 사항 두 가지
지난 주 뉴스레터에 공지한 대로 조만간 구독자 정리를 할 계획입니다. 대상은 2021년 12월 1일 기준, 지난 석 달간 뉴스레터 열람 기록이 없는 구독자로, 12월 6일 뉴스레터부터 수신 목록에서 제외됩니다. 처음부터 구독자 수 늘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필요한 분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소통 가능한 소규모 커뮤니티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구독 해지 후 입력하신 개인 정보(이름과 이메일 주소)는 파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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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허물기 Undoing Musicology
© 2021 Hee Seng K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