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룸매거진 19호에 수록된 에디터의 시선

에디터의 시선
내가 알던 한국,
네가 보여준 한국


유럽 밖 여행을 해 본 적 없는

남자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한국, 내가 알던 한국,

그가 보여준 한국은 이렇게 같고 또 달랐다.


글 정혜원


돌아보면 나는 남자 친구의 한국 첫 방문을 앞두고 기대와 긴장을 모두 지나치게 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고 살아온 도시 서울의 좋은 면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쁜 점은 숨기려 해도 미세먼지처럼 감춰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새로운 문화와 익숙하지 않은 생활양식을 그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느끼기를 바랐다.

 

그가 오기 몇 달 전부터 나는 ‘seoulvisitor’라는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음식 페이지에는 채식주의자인 그를 위해 그가 좋아할 만한 식당을 모아놨고, 그에게 소개하고 싶은 곳들을 장소 페이지에 넣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인사말을 썼다. “안녕,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새로운 문화, 새로운 나라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기를.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뿌리를 발견하게 될지도.”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한국의 공기와 처음 보는 나무의 생김새, 택시의 색깔, 건물들의 소재인 콘크리트에 관해 얘기했다. 말문이 이제 막 트인 아이처럼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습득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들에는 내가 평소에 독특하다거나 다르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의 면면들이 있었다. 3년 전에 내가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중얼거렸던 모습도 저랬을까. 여기서 그와 지내는 동안 그는 나에게 새로운 한국의 면면을 또한 보여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던 한국의 새로운 일면은 식당에서도 도드라졌다. 한국의 식당은 채식주의자에게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골라 놓은 음식을 이따금 먹을 수 없었고, 몇 번의 경험 뒤에는 주문하기 전 늘 음식에 고기나 해물, 액젓 등을 사용하는지 물었다. 해쉬 포테이토 피자에 돼지고기가 들어간다거나 순두부찌개에 조개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적어 놓은 식당은 극히 드물었다.

 

사소하고 다양한 곳에서 문화와 관습의 차이가 나타났다. 한 식당에서 좋은 경험을 한 그는 사만 이천 원이 나온 음식값을 카드로 계산하며, 독일에서 으레 행동하듯 ‘그럼 사십사로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계산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식당 주인은 우리가 먹은 음식을 다시 셈한 뒤, 확신에 차며 원래 값을 그대로 결제해 버렸다. 그는 뒤늦게야 한국에 팁 문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가 혼자 보내야 할 시간에는 몇 가지 영문 지도만 주고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경복궁을 다녀오거나 명동에서 옷을 산 뒤 남산타워까지 올라갔다.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보드게임 샵에 놀러 가기도 했고, 따릉이를 타고 한강 변을 달리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는 독립적인 여행을 즐겼다. 오전에 혼자 청계천을 걷다가 한 남성이 대뜸 자신을 향해 쌍 엄지를 치켜들며 “Good! Very good!”이라 했다며, 이방인이 겪는 도시 생활의 당혹스러움을 전하기도 했지만.

 

“크게 다른 건 없어.” 그는 이 말을 자주 했다. 베를린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맥락이었다.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걷는 일, 저녁에 시청 근처에서 만나 콩국수를 먹고 반포 한강공원으로 가 자전거를 타다가 트럭에서 파는 풀빵과 옛날 호떡을 먹는 과정, 자정 무렵 이태원에 도착해 거리의 열기를 따라 움직이다가 사람이 꽉 찬 심야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심야버스 기사가 중간에 차를 멈추고는 만취한 승객이 뿜어 놓고 간 토의 흔적을 치우며 “이걸 이틀에 한 번씩 하네. 아우, 지겨워.”라는 투정을 듣는 일. 우리는 서울에서 관광객이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경험했다. 나도 서울에서 머물던 방 반 평쯤 벗어나 반 투룸인으로 사는 것 같았다.

 

결국 도시 생활은 비슷하다. 퇴근 시간 지하철은 여기나 거기나 붐빈다. 날씨가 좋으면 즐겁고, 운수가 안 좋은 날엔 타인이 벌인 행동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글을 기획했을 초반에 그가 바라본 한국과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밝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어두워야 보이는 것들처럼 극명한 차이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방문함으로써 달라졌던 건 나의 사고방식이었다. 이 도시에 나를 대응하며 서울이 나인 것처럼 잘 보이려 애썼고, 어떤 행동에도 더 적극적이었다. 내가 베를린에서 생활하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꼈을 땐 그것이 문화 차이라고 여겼다. 이방인이니까 내가 적응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잠시 이방인이 된 남자 친구를 보며 그의 어떤 행동이 나의 비좁은 사회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면 당부를 줬다. 그런 내가 불편했다.

 

십칠일의 한국 여행 끝에 그는 그가 사는 곳, 베를린에 다시 도착했다. “비슷하지 않아. 근본적으로 다른 게 있더라.” 베를린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오후에 그가 꺼낸 한마디였다. 그는 그날 베를린 사람들의 표정에서 거리를 ‘걷기’ 위해 나온 한가함을 보았다고 한다. 그가 기억하는 한국 사람들의 표정에는 감정이 없다. 어딘가로 ‘이동’하느라 거리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도시는 비슷하다. 도시 생활은 아주 다를 수 있다. 나는 그 차이를 넘나들며 마음에 선을 긋고 그어 놓은 선을 또 지우며 산다.

  
위 에세이는 투룸매거진 19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에디터의 취향
투룸매거진 에디터로 활약하고 있는
정혜원 작가의 시선이 담긴 글을 소개합니다.
투룸매거진 16호
서울에 있고 베를린에 없는 것

정혜원 에세이

나의 독일어 나이

-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이 있다”

정혜원 작가가 베를린에 살면서 보고 경험한 것들을

특유의 담담한 필체로 기록한 에세이 집

구입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