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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하니 규제 끝…가상화폐 업계 “가이드라인 급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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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하니 규제 끝…가상화폐 업계 “가이드라인 급한데”

입력
2018.04.17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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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전면 폐쇄 검토 등

8차례 걸쳐 규제만 쏟아내

비트코인 폭락하자 규제 끝

자금세탁ㆍ해킹 등 우려에도

정부는 “자율규제” 외치며 방관

업계 “충실한 생태계 구축 위해

차라리 규제라도 해줬으면…”

[저작권 한국일보] 정부 가상화폐 규제 관련 일지 송정근 기자/그림 2[저작권 한국일보] 가상화폐 거래 금액 변화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정부 가상화폐 규제 관련 일지 송정근 기자/그림 2[저작권 한국일보] 가상화폐 거래 금액 변화 송정근 기자

올해 초 정부의 강력한 거래 규제로 거품이 가라앉은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이후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깊은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투기 열풍이 지나간 자리엔 가상화폐 시장의 허술한 제도가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정부는 이를 정비하기 위한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방치가 새로운 시장의 발전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차라리 규제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푸념마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9월 가상화폐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국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형태의 가상화폐 공개(ICO) 행위에 대한 전면금지 방침을 밝히는 것으로 규제의 첫발을 뗐다. 이후 올해 1월 법무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전면 폐쇄 검토 발표까지 8차례에 걸친 규제 대책이 쏟아졌다. 가상화폐 거래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투기로 규정한 정부의 강경책에 1월7일 2,500만원대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달 초 700만원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규제는 딱 여기까지였다. TF 출범으로부터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는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 없이 뒷짐만 지고 있다. 가상화폐 이슈가 나올 때마다 부처별로 한마디씩 던질 뿐이다. 실제 규제라고는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이 19일부터 시행하는 가상화폐 관련 은행권 현장점검이 전부다. 국회의 무관심도 정부 못지 않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만든 가상화폐TF는 1월 출범 이후 회의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상태이고 가상화폐 인가제,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 등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화하는 내용의 법안들은 국회에 잠들어 있다.

거래소 설립 및 운영에 대한 문제도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상태다. 여러 차례의 해킹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간단한 등록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다. 금융상품과 같은 별도의 투자자 보호 장치도 없다. 당국의 거래실명제 실시 이후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대다수 중소 거래소들은 법인계좌를 통해 개인 고객을 받는 방식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방식은 불법자금 세탁경로로 악용될 수 있는데다 해킹에도 취약하다. 당국은 “거래소에 신규 계좌를 제공하는 것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부분”이라며 방관하는 가운데, 은행들은 당국 눈치 보느라 중소 거래소에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업계는 자율규제에도 한계가 있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김화준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은 “10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래소 중 협회에 소속된 거래소는 23개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황에서 시행하는 자율규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아 빗썸 부사장은 “(정부가)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기준이나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그에 걸맞은 규제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지방선거를 의식해 몸을 사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호 고려대 교수는 “향후 가상화폐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정부가 아예 새로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며 “새로운 분야를 발전시킬 좋은 기회인데 겁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새로운 유형의 투자자 피해가 나올 조짐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새로운 가상화폐 미스릴의 가격 급등락이 대표적 사례다. 미스릴이 빗썸에 상장될 예정이라는 내용의 사설정보지(일명 ‘지라시’)가 오후 2시쯤 텔레그램을 통해 퍼지면서 타 거래소에서 가격이 23% 상승했다. 미스릴은 지라시의 정보대로 이날 오후 6시 빗썸에 상장됐고 250원에 거래를 시작한 뒤 30분만에 2만8,000원까지 치솟았다가 추락해 740원으로 떨어졌다. 내부자 거래 의혹이 일자 빗썸 측은 “규정상 상장 정보는 극소수의 담당 직원만 알 수 있고 외부로 정보가 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식과 달리 별도의 상장기준이나 내부자거래에 대한 별도의 법적 기준이 없는 탓에 정보 유출이 사실로 드러난다 해도 현행법상 제재를 가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업계에선 “차라리 당국이 적당한 규제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보안 수준을 어느 정도 해야 한다거나 예치금을 자금의 몇%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 등 규제가 있으면 제도권에서 충실하게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텐데 지금은 기본적 방침조차 없다”며 “하다못해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기준이라도 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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