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호
(통권 45호) 2021. 10. 15
🤘 열린 세미나 🤘

다음 주 목요일 (10/21, 오후 7:30) 주제는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에 관해> 입니다.
대장동 개발 사업에 관한 뉴스가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의 논란들을 부동산개발업자(자본)의 욕망과 동태에서 출발해 도시개발, 민영과 공영, 불로소득, 기본소득, 원주민, 인허가권 등의 문제와 관련지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토론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참고 자료 👈

지난 세미나 갈무리 👇


코로나시대 필수 노동자의 위기와 투쟁
(10월 7일() 저녁 730분)
   
<소주제>
1. 필수노동자라는 용어에 대해
2. 필수노동자의 상태와 특수한 고통에 대해
3. 필수노동자의 투쟁양상과 전망에 대해

1. 필수노동자라는 용어에 대해
💬 떤 주제로 논의를 시작해보면 좋을까요?

💬 소주제로 생각해본 것입니다필수노동자라는 용어, 필수노동자의 상태와 특수한 고통에 대해, 필수노동자의 투쟁 양상과 전망에 대해.

💬 질문들을 생각해 봤는데요, 위에 올려주신 내용과 겹치는 것 같습니다.
필수노동자는 어떤 이유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나?, 필수노동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필수이고 필수가 아닌가?, “필수를 누가 정하는가?

💬 필수 노동이라는 말이 필요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 필수노동자란 용어는 지난해에 갑자기 등장한 것 같아요. 정치경제학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고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시사용어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필수노동자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 및 안전,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이르는 개념으로, 미국.유럽에서는 어센셜 워커(essential-worker)’, ‘키 워커(key-worker)’로 부른다.
필수노동자는 특히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비대면이 확산되는 가운데 대두되었다. 이들의 업무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대면 업무를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 보건의료.돌봄.배달 및 택배.환경미화 노동자 등이 이에 포함된다.”
 
💬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필요불가결한 노동()를 지칭하는 말로 보면 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필수대면노동자라고 하면 될 것을 왜 필수노동자라고 했던 것일까요?

💬 필수노동이라는 말의 사회적 유례를 찾는 이야기 중에 2008,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에 등장한 필수 공익사업이라는 용어가 거론되기도 하여 흥미로웠습니다. 이 법은 필수 공익사업이란 것을 지정하여 해당 사업장의 전면 파업을 금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법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 필수노동이라는 말이 거론되는 것과는 맥락이 다르긴 합니다.

💬 철도. 도시철도, 항공운수, 수도, 전기, 가스, 석유, 병원, 혈액공급, 한국은행, 통신, 우정사업 : 위 글(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 : KDI경제정보센터)에 등장하는 사업유형인데, 줄여보면 [교통,통신], [,에너지], 보건, 화폐 여섯 가지로 4범주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 영문 위키 필수노동’ 항목에서는 필수노동 중에서 대면이 필요한 직종과 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종을 나누고 있긴 합니다.

💬 이 문서(영문 위키)의 노동유형은 돌봄(건강,교육,육아) / 핵심공공서비스 / 지역 전국정부 /식량 / 안전보안 / 교통 / 시설 소통 금융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한국에서 필수노동자라고 할 때 핵심적인 돌봄, 물류, 환경(청소). 세 범주와 겹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네요.

💬 여기(한국노동연구원의 필수노동자에 대한 링크)에는 영국 필수노동자에 대해 정리한 것 같습니다.

💬 영국 필수노동자 범주들은 영문 위키 내용과 대동소이하네요.

💬 필수노동이라는 말을 가장 간단하게 정의할 때는,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인 노동이라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사회의 기능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필수적인 노동이 무엇이냐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반대로 무엇을 필수적인 노동으로 지정하고 있느냐를 보면, 해당 사회가 어떤 기능을 중시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저도 무엇을 필수노동으로 보는지부터가 그 사회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고 정치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 치안 및 국가안보 공익사업 교육 등이 주요 항목으로 포함되는 것을 보면 국가의 관점에서 삶(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것을 필수노동이라 규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코로나 상황에서 대면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규정은 이 필수노동 규정에 덧붙여지는 이차적이고 시사적인 규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 자본의 관점에서 필수노동은 이윤관점이 핵심이 되기 때문에 돈을 버는 데 필요한 노동이 필수적인 노동이 될 것이므로 사실상 모든 노동이 그 노동을 사용하는 자본가에게는 필수적이라고 보게 되겠지요.

💬 얼마 전에 이런 책을 알게 되었는데요. 책 제목은 <더러운 일>(Dirty Jobs)이고 부제에 필수직종”(essential jobs)이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이 책의 저자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지만 필수로 적극 호명되지 않는 직업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필수범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도축장에서 동물을 죽이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 드론으로 원격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드론 조종사들, 교도소의 정신 심리상담 담당자들... 이런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요. 이 책 소개를 보고 필수라는 범주가 누구에게 필수인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 여담으로, 제가 오늘 오후 4시쯤에 인터넷으로 물건을 하나 주문했는데, 방금 택배사에 도착하여 배송이 시작되었다고 알림이 왔네요. 정말 빠릅니다. 문제는 제가 주문한 물건이 제 삶에서 이 정도로 빠르게 배송되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 다중의 관점에서 필수적인 노동은 무엇인가는 국가의 기준과 달리 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가사노동 같은 것은 국가의 필수노동 규정에 빠져있지만,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 필수노동이 주목받으면서 필수노동자들의 상황이 나아졌을까요?

💬 필수적이라고 간주되면 될수록 당사자의 삶은 더 고통스러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 아닌가요? 자본의 경우는 필수적인 것은 무상에 가까워지는 쪽을 선호하잖아요. 필수적인 것이 유상에다가 값비싸지게 되면 축적의 장애가 심화된다고 보게 될 테니까요.

💬 제이슨 무어가 자연, 노동, 여성노동 등의 저렴화가 자본의 기본 동기라고 했을 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이런 점 아닐까요?

💬 , 가사노동의 경우를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실비아 페데리치 인터뷰에도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필수노동을 인정하거나 보상하지 않는다.”

💬 필수적인 것 >> 기본적인 것 >> 비용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것 혹은 아낄 수 있는 것으로 자본은 간주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주문한 물건은 오늘 저녁에 받는 게 기본이지라는 생각이 확산될수록 택배노동자의 삶은 고통스러워졌고요.

💬 한국노동연구원의 필수노동자에 대한 링크의 다음 구절도 흥미 있는 대목입니다.
필수노동자의 성별 구성을 보면 여성이 58%, 남성이 42%로 비필수 노동자(여성 42%, 남성 58%)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또한 부문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는데, 교육 및 보육...”

💬 필수-기본-노동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노동이라는 것도 자본의 상식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 국가가 필수노동으로 규정한 것 중에서 국가 외부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이 가장 저렴하게 취급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대표적인 것이 물류(택배영역(위의 분류들에서 수송이라고 표현된 것)과 돌봄 영역의 일부인 것 같구요.

💬 의료 영역의 노동자들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크게는 돌봄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보호사 분들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 다고 봅니다. health care(보건)에서 care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하니까요.
2. 필수노동자의 상태와 특수한 고통에 대해
💬 여성의 돌봄노동에 사회 전체가 의존하면서도 여성의 경제적 위치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모순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코로나시대 돌봄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며, 한겨레신문)

💬 이미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간호사 등 돌봄노동자들은 여러 고통을 호소하지만 인력 부족을 크게 호소하더군요.

💬 필수노동자의 상태와 특수한 고통에 대해가 두 번째 주제였습니다.

💬 의료 영역은 작업장(?) 내에서 직종 간 위계가 정말 크게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의료가 치료와 돌봄으로 구성된다고 가정할 때 치료담당자들이 돌봄 담당자들을 지배하는 구조로 보입니다. 그런데 치료cure와 돌봄care는 한자 차이고 의사의 치료는 환자의 자기치료를 돕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본질적으로는 치료도 돌봄이라는 것이지요.

💬 의료 영역에 필수적인 부분인 돌봄은 저렴하게 활용되고 있고, 의료영역에서 획기적(?)이라고 여겨지는 여러 치료기술을 담당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고평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종 다이나믹한(?) 의료, 치료 신기술들이 개발되고 있고, 그것들이 안전성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의료현장이 떠오릅니다.

💬 기본적으로 로또, 싹쓸이, 독점 문화가 현대사회의 동형구조(isomorphism)로 관철되고 있는 것일 텐데, 저작물은 공통성과 독창성으로 구성되는데 저작권법에서는 오직 독창성만이 평가받고 공통성은 무상으로 간주됩니다.

💬 오늘날 저작물을 공통성에 연결해 생각하기는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과제라 생각됩니다.

💬 202012월에 정부가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대책을 발표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재가요양보호사 등 방문 돌봄 종사자 등에 대하여 한시적으로 생계지원금 50만 원, 필수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직종별로 특화된 건강진단제도, 폐기물의 평균 무게가 25kg를 넘는 등 수거원의 신체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100L 종량제 봉투의 사용 제한을 추진...(전체적으로 필수라는 말에 비해서 지원이 너무 소소한 것들인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이마저도 잘 이행되지 않고 있나 봅니다. 콜센터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어제 필수노동자 보호 지원 대책 이행하라며 노동자 행진을 열었다는 기사입니다. (뉴스1, 2021.10.6)
3. 필수노동자의 투쟁양상과 전망에 대해
💬 필수노동자 투쟁이라는 용어로 검색해보니, 대리 운전노동자,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요양보호사콜센터 노동자 등이 파업이나 시위를 벌였습니다. 운수 노동자 투쟁도 예고되고 있네요. 생계 대책 마련, 임금인상, 인력보강, 안전대책, 정규직화 등이 요구사항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 '참세상' 칼럼에는 오늘 세미나에서 이야기했던 주제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고요, 대안으로 노동기본권확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필수노동자는 자본이 발명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노동자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정치적 용어로 재발명할 수 있다. 노동 가치의 사회적 협약과 필수노동자의 필수적 노동기본권을 요구하자” (참세상-필수노동자)
이것은 왜 자본이 필수노동자를 저임금,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으로 고착시키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수노동자의 노동권이 향상될 때, 그들의 힘은 자본의 지배에 가장 위협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들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반드시 억제하고 장악해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더욱더 이 필수노동자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세상-필수노동자)
 
💬 한시적인 생계지원금, 특화된 건강진단제도 등의 국가정책은 필수노동자들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한시적’, ‘특화된이라는 정부의 수식어가 노동자들의 요구인 정규화에 대한 회피책으로도 느껴집니다.
 
💬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조례를 가장 먼저 추진한 성동구 사례를 보면, ‘재난 시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노동을 지속해야 하는 업종종사자를 필수노동자로 규정하고 위험수당과 처우 개선비 등을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마스크와 소독제도 필요하고 보험도 필요하다. 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필수노동자를 재난 시의 노동자라고 규정한 관점은 여전히 이 노동자들의 일을 임시적이고 한시적인 필요로 한정하는 것이다. 또한, 전시 징발 성격의 위기 대응 매뉴얼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참세상-필수노동자)

💬 필수노동자를 정치적 용어로 재발명하는 것은 필요, 필수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필요하고 필수적인가를 둘러싼 제 사회 세력들 사이의 투쟁을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봅니다. 이 질문은 노동이 정말 필수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까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노동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고용되어 강제되는 활동을 의미하는 한, 어떤 유형의 노동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사회구성원의 일부를 희생시키겠다는 결의를 표현하는 것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면 필수적인 것은 노동이 아니라 다른 것일까요? 필수노동자를 정치적 용어로 재발명할 때 어떤 말을 써야 할까 생각해보면서 질문드려보았습니다.

💬 필수적인 것=자유로운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의 창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맑스는 욕구노동(욕구로서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필수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의 일치는 필수적인 것이 사회와 인간의 욕망으로 될 때 성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 이외의 것이 필수를 정의하는 순간부터, 필수는 억압과 강제의 언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 없는 것, 잉여를 정의하면서 배제하고 제거하며, 필수적인 것을 정의하면서 그것을 의무, 희생의 무대로 끌고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애덤 스미스노동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가능하면 회피하고 싶은 것, 따라서 자유와 휴식을 노동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는데, 이를 맑스가 비판한 구절(정치경제학 비판에서)이 떠오릅니다.

💬 욕구노동은 아담 스미스의 강제/휴식(자유) 구분을 비판하면서 제시하는 용어입니다.

💬 꼭 있어야 한다는 그 필수적 노동과 노동자는, 자유가 아닌 고용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세력과 사회체제와 이를 유지하려는 정치 세력을 위해 희생되겠네요.

💬 , 오늘 시작하면서 지금의 필수노동은 국가의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 아감벤 같은 사람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국가의 전면적 등장(전경화)을 파시즘의 부상으로 경계하게 되는 것은 이런 측면에 대한 강조라고 생각합니다.

💬 노동자의 관점에서 필수노동을 정의하는 것이 곧 필수노동자를 정치적 용어로 재발명하는 것이겠네요.

💬 그 노동자가 노동 너머를 상상한다는 전제 위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오는 토요일 역사비판 세미나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고대나 중세 시대의 지배자들은 필수노동자인 노비를 창출, 관리하는 데 체제의 전력을 쏟아붓습니다.
고대, 중세 국가는 노비체제의 정치적 틀 그 자체였으니까요. 우리 시대의 국가는 우리 시대의 노비를 창출, 관리하는 것을 그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 코로나 이후 필수노동자와 그들의 싸움이 더 가시화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 코로나 상황은 필수노동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했는데 그것이 대면이라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는 노동이었죠. 이러한 의미의 필수노동에 대한 사회적 필요가 절박해진 만큼 그들에게 강제되는 노동의 양은 많아지고 질은 험해졌습니다.

💬 사회적으로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실질적인 변화는 없고 상황이 계속 악화되기에... (당신은 필수노동자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고통을 감내하며 노동하세요.) 필수노동자들 쪽에서도 이제 영웅이라는 말은 지겹다, 실질적인 대책을 실행하라라는 반응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물류 노동자들의 사망률은 늘어나고 간호노동자들의 이직률이 늘어난 것은 이들에게 요구되는 (누구로부터?) 희생이 그만큼 컸다는 증거겠죠.

💬 파업이나 시위는 시민들의 주목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전염위험을 이유로 냉담하게 외면되거나 비난되었습니다.

💬 위에서 누군가가 말한 것 같은데요, 필수노동자가 전시 차출 병사와 유사하게 정의되면서 (일종의 동원군) 저항이 뜬금없는 행동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커졌던 것 같습니다. 필수노동자라는 상찬적 인식의 배면에 그들을 자신의 삶을 위해 희생시키려는 사회적 동기가 강하게 작동하면서 일종의 심리적 모순상황이 연출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맑스가 애덤 스미스의 노동과 자유에 대한 정의를 비판하면서, 그것은 전적으로 자본주의하에서만 맞는 정의였다고 하였던 게 기억납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노동을 자유가 아닌 희생으로 만드는 체제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면 노동 너머의 노동은 희생으로서의 노동이 아닌 자유로서의 노동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노비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렇다면 조선 시대와 대한민국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 노비는 조선 시대보다 수 천 년 이전인 고조선부터, 즉 국가형태의 탄생 이후부터 이 땅에 있어왔다고 합니다.

💬 우리 시대의 노비 생산은 체제적, 기업적으로 차별적으로 더욱 세밀하게 진행되고 있어 보입니다. 필수적 노동이라는 말이 느끼게 하는 영웅x노예는 고대나 중세의 노비보다 더욱 가혹한 처지가 아닐까 싶네요. 이제는 쿠팡의 차들이 바쁘게 지나가면 슬퍼집니다.

💬 노비의 역사적 구성(내용)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바뀌는데 다른 기회에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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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연대자 비평
저 푸른 초원 위에: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by 추유선 (미술작가)

2020년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기사로 접했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여성노동자로 그녀는 집(본국)으로 돌아가기 3주 정도를 남기고 간경화(국가과학수사대 발표)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녀의 동료는 일주일 전부터 숙소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에 전기가 수시로 끊어졌고 전기난로와 난방패널을 이용해서 겨울을 나야했기에 전기가 끊어진 숙소는 너무 추워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동료는 자신의 친구 집에 가서 자고 오자고 그녀에게 이야기했으나, 그녀는 숙소에 있겠다고 해서 본인만 친구 집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오니 이불을 여러 겹 두른 모습으로 죽음에 이른 그녀를 발견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주민들에게 기숙사는 곧 집이다. 그들이 한국에 있는 4년 10개월 동안 살아야만 하는 보금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도저히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이다. 비닐하우스, 혹은 비닐하우스 안의 컨테이너, 공장 안의 컨테이너... 누군가는 한국 사람도 힘들고,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도 많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정식 계약한 노동자로 근로기준법 시행령에는 자연재해 위험이 있거나 습기나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장소에 기숙사를 설치할 수 없으며, 채광이나, 환기, 방재 시설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불법임시거처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58.1%에 달하고 한 달에 20만원에 달하는 기숙사비용을 낸다. 1인 약 20만원의 기숙사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들은 화재와 불결한 환경 뿐 아니라, 추위에, 더위에 시달리거나 캄보디아 여성이주노동자 속헹씨와 같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다. 

1972년 남진은 <님과 함께>라는 곡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저 푸른 초원 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아름다운 집을 지어서 평생을 함께 살고 싶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가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은 대중이 원하는 가장 소박한 꿈,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영위할 정도의 노동과 노동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박하고 안락한 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소박한 꿈과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누리고자 고향을 떠나서 타지로 이동한다. 낯선 땅으로 이주를 한다는 것은 두려움에 앞선 더 나은 삶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지는 당연한 욕구이며 아름답다. 그러나 노동자가 이주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실현하고자 한 이래 존재로서 존중받지 못했던 삶은 여전히 현재형이며, 자본 앞에서 무참히 사라지는 것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 윗글은 2021년 9월 7일부터 30일까지 '예술안심도시협동조합공간 O형'에서 열린 미술전시 <저 푸른 초원 위에>의 서문입니다. 사진들은 전시 모습을 기획자가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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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연대자 비평

[대자보]
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포스트휴먼의 인간

by 이수영 (미술작가)

포스트휴먼에 대한 상상은 일단 ‘인간(human)’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점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많은 비인간들을 보아왔다. 인어공주, 구미호, 웅녀. 이들의 간절함에 나는 항상 마음이 아렸다. 목소리를 잃거나, 어두운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어야 하거나, 인간 남성의 간을 100개나 먹어야 하거나, 이들이 인간이 되기 위한 시련은 혹독한 것이었다. 여우-여자와 생선-여자는 실패했지만 사실은 반어적으로 성공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정신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휴머니즘의 속성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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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진실 찾기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공통진실 찾기>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맑스와 들뢰즈라는 두 추상기계를 연결하고 그사이의 정치적, 개념적, 문화적 공명점들을 탐구한 책, 니콜래스 쏘번 『들뢰즈 맑스주의』를 읽고 있습니다. 창조적 연결을 통해 공통진실을 찾아 떠나는 시간, 매월 1, 3주 토요일 오후 1시실연대자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10월 9일 세미나 참가자들이 뽑은 책 속의 문장들
🚴 맑스의 정식화 속에서 '노동'의 보편성과 '노동에 대한 비판'의 보편성은 필연적으로 유지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관계들 및 실천들에 대한 특유한 탐구와 설명은 가장 현대적인 교전을 통해 끊임없이 갱신될 수 있기 때문이다. _『들뢰즈 맑스주의』 니콜래스 쏘번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p.200

🏇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을 비판하는 계급이다.  _ 『들뢰즈 맑스주의』 p.192

🚵 만약 노동이 확장적이고 변이하는 사회적 유기체 속에 병합됨에 따라 인간이 탈영토화되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자본의 재영토화하고 재코드화하는 메커니즘이다. (...) 그러므로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를 별개의 대립하는 주체들로 대면하는 미리 주어진 동일성들이 아니라 자본의 기능들이다.  _ 『들뢰즈 맑스주의』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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