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 농사 [녹색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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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만드는 건 결국 기업.” 지난 4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열린 제8차 일자리위원회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업무지시 1호가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위원회’ 설치와 운영이었을 만큼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정부가 “일자리 양을 늘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기업의 투자 촉진과 활력을 당부하고 정부는 기업 발전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했다. 이날 일자리위원회가 꼽은 5대 신산업의 내용을 보면, 결국 재벌 대기업에 일자리를 요청하고 최대한 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고용 부진에 대한 대통령의 답답함과 초조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2004년 노동부가, 2010년 대법원이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을 확인했지만 지금껏 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거부해온 현대·기아차에 과연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해도 좋은가?

하기야 공공부문도 아닌 일반 기업에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기업은 일자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투자하고, 거기에 필요한 만큼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니 기업은 수익 극대화에 유리한 형태의 일자리를 선호한다. 설사 신산업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해도, 경기가 침체되면 고용은 다시 악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경기는 언제나 부침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일자리라면 기업만 생각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농업이 국가의 근간이라면서도, 우리는 늙고 공동화되는 농촌을 철저하게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40세 미만 농가가 전체의 1% 미만이고 농가의 평균농업소득은 월 100만원이 안된다.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50%와 24% 수준이고, 100% 자급인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훨씬 더 떨어진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농사는 좋은 일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자리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농촌을 기피한다.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농사에 사람이 몰리도록 하는 것이 마땅히 일자리 창출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90년대 중반, 충북 괴산에서 유기농을 하는 ‘솔뫼 공동체’의 농부들과 반년 남짓 산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동시에 농사가 얼마나 큰 만족과 자긍심을 주는 일인지, 한마디로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깊이 깨달았다. 그럴수록, 농사가 사람들이 기피하는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귀농 인구가 조금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귀농을 원하지만 농촌에서의 생계가 막막해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어느 정도 생계만 보장된다면 농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날 것이다. 전남 해남군이 발표한 ‘농민수당’은 정부가 농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농사짓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줄 ‘농민(농가)기본소득’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농민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인 제안인가? ‘현실’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강고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결코 터무니없는 제안도 아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계산대로 전국 110만 농가에 월 50만원씩 지급한다면 연간 총 6조6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매년 미국 무기 구매에 쓰는 돈이 10조원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농민이 더 늘어나면 예산도 더 늘어나겠지만, 소농이 수행하는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면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좋은 일자리로 소문난 농사로 사람이 몰리면, 기업도 진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 농민기본소득으로 시작하자.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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