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난리가 났습니다. 왕릉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공주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관계자,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서로 사진을 찍겠다 하며 아수라장이 되었고 누군가의 발길에 숟가락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장마철이라 비도 오락가락 오던 중이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었던 발굴단은 밤을 새워서 유물을 정리했습니다. 바닥에 있던 온갖 부스러기들을 빗자루에 쓸어 자루에 담았습니다.

아 어떡하나요. 1년 아니 10년에 걸쳐 발굴해도 모자랄 판에 그만 하루 만에 모든 게 종결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발굴자들은 그때를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되돌릴 수가 없었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무령왕릉이 간직하고 있었던 수많은 비밀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백제 성왕은 아버지 무령왕과 어머니 무령왕비의 무덤을 몇 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성왕은 무령왕릉이 백제와 함께 천년만년 계속되기를 바랐지요. 그래서 왕릉을 지키는 누군가를 세워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진묘수(鎭墓獸)입니다. 무덤을 지키는 짐승이란 뜻입니다. 간단히 돌로 만든 짐승, 석수라고도 합니다. 맨 처음 무덤을 열고 들어가서 처음 진묘수를 본 발굴자는 섬뜩했을 겁니다.

그런데 건장하고 당당해야 할 진묘수의 뒷다리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러진 숟가락처럼 발굴, 운반하는 과정에서 부러졌다, 원래부터 부러져 있었다며 서로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장례 절차로 온전한 물건을 일부러 손상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거든요.  이 점은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공주박물관에 가셔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다리를 붙여 놓았습니다. 엉덩이 쪽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 뒷다리입니다.

그러다 중국에서 무령왕릉과 같은 시기, 남조 양나라에도 뒷다리를 부러뜨린 여러 진묘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령왕릉 석수의 뒷다리도 일부러 부러뜨린 거로 보게 되었지요. 도망가지 말고 꼭 지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는데 좀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정말 일부러 부러뜨렸을까요. 나중에 부러뜨린 게 아니고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면 좀 덜 미안하게 느껴지는데요.

왕릉의 주인을 알려주는 지석에는 무령왕의 직함이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 사마는 무령왕의 이름입니다. 일본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무령왕은 섬이란 의미의 사마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처럼 '백제 사마왕'이라 쓰면 될 걸 앞에 '영동대장군'을 붙였네요. 영동대장군은 중국 양나라가 무령왕에게 내린 작호입니다. 사실 무령왕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왔습니다. 벽돌로 무덤을 쓰는 것도 대표적인 중국 양식이죠. 무덤을 지키는 석수의 뒷다리까지 그 양식에 따라 부러뜨렸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왕의 장례를 치를 때 주변 나라에서 여러 물건을 보내주는 것은 으레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중국 것이라는 얘긴 아닙니다. 함께 출토된 백제의 동탁은잔을 보면 백제의 공예기술과 미적 감각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선례가 있었으니까 나중에 백제금동대향로와 같은 대작을 만들 수 있었던 거지요.

여러분이 무덤의 주인을 지켜주고 싶다면 어떤 짐승, 어떻게 생긴 짐승이 지켜주길 바라나요. 당연히 단번에 공포심과 두려움을 줄 만큼 괴기한 모습의 진묘수를 택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진묘수도 대부분 그렇게 생겼습니다.

무령왕의 석수를 다시 봅니다. 몸은 통통하고 굵습니다. 통통하고 짧은 네 다리로 당당히 서 있습니다. 몸통에 갈기가 새겨져 있는데 날개 같기도 하네요. 머리 위에는 뿔 한 개를 올려놓았습니다. 

자 이제 우리가 도굴꾼이 되어 무덤에 침입했습니다. 아마 무덤 속에는 무시무시한 진묘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도끼 등을 챙겨갑니다. 나타나자마자 내려칠 준비를 단단히 하고요. 중국처럼 무시무시한 진묘수가 나타났다면 바로 내려쳤겠지요. 예상한 바니까요. 그런데 무령왕릉의 석수는 좀 다르네요. 도굴꾼을 향해 귀여운 모습을 취합니다. 들었던 도끼를 내려칠까? 아니면 얼굴을 한 번 쓰다듬고 '이번만은 봐준다’고 하고 돌아 나왔을까요. 무령왕릉의 경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백제의 모든 왕릉이 도굴됐어도 무령왕릉만 살아남은 건 저 귀여운 석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령왕릉을 천년 하고도 몇백 년을 지켜냈으니까요.

무령왕릉에 대해 강의할 때 천 년 동안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이 진묘수를 선물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한 번 공주 박물관으로 답사를 갔는데 작은 모양의 석수가 동이 나 버렸습니다. 답사기를 읽어보니 어머니께, 좋아하는 남자친구,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황송하게도 저는 석수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10년도 넘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나를 잘 지켜주고 있습니다.

나만의 한국사 편지 구독자님들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역사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편지가 아니라 석수를 보내드려야 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아쉽지만 나중에 공주박물관에 함께 간다면 그때 선물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물은 나중에 하지만 그때 쓸 문구는 미리 써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게 교환권이 되겠네요. 

석수가 말합니다. 

한국의 맛과 멋 트위터에 소개해 많은 호응을 얻었던 청자/백자 모티브 유리잔입니다. 청자 유리잔에는 국화의 무병장수 의미를, 백자 유리잔에는 길상무늬로 많이 사용되는 모란을 그려 넣었는데요. 형태적 모티브는 고려청자 특유의 매병 모양과 조선백자 달항아리에서 얻었다고 하네요. 이 제품을 트위터에 소개하면서 지인으로부터 '통장 슥삭 계정'이라는 말을 들었답니다. 😆

장경판전 내부를 순례할 수 있는 탐방 프로그램을 6월 19일부터 매주 토, 일 오전 10시, 오후 2시 하루 2회 운영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런 식의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이제 팔만대장경도 티케팅해서 보러 가야 한다는 사실. 6월은 일찌감치 예약이 끝났고 7월 10일(토)부터의 예약 신청은 해인사 누리집에서 6월 28일 정오(낮)부터 가능합니다. (트위터에는 올리지 않고 뉴스레터 독자분들께만 특별히 먼저 공유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신청해야 하거든요. 😅) 

어르신들 사이에서 생활 한복 브랜드로 이름난 '돌실나이'를 아시나요? 돌실나이에서 MZ 세대를 겨냥해 만든 '꼬마크'라는 브랜드는요? 꼬마크에서 여름맞이 상큼한 한복 반팔 티셔츠와 에코백을 출시해 펀딩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펀딩은 마감 상태입니다. 좋은 반응이 있었던 만큼 앵콜 펀딩을 기대해봅니다. 대신 꼬마크 웹사이트를 구경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편지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옛날 편지첩 하나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요. '정조어필한글첩'이었습니다. 붉은색에 고급스러운 무늬가 수 놓여 있는 예쁜 표지의 편지첩 안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하고 봤더니. 친근감이 느껴지는 서툰 필체의 붓글씨가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정조가 어린이 때 썼던 한글 편지였습니다. 큰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음식 등의 물건을 보내거나 안부를 묻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는데요. 4~5세 때부터 1798년(정조 22)까지 정조가 작성한 한글 편지를 묶은 편지첩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