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없는 승리] 햄변과 청소년 Y의 이야기


햄변 위서현


 10대, 학생, 청소년,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소위 “MZ 세대” 등등… 청소년을 부르는 말들은 계속하여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이름들이 청소년의 모습을 적절하게 드러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동과 청소년의 세계는 성인만큼 다양할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의 모습과 관련하여 그 다양성을 달리 인정하거나 드러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 역시 아동과 청소년 시절에 소위 “말 안 듣는 아이”로 살아오며, 여러 순간 반감을 느껴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말 안 듣는 아이”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바, 어째선지 동행의 일로 청소년을 마주할 때 조금 더 마음을 쓰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최근 동행이 조력한 Y의 경우가 그러하였습니다. 달리 학교에 가는 것도 재미가 없고, 성인이 되어 하고 싶은 일도 특별히 없지만, 친구들과 카페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마라탕과 “뿌링클”을 좋아하는 청소년 Y.

 이 글에서는 Y와 관련하여 그가 처한 법률상 문제와 사건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청소년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이하에서는 동행이 조력한 청소년 Y의 상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한도 내에서 가상의 상황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Y는 중학교에 간 이래로, 학교에 가는 것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였습니다. 이전에 친하였던 친구들은 모두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였고, 학교에 가도 달리 마음을 붙일 친구나 고민을 터놓을 선생님을 만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잠이 많아 지각이 잦았고, 때로는 출석하지 않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럴때마다 학교는 Y에 대하여 여러 차례 주의를 주거나 타박에 가까운 훈계를 할 뿐이었습니다. Y는 학교에 있을 때 더욱 큰 불편함을 느꼈고 학교생활과 관련하여 여러 사유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Y는 우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S와 N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어쩌면 성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달리 “좋은 친구”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아니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S와 N은 카페 등에서 함께 청소년 Y의 이야기들을 들어 주었고, 가끔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유해약물”등으로 지정된 담배 등을 함께 태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위의 친구들과 어울리던 중 Y는 자신의 책임 없는 사유로, 제삼자로부터 예기치 아니한 피해를 입게 되어 이를 학교에 알렸고 학교는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였습니다.

 한편 수사기관은 Y의 피해사실에 대한 적절한 수사 없이,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Y의 피해와 대향적인 관계에 있는 다른 혐의 사실이 있다고 판단하여 피의자로 입건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건데, 이러한 입건은 학교가 바라보는 Y의 학습 태도, 그리고 수사기관이 생각하는 소위 “말 안듣는 아이”인 Y에 대한 예단 등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한편 이 사건을 처음으로 동행에 알려온 단체의 활동가와 동행은 피해자로서 당연히 법률상 보호를 받아야 할 Y를 그와 대향적인 관계에 있는 다른 범죄의 피의자로 전환하는 것의 부당성에 대하여 치열하게 다투었고, 전국의 여러 단위와 연대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송치 처분 직전에 이를 중단시켰고, 나아가 종국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받았습니다. 동행에서 지난 1년간 여러 사건을 해 왔음에도, 그중에서도 진정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소회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한편 언젠가 위 사건과 관련하여 Y와 담당 활동가 선생님과 잠깐 논의할 일이 있어 언젠가의 점심 무렵 동행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고프다는 Y에게 혹시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으니 주저 없는 확신의 목소리로 “뿌링클”이라고 외친 Y의 모습이 엉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배달되어 온 뿌링클을 나누어 먹으며 각자 겪고 있는, 그리고 겪는 중인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Y가 짊어진 사건의 무게가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일단은 하나가 잘 해결되었다는 점에서 새삼 지금까지도 깊은 안도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Y가 미래에 어떤 청소년으로, 나아가 어떤 성인으로 성장하여 갈 것인지에 관해서는 달리 아는 바가 없고, 설령 아는 바가 있더라도 달리 유의미한 이야기나 조언을 할 자격 같은 것이 있지 아니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중요한 것은 청소년 Y는 Y의 삶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혹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계속하여 살아갈 터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닥쳤을 때, 최소한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임 있는 존재, 혹은 책임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정도는 남습니다. 아마 그것이 “말 잘 듣는 아이”이든, 그렇지 아니한 아이든 간에 제가,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 우리 사회가 살펴야 할 유일한 몫이 아닐까요.

+ 햄변을 관찰한 소화의 소감


1월 하순 어느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

긴장된 표정으로 경찰에서 온 우편을 뜯어본 햄변이
두 팔을 쳐들고 깡총 뛰며 외쳤다.
"불송치 되었어요!"
극 내향형으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햄변이
여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 짐작되었다.


피해를 입은 청소년이 오히려 피의자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게 된
전라도 사투리로 하자면 말그대로 '얼척없는(=어이없는)' 사건으로,
청소년쉼터 '하랑'의 남궁미 활동가의 밝은 눈과 열정으로 동행에 연결된 그녀와 그녀의 사건이다.햄변과 활동가가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여러 차례 여러 경로(서면, 전화, 면담 등)로

송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경찰은 어찌된 영문인지 망부석...
그래도 늘 포기를 모르는 하랑의 남궁미 활동가, 차분하게 할 말 다하는 햄변, 가장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을 그녀는 결국 이 판결문 없는 승소를 이루어냈다.

이 작은 승리를 버티고 이뤄낸
그녀의 또다른 수제 빼빼로들을 기대하면서,

하랑과 햄변의 승리도 축하하면서,

점심부터 치킨을 먹어도 되는 왕성한 기운으로,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승리를 기운을 전한다.


*불송치란? 경찰이 검사에게 사건을 넘기지 않고 사건이 종결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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