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콕하면서 꺼내 든 소설 속 한 문장이 저릿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기적은 종종 태연한 일상의 방식으로 구현되곤 했다.’ (사랑의 기초. 정이현 저)

5월 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연부터 에스메 콰르텟, 손열음, 박혜상, 썸머 브리즈 공연까지 2020년의 무대는 어쩌면 작은 기적들의 연속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일상을 누리고 있음에, 여기에 더해 공연도 할 수 있었음에 너무나 감사한 날들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 저도 ‘지금’에 집중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내 일상의 ‘작고 확실한 것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안전하게 잘 지내요.

지난 호, 하반기 뮤지컬 기대작을 선정할 때만 하더라도 다시 공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두근거림이 있었지만, 일단은 스탑을 선언해야할 것 같습니다. 최근 다시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19 와 관련하여, 공연장들과 기획사들은 진행 중단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을 포함한 국공립 극장들은 8월 31일까지 잠정 운영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이후에도 연장될 가능성이 있어, 저희 크레디아도 지켜보는 중이예요. 전국 각 지역 주요 공연장도 운영 중단 소식이 들려옵니다. 한편 롯데콘서트홀과 LG아트센터, 그리고 뮤지컬 공연장인 블루스퀘어 같은 민간 공연장들도 바로 앞의 일부 공연들을 취소하고 거리두기 시행을 확대하는 등, 안전 방침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연주자에게도 스탭에게도 ‘한 여름밤 감미로운 꿈’ 같은 공연이었습니다. 김광민 선생님 공연은 공연 2주 전부터 시작된 리허설에 마지막까지 수정에 수정이 더해지고, 퍼커션 연주자들의 악기 품목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공연 프로그램은 공연 직전까지 업데이트되었죠. 원래 ‘염원’으로 시작하기로 했던 공연은 ‘운명’,’순결’, ’염원’으로 이어지는 피아노 솔로곡들로 꾸며졌습니다. ‘운명’은 미발표곡으로 최근에 선생님 연구실 피아노 위에 자필로 그린 악보를 직접 본 터라, 선생님이 3년 만의 단독 콘서트에서 즉흥적으로 ‘운명’을 연주하게 된 배경이 뭘까 궁금하면서도 뭉클한 느낌이었습니다. 거장의 다채롭고 깊은 프로그램은 백스테이지에서도 이어져 한곡 한곡 연주가 이어질 때마다 ‘이 곡 참 좋다’고 나직히 읊조리게 되더라고요.

홍진호씨 공연은 긴장감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공연이 라이브 레코딩으로 녹음되어 음반으로도 발매될 것이기에 조심스러웠고. 부득이하게 공연 날 팬텀싱어 콘서트와 스케줄이 겹치게 된 테너 존노가 안전하게, 제시간에 공연 장을 와야 하는 상황이라 존노 일정 케어로 최정예 요원 묘점원이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오전에 공연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팬텀 무대로 향하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씀 주신 따뜻한 존노씨 덕에 미소 짓는 순간도 있었고요. 리허설부터 공연까지 꼼꼼하고 차분하게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홍진호씨를 보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의 저력이 이런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나왔겠구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2020년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어느 여름날의 달콤한 바람과도 같던 썸머 브리즈 공연이었습니다.    

◼ 첼리스트 홍진호가 9월 5일 인천 문학경기장 동문광장에서 열리는 <제 5회 문학산음악회>에 출연합니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드라이브인 콘서트로 진행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