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왜요레터-사회적경제조직의 사업과 공익성
이번 담화 어땠어요?

'지원의 방식'을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담화를 하면서 뭔가를 지원한다고 해서 지원을 받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성장한다는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요. 사회적경제와 비영리의 방식에는 명확한 답이 있지 않으니까요. 사회적경제는 10여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어쩌면 그 성장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우리는 해답을 정해놓고 무작정 달려온 건 아닐까요? 이후의 10년에서는, 더 나은 성장을 위한 고민과 어떤 실천을 할지 명확히 해야 사회적경제의 건강한 성장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롱- 
11월의 질문-지원사업은 정말 성장을 가져올까?
💌참가자 : 카롱, 지니, 슈슈, 별별, 달달,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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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경험했던 지원사업의 모습은 이랬어요 
사회적경제조직의 사업은 일자리를 만들고, 생태계에 성장을 가져온다는 공익성이 있어요. 그렇지만 내면을 살피면 공익성은 단지 표면적이라고 느끼는 청년 실무자들이 많았어요. 그 이유에는 ▲사업의 더 나은 방식과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 문서적인 완결성에만 집중 ▲공익성에 집중키 보다 조직 유지에 필요한 인건비를 벌기 위한 사업이이 더 많음 ▲분야에 꾸준한 성장을 가져오는 장기사업보다 기부처의 입맛에 맞는 단기사업 다수 ▲성장 할 수 있는 기업과 함께 하기보다 사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업을 기계적으로 선택 등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조직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 경제 및 수익성에도 적당한 분배가 필요하다는 것 역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인건비를 따오고, 성장을 위한 고민보다는 사전적으로 일하게 되는 환경에서 자신을 현장 활동가라고 느끼기 보다 '영업사원' 같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 공익성과 운동성은 줄고 사업성에만 집중하는 경향 커져
담화에 참여한 청년들은 조직의 공익성(사회운동)과 수익성이 적절하게 분배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단법인,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재단법인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조직에 소속되어 있지만 공익성과 운동성은 줄고 사업성 또는 경제성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동일한 의견이 이어졌어요. 별별은 "사업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내년에 이 사업을 우리 조직이 또 해야 한다’ 것이었다"며 "지역네트워크와 사업을 위해 연대나 상생을 도모했지만 사업이 있어야만 연대와 상생이 되는 경향이 더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러다보니 이미 연대했던 조직, 이미 익숙한 주체들과 사업을 위한 연대만 하게 되고 공익이나 사회적 임팩트를 위한 연대라기 보다 ‘너도 살고 나도 살아야지’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사례로 ▲돈을 버는 곳(사업조직)과 돈을 쓰는 곳(대외협력 조직 및 교육 의제조직 등)의 구분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균형을 잃음 ▲수익성을 고려한 의견이 결정에서 가장 큰 힘과 논리를 가짐 ▲사회적경제를 이해하는 조직원을 채용하거나 내부에서 이를 교육하기 보다 영리조직에서 일하던 사람의 채용을 선호하는 분위기 등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점점 사회적경제조직이 가진 특성과 변별력이 사라질 수 밖에 없어요. 또 사회적경제조직 간 사업을 위한 경쟁이 심화됩니다. 사회적경제 생태계에는 공공이나 영리에서 유입되는 자본이 많은데 경쟁이 심화되면 주체성을 잃고 외부의 입김에 흔들릴 수 밖에 없어요. 결국 이렇게 계속 영리의 방식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 사회적경제조직은 자본주의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게 될 수 밖에 없어요. 그 경쟁의 승자는 명확합니다. 사회적경제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합니다.

어떤 지원사업들은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웃자라게 만든다
수익성에만 집중하고, 장기적인 비전없이 튀어오르는 사회이슈를 쫓으며 단기적으로 진행하는 지원사업은 생태계를 건강하게 성장시키지 못하고 웃자라게 합니다. 실제로 다양한 지원조직에서 수행하는 사업은 시기별로 단기적이고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몇 해 전에는 '크라우드 펀딩'의 주목으로 해당 지원사업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이후에는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사업이 늘더니 코로나19로 주춤하며 사라졌어요. 또 최근엔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꾸준하고 조용히 장기적인 지원을 이어가는 조직도 있지만, 10년 간 꾸준히 한 분야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거의 없습니다.(물론 장기적이라고 해서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도 아닙니다.) 휙휙 바뀌는 지원의 트렌드를 맞추며 사업비를 딸 수 있는 기업만 살아남습니다. 사회적경제기업들은 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피봇을 위한 피봇을 거듭하거나 기업이 만들어진 목적에 맞지 않더라도 적당히 서류를 맞춰서 지원금을 얻어내게 됩니다. 이는 기업의 제대로 된 성장을 돕지 못하고 웃자라게 합니다. 또 잘못된 방식의 지원으로 사회적경제에서 드러나고 주목받는 조직이 특별히 변별력이나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해 외부에서 생태계 전반을 낮게 평가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더 나은 방식의 사업을 위해선 더 나은 고민이 필요해요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조성되고 성장한지 1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원사업의 형태와 방식은 여전히 과거와 같습니다. 어떤 중간지원조직은 지원하던 기업이 성장하면서 운영하던 사업을 뺏기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어요. 사업을 위한 사업을 탈피해야하는 시기는 이미 다가왔어요. 사업에서는 ▲단기성과와 장기성과를 구분한 사업진행 ▲성과를 위한 성과를 보이기 위해 인과관계가 없는 KPI를 잡기 보다 사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값 설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어요. 또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사업을 진행하며 지켜야할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외부의 무리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또 지금의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연대체나 대표조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해요. 지금 연대체에 있는 기존의 조직원들은 경로 의존성이나 공공이나 타 조직간 관계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니까요.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로 구성원이 바뀌면 더 빠른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 거예요. 외에도 사회적경제 구성원들의 시각이 더 많이 반영된 우수 사업 시상식 등이 있다면 실무자들이 더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1029 참사에 우리의 의견을 더해요
튼튼 : 유가족의 6대 요구사항을 지지합니다.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참사 책임이 정부·지방자치단체·경찰에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함) △성역 없는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 규명 △피해자들이 참여하는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 △피해자들과 소통 보장과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유가족·생존자 포함 모든 피해자들이 소통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회와 공간 보장) △희생자들을 온전히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정부는 공개를 희망하는 유가족 의사를 확인한 후 공개 가능한 희생자 이름을 공개해야 함) △2차 가해를 방지할 정부의 입장 표명과 구체적인 대책 마련
지니 : 언젠가부터 뉴스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너무 자주 접하고 있어요. 지하철을 타러 가다 추락해서 죽고, 일하다 떨어져서 죽고, 끼어서 죽고, 놀러갔다가 죽고.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우리는 왜 일상을 살다가 언제든 죽게 내버려두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요? 10월 29일에 일어난 비극도 다르지 않아요. 위험이 예측되는 공간에 사전 대응은 커녕 책임도 회피하고 있으니까요.
한동안 너무 황망한 소식에 일상생활이 어려웠어요. 몇몇 어른들은 그러게 왜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그런 일을 당하냐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곳에 있던 그 누구도 그런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마음껏 놀으라고 이야기한 건 그들인데, 자신이 겪는 무력함, 슬픔, 양심을 혐오로 지워버리고 있네요. 참사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청년 혐오가 아니라 슬픔과 분노예요.
이번 참사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철저히 규명해야 해요. 살아남은 우리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고 국가 권력을 위임 받았음에도 국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무능한 정치와 이를 일조해 온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해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일 거예요. 이번 참사로 인한 슬픔을 나누는 이들이 서로 단절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며 함께 분노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하는 글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연대기금, 사회연대신협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는지 궁금해졌어요. 사회적경제조직을 운영하고 이 생태계가 크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라면 우리의 연대는 사실 그냥 같이 회의만 하는게 아니라 실질적인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돈이 외부에 있다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서로 도울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 보니까 힘이 키워지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지금 이뤄지는 연대가 정작 서로의 조직에 필요한 연대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뾰족한 문제의식과,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생태계에 더 많아지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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