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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읽지]  2021-08-19 #67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슴슴한 맛의 깊이야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을밀대 하면 반사적으로 평양냉면이 떠오르곤 했다. 나를 처음 을밀대에 데려가준 선배의 의기양양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 눈빛에 보답하지 못했다. “어때?”라는 질문에 대답 대신 몇 젓가락 뜨지 못한 사발을 들어 보였으니까. 을밀대는 내게 화해할 수 없는 음식 취향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제 나는 을밀대를 다르게 기억한다. 기왕 죽는 것, 평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죽고자 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자 측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반대하며 고공 농성에 나선 여성 노동자는 대동강 강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을밀대 지붕 위에 새처럼 앉아 있었다. “존경하는 인민 여러분. 내래 평원 고무공장의 고무 직공 강주룡입네다.”

1931년 한국 최초의 고공 농성을 기록한 흑백사진 한 장은 80년의 세월을 건너 박서련 작가를 만나 〈체공녀 강주룡〉이라는 단단한 이야기가 되었다. 박 작가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가 아닌,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필요하다’라는 마음으로 역사 속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였던 강주룡을 소환한다.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분투했던 삶에 불어넣은 소설적 상상력의 온기가 뭉근하다. 역사의 바닥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던 ‘싸우는 여자’의 이름과 삶을 덕분에 비로소 온전히 알게 된다.

천천히 읽으려고 미뤄둔 책을 덥석 집어든 건 담당 편집자의 SNS 때문이었다. “〈체공녀 강주룡〉 같은 책을 몰라주시면, 저는 다신 이런 책 못 만듭니다”라는 글이었다.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책을 읽어나가며 독자인 나 역시 편집자의 간절함에 동참하게 됐다. 장담컨대 시작하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장일호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괄호가 많은 편지
슬릭·이랑 지음, 문학동네 펴냄
“근 1년간 한 일 중에서 편지 쓰기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30대 여성 아티스트, 페미니스트, 고양이 동거인.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작가가 서로에게 편지 열한 통을 보냈다. 편지글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속마음을 눌러 담은 ‘괄호’가 많았다. 고양이가 노트북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생성된 숫자를 설명하기도 하고, 코로나 재난을 이야기하다 (저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부연한다. 괄호 안의 말들은 2020년을 살아가는 두 작가의 삶을 더 깊숙이 이해하게 한다. 작가들의 왕복 서간을 엮는 서간 에세이 시리즈 ‘총총’ 중 한 권. 페미니즘, 비거니즘, 기후위기, 트랜스젠더의 죽음 등 동시대 여성으로 살아가며 경험한 것에 대해 말하고 공감하고 부연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이랑이 슬릭에게 남긴 편지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살아서, 편지를 쓰고, 만나서 전해주기로 합시다." 책 자세히 보기>>

청년 도배사 이야기
배윤슬 지음, 궁리 펴냄
“벽지는 아주 예민하다.”

장부터 느껴진다. 도배사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은 도배사, 특히 젊은 여성 도배사는 더더욱 쉽지 않다. 육체가 고되어서도 그렇지만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라도 그렇다. “최근에는 부모님이 지인에게서따님이 그런 하는 사람하고 맞아서 결혼까지 하면 어떻게 하시게요?’라는 말도 들었다라고 했다. “내가 이미그런 하고 있는데 같은 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을 누군가가 우려하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이렇게 어렵고 조심스럽게 언급되는지 의문이 든다.” 글쓴이는 담담하다. 현장에서 도배사로서 배운 기술과 통찰, 노하우를 솔직하게 적었다. 단지, 도배사로서 성장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자세히 보기>>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스기모토 다쓰히코 외 지음, 노경아 옮김, 어크로스 펴냄
“건축은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며 인류의 지혜와 노력의 열매입니다.”


420여 컷에 달하는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건축 외관뿐 아니라 평면도·단면도도 보여준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저자가 풀어낸 교양서다. 서양의 대표 건축물 69곳을 소개한다. 이 책의 장점은 전문용어도 일러스트를 곁들여 알기 쉽게 풀어낸 점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처럼 건축물과 관련한 인물·기법·예술 양식의 흐름까지 이야기를 들려주듯 경어체로 써내려갔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순으로 기술했는데, 현대 건축물이 담긴 뒤쪽부터 펼쳤다. 가구 디자이너가 지은 주택 슈뢰더 하우스,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이와 롱샹 성당 등을 흥미롭게 읽었다. 코로나 4차 유행 시기, ‘방콕’하며 읽기 좋은 해외 건축 여행서로도 손색이 없다. 책 자세히 보기 >>  

누구도 홀로 외롭게 병들지 않도록
줄리안 아벨·린지 클라크 지음이지혜 옮김남해의봄날 펴냄
“컴패션은 더 나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확고한 토대가 되어주는 가치다.”

어느 날 영국 서머싯의 프롬이라는 작은 마을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 지역 병원 응급실 입원율이 획기적으로 줄었는데 그 뒤에 ‘컴패션 프롬 프로젝트’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해외 곳곳에서 비결을 찾아 마을을 방문했다. 컴패션은 동정심, 연민, 측은지심 등을 의미한다. 의료진과 주민, 지역사회 개발자 등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아픈 사람끼리 서로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였다. 질병 퇴치에 중점을 두는 의약품이 아니라 좋은 관계야말로 웰빙의 원천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평생 완화치료 전문가로 일한 저자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인공이다. 단지 ‘외롭게 병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은 결국 관계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 자세히 보기>>
 
여여한 독서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글쓰기든 실생활이든 분노와 유머를 겸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분노가 떠올리는 웃음은 고작해야 비웃음, 누군가를 바보로 여기는 조롱이기 쉽다. 그러나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분노의 대상을 바보로 보지 않는다. 그는 계급차별, 인종차별, 성차별에 반대하지만 그걸 신봉하고 실천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비웃기 전에 이런 맹목이 어디서 기인하며 어떻게 그들 자신을 해치는지 보여준다. 김이경(작가) 전체 글 보기 >>

무더위는 한동안 계속될 테지만 계절의 표정은 이미 변한듯 합니다. 구름이 하는 일이 근사해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 보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무성한 빛, 무성한 잎, 그리하여 온통 초록인 계절이 이렇게 또 한 번 지나갑니다. 달라진 밤공기를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랜만에 가수 시와가 2014년 발표한 앨범을 들었습니다. 그 중 '당부'라는 노래를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었습니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은 없다
다행히 어떤 계절이든 지나간단다 
다시 돌아온다 
모두가 알고 있다

냉면에 계절이 없다지만 역시 '제철'은 여름일까요. 며칠 전 들른 서울 을지로의 오래된 냉면집 줄이 꽤 길었습니다. 사실 저는 평양냉면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는 편에 속하는 사람인데요(냉면보다는 편육이나 제육같은 메뉴에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그래도 매년 여름을 지날때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조금씩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좋아하는 일이란 퍽 다정한 일이니까요. 

제가 처음으로 '완냉'했던 평양냉면집은 제주에 있습니다. 제주에서 평양냉면을 먹게 될줄은 몰랐는데, 탈북민 출신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이라는 선배 말에 일단 따라나섰더랬죠. 평양냉면도 냉면이었지만, 함께 먹으라며 구워주신 간장양념 고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제주 동쪽에 가실 일이 생긴다면 '대동강 초계탕'에 한 번 들러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최애 냉면집'도 소개해주시면 가보고 싶습니다. 


추신 / 요즘 편집국은 때 아닌 콘퍼런스 준비로 분주합니다. 매년 겨울에 열었던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를 올해는 여름 끝자락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멀어지는 관심사를 조금이나마 붙잡아보고 싶었습니다. 주제는 '저널리즘과 연대-미얀마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8월23일(월) 오후 6시30분,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될 콘퍼런스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사전 신청 (무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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