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텔지어! 이런 엄청나게 흔하고도 쉽고도 적절한 단어가 있었는데 나의 어휘력은 정말 부족하기 짝이 없군...
004_돌아갈 수 없음이 농담인 줄만 알았던 때가 있었다
오막 to 한아임
2022년 9월
노스텔지어!
이런 엄청나게 흔하고도 쉽고도 적절한 단어가 있었는데 나의 어휘력은 정말 부족하기 짝이 없군... 나 자신에게 살짝 실망해버렸다.


싸이월드의 복구와 함께 나도 싸이월드에 들어가 봤다. 나는 오히려 나의 흑역사들을 보고 싶었다. 사실 내 기억에 딱히 흑역사가 될 만한 사진은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보통 2000년대 초반의 흑역사 사진이라 하면, 2000년대의 유행과 패션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간 사람들이 남긴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너드와 찐따 (좋은 의미로서의 단어로 써보려고 한다) 에 지나지 않았던 나는 교복 바지통 한번 줄여본 적도 없으며 염색 한번 한 적 없었고, 그저 단정한 옷들 (단정하다고 촌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을 입고, 나와 같은 너드 친구들과 몰려다녔기 때문에 '극단적'인 흑역사 사진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너드로 다녔던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선 오히려 다행일 수 있겠다. 아, 그렇다고 해서 아무 수치심이 들지 않는 '백'역사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것은 아니지.


너의 말처럼 요즘은 노스텔지어가 유행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어른들은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는 했지만, 지금의 시대처럼 모든 이가 그들만의 '그때'를 그리워하며 그 감성을 공유하고 트렌드가 되지는 않았었다. 

80, 90년대와 다르게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연하게도 인터넷의 발달, 그리고 그로 인한 sns의 등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할머니 기억에만 의존해서 내려오던 옛날이야기처럼 소수의 가까운 사람끼리만 공유하던 "그때가 좋았지-" 라는 제목의 구전동화가 지금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실체화가 되고, 전파되는 범위조차 '우리 동네'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너가 이야기 한 것처럼 종종 우리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과거까지 그리워하게 되었는데, 나에겐 아마 50, 60년대 미국이 그런 듯하다. 


나한테 있어서 미국과 재즈는 너무나도 큰 영향을 주었다. 너에게 얘기했었겠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갔다 온 것은 정말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나의 활동명마저 내가 살던 동네 이름에서 따왔을 정도니까. 

그리고 거기서 처음 접했던 재즈라는 음악은 나에게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정말 닳고 닳도록 들어서 홈스테이 당시 나랑 가장 친해진 Jamie라는 친구는 그만 좀 틀라고 말했던 음악이 있다. 

  Art Blakey - Moanin'
이루마나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뉴에이지 장르의 음악을 재즈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나는 미국에 가서 우연히도 접한 재즈에 너무나도 매력을 느꼈다. 내가 갔던 5,000명 남짓한 인구의 작은 동네에, 그리고 그 1년이라는 특정 시기에, 그 작은 마을에는 버클리 음대에 가기 위해 재즈기타를 전공하고 있던 고등학생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 내가 만나게 되어서 그 친구로 인해 내가 재즈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나는 재즈를 좋아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인가! 우연인 것인가! 
어쨌든, 
재즈에 대한 딥한 소개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 당시에는 난 엄청 올드한 재즈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시대의 재즈 음악이나, 비밥과 쿨재즈가 유행했던 시기의 재즈를 좋아했지. 그리고 특히나 보컬이 들어간 재즈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사람은 재밌게도 변화무쌍한 동물이 아니던가? 나이가 들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지금도 젊다) 올드한 보컬이 부르는 재즈곡이 최근에는 너무나 좋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들을 때마다 겪어보지도 않은 40-50-60년대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Julie London - The End Of The World  
줄리 런던 누님(1926년생이시다)의 목소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단순히 음악 스타일 때문은 아닐 것이다.   
Julie London -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가본 적도 없는 샌프란시스코에 나도 심장을 두고 온 느낌이다. 
아! 어찌 이렇게 아련하게 부른단 말이지! 내가 줄리 런던 누님과 만났던 전 남자친구인 것마냥... 

그리고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Ella Fitzgerald - Misty  
피츠제랄드 누님이 있다. 최근에는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하는 동영상 밈으로 더 유명해진 누님이지만 이분이 부르는 곡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정말 말하는 것처럼 노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JYP도 아마 많은 참고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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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말고 갑자기 음악을 한 뭉터기 듣고 왔다.
미국에 가고 싶어졌다.
내가 살던 마을을 떠나오면서 친했던 미국인 친구가 농담 삼아 이런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넌 다시 미국에 못 올지도 모르고 우린 다시 못 볼지도 몰라."
저 말에 우린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떠나올 때는 절대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거든. 그렇지만 살다 보니, 그리고 20년 가까이 지나다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힘겨움의 연속이며 미국에 한 번 마음 먹고 방문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TMI이지만 나는 언젠가 내가 살던 그 홈스테이 집을 구매해서 분기마다 한 번씩 별장처럼 거기서 지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몇 살이나 되어야 그 목표를 이룰진 모르겠지만 그때가 와서 그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소파에 누워서 똑같은 음악을 듣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너무나 이상한 감정이 들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도 나는 사진을 엄청 찍고 다녔다. 친구들은 Camera Guy라고 부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찍은 수천 장의 사진 중 3/4은 사라졌다. 메모리카드가 어딨는지 모르겠기 때문이지...마지막에 찍은 1/4 정도만 남아있다. 나는 물건을 너무 잘 잃어버린다. 과거는 잘 기억하고 기억하기를 좋아하면서 당장 어제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디지털 치매인가?
겨울은 캐럴이 너무 강력해서 사실상 겨울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캐럴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나는 나의 성향이 겨울과 잘 맞는 느낌이다. 여름 음악은 너의 말대로 활달해야 할 것 같다. 신나야 할 것 같고. 밖에 나가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거든. 집에 있는 것이 좋고.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음악도 겨울스러운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딱히 캐럴 같다거나 하기보단, 악기의 음색이든 코드의 진행이든 멜로디든 가사든, 주황빛의 따뜻한 느낌이 나는 음악들.
그런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빌 에반스 Bill Evans를 굉장히 좋아한다. 재즈라는 장르 속에서는 제일 좋아한다고 볼 수 있지.
Bill Evans - Witchcraft  
그중에서도 이 곡 (이 앨범 전체라고도 볼 수 있다) 은 겨울과 너무나도 잘 맞는다. 내가 미국에서 살던 곳은 워싱턴주였기 때문에 겨울에 눈이 정말 펑펑 왔다. 나는 내 방에서 빌 에반스 음악을, 특히 이 앨범의 곡들을 겨울에 주구장창 틀어놨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피아노 음 하나하나 소리가 눈송이 같다. 따뜻하고 안정되어있고 포근하다.   
Bill Evans - I Loves You Porgy  
이 곡도 마찬가지다.
여담으로,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은 '빌리지 뱅가드 Village Vanguard'라는,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이 공연한 뉴욕의 유명한 재즈 클럽에서 녹음된 라이브 앨범인데, 2016년에 일로 뉴욕에 갔다가 여기를 나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아무도 몰라주겠지만 나에겐 가문의 영광일 만큼 커다란 경험이었고 라이브 공연도 봤었다. 
그냥, 자랑하고 싶었다.
 겨울 느낌이라 하면 키스 자렛 Keith Jarrett도 있고...여러 재즈 아티스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이는 나중을 위해 더 남겨두겠다. 아, 나도 겨울 느낌이 나는 곡을 최근 2곡 정도 만들었는데 너에게 곧 들려줄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나는 후플푸프 학생이다. 재미 삼아 테스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기숙사 모자님이 후플푸프로 배정해주었다. 그닥 용감하지도, 정의에 불타지도, 비겁하지도 않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모두와 잘 어울리며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맞는 것 같다. 나는 이 사소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으니까... 칭찬인지 욕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후플푸프인 게 자랑스럽다!
바이바이.

-오막
이번 편지를 보낸 오막이는...
기약 없이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다. 학창 시절 미국 Omak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기억과 행복의 느낌을 담아 이름을 '오막'으로 정하고 활동중이다. 평소 말로 생각을 전달하는데에 재주가 크게 없던 오막은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음악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앞으로 고막사람과 함께 오막 자신의 작업량도 쑥쑥 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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