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오퍼 #더울프오브아트스트리트 #나의뮤즈그림도둑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어제부터 나흘 동안 세텍(SETEC)에서 2022 화랑미술제가 열립니다. 화랑미술제는 국내 갤러리가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아트페어입니다. 올해로 40회를 맞는데 이번에는 총 143개의 갤러리가 참가했다네요. 저도 얼른 가서 작품도,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고 싶은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민 없이 사고, 좋아하는 작가를 후원하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습니다. 그날은 아직 요원하니 이번 주말에는 미술과 관련한 영화를 보며 훗날을 기약합니다.
베스트 오퍼 (2013)
님은 경매장에 가 본 적 있으신가요? 경매에 직접 참여해 본 적은요? 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 경매장은 엄마의 손을 잡고 잠 오는 눈을 비비며 따라갔던 농산물 도매시장의 새벽 경매장이었습니다. 노랫말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말투로 가격을 부르는 경매사와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물건을 낙찰받는 도매상. 생전 처음 보는 진기한 광경에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미술 경매도 다루는 물품만 다를 뿐, 경매의 방식은 여느 경매장과 똑같아요. 경매에 나온 물건이 미술품이고 종종 그 가격이 나의 이해 범위를 넘어가는 엄청난 액수라는 걸 빼면 말이죠. 영화 『베스트 오퍼』는 미술 전문 경매사이자 유능한 감정사인 올드먼(제프리 러쉬)의 이야기입니다. 흰머리를 염색하고 장갑을 고르고 양복을 갖춰 입는 모습이 마치 전투복을 입고 콜로세움에 나가는 검투사의 모습 같네요. 그리고 그 검투사는 아주아주 부유하고, 외롭습니다. 

올드먼은 생일이 아니면 생일 케이크의 초를 불지 않고, 휴대폰이 없는 삶을 고집하는 완고한 남자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낯선 여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옵니다. 부모님이 남긴 유품을 감정해달라는 부탁이었죠. 평소라면 조수에게 맡길 일이지만 유품 중에 그림이 있다는 말에 선뜻 일을 맡습니다. 그 전화가 그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짐작조차 못한 채로요.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이 귀에 남아 찾아보니 엔리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았네요.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리오 모리꼬네의 조합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감독 : 쥬세페 토르나토레
러닝타임 : 2시간 11분
Stream on Watcha
더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 (2018)
마틴 스콜시지 감독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제목을 빌려왔음이 다분히 느껴지는 제목입니다. 원제는 『모든 것의 가격(The Price of Everything)』으로 차이가 있네요. 둘 다 의미심장한 제목인 건 분명합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도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한 영화였지만 이 영화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일, 그러니까 미술 시장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배경음악으로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장의 모습을 속도감 있게 스케치하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하는데요, 도대체 얼마인지 감도 오지 않는 엄청난 가격을 주문처럼 외우는 경매사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다큐멘터리의 기조가 기묘합니다. 위대한 작품에는 위대한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는 말에 한없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 하다가도 동시대 작가 중 가장 높은 가격의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인 제프 쿤스를 보여준 직후 시골에서 바람에 쓰러질 것 같은 나무집에 살며 작업을 이어가는 노년의 작가 래리 푼스를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예술 생태계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는 듯 싶다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고 액수를 통해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작가가 생계를 유지하고 작업을 이어가는 데는 돈이 꼭 필요하니까요.

감독 : 나다니엘 칸
러닝타임 : 1시간 38분
Stream on Watcha
나의 뮤즈, 그림 도둑 (2020) 
내 작품이 도둑맞는다면, 그것도 벌건 대낮에 갤러리에 전시 중이던 작품이 사라진다면? 거기다 그 도둑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면? 그에게 무슨 표정을, 말을, 행동을 건네야 할까요?

바보라 키실코바(Barbora Kysilkova)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녀의 그림을 훔쳐간 도둑, 칼 베르틸 노드랜드(Karl-Bertil Nordland)를 모델로요. 바보라는 직접 그를 만나 초상화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작품을 어디에 빼돌렸는지 알아볼 심산이었죠. 하지만 칼은 그림을 훔칠 당시 약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림을 훔친 건, 그림이 아름다워서 였다고요.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벤야민 레에 감독은 바보라와 칼의 관계를 수년간 카메라에 담습니다. 어떠한 개입도 없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포착하죠. 화가와 어쩌다 모델이 되어버린 전 도둑 사이에 쌓여가는 교감은 어떤 이야기보다도 큰 울림을 줍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울어보긴 참 오랜만이었어요.

감독 : 벤야민 레에
러닝타임 : 1시간 47분
Stream on Watcha
덧붙이는 이야기 
어반라이크 43호
- 아트 컬렉터 입문기, 어반북스

이따금 잡지를 삽니다. 단행본에서 보기 힘든 과감한 폰트와 페이지 레이아웃, 화려한 색감의 사진과 일러스트를 잡지에서 만날 수 있거든요. 잘 만든 도록을 감상하듯 잡지를 한 장씩 넘겨보곤 합니다. 님도 즐겨 보는 잡지가 있으신가요?

전자 매체가 등장하면서 잡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오히려 저마다 다른 주제를 다루는 새로운 잡지가 더욱 많아진 것 같아요. 어반라이크(Urbänlike)도 그중 하나입니다. 각 호마다 특정 주제를 정하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저는 "내 사랑 종이 (40호)"와 "책 만드는 곳, 출판사 (42호)" 편이 특히 좋았어요. 가장 최근에 나온 43호의 주제는 "아트 컬렉터 입문기"입니다. 요즘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업과 작업실 이야기와 여러 컬렉터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갤러리 소개가 알차게 담겼습니다.

이번 어반라이크는 패키지가 독특해요. 상자를 열면 흰 면장갑 한 켤레가 들어 있습니다. 면장갑을 끼고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작품을 다루는 기분을 작게나마 느껴볼 수 있겠어요.
주말에 눈 예보가 있습니다. 이번 꽃샘추위가 지나면 정말 봄이 오겠지요. 꽃향기 가득한 봄날을 기다립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 Q

🧐 지난 금요알람 보기 https://fridayalarm.tistory.com/
📬 금요알람 구독하기 || 친구에게 소개하기 https://url.kr/4aycxm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fridayalarm@gmail.com 
구독을 원치 않으시면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