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한국의 대중매체들이 이-팔 전쟁을 보도할 때는 하마스의 테러 행위와 이스라엘 보복의 과도한 정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대체 왜 전쟁 현상이 지금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청자, 독자들로 하여금 “아 왜들 그러는 거야, 이제 좀 그만하지!” 식의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도 “여기는 안전해” 식의 심리적 안도감도 그것의 부수적 효과일 것입니다.
ㅂ) "중동은 늘 저래"라는 식의 생각도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ㅅ) (단순하게) 둘 다 똑같이 문제야 라고도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ㅈ)유엔 사무총장은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이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말해 이스라엘 측으로부터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짧게는 1948년 5월 이후 약 75년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일시적 휴전들은 있었지만, 전쟁상태가 지속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입니다.
ㅂ) 1차 중동전쟁 이후 사실상 지금까지 계속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면, 1948년 5월 전쟁의 원인을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ㅈ)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가 종료된 날 이스라엘이 유대인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 전쟁의 도화선이었습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지역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었는데 유대인들도 그곳에 살고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
ㅂ) 현재 구글 지도상으로는 팔레스타인은 없는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ㅈ) 유대인들은 자연재해 때문에 이집트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이집트 압박 아래의 준노예생활을 견디지 못해 출애굽(이집트탈출)을 하여 다시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지역으로 와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아랍 칼리파, 오스만, 영국으로 이어지는 강대국들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도 팔레스타인인도 독립적인 국가를 갖지 못했는데 특히 유대인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았습니다.
ㅂ) 유대인들이 출애굽 하여 어디로 갔는지 루트를 찾아보니, 책 한 권이 따로 있을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요. 대표적인 가설만도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미션월드넷] 출애굽 경로에 대한 가설들↗
ㅈ) 기원전 이야기라 기록이 별로 없어서 루트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을 불러 모아 유대인 정착 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이 19세기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시오니즘 운동이고 이것이 현재 분쟁의 시작이라면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씨앗이 더 나은 표현일까요?
여러 종족이 강대 권력의 지배하에서 서로 어울려 살던 땅에 하나의 피지배종족의 국가를 건설하려면 다른 종족을 추방하거나 복속시켜야 하므로 갈등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해당 지역의 마지막 맹주였던 영국의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세 가지 상충하는 약속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ㅂ) "피지배종족의 국가를 건설"은 이스라엘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ㅈ) 네. 유대인은 해당 지역의 맹주가 된 적이 없습니다.
ㅂ) "피지배종족"이란, "소수민족"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피지배종족"이란 표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서 여쭙니다.
ㅈ) 유대인이 이집트나 로마 등 큰 권력에 예속된 노예생활을 해 왔다는 점과 유대국가의 선포는 그 국가에 다른 종족을 복속시키는 일대 전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ㅂ) 설명 감사합니다.
ㅈ) 제1차세계대전 시기인 1915년에서 1917년 사이에 영국은 아랍인에게는 해당 지역에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약속하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독립 국가를 약속하면서 동시에 프랑스와는 비밀리에 영국과 프랑스가 해당 지역을 공동으로 통치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영국은 당시로서는 지금의 미국과 같은 지위와 역할을 맡고 있는 세계 최강대국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약속 중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에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난 후 해당 지역을 세 부분(유대 국가 56.4, 아랍 국가 42.8, 예루살렘 국제지구 0.65)으로 나누는 결의안을 유엔이 통과시킵니다.
ㅂ) 이를 영국의 '분양사기'라고 표현하는 글과 말들이 종종 있었어요.
[metro] 영국의 '분양사기'↗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의 '분양사기'다. 아랍인에게는 노동력을 취하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파트 한 채(팔레스타인)를 두고 두 집(아랍인과 유대인)에 분양을 한 꼴이다."
ㅈ) 정확하게 사기입니다. 단 영국은 자신이 아파트를 지은 기업체가 아니고 그것을 강탈해서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만 다른 것 같습니다.
위의 유엔 결의안에 당시 해당 지역의 87.5%를 소유하고 있던 아랍인들은 반대했고 6.6%만을 소유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찬성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선포는 이로부터 약 6개월 뒤인 48년 5월 14일에 일방적으로 이루어졌고 바로 다음 날 아랍권의 공격으로 1차 중동전쟁이 터졌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전쟁의 연속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사기‘분양’도 문제지만 유엔 결의안의 토지 할당 방식도 당대의 토지 소유관계를 고려하면 공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느껴집니다. 핵무기 투하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입김을 간과할 수 없게 하는 할당 방식이었다고 할까요?
ㅂ) 땅의 크기도 문제지만, 유대인들에게 좋은 땅들이 많이 할당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동의 상황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아랍인"이라는 범주였습니다. 저는 국가 단위로 생각하는 게 익숙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다른 아랍 국가들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공감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ㅈ) 아랍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인 만큼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교를 믿는 팔레스타인은 당연히 아랍인이고 아랍 국가들의 국민과 국가 이전의 동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ㅂ) 네, "국가 이전의 동족"이라는 감정적 연대가 어느 정도인지 잘 가늠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것 같고, 어떤 상황에서는 각국의 이익을 또 우선시하는 것 같고 그렇더라고요.
ㅈ) 근대화 과정이 국가형태를 강화하면서 종교적 유대를 침식해 왔고 최근의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들은 이런 과정에 대한 반작용reaction으로 일종의 포스트모던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IS나 (그것에 대립적이지만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인) 하마스가 그 사례입니다.
ㅂ) 중동 지역의 국가 형태는 서구에 의해 강요된 면이 커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