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뭐읽지 #소년이온다 #오월의사회과학 #광주여성
💌   2021년 11월25일 81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소설가 한강이 그린 5월 광주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작가의 진술이 실려 있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태어나 살해되었다.”

대체로 폭력적 역사에서 억울한 주검들은 이중의 죽음 상황에 놓인다. 당시에 애도받지 못한 주검은 사후에도 조롱받음으로써 또 한번 죽는 ‘부관참시’의 운명을 반복하게 되는 일이 적지 않은 것이다. 5·18을 둘러싸고 전개된 한국의 정치사는 그러한 ‘흑역사’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흑역사에서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어 오늘의 정치 현실로 또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그러한 흑역사에서 짓밟히고 망각되는 목소리를 기억해내기 위해 혼신의 기투(企投)를 한다. 이 소설은 이제는 전반적으로 약해져가는 문학의 전통적인, 그러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를 새삼 통렬히 각성시킨다. 오늘날 인문학 전반에서 얘기되는 이른바 ‘타자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식적 사회에서 지워지거나 망각되거나 표현·대의될 수 없는 목소리에 관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실은 추상적인 고담준론이 아니라 역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며, 문학이 오래전부터 수행해왔던 ‘기억’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이른바 소설적 ‘리얼리즘’이 지금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타자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흡수할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한국적 모델을 제공한다.

〈소년이 온다〉가 결코 광주를 ‘회고’하는 후일담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된 여러 사람들의 시점 변경이 인상적인 이 소설은, 광주를 ‘과거’가 아니라 내내 생생한 자기 현실로 ‘살고 있는’ 이들의 얘기다. 그러므로 화자는 여럿이지만 대체로 1인칭 ‘나(우리)’의 현재형 관점으로 진술된다.

소설을 ‘있을 법한 허구’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하지만,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집중하는 이 소설은 공식적 역사가 은폐한 참상의 현장, ‘리얼리티’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시적 진술’의 형식으로 쓰였다. 5·18의 전남도청에서 죽어 광주 인근 야산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주검들을 증언하는 일에는 서사가 아니라 죽은 이와의 ‘시적 빙의’가 필요하다. 증언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지금까지 기억과 애도의 서사에서 출현되지 못했던 주검의 목소리, ‘빙의된’ 문장들을 1인칭으로 출현시켰다는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문학이야말로 그 저항에 대한 가장 지극하고 집요한 방법론 중 하나라는 실례를 보여준다. ● 함돈균(문학평론가)

시사IN 380호(2014년)에 실린 원고입니다.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밥은 먹고 다니냐는
정은정 지음, 한티재 펴냄
사람과 자연 모두가 상처받은 밥상을 무람없이 받아들고 배만 두둑해진 것은 아닐까.”
 
저자는 오래 남의 식탁을 기웃거리며 누군가의 마른 밥상으로 밥 벌어먹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는 유품이 된 청년 노동자의 컵라면이 있다. 끝내 스러진 택배 노동자가 운반했던 신선한 식자재도 있다. 너무 짧은 행장을 읽다 보면 목구멍이 막힌다. 농민과 노인들의 귀한 한 끼도 있다. 그 밥상을 차린 작고 여린 손, 고단하고 성실한 시간을 상상해보자면 저자의 말대로 음식은 “2인칭이자 타자 지향적”이다. 식탁 위에 올라온 게 모두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 곧 사람 꼴을 갖추며 크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입으로 쓸려 들어가는 지상의 모든 음식들이 무겁고 복잡하며 귀하다”. 책 자세히 보기 >> 
리센코의 망령
로렌 그레이엄 지음, 이종식 옮김, 동아시아 펴냄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알 수 없지만, 자연에 대한 어느 정도 입증 가능한 견해들을 파악할 수는 있다.
 
리센코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옛 소련의 생물학자로 ‘후성유전학(획득형질 유전설)’의 주창자다. 예컨대 겨울에 파종하는 밀의 종자를 봄에도 파종할 수 있게끔 개량(새로운 형질의 획득)하면 후대의 밀 종자도 봄 파종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소련에서 리센코 이론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유전학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 과학’으로 각광받으며, 궁극적으론 우생학을 통해 ‘새로운 공산주의형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책은 당시 러시아 생물학계의 상황, 후성유전학의 전통, 소비에트 과학계의 모순, 현재 러시아의 실상 등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곁들여 알려준다. 책 자세히 보기 >>
바이러스 행성
칼 짐머 지음, 이한음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코로나19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지만, 사실은 놀랄 이유가 없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2011년 쓴 책의 세 번째 개정판. 몇 문장만 손본 건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트래커’라는 사이트를 공동 운영하는 저자가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해 사실상 다시 썼다. 지난해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팬데믹 시대 저널리즘의 역할’의 기조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정부가 최악의 상황에 얼마나 대비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팬데믹은 나라마다 다른 진행 양상을 보였다’. 한국을 모범 사례로, 미국을 나쁜 사례로 비교했다. 저자는 앞으로 ‘코로나24, 코로나31, 코로나33도 나올 수 있다’고 예견한다. 생물학을 전혀 몰라도 쉽게 이해되는 교양서다. 책 자세히 보기 >>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수정 지음, 시공사 펴냄
남성복에 뒤 지퍼가 달린 옷을 본 적이 있는가?
 
의류학을 전공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던 저자가 탈코르셋을 결심하면서 ‘여성복은 왜 더 비싸고 불편한가?’를 질문했다. 의복만큼 성차별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공간도 없었다. 그 후 수많은 남성복과 여성복 샘플을 찾아다녔다. 남성복이 ‘활동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진다면 여성복은 ‘라인’에 초점을 두고 제작된다는 사실, 남성복 재킷에는 늘 안주머니가 있지만 여성복 재킷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언뜻 낯설게 느껴진다. 심지어 원단의 품질과 단추 방향, 유통과정과 세탁 비용에까지 ‘성차’가 존재했다. 기존 여성복과 차별화되는 옷을 만들고 알리기 위한 여정이 솔직담백하게 담겼다. 책 자세히 보기 >>
지난 10월26일 노태우씨가 사망하고 국가장이 결정됐을 때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조기 게양 및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제 눈길을 끈 문장은 "광주는 그럴수가 없다"였습니다. 광주가 그럴 수 없다면 '대한민국'이 그럴 수 없어야 했습니다.

11월23일 전두환씨가 사망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반성은 없었습니다.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사죄하라는 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돼 후유증에 시달리던 60대 남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전두환씨에게는 허락된 명복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도 없습니다. (중략)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 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 만이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117쪽)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을 걸로 짐작하면서도 <소년이 온다>를 오늘 다시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오월의 사회과학>(최정운 지음, 오월의봄 펴냄) <광주, 여성>(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역시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관련 기사 읽기 >>>
* 5.18조사위는 지금도 ‘그날의 진실’을 마주한다 
무너진 정책 다시 세우고
흔들리는 대선판을 수리하자
시사IN이 만든 정치 토크쇼 '대선재개발사무소'
편집자에게 하고 싶은 말, 또는 뉴스레터 구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누르고 의견을 나눠주세요!
'주말에 뭐 읽지?' 뉴스레터를 아직 구독하기 전이라면 여기
 
💬  받은 이메일이 스팸으로 가지 않도록 이메일 주소록에 editor@sisain.co.kr을 등록해주세요.
수신거부 원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주)참언론
editor@sisain.co.kr
카톨릭출판사 빌딩 신관3층 02-3700-3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