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유의 '편집사' 김은우예요.
책은 사람이 만듭니다. 
유유에서는 보름에 한 번, 책의 사람을 만납니다.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궁금해하실 독자께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보름유유 구독자 여러분! 유유의 편집사(편집자+집사) 김은우예요.


저는 2021년 초 처음으로 독립하면서 망원에서 고양이 누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망원에는 힙하고 개성 있는 공간이 참 많아요. 집순이인 저도 돌아다니면서 예쁜 가게에서 먹고 마시는 재미를 즐기고 있어요. (망원에 놀러 오시면 맛집 추천해드릴게요-!)


그중 기억에 남는 가게 하나가 망원시장 쪽에 위치한 ‘마이클식당’이에요. 미국 가정식을 하는 식당인데, 맛있어서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랍니다. 그냥 동네에 있는 아기자기하고 맛있는 식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제가 구입한 만화책 『고양이의 마음』의 저자가 이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저는 그냥 고양이 그림이 귀여워서 구입했거든요.


보름유유를 기회 삼아 만화가 나무 선생님을 인터뷰 했답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도 있었는데, 책을 통해 연결되어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누다니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특히 ‘망원동, 고양이, 글’ 등, 다양한 공통사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어 더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포근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15년 가까이 일기를 써 오고 있을 만큼 꾸준하고 한결같은 나무 선생님의 따스함을 구독자 분들도 느껴보시길 바라요.🌼


마이클식당 인스타그램: @eatatmichael

일러스트레이터 나무 인스타그램: @bomulhamm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천천히 걷는 사람
나무 - 서울이 좋은 시골쥐. 지구력이 부족하지만 다행히 순발력이 좋아서 잘 살아가고 있다.
청이, 하기와 함께 살며 그림을 그린다. 

→ 나무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년에 첫 책을 내셨죠? 얼마 전 남편 분이 '학샌드위치'라는 가게도 오픈하셨더라고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나무’라는 이름이 참 예뻐요. 어떤 의미인가요?

← 저는 유화를 전공했는데요, 나무 그림을 많이 그려서 나무라고 하게 되었어요. 나무가 영어로 쓰고 발음하기가 편해서 친구들이 저를 본명보다도 이 이름으로 많이 불러 줬어요. 그래서 더 나무가 되었어요. 


→ 남편 분과 마이클식당을 함께 운영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림과 요리, 두 가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 어렸을 때 사촌 언니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본 이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언니가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피노키오의 집이 바닷물에 휩쓸려가기 직전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그때 많이 어렸는데도 그렇게 대단한(5세 나무 관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아서, 언젠가 언니의 그림을 능가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여태 그림을 그리는 걸 보니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 했나 봐요.

처음에는 영어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공부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급작스럽게 순수회화를 공부하기로 했어요(영어과 학생이 뜬금없이 미대로 전과하겠다고 하니 교수님들도 신기해서 받아 준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일이 역시 좋았어요. 그런데 이 일로는 돈을 못 벌다 보니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죠. 망원정이라는 짜이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플리마켓도 해보고요. 망한 일도 많았지만 어차피 인생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잘못 든 길이면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괜찮더라고요. 마이클과 함께 식당을 하게 된 것도 어차피 망하려면 빨리 망하자, 해서 겁 없이 시작했던 거예요.


→ 인스타그램에 올리시는 일상을 포착한 따뜻한 그림들이 참 좋아요.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고양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또 책에 담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면요?

← 언젠가 장애아동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제 동생이 청각장애인이에요. 혼자 지내야 해서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 한편 독립적으로 자랐죠. 하지만 들리지 않는 동생과 특별한 놀이를 했던 경험도 있고, 장애인 가족과 함께여서 참 소중한 순간이 많아요. 그런데 저의 이야기가 ‘내가 이렇게 슬프지만 즐겁게 살았어’로 그치면 안 되잖아요? 읽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가 도전과제로 남아 있어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담담하고 위트 있게 그리고 싶어요. 독자들이 읽었을 때 따뜻해지면서도 도움도 받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저는 평생 여기저기 떠다니면서 부유하듯이 이방인처럼 살아 왔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아웃사이더라고 느낀 적도 많은데요. 회화를 그릴 때도, 지금 만화를 그릴 때도 내 그림과 이야기를 과연 누가 알아줄까? 하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아웃사이더로서의 불안함과 다정함을 이야기 속에서 더 촘촘하게 설명하고 싶어요.


→ 인스타그램에 글 조각도 많이 올리시더라고요. 일기를 오래 쓰셨다고요. 마침 저도 작년 12월에 『일기 쓰는 법』이라는 책을 편집하면서 일기의 가치를 되새기게 되었고, 새해부터는 다시 일기를 쓰고 있어요. 선생님은 오래 일기를 쓰시면서 어떤 것들을 얻으셨나요?

← 중2 때였는데, 우리 반 애들을 보니까 공부를 잘하거나 얼굴이 예쁘거나 외향적이거나 운동을 잘하는 애들도 매일 일기를 쓸 것 같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전 일기는 매일 쓸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우리 반에서 나만 할 수 있는 걸 찾고 싶었어요. 그 정도 이유로 제법 성실한 일기 쓰기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뜻밖의 감사한 중2병이었죠.

일기를 오랫동안 쓰면서 알게 된 건, 기억이나 감정을 믿지 말고 상황을 기록해둬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일기를 성실히 쓰지 않던 시기에는 제가 좀 별로였던 것 같아요.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하면 좀 이상한 사람이 되기 쉽잖아요? 당장 몇 장 쓴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일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예전에 쓴 일기를 보면, 몇 년 전에도 내 생활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구나, 지금과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어떤 희망이 생겨나요. 내 인생이 그때나 지금이나 오십 보 백 보인데 그래도 ‘내가 실망하지 않고 쓰는 행위만은 계속하고 있구나, 나는 스스로와 약속한 일을 그만두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돼요.

→ 남편 마이클 선생님은 요리도 잘하시는 데다 사진가이기도 하고  매우 다재다능하신 것 같아요. 식당 인테리어도 멋지고요. 『고양이의 마음』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으러 한국에 오셨다고 보았어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 맞아요, 마이클은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한국인이에요. 어머니의 나라를 찾아와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모르던 언어를 배우고, 어머니가 해주던 요리를 해서 돈을 벌어 먹고사는 모습을 보면 가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심을 느껴요.

2016년 초에 지인을 통해 마이클과 알게 되었어요. 마이클이 제가 운영하던 짜이 가게에 종종 놀러왔어요. 마이클이 진짜 이상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얘는 뭐지, 이상한데……’ 하고  생각하면서 자주 만나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요. 친해질수록 느낀 건 신기할 정도로 앞뒤가 같고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이런 사람과 살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싶어서 제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답니다. 마이클이 한국어를 잘 몰라서 만난 첫 해에는 한국어 대화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국어 공부에 대한 마이클의 의지가 대단했어요. 지금은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한국어 대화를 나누고 있답니다. 


→ 언어 소통이 완벽히 되지 않으면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인스타그램 보니까 예쁜 결혼식 스냅사진도 몇 년마다 찍으시고, 부러워요!  어떻게 서로 맞춰가셨어요?  

← 하하,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에요! 특별한 건 사실 없어요. 언어나 사고방식이 다른 걸 발견할 때마다 적당히 ‘아니 이렇게까지 이상할 수가…… 하지만 귀여우니까 내가 참자’ 하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답니다. 아마 마이클도 그러고 있겠죠? 그리고 마이클은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기 때문에 속마음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점도 큰 갈등이 없는 이유 같아요. 

 하악질을 많이 해서 하기 (왼) / 애교 많고 다정한 청이 (오)

→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하루의 동력을 동물에게 받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본가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강아지와 쭉 함께하고 있어요) 고심 끝에 쉼터에서 2살 정도 된 삼색냥이를 데려왔어요. 선생님의 반려묘와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 하기는 제가 처음 운영한 짜이 카페에 새끼 고양이 밤송이와 매일 찾아오던 길고양이였어요. 밤송이는 이웃의 좋은 분들과 가족이 되었는데 하기의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결국 저희와 함께 살게 되었답니다. 청이는 부모님 댁 근처에 있는 길고양이었는데, 저와 마이클도 한 번씩 부모님 댁에 가면 다정하고 귀여운 청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청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일을 어머니가 여러 차례 목격하셨어요. 하기가 다른 고양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해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학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게 걱정돼 청이를 데려왔어요. 청이는 심한 구내염도 앓고 있었고 덩치도 왜소했는데 지금은 치료 중이고 조금 뚱뚱해졌어요. 구내염 때문에 하기와는 장기 격리 중이고 서로 소 닭 보듯이 지냅니다. 가끔씩 함께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게 해서 미안해요.

두 고양이 모두 길에서 삼 년 이상 살다가 저희에게 왔어요. 이미 야생성이 충만한 성묘 상태로 반려묘생을 시작했는데도 저희와 살기 위해서 많이 참고 견디며(?) 곁에 있어 주는 두 고양이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분이 반려묘를 갑작스레 떠나보낸 사연을 알게 됐어요. 선생님께서 위로하는 그림을 그려서 올리셨더라고요. 친구분께 좋은 선물이 되었을 것 같아요. 제가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감정을 토해내는 과정이 참 멋지게 느껴져요. 선생님께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 잘 그려 본 일이 없고 앞으로도 잘 그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있어요. 짝사랑의 대상이 사람이면 자칫 상처가 오갈 수 있지만, 그리는 일을 짝사랑하는 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다행이에요. 물론 조심해야 될 부분이 늘 있고 분명 괴로움도 있어요. 그래도 이보다 내 쓸모를 증명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해서 계속 하고 있어요.


→ 이탈리아에서 잠시 사셨다고요. 왜 하필 이탈리아가 로망의 나라였나요? 이탈리아에서의 삶은 어떠셨어요?

← 처음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도시 자체를 유산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해 경외심을 느꼈어요. 진흙에 나무를 심어 도시를 만드는 창의성과 강인함 같은 것이 섬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어요. 처음 갔을 때의 좋은 기억 때문에 몇 년간 돈을 모아서 다시 떠났어요. 정착해서 살고 싶었죠. 그런데 어떤 이탈리안은 거주 중인 외국인들을 차갑게 대했어요. 구태여 좋아하는 나라에서 그 부분을 견디며 지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취업난도 아주 심했어요. 서울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게 힘들 것 같았고 그렇다면 고생도 말이 통하는 곳에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돌아왔어요. 그 이후로는 여행으로만 갔더니 아주 좋아요. 좋아하는 도시를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떠났었나 봐요.


→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신간이 아니어도 좋답니다.

←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만화책을 많이 봤어요. 앨리슨 벡델의 『초인적 힘의 비밀』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매 페이지가 소중했어요. 벡델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인지 느껴졌고 구석구석 옮겨 쓰고 싶은 문장과 대사들이 많았어요.

유유출판사에서 만든 책인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도 기억에 남아요.  제 책 『고양이의 마음』을 쓸 때 참고하려고 산 책인데 작업 당시엔 시간에 쫓겨 허둥대느라 읽지 못했고 정작 출간된 후에 읽었어요. 그래서 아쉬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에세이를 쓸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정선 선생님께서 중간중간 함인주 씨와 주고받은 대화를 끼워 넣어 책을 구성하신 부분이 몹시 좋았어요. 공부하는 기분을 삭제시키는 마법의 연출 같아서요.

다음 보름유유 예고! 누구일까요?👀

“우와~ 이게 뭐예요?” 

“홀로그램박이라고.” 

“아 대박, 저 이거 찍는 건 실제로 처음 봐요.” 

태어나기 직전의 책을 매만지는 현장, 그곳에서 만난 다섯번째 인터뷰이

오늘의 보름유유, 어떠셨나요? 
도서출판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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