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년에 첫 책을 내셨죠? 얼마 전 남편 분이 '학샌드위치'라는 가게도 오픈하셨더라고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나무’라는 이름이 참 예뻐요. 어떤 의미인가요?
← 저는 유화를 전공했는데요, 나무 그림을 많이 그려서 나무라고 하게 되었어요. 나무가 영어로 쓰고 발음하기가 편해서 친구들이 저를 본명보다도 이 이름으로 많이 불러 줬어요. 그래서 더 나무가 되었어요.
→ 남편 분과 마이클식당을 함께 운영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림과 요리, 두 가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 어렸을 때 사촌 언니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본 이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언니가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피노키오의 집이 바닷물에 휩쓸려가기 직전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그때 많이 어렸는데도 그렇게 대단한(5세 나무 관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아서, 언젠가 언니의 그림을 능가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여태 그림을 그리는 걸 보니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 했나 봐요.
처음에는 영어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공부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급작스럽게 순수회화를 공부하기로 했어요(영어과 학생이 뜬금없이 미대로 전과하겠다고 하니 교수님들도 신기해서 받아 준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일이 역시 좋았어요. 그런데 이 일로는 돈을 못 벌다 보니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죠. 망원정이라는 짜이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플리마켓도 해보고요. 망한 일도 많았지만 어차피 인생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잘못 든 길이면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괜찮더라고요. 마이클과 함께 식당을 하게 된 것도 어차피 망하려면 빨리 망하자, 해서 겁 없이 시작했던 거예요.
→ 인스타그램에 올리시는 일상을 포착한 따뜻한 그림들이 참 좋아요.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고양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또 책에 담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면요?
← 언젠가 장애아동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제 동생이 청각장애인이에요. 혼자 지내야 해서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 한편 독립적으로 자랐죠. 하지만 들리지 않는 동생과 특별한 놀이를 했던 경험도 있고, 장애인 가족과 함께여서 참 소중한 순간이 많아요. 그런데 저의 이야기가 ‘내가 이렇게 슬프지만 즐겁게 살았어’로 그치면 안 되잖아요? 읽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가 도전과제로 남아 있어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담담하고 위트 있게 그리고 싶어요. 독자들이 읽었을 때 따뜻해지면서도 도움도 받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저는 평생 여기저기 떠다니면서 부유하듯이 이방인처럼 살아 왔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아웃사이더라고 느낀 적도 많은데요. 회화를 그릴 때도, 지금 만화를 그릴 때도 내 그림과 이야기를 과연 누가 알아줄까? 하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아웃사이더로서의 불안함과 다정함을 이야기 속에서 더 촘촘하게 설명하고 싶어요.
→ 인스타그램에 글 조각도 많이 올리시더라고요. 일기를 오래 쓰셨다고요. 마침 저도 작년 12월에 『일기 쓰는 법』이라는 책을 편집하면서 일기의 가치를 되새기게 되었고, 새해부터는 다시 일기를 쓰고 있어요. 선생님은 오래 일기를 쓰시면서 어떤 것들을 얻으셨나요?
← 중2 때였는데, 우리 반 애들을 보니까 공부를 잘하거나 얼굴이 예쁘거나 외향적이거나 운동을 잘하는 애들도 매일 일기를 쓸 것 같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전 일기는 매일 쓸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우리 반에서 나만 할 수 있는 걸 찾고 싶었어요. 그 정도 이유로 제법 성실한 일기 쓰기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뜻밖의 감사한 중2병이었죠.
일기를 오랫동안 쓰면서 알게 된 건, 기억이나 감정을 믿지 말고 상황을 기록해둬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일기를 성실히 쓰지 않던 시기에는 제가 좀 별로였던 것 같아요.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하면 좀 이상한 사람이 되기 쉽잖아요? 당장 몇 장 쓴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일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예전에 쓴 일기를 보면, 몇 년 전에도 내 생활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구나, 지금과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어떤 희망이 생겨나요. 내 인생이 그때나 지금이나 오십 보 백 보인데 그래도 ‘내가 실망하지 않고 쓰는 행위만은 계속하고 있구나, 나는 스스로와 약속한 일을 그만두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