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건 자원봉사자들

 

 인종과 종교에 상관 없이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물에 뛰어들어서라도 구출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은 위대한 사회복지사 이레나 센들러(1910~2008)는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할 무렵 바르샤바 시 사회복지국에서 근무했어요. 그는 유대인 탈출을 돕기 위해 3,000여 개의 여권을 위조했고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특히 유대인을 돕는 지하단체 ‘제고타(Zegota)’와 함께 2500여명에 달하는 어린이를 구출했고 그 중에서 400명은 직접 구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레나의 비밀을 담은 병』은 이레나가 게슈타포에게 잡히더라도 명단만큼은 발각되지 않으려고 친구 집 마당에 있는 사과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이레나가 잡히지 않고 자원봉사를 계속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위험한 자원봉사는 불가피하게 비극적으로 끝나는 일도 있습니다. 영화 <쉰덜러 리스트>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가 영화를 찢고 그림책으로 들어간 것 같은 『백장미』의 주인공 로즈 블랑슈는 ‘백장미’라는 뜻이지요. 독일의 아주 작은 마을에 사는 어린이입니다. 로즈 블랑슈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한 트럭에서 남자 어린이가 뛰어내려 도망치다가 군인들에게 잡혀서 다시 트럭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 사건은 로즈 블랑슈의 인생을 바꿔 버립니다. 트럭을 계속 따라간 로즈 블랑슈는 유대인 집단수용소가 집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해는 언덕 너머로 지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고 점점 말라가는 아이들을 보고 그는 집에 있는 빵과 버터, 잼과 사과를 닥치는 대로 가방에 담았습니다. 로즈 블랑슈도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눈이 녹아 거리가 질척거릴 즈음 한밤중에 불도 켜지 않고 어딘가로 떠나는 군인들을 보면서 불안한 생각이 든 로즈 블랑슈는 먹을 것을 챙기고 허겁지겁 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안개가 짙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절망한 로즈 블랑슈가 음식이 가득 든 가방을 떨어뜨리는 소리에 놀란 군인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날 이후로 로즈 블랑슈는 사라졌고 그의 어머니는 딸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어떤 자원봉사를 할 것인가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영상 자료를 보면 주먹밥을 나눠 먹고 거리를 청소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비록 군인들에게 많은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비극적인 역사였지만 함께 힘을 모아 역사의 페이지를 힘겹게 넘겼던 소중한 기억들. 제주4.3의 이야기 속에서는 잊을 수 없는 자원봉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운전수가 하는 말인즉, (군인들이) 제일 먼저 현경호 씨 부자(父子)를 말방앗간으로 데리고 들어가 총을 쏘고, 뒤이어 김원중 씨를 쏘았고, 끝으로 금성상회 큰아들과 갑자옥 사장 이상희 씨를 총살하려는데 금성상회 아들이 안경도 잃어버린 데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자 군인들이 발길로 걷어차니까 이상희 씨가 제가 부축하지요라면서 함께 학살터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4(초토화작전) 일부

 

 군인들에게 심한 고문을 받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웃을 부축하고 학살터로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합니다. 5.18민주화운동과 제주4.3이라는 슬픈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자원봉사의 모습을 떠올리는 제 마음은 복잡합니다. 위험을 무릅쓴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에 숭고하고 뜻 깊은 역사가 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위험한 자원봉사를 하도록 했을까 하는 고통스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을지 모르는, 그러나 꼭 해야 할 자원봉사를 놓칠 때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자원봉사를 누군가 해야 하는 상황이 불쑥 찾아오지 않을까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그래서 이렇게 묻게 됩니다. 지금은 어떤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반드시 했어야 했지만 놓치고 있는 자원봉사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