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서른한 번째 흄세레터
님, 메리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엔 들뜨고 설레면서도, 특별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생기는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때 뭐 해?"라는 질문을 받으면 '뭘... 해야 하나?' 싶죠. 그럴 때면 몇 년 전 친구의 생일을 떠올립니다. 그날을 위해 특별한 전시도 예매하고, 근사한 식당과 분위기 좋은 카페도 찾아두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친구가 갑자기 아팠거든요. 친구 집으로 가서 아픈 친구를 간병하고, 함께 집밥을 나누어 먹고, TV를 보고, 집 근처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사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계획했던 일들을 못 해 아쉽다고, 다음엔 꼭 특별한 걸 하고 더 좋은 걸 먹자는 제 말에 친구는 이렇게 답했어요. "아니야. 평범하고 완벽한 하루였어!" 평범하고 완벽한 하루. 그때껏 생각해보지 못한 단어의 조합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돕니다. 
흄세레터도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금요일에 녹아들어, 충만한 하루의 한 조각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요. 오늘의 한 조각으로는 정소현 소설가의 《동 카즈무후》 리뷰를 보내드립니다.
-편집자 세😊
믿을 수 없는 사람

나는 브라질의 음악을 사랑한다. 삼바와 쇼루, 보사 노바, MPB(브라질 대중음악)가 음악 재생 목록에 언제나 포함되어 있고, 브라질 음악가의 이름은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브라질의 문학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부끄럽게도 아는 작가라고는 J. M. 지 바스콘셀루스와 파울루 코엘류, 시쿠 부아르키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마샤두 지 아시스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이름도 처음 들어보았다. ‘동 카즈무후’라는 제목 또한 생소한 데다가 포르투갈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내용을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미래의 인내심 없는 독자를 염두에 두었는지 작가는 친절하게도 서두에 제목의 의미를 설명한다. ‘동 카즈무후’는 말이 없고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흔히 붙이는 별명이며, 귀족을 의미하는 접두어 ‘동’을 붙임으로써 귀족 냄새를 불어넣은 것이다. 이 소설은 ‘동 카즈무후’라는 별명을 지닌 귀족 출신 변호사 벤치뉴의 회고록이다.


벤치뉴는 사춘기 시절에 시작된 카피투에 대한 사랑과 그녀와의 결혼을 쟁취하기 위해 그가 했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그의 들끓는 정념, 그를 둘러싼 가족과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 가족들이 모르는 둘의 은밀한 연애담, 신학교에 진학해 사제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벗어나려고 고군분투했던 시절, 법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는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3분의 2 분량을 넘어서게 되고, 마지막 100쪽가량을 남기고서야 겨우 결혼에 다다른다. 그토록 긴 시간 동안 화려하게 쌓아 올린 사랑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후는 ‘Happy ever after’가 되어야 마땅해 보이나 그렇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성장소설처럼 보였던 이 소설은 앞부분과는 다른 방향으로 급전개되고, 실은 이것이 불안과 의심, 질투와 배신에 관한 소설임이 드러난다. 벤치뉴는 아들이 자라면서 점점 죽은 친구를 닮아간다고 생각하고 친구와 카피투의 불륜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는 오셀로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오셀로에겐 적어도 위조된 물증이라도 있었지만, 벤치뉴에게는 아들의 외양이 친구와 닮았다는 심증뿐이다. 21세기에는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 유전에 대한 의심은 소설을 파국으로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어 비극을 완성한다. 오셀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릴 용기라도 있었지만 벤치뉴는 사제가 되지 않기 위해 고아를 대신 보냈던 것처럼, 타인을 희생시키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벤치뉴가 아내와 아들에게 저지른 경악할 만한 악행과, 아내의 불륜을 굳게 믿 는 그의 마지막 변론을 읽고 나면 그의 저열한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벤치뉴는 배신을 확신하며 회고록을 끝내지만, 정말 카피투가 벤치뉴를 배신했는가 하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되는 사실은 벤치뉴가 믿을 수 없는 화자이며, 옹졸하고 역겨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나는 정말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고백하고 자신의 진술에 공백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는 많은 거짓말쟁이가 그렇듯 장황한 설명과 묘사를 즐기며, 격언과 에피그램을 즐겨 쓴다. 종종 자신의 상상을 진짜 일어난 일처럼 생각하며, 아무 이유 없이 카피투와 이웃 청년과의 관계를 의심하기도 하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질투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는 그 원인이 카피투에게 있는 것처럼 책임을 떠넘긴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호기심 많은 그녀의 성정과, “비스듬히 치켜뜬 은밀한 집시의 눈빛” 때문이고, 타인의 시선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처음에 ‘동 카즈무후’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고 하면서 찾아보지 말라고 한 것도 의심할 만하다. 굳이 사전을 찾아보자면 ‘카즈무후’는 ‘골나서 말하지 않는’, ‘완고한’, ‘음험한’이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벤치뉴는 화가 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음험한 진짜 모습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카피투가 파국이 다가올 때까지도 그의 질투와 의심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아무 내색 하지 않았고, 파국이 온 뒤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아내와 진실에 관해 대화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믿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그가 카즈무후가 아니었다면 이런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는 일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심리와 왜곡된 사실들일 뿐, 실체적 진실이 아니다. 벤치뉴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덜어내거나 파편화하고, 종종 은유로 덮어버려 독자가 실체적 진실을 알아내는 것을 방해하지만, 독자는 더 이상 속지 않고 숨은 단서를 찾아 카피투가 그를 배신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카피투는 벤치뉴를 배신했는가? 독자는 벤치뉴가 거짓말로 증거를 숨기고 왜곡했다는 단서를 찾기 위해, 혹은 카피투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숨은 단서를 포착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소설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 읽을 때마다 문장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화자와 알 수 없는 진실은 독자를 좀처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19세기의 소설이 21세기의 소설가에 의해 삼인칭으로 다시 쓰이고, 만화책, TV 시리즈로 재창작되는 이유는 그 때문일 테다.

정소현 |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집 《품위 있는 삶》, 《너를 닮은 사람》, 중편소설 《가해자들》 등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동 카즈무후 마샤두 지 아시스 | 임소라 옮김


"당신은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질투하던 사람이야. 그런데 불신의 그림자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어.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뭐야?"


브라질의 대문호이자 심리소설의 대가인 마샤두 지 아시스의 대표작. 국내 초역이며, 아시아권 언어로 번역되는 것도 처음이다. 브라질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으며, 드라마, 영화, 연극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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