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감독 허지은, 이경호)

팬데믹 시대, 극장과 독립영화는 점점 어려운 존재가 되어갑니다. 그래도 우리는 독립영화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독립영화가 님의 곁에 조금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도록 인디즈 큐가 메일함으로 단편영화를 배달해드립니다. 이름하여 인디즈 큐!레이션💌  

독립영화를 찾아 헤매는 인디씨커👀들을 위해 인디즈가 엄선한 단편영화들을 소개해드릴게요. 관람 버튼을 통해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단, 9월 2일 목요일 정오(오후 12시)까지만 관람이 가능하니, 미루지 말고 보아주세요! 

오늘의 인디즈 큐!레이션. 환상의 콤비 허지은,이경호 감독의 신작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간 허지은, 이경호 감독은 <오늘의 자리>, <신기록>, <해미를 찾아서> 등의 단편을 공동연출하며 그간 모든 영화제를 싹쓸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빠르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의 작품. 이번에도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한 면면을 세밀하면서도 서늘하지만은 않게 그려냅니다. 님, 이번 영화도 강추입니다😉

1️⃣ 영화 본편을 먼저 보고 나면 여러가지 생각이 몰려올 거예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그 뒤 인디즈의 리뷰를 읽으면서 나의 리뷰도 완성해볼까요?
2️⃣ 리뷰에는 줄거리가 간략하게 들어가 있어 이해를 돕고 풍부한 시선을 제공합니다. 보다 풍부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고 싶다면 리뷰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추천!
인디즈 큐!레이션 02.
참! 고마운 사람
〈고마운 사람

감독 허지은, 이경호
출연 신지이, 최유송, 윤부진, 이태경
시놉시스  미디어센터 주민영상제작 수업을 맡은 진아는 학창 시절 담임 교사였던 서인과 8년 만에 재회하고 선생님에게 못 다한 고백을 하려 한다
연출의도 내가 되뇌는 혼잣말이 누군가를 일으킬 주문일 수 있다면.

※ 본 영상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창작물로, 무단 유포 및 불법 게재할 경우 손해배상청구를 비롯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저 엔딩 크레딧에
서로의 이름 한 자씩 적을 수만 있다면
:〈고마운 사람〉을 보내며

인디즈 16기 박유진
내가 지키려고 했던 건 네 소설이 아니야. 난 나를 지키려고 했던 거야
진짜 내 이야기는 따로 있지 않겠니.”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떠오른다.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업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흘러가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문구. 고마운 사람. 엔딩 크레딧 말미를 장식하는고마운 사람들은 대개 영화를 함께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도움을 통해 영화의 완성에 기여한 사람들을 뜻한다. 역할을 명명하기는 어렵지만 한 이야기의 탄생 과정에 있어 큰 몫을 해낸 사람들. 이름 붙이기 힘든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을 묶어낸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감상 직후에는 영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도 어떤 이유에선지 마음이 쓰여 다시 돌아보게 되고는 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품은 영화라니. 혹시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이 영화만의 빛나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심 조금 담아 고마운 사람들 목록에 혹시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이 있지는 않은지 찾아본 적도 많다. 그러니고마운 사람은 엔딩 크레딧에 새겨진 수많은 역할들 중 가장 추상적이지만 가장 따뜻한 역할이 아닐까.

“고마운 사람들은 영화 속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고마운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기 마련이니. 이름 붙이기 힘든 도움으로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그렇다. 역할을 정확히 명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고마운 사람. 영화 <고마운 사람> 속 미디어센터 강사로 일하는 진아에게 고마운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자 국어 교사였던 서인이다

8년 전고등학생 진아는 서인과 과학 교사 사이의 묘한 기류를 읽었다곧 전근을 가는 과학 교사 곁에 앉아 슬픈 얼굴로 손을 어루만지고 다정한 눈빛을 주고 받는 둘과학 교사가 전근을 가던 날창가에 서서 나긋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낭독하던 서인.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진아는 그 낭독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을 느낀다동요된 진아는 호기심을 서인과 과학 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연애 소설을 쓴다상상이 죄가 되는 줄은 몰랐으니까실재하는 타인의 사랑을 ‘창작하는 것이 왜 잘못인지 당시의 진아는 알지 못했으니까소설은 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결국 선생님들의 손에도 들어간다학교는 발칵 뒤집혔지만서인은 소설을 쓴 작가를 굳이 색출하지 않고 덮어준다.

8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진아와 서인은 미디어센터 주민영상제작 수업에서 강사와 수강생 신분으로 재회한다. 그 당시 서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작가가 본인임을 뒤늦게 고백하며, 오히려 잘 썼다고 칭찬까지 해준 게 고마웠다고 털어놓는 진아에게 서인은 답한다. 내가 지키려고 했던 건 네 소설이 아니야. 난 나를 지키려고 했던 거야. 진짜 내 이야기는 따로 있지 않겠니.” 

이제 어른이 된 진아는 그 말의 무게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한없이 죄스럽고 무력해진다. 그러나 진아를 괴롭게 했던 서인의 한 마디는 오히려 진아가 스스로를 지켜야 할 순간에 자신을 온전히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는 진아는 미디어센터 대타 수업이 생겨 축제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일, 각자의 창작 영상을 발표하는 자리에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찍은 영상이 등장한다.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크레딧의 마지막을 '참 고마운 사람'인 멋쟁이 강사님 이진아가 장식할 때 진아의 심정은. 아마 학생이 창작한 연애소설을 두고글을 쓴 학생을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교사들 앞에서 서인이 느꼈던 감정과 유사했을 것이다. 수강생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진아가 과거 수업에서 사용했던 표현을 빌려내가 세상에 표현하고자 하는 나는 이런 모습이다라고 주장할 때. 차마 무지개 깃발과 무지개 비즈팔찌를 모른 척 할 수 없던 진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켜낸다. 서인이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지켰던 것처럼.

내가 되뇌는 혼잣말이 누군가를 일으킬 주문일 수 있다면.” <고마운 사람>의 연출 의도는 간결하다. 그러나 명확하다. 서인이 사랑을 되뇌며 낭독했던 백석 시인의 시 한 편은 나를 지켜야 했다는 말 한 마디로 주저앉아 있던 진아를 일으킨다. 자신도 모르는 새.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사이 서로에게 빚을 지며 살아간다. 빚을 지고, 또 빚을 갚고. 그저 엔딩 크레딧에 서로의 이름 한 자씩 적을 수 있다면. 서로의 고마운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거면 된 거다


인디즈 16기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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