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소식 133호

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출퇴근하며 칼바람을 맞을 때면 겨울철 뜨끈하고 맛난 음식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여러분은 겨울이 되면 꼭 먹는 음식이 있나요? 저는 입속으로 후루룩 들어가는 칼국수와 따끈한 국밥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산지니가 있는 부산에서는 해물이 잔뜩 들어간 해물칼국수, 전라도 이주민들로부터 유래했다는 팥칼국수, 그리고 화교들이 만들어 낸 짜장칼국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부산의 대표 소울푸드 돼지국밥과 경상도식 빨갛게 우려낸 국물이 특징인 소고기국밥도 빼놓을 수 없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부산 경남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소울푸드를 찾는 탐식 기행을 담은 책, <탐식 기행, 소울푸드를 만나다>를 소개합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그 고장만의 특색 있는 음식과 이야기를 캐내는 최원준 음식문화 칼럼니스트는 흔하면서도 소소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의 풍습,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산지니 편집자들의 소울푸드. 과연 어떤 음식들이 있을까요?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 초록 편집자
저의 소울푸드는 요즘같이 추워진 날씨면 유독 생각나는 음식이죠, 바로 수제비입니다. 어린 시절엔 엄마와 같이 반죽을 손으로 떼 냄비에 넣으면 음식이 만들어지는 게 신기했고, 학창 시절엔 맛없는 급식이 나오는 날이면 친구들과 학교 앞 수제빗집에 가서 뜨끈한 들깨수제비를 먹고는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제비의 가장 큰 매력은 식감인데요. 손으로 만든 수제비 반죽은 그 두께도 제각각이라 두툼하면서 씹는 맛도 있고 어느 것은 후루룩 넘어가 부드럽습니다! 오랜 시간 먹어온 음식이라 그런지 수제비를 생각하면 든든한 느낌이 들고는 하는데, 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때 떡 대신 수제비 반죽을 넣어 먹어도 맛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 소원 편집자

맛은 기억이라고 했던가요. 제 소울푸드 잔치국수에 대한 기억은 여덟아홉 살로 올라갑니다.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에서 대예배가 끝나면 점심시간에 맞추어 식사가 준비되었는데요, 예배를 마치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멸치 육수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어린이였던 저를 옆에 앉히고 어머니가 국수를 덜어주어 한 그릇을 함께 나눠 먹었고, 멸치향이 밴 따끈하고 진한 육수의 국수를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교회 권사님, 집사님들께서 이른 아침부터 직접 만드셨던 그 잔치국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비슷한 맛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다녀보았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다른 잔치국수가 맛이 없었다기보다는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익숙한 맛을 제가 갈망하는 거겠죠?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잔치국수는 어머니표 잔치국수입니다. “엄마 국수는 두 번째다. 그때 그 교회 국수가 최고였지?” 하면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권사님들 손맛 알아줬지” 하시면서요.


# euk 편집자
어느덧 자취 경력 3년 차. 저는 어머니가 보내주는 반찬 없이는 끼니를 때울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요리는 조금씩 하고 있지만요) 처음 거제도에서 부산으로 이사해 자취를 시작하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한결같이 제가 반찬이 떨어질 시기가 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반찬 좀 보내줄게. 먹고 싶은 반찬 있어?”라며 전화를 겁니다. 그럴 때면 저는 가끔 어머니의 컨디션을 눈치로 봐가며 잡채를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며칠 후, 집 앞 현관문에 도착한 아이스박스. 그 속엔 끼니마다 먹기 좋게 소분한 잡채 5~6봉지와 과일 몇 가지, 여러 종류의 김치 등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과 걱정을 느낄 수 있는 먹을 것들이 한가득 들어 있습니다. 저의 소울푸드인 ‘어머니표’ 잡채. 재료부터 사랑이 가득 느껴지는 잡채를 오래도록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sun 편집자
저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소울푸드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소울푸드는 김치볶음밥입니다. 어린 시절 반찬 투정을 하던 저에게 어머니는 “그럼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이나 계속 먹어라!” 하며 5일 동안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셨어요. 먼저 포기한 사람은 어머니였습니다. 이러다 우리 집 김치가 먼저 동이 나겠구나! 하며 다른 반찬을 해주셨어요.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 멋진 어른으로 자랐지만 김치볶음밥은 여전히 사랑합니다. 때가 되면 생각나고 먹으면 평소 식사량보다 1.5배 정도 먹으니 충분히 소울푸드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제나 편집자
찬바람 부는 때면 생각나는 저의 소울푸드는 바로 갱시기죽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주로 밥국시라고 부른답니다. 국시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 이 단어가 사투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정감이 가서 밥국시라는 단어가 저는 더 좋습니다. 
밥국시는 김치죽과 비슷한데, 겉보기에는 왠지 꿀꿀이죽처럼 보이기도 해요. (사실 집에 있는 재료를 다 넣고 끓인 느낌이라 비슷할지도?) 하지만 밥이 부족한데 사람이 많을 때 뜨끈한 밥국시만 한 게 없죠. 저희 집은 주로 찬밥 남았을 때 엄마가 만들어 주곤 하셨어요. 문제가 있다면 어린 초딩이었던 제가 밥국시하는 날에 꼭 친구를 데려와서 잡다한 비주얼에 엄마가 민망해하셨던 기억이 있답니다. 보기에는 좀 그래도 맛만큼은 최고! 여러분도 추운 겨울 밥국시 한 그릇 어떠세요?
음식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
<탐식 기행, 소울푸드를 만나다> 책소개

탐식(探食)’. ‘음식을 탐하다’라고 할 때의 탐(貪)이 아니라, ‘탐구하다’의 탐(探)을 사용한 단어입니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최원준 작가는 자신의 음식 기행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탐식(貪食) 기행’이 아닌, 음식 속에 묻어 있는 역사와 문화, 그곳 사람들의 기질을 탐구하는 ‘탐식(探食) 기행’이라 말합니다. <탐식 기행, 소울푸드를 만나다>는 최원준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의 두 번째 음식 기행 책입니다. 전작 <부산 탐식 프로젝트>에서 50가지 부산 음식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책에서는 지역의 범위를 넓혀 부산, 경남 지역의 음식문화를 탐구하기 위한 길을 나섰습니다.

웨이팅 맛집, 배달 음식, SNS를 위한 예쁜 음식 등 요즈음의 음식 문화는 ‘빠르고, 편하고, 예쁘게’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조금은 소소하고 투박해도 자극적이지 않고 몸도 마음도 편안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그리고 우리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지 않나요? 그 계절에 나는 식재료로 만든 제철 음식, 지역민이 오랫동안 먹어온 향토 음식, 만드는 이의 정성이 담긴 한 그릇의 요리는 한순간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최원준 작가가 부산, 진주, 의령, 울산, 김해, 통영, 창원, 함안, 합천, 고성, 창녕, 밀양, 남해 등의 지역을 직접 누비며 찾아낸 우리 지역의 소울푸드 이야기를 <탐식 기행, 소울푸드를 만나다>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여러분의 소울푸드 하나씩 떠올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식구와 함께 먹는 집밥, 그것이 소울푸드죠.”

최원준 작가와의 만남

비가 조금씩 내리던 11월의 어느 날, 산지니에서는 <탐식 기행, 소울푸드를 만나다> 최원준 작가와 함께 즐거운 북토크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시간의 음식 이야기라 배가 고파서 힘들었네요ㅎㅎ

▲<탐식 기행, 소울푸드를 만나다>의 저자 최원준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이번 북토크에서는 책에 소개된 부산, 경남 지역의 음식과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 그 유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원준 작가가 생각하는 ‘소울푸드’의 정의부터 전국 각지의 이주민들이 모인 부산의 다양한 시장칼국수, 함안·의령·합천 장터국밥의 유래, 복국으로 유명한 통영과 복어 구분법까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원준 작가의 소울푸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가족과 함께 먹는 집밥, 식구(食口)와 함께 먹는 음식이 소울푸드죠.”라고 답하며 방송 경력자답게 깔끔히 북토크를 마무리한 최원준 작가. 앞으로 시인으로서, 음식문화 칼럼니스트로서 독자 여러분과 만날 그의 행보에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이달의 신간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박태일 지음 | 296쪽 | 17,000원

산지니시인선 021. 시인이 문학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연변에 오고 간 20여 년의 세월 동안 그곳에서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시를 엮었다. 101편의 시를 통해 연변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 풍경, 전쟁과 항일투쟁, 그리움과 눈물로 뒤섞인 이민사 등 연변 조선족의 역사를 훑는다.

경성 브라운 고예나 장편소설

고예나 지음 | 384쪽 | 18,000

2008년 오늘의 작가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고예나 소설가의 역사 장편소설. 1919년 나라를 빼앗긴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고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정의와 투쟁을 선택한 청년 영웅들의 삶을 그린다. 카페 ‘경성 브라운’을 중심으로 사랑과 배신 그리고 신념을 위한 투쟁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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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은 2020년 첫 시작을 알린 반연간지입니다. “주류 담론의 지형을 뒤흔들다”는 기획 아래 창간된 <문학/사상>은 기존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았던 여러 담론들에 대해 심도 깊게 이야기 나누는 텍스트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또한, 인문학의 위기에 맞서 문학과 사상에 대해 논하고, 분과학문의 벽을 허무는 통합 인문학적 사고를 위한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문학/사상 8호 트랜스로컬

‘트랜스로컬’에서는 구체성이 녹아 있는, 경험적 삶이 실현되는 장소인 로컬을 직시하며 그들의 횡단과 접선에 주목한다. 그리고 로컬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또 실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컬 속에서 희망을 지탱하는 삶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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