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감도비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요 며칠 비바람이 쏟아지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걷히고 화창해지는, 도깨비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네요. 혹은 그 반대거나요. 아침에 날이 맑더라도 우산은 항상 챙겨야 할 거 같아요.

이번 주 풀칠레터에서는 MBTI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더 정확히는 직장인으로서의 MBTI에 대해서요. 최근 저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일화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MBTI를 좋아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직장에서 스스로가 어떤 MBTI일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품앗이로 여러분의 MBTI 정보 마구마구 달아주세요!)

 어느 날 점심,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후배는 선언하듯이 본인을 MBTI 박사라고 소개했다.(한 풀칠 멤버의 말에 따르면 어느 조직에나 한 명씩 있는 ‘도사’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후배는 자기 주변 사람들의 MBTI를 다 알아맞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회사 내 한명 한명을 떠올리며 MBTI를 유추하기 시작했고 해석에 해석을 얹기 시작했다.

“OO선배는 아마 ISFP일거야. 맞아, 맞아. 그래서 그때 전체 회의에서 @#$$%@#$~&.” 

뭐, 대충 그런 느낌. 우리의 MBTI 맞추기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화살은 그 자리에 앉은 나에게로 향했다. 

“선배, MTBI가 뭐에요?”

아니, 다 맞출 수 있다면서? 게다가 나는 제일 쉬운데? 나는 뭐 그런 싱거운 질문을 하냐는 투로 웃으며 대답했다.

“저 인프피(INFP)에요.”

그랬더니 후배가 말 그대로 아연실색했다.

“거짓말이죠? 선배는 누가 봐도 ISTJ에요.”

 속으로는 ‘ISTJ가 뭐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 그래요? 신기하네” 하면서 짐짓 쾌활한 척 이야기를 넘겼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 한편에는 ‘내가 INFP가 아니란 말야??’하는 커다란 절규 비슷한 물음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INFP라는 사실은 그동안 나 스스로를 가장 잘 규명하는 프레임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내 MBTI가 다를 수 있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MBTI와 남이 생각하는 나의 MBTI는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직장 동료가 바라보는 MBTI라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 같았다. 회사로 돌아와 나는 당장 (몰래) ‘ISTJ’를 검색했다. 16가지 성격 유형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정리 되어 있었다 :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음... 내가 회사에서 순교자로 보일만한 일을 한 적이 있었나?’

그 밑에 유형별 위인의 명언을 읽어보니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한 명이면 족한 일을 둘이서 수행하면 될 일도 안 되거니와, 셋 이상이 하는 경우에는 일이 전혀 성사되지 않더군. - 조지 워싱턴>

‘아, 이거지. 이거지!!’ 나는 앉은 자리에서 내적으로 물개박수를 쳤다. 단독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단번에 설득되고 말았던 것. ‘그렇구나, 나는 일에 있어서는 INFP가 아니라 ISTJ 구나’ 새로운 자아를 찾게 된 날이었다.

한순간 ISTJ로 거듭난 나는 좀 더 많은 설명을 찾아보기로 했다. 책임감 있는 현실주의자, 낯가림이 심하다(그렇지, 그렇지), 주어진 업무나 책임을 끝까지 완수한다(예를 들면, 새벽 마감...?), 원칙을 중시한다(그, 그런가?), 실수를 참지 못한다(티가 났나?), 자신이 직접 일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그래서 마감도비를 못 벗어나지), 사고방식이 로봇 같다(?), 그리고 ISTJ 중에 꼰대가 많다.(나, 후배에게 당해버린 건가?)

무척 흥미로웠다. MBTI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는 내가 이렇게 비춰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조직 내에서 채도가 많이 다운된 회색 인간이었다. ‘넵병’ 말기 환자이기도 하고. 오죽하면 회사 단체카톡방(이 있다. 인류는 아직 전근대적 야만과 작별하지 못한 셈)에서 나에게 ‘넵’ 금지령이 내려졌을 지경이니까.

그리고 말수가 적고 내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 답답한 인간이기도 했다. 한번은 명리학을 공부했다며 주변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는 선배마저 회식 자리에서 나에게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좋은 편인데,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때 와인을 마시고 있었으므로 나는 눈으로는 웃으면서도 손으로는 인스타 스토리에 예쁜 잔에 담긴 와인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이 조명... 온도... 습도...

그런데 직장인으로서 나의 MBTI가 있다는 사실은 직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무색무취하지 않다는 얘기인 것도 같아서 조금 감격스러웠다.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무언가’로 규정될 수 있는 법이니까. 혼자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나쁜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약간의 훈계도 됐고 말이다. 이제 협력을 배워야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서 극 중 인물인 리어왕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탄식한다. 남도 나를 모르고 나도 나를 모른다는 얘기다. 그전까지 나는 스스로 리어왕을 자처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직장에서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러나 이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연극을 하고 있고, 함께 일하는 배우들은 그 사실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연기는 나쁜 게 아니고, 우리는 그저 자신에게 잘 맞는 배역을 맡으면 족할 뿐이다. 그 연극의 장르가 희극이면 가장 좋고.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작품인 <겨울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내가 본래 정직한 건 아니지만 가끔 우연히 정직할 때도 있다(Though I am not naturally honest, I am so sometimes by chance.)”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에 읽은 오하림 카피라이터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연인과의 모든 대화는 목적이 문제 해결에 있지 않기 때문”에 “명쾌한 해답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잊게 만드는 장르의 변화나 말도 안 되는 비유, 엄청난 비약 같은” 것이 잘 먹힌다고요.

 저는 MBTI도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스몰토크 소재죠. 사실 저는 아직도 제 MBTI에서 E와 J 사이 두 알파벳이 무엇인지 헷갈려 한답니다. ‘사교적인 외교관’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이것만 얘기해도 알파벳이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자리에 꼭 하나씩 있더라고요.

 MBTI의 과학성은 그렇다 치고. 마감도비 님 말대로 “직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무색무취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사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건 동서고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음, 일단 제 알파벳부터 다시 알아봐야겠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나라는 건 쉽게 말해 '주말의 나'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사회적 자아라는 거겠죠? '사회적 자아'라고 거창하게 얘기하니 왠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무언가에 굴복하는 느낌이네요. 그럼 사회적 자아를 부캐라고 바꿔 부르는 건 어떨까요. 어찌 됐든 둘 다 다른 자아(캐릭터)로 활동한다는 거니까요.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부캐가 하나쯤은 있는 셈이죠. 이왕 만드는 거라면, 그나마 가진 것 중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만 부캐를 빚어내고 싶네요. 그래서 요즘 저는 출근길에 고막을 뿅뿅-하고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워밍업을 합니다. 내면에 자리한 외향성을 긁어모으는 일종의 의식이랄까요. 본캐로는 절대 불가능했던, 유쾌하고 유능한 캐릭터를 저도 가지고 싶은 열망이 있으니까요. 껄껄.



제목이 의미심장하네요. MBTI가 유사과학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누구지?’라는 궁금증이 터져나오는 시기에 잘 올라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MZ세대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원한다고 하고, “나 이런거 좋아하네를 외치며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나의 서사로 퍼스널브랜딩을 하는 시대잖아요.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찾는 것이 행복과 사명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폭넓게 공유되는 와중에,  MBTI가 ‘너의 성격을 알려줄게라고 말하며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서 적당히 믿음직스런 외양으로 등장한 셈이죠.

자아탐구의 물결 위에서 , '일하는 자아'와 MBTI를 접목시킨 마감도비님의 에세이를 읽다보니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듭니다 :  

MBTI는 성격 테스트다. 그런데 성격이란 말은 우리 안에 본질적이고 고정된 소프트웨어가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나? 이 오해와 자아실현으로서의 일이 합쳐지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성격을 일에 맞춰 최적화하려들까?

몇몇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인적성 테스트를 연습하고, MBTI를 서류전형에 포함한 채용공고가 올라오고, 지식인엔 다른 MBTI에 맞는 직업이 장래희망인데 어떻게하면 MBTI를 바꿀 수 있냐는 질문이 올라옵니다. 이 모든 광경은 좀 징후적입니다.

자아탐구와 회사-최적화가 동일해진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덕업일치일까요, 아니면 극한의 자기착취일까요? (저의 MBTI는 ENTP라네유..ㅎㅎ) 

풀칠러A
육아휴직 대체인력으로 회사를 다니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완벽하게 전임자의 자리를 대체한다 해도 기간을 다하면 다시 대체될 운명..ㅎㅎ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대체하려고 노력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야망백수
시지프 신화가 생각나네요. 영원히 산에서 바위를 굴려야하는 운명의 시지프는 바위 굴리기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운명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든요.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과 자부심의 근거를 마련해두는 거, 대단한 능력이잖아요. 풀칠러님의 대단한 능력이 대체될 운명을 초월하는 걸 넘어서 해피엔딩도 만들어 내리라고 믿습니닷!!
아매오
'대체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횡설수설 하는 것보다는 제가 말하려는 점을 명확히 하여 구분지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게 잘 된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멤버들의 코멘트가 걱정했던 부분을 잘 언급해준 것 같아요.
풀칠러A
저는 잘못한게 없습니다. 다만 잘못이 있다면 회사에서 한번도 화를 낸적이 없다는 것과 성격상 싸움을 싫어 한다는 것. 최근 업무로 타 팀과의 마찰이 있었고, 마찰 당사자 그 친구는 저에게 다짜고짜 화를 냈습니다. 우리 팀의 일이긴 하지만 제가 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그냥 그 순간 화를 참을수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화가 나긴 했지만,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아 참고 욕받이 노릇을 했습니다. 오해는 당연히 저절로 풀렸고, 업무 또한 잘 해결됐습니다. 그 친구는 그저 미안하다고 엉뚱한데 화를 냈다며 사과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제 감정 뿐. 화가 풀리지 않더라구요. 그 친구에 대한 화가 아니라 제 자신에 대한 화가. 온갖 생각이 교차하면서 스트레스가 머릿속에 박혔습니다. 왜 억울했던 그 순간 맞받아치지 못했는지. 맞받아쳤다면 일이 복잡해지지 않았을까? 잘했어 라고 합리화하는 모습이라던지. 일주일이나 지났음에도 왜 털어내지 못하는지. 쓰다보니 막 때려 썼네요. 30대 중반의 나이에 잘못하면 30년은 더 직장생활 해야 할텐데 케릭터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이 돼 적어봤습니다. 화를 낼때는 내고, 좋게 좋게 넘어갈 때는 넘어가야하는데 쉽지 않네요. 입에 풀칠하기가 정말 만만치 않네요.
야망백수
오해가 풀려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빨리 털어낼수록 이득인거 아시죠!! 화를 참지 못한 동료분께 풀칠 필진 전원이 사소한 저주를 보탭니다. 커피 마시다 혀를 덴다던가...문지방에 발을 찧는다던가 하는...뭐 그런 사소한 저주를요...

오늘 저희가 보내드린 이야기들, 어떠셨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풀칠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말서
멤버 전부 정시퇴근에 실패하여...
부랴부랴 발송준비에 매진하였음에도...무려 36분이나 늦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송구 또 송구합니다...
풀칠하며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
인스타그램 @fullchill_for_fullch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