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얼마남지 않은 지금,
2021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한 해였나요? 

지난 좋은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2022년에도 발견하고 기대하는 행복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며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교수의 한 칼럼을 소개해드리고자합니다. 

삼시 세끼 밥해 먹고 치우고 또 밥해 먹고 치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한 PD의 천재적 편집을 통해 흥미진진한 작품 한 편으로 탄생했다. 이 PD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보기만 하면 볼만한 것이 참 많다는 '멈비보(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원리를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아마도 우리가 우리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집 청소하는 장면을 찍어서 이 PD에게 넘겨주면 우리의 일상도 작품 한 편이 될 것이다.

감각 있는 자막과 적절한 배경음악,
그리고 카메라의 절묘한 각도가 가미된다면 
모든 일상은 작품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PD이다. 

천재적 방송 PD가 있듯이 천재적 인생 PD도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단순한 기계적 조합이 아니라 PD로서 우리가 행하는 편집의 결과이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를 타게 되면 
창 밖 풍경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풍경에 배경음악을 더하는 일종의 마음 편집술이다. 방송에서 악마의 편집을 하면 악인이 등장하고 천사의 편집을 하면 착한 사람이 등장하듯이 인생에서도 천사의 편집을 거친 세상에는 살 만한 세상이 등장하고, 악마의 편집을 거친 세상에는 분노와 냉소로 가득 찬 세상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한 해를 정리하는 이 시기에 행복한 인생 PD들의 마음 편집술 몇 가지를 한 번 배워볼 필요가 있다.
주차 위반으로 벌금 5만원을 내고, 다음 날 속도위반으로 벌금 5만원을 또 내는 경우, 행복한 PD는 벌금 5만원을 두 번 냈다고 편집하기보다, 10만원짜리 벌금을 한 번 냈다고 편집한다. 올해 주식으로 손해가 있었고, 세금으로 많은 돈을 납부했고,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못 받았다면, 천사의 편집은 이를 경제적 손실 세 번으로 나누기보다, '올해는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있었다'고 한 사건으로 묶어 버린다. 왜냐하면 편집의 천재는 고통은 하나하나 떼어서 경험하기보다, 하나로 묶어서 경험하는 것이 마음에 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한 해 일어난 모든 고통스러운 사건을 하나하나 들추기보다 
'올해는 좀 고통스러웠다'고 하나로 뭉뚱그릴 필요가 있다.

좋은 일은 이와 반대다. 
편집의 천재는 좋은 일을 하나하나 떼어서 바라보게 하는 편집을 한다. 5만원짜리 복권에 당첨되고, 다시 10만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경우, 이를 묶어서 15만원을 벌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각각을 따로따로 경험하려고 한다. 천사의 편집에서는 "올 한 해 좋은 일이 참 많았다"고 종합하여 결론 내리지 않고, 
올해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각각의 기쁨을 재음미하려고 한다.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했다고 편집하기보다, 밥은 매우 기름졌고, 된장국은 간이 정말 잘 맞았으며, 깍두기의 아삭거림과 멸치 볶음의 고소함이 대단했다고 각각을 들여다보는 편집을 하는 것이다. 즐거움은 하나로 묶기보다 따로 떼어 경험해야 마음에 이롭다는 것을 편집의 천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천재 PD가 올 한 해를 편집한다면 그는 1월부터 12월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모든 좋은 일을 차분히 세어보고 
각각을 하나하나 재음미하려고 할 것이다.
방송국 PD나 인생의 PD나 편집의 천재들은 끝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또한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재밌는 프로그램도 끝이 시시하면 욕을 먹는다. 세상에 대한 우리 마음도 그렇다. 끝이 아름다우면 고통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 그래서 인생 편집의 천재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을 잘 보내려고 노력하고, 연말을 잘 보내려고 노력한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새해부터 잘하자고 노력을 미뤄놓기보다, 
지금 이 연말을 잘 살아야 한다. 
공부를 게을리했던 학생, 가족에게 소홀했던 가장, 그리고 직원들에게 무관심했던 사장님, 
지금이 바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점이다.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시인함으로 구원받았던 강도 이야기처럼, 
인생의 모든 경험은 마지막이 중요하다.


 나는 내 인생의 PD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모든 좋은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각각의 기쁨을 재음미해보자!"
 
[출처] 惡魔(악마)의 편집, 天使(천사)의 편집_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행복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