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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읽지]  2021-02-04 #43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경제학 책을 읽다 눈물이 났다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  

진보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현실에 만족하기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세력이 스스로를 ‘진보’라 부른다. 불평등 문제에서 진보의 대안은 국가가 적극 개입해 재분배에 나서는 것으로, 보수의 대안은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으로 수렴해왔다. 많은 경우 경제학은 후자의 무기였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부부 개발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은 진보의 철학을 경제학이라는 렌즈로 풀어낸다. 이민자에게 막연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왜 노동시장에 수요-공급의 법칙을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지 논증한다. 무역의 편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특정 계층에 불러일으키는 고통을 직시한다. 무역이나 자동화로 타격을 입은 노동자들이, 경제학이 상정하는 것처럼 다른 장소와 일자리로 ‘쉽게’ 옮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본다. “경직된 경제에서는 자원의 ‘매끄러운 재배분’이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정부가, 국가가 뒤처지고 밀려난 이들의 고통을 경감시킬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무역이나 자동화의 타격을 입은 이들의 이주와 재취업을 촉진하며, 나이가 많아 이동이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선 원래 있던 곳에 머물면서도 살아갈 수 있게끔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 부유한 이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일이 경제성장을 가져다준다는 실증적 근거는 없다는 것, 영속적인 고도성장을 다시 불러올 방법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경제학은 우리가 더 인간적인 세계를 지으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게 하는 철의 법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책은 기후변화, 인공지능, 기본소득 등 경제학의 최신 쟁점을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유려한 문장과 유머도 큰 미덕이다. 저자들이 반복해 묻는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태도가 울림을 준다. “사회시스템의 일부가 징벌과 모멸을 실어 나를 때, 그것 때문에 움츠러들게 되는 것은 사회 전체다” “그들은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같은 문장을 경제학 책에서 만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경제학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책이다. 다음 문장은 평생의 지침으로 삼고 싶다. 

“나쁜 사상의 영향을 막기 위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신중하게 살피고, ‘자명’해 보이는 것의 유혹에 저항하고, 기적의 약속을 의심하고, 실증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복잡성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 잠깐, 648쪽짜리 이 책을 즐겁게 완독하고 싶다면 하단의 읽는 당신×북클럽 안내를 참조하세요..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하랄트 하르만 지음, 이수영 옮김, 
돌베개 펴냄 

“멸망한 문명이 걷던 길은 정말로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막다른 길이었을까?”

인류 문명의 ‘시원’은 어디인가? 많은 이들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그리스·이스라엘 등지를 떠올린다. 몰락한 고대문명 중 이들만 떠올리게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저자는 적었다. 문자·국가·이념·종교 면에서 서구에 영향을 준 문명만 조명된다는 것이다. 책은 ‘아웃사이더 문명’ 25개를 다룬다. 타 문명의 공격과 식민지배로 멸망했으나 이들 또한 문명사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성취가 기억되지 못하는 것은 후속 문명의 억압과 금지 탓이었다고 저자는 본다. 초기 인류부터 아마존 문명까지 연대순으로 실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수천 년 이른 아나톨리아 동부의 신전, 계급·가부장제가 아닌 평등한 사회 모델을 추구한 도나우 문명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많다.  

민간중국
조문영 엮음, 책과함께 펴냄 

“시장경제의 저류와 전통 농민 사이, 중국의 민(民)은 어디에 있을까?”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까. 중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더 어렵다. 이 책의 저자 13명은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 만나온 이들의 삶을 소개한다. 도시에서 품팔이하는 농민공, 지린성 ‘주먹’ 출신으로 서태지의 팬인 조선족 기업인, 아이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가족도 이민 가는 것이 중산층의 중국몽이라고 말하는 공립고교 교사, 시진핑 통치를 외부의 시각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연구원, 김치공장을 운영하다 사드 사태로 된서리를 맞은 조선족 사업가 등 나이, 성별, 계층도 다양하다. 친중이든 반중이든 국가로서의 중국이 아니라, 실제 중국인의 삶과 생각을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라는 부제가 맞춤하다.

김말룡 평전
이창훈 지음, 학민사 펴냄

“국회의원으로서 김말룡 활동의 하이라이트는 노동위원회 돈봉투 로비 사건의 폭로였다.”

부제가 고인의 삶을 압축한다. ‘노동자를 위해 살아온 한평생.’ 김말룡. 1927~1996. 1970년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 세 번이나 출마했지만 중앙정보부의 ‘위원장 선출 공작’으로 매번 낙선했다. 서울 명동성당 한 귀퉁이에 그가 차린 명동노동상담소는 힘없고 ‘빽 없는’ 노동자들의 사랑방이었다. 민주당 후보로 제14대 국회에 입성했다. 한국자동차보험이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국정감사를 막기 위해 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렸으나 김말룡만이 돈다발을 돌려보내고 돈봉투 로비를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동료 의원들에게는 따가운 시선을, 노동자와 서민들에겐 꽃다발 세례를 받았다.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전해투 동지’들이 적지 않은 성금을 보태 출간된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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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사무실 안에 있으면 모든 게 그렇고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자크는 이 책을 1841년에 썼다.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의 명멸을 뒤로하고, 루이 필리프 왕조의 탄생을 목도한 뒤의 일이다. 책은 사회에 몹시 비판적이지만, 이전 시대 프랑스에서 나왔던 저서들처럼 혁명적 열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왕과 귀족이 누리던 지위를 인계받은 공무원 집단을 그는 매우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생리학’이라는 제목처럼 그는 공무원이라는 ‘종’을 지사, 실장, 사환 따위로 나누어 분석한다. 책을 19세기 프랑스 공무원 사회에 대한 스케치로만 여긴다고 하더라도 특유의 문체 덕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공무원들에 대한 발자크의 묘사 기저에는, 막 태동하기 시작한 관료 사회의 얼굴이 보인다. 당대에는 새로운 현상이지만 오늘날에는 익숙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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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과 동네책방이 손잡고 북클럽을 시작합니다. 전국 31곳 책방 가운데  당신만의 친구책방을 찾아보세요. 만남이 귀해진 시대, 책을 통해 세상이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준비했습니다. 

  • ① 먼저 북클럽을 함께할 나의 친구책방을 찾아 선택합니다
  • 친구책방을 통해 함께 읽을 책 3권을 구매하고 집으로 배달받습니다.
  • ③ ②의 책을 친구책방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습니다.
  • <시사IN>이 매월 주최하는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합니다.
  • ⑤ 북클럽을 완주하고 수료증을 받습니다(요청 시).    

💥 천관율 기자의 오픈특강에서 저자 직강 북토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습니다. 

 “네? 저녁 9시에 모이자고요?” 

처음엔 듣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기자들은 야행성 활동에 익숙한 편입니다. 그래도 외국에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밤 9시에 약속을 잡는 일은 드물죠. 그것이 아무리 줌 화상회의라도요. 
책방지기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책방을 하는 분들은 야간 모임에 익숙하시더군요. 하루 영업이 끝나야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강도 높은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손님이 뚝 끊긴 이즈음에도 책방지기 대다수는 영업 제한 시간인 9시가 되기까지 차마 책방 문을 닫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1월 초 뉴스레터에서 잠깐 예고해드린 북클럽은 책방지기들과의 이런 야간 모임을 몇 차례 거친 끝에 탄생했습니다. 이름하여 읽는 당신×북클럽입니다. 지난해 책 읽는 독앤독이라는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사IN과 동네책방 사이에 느슨한 네트워크가 생긴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기사나 뉴스레터를 통해 책과 책방 정보를 소개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시사IN>과 동네책방 독자들이 책으로 연결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는 상상이 급기야 북클럽으로 이어졌달까요. 
북클럽 모델을 처음 제안한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는 2000년대 초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졌던 <앵무새 죽이기> 읽기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시장의 제안으로 이 책을 함께 읽게 된 시카고 시민들이 동시에 공통의 주제를 고민하면서 공동체적 가능성을 실험했던 게 인상적이었다면서요. 위드코로나 시대, 책으로 연결되는 읽기 경험이 과연 우리에게도 가능할까요? 

먼저 올 상반기 책 세 권을 함께 읽는 것으로 그 실험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책방지기들이 치열한 토론 끝에 고른 세 권입니다(위 사진 참조). 공정, 가난,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는 이 책들을 함께 읽다 보면 팬데믹이 드러낸 우리사회의 민낯도 자연스럽게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클럽에 관심 있는 독자는 먼저 세 권의 책을 함께 읽어나갈 동네책방을 골라보세요. 전국 31곳 책방이 ‘읽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동네책방이 가장 좋겠지만, 가까운 책방이 없어도 너무 아쉬워하진 마세요. 비대면 시기가 길어지면서 북클럽에 참여하는 동네책방 상당수가 온라인 책모임을 병행하고 있으니까요. 요즘 일본에는 ‘관계인구’라는 말이 등장했던데요. 이번 기회에 평소 관심 있던 지역, 관계 맺고 싶은 지역 책방을 두드려보는 것도 흥미로운 선택일 듯합니다. <시사IN>도 매달 열리는 온라인 북토크와 회원 전용 뉴스레터 발송으로 ‘읽는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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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로 다음호 뉴스레터는 쉽니다. [주말에 뭐 읽지] 독자들께 미리 명절 인사 올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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