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 21그램 권신구 대표 인터뷰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건강한 삶과 아름다운 이별"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1그램이 무슨 뜻일지 한참 생각했다.
21그램은 ‘영혼의 무게’를 의미한다. 반려동물은 사람과 외모는 다르나 영혼의 무게는 같은 친구이자 가족이다. 차별 없는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어린 시절 사고로 죽은 반려견을 땅에 묻어준 적이 있다. 잘못된 방법인가?
현행법상 동물 사체는 생활폐기물이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Yes’다. 합법적인 방법은 세 가지다.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배출하거나 동물병원에 맡겨 의료폐기물로 처리하는 것, 동물 장묘업 허가를 받은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키우던 동물이 죽으면 집 근처 화단이나 뒷산에 묻어 애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데려왔다가 며칠 안 돼 죽으면 엉엉 울며 묻어주는 일도 흔하지 않았나.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더불어 반려동물 인구가 크게 늘면서 도심 지역의 동물 사체 처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유난 떤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한 게 현실 아닌가?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관련 산업 규모는 2027년 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장례율은 겨우 20퍼센트 남짓이다. 반려동물 사체 처리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교육이 부족한 탓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는 반려동물 장례 문화가 성숙 단계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정부가 운영하는 공영 장례식장과 이동식 장례 서비스가 활성화돼있어 장례율이 90퍼센트를 웃돈다. 이동식 장례 서비스가 불법인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21그램을 시작한 이유다.

21그램이 제시한 새로운 장례 문화는 무엇인가?
국내 동물 장묘업은 보통 가족 사업 형태로 이뤄져 있고 소규모 영세 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시설이 낙후한 것은 물론, 동물병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줘가며 운영하는 관행이 남아있다.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 활동에 한계가 있다 보니 보호자에게 필요 없는 장례 물품을 강매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는 결국 장례식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21그램은 2014년 설립 때부터 부가세를 포함한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또 원하는 장례 방식을 보호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한다. 기존 불법 리베이트 고리를 끊기가 참 어려웠는데 동물병원에 찾아가 설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한 덕분에 지금은 많은 곳에서 21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하고 있다.
반려동물 장례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
24시간 상담 전화가 열려 있어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즉시 연락하면 된다. 온라인 예약도 가능하니 하루나 이틀 자택에서 충분한 작별 시간을 보내고 장례를 진행해도 된다. 장례식장에 방문해 담당 지도사와 원하는 장례 방향을 상담한 후 염습(殮襲)을 하는데 이때 차량이 없거나 심리적으로 운전이 어려울 것 같으면 운구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염습 후에는 단독 추모실에서 제한 시간 없이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충분한 애도 시간이 장례 이후 펫로스(Animal loss) 증후군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화장이 진행된다. 보호자는 이 모습을 단독 참관실에서 지켜볼 수 있다. 화장이 끝나면 지도사가 유골을 수습해 수작업으로 분골(粉骨) 후 유골함에 담아 보호자께 인도한다.

반려동물 장례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 보니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다.
반려동물 사체 매장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홍보와 단속이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게다가 최근 반려동물 장례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허가 없이 운영되는 불법 화장장까지 늘어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반려동물 장례를 검색하면 합법과 불법 장례 업체의 광고가 뒤엉켜 보호자들의 혼란을 가중하는 실정이다. 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정부를 포함한 업계 그리고 보호자 분들의 노력이 한데 모여야 한다.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최근 정부에서는 반려동물과 유기 동물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반려동물 등록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말소에 대한 관심 또 의무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물론 현재도 반려동물 사망 시 거쳐야 할 말소 절차가 존재하긴 하나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또 말소 절차를 밟으려면 직접 해당 구청에 방문해야 하는데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많은 보호자가 애써 외면하고 있다.반려동물이 물건이 아닌 하나의 생명임을 인정하고 입양에서부터 장례에 이르는 생애 주기를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21그램은 장례식장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e 예약 관리 시스템’을 직접 개발해 전국의 합법 반려동물 장례식장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현재 이 시스템을 통해 보호자가 말소를 직접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말소 업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건축가 출신으로 안다. 왜 반려동물 사업에 뛰어들었나?
누군가의 꿈을 공간으로 실현해주는 건축업의 매력에 빠져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내 꿈도 실현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그린 건 아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었음에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다. 우연찮게 반려동물 장례식장 의뢰가 들어온 게 꿈의 시작이었다. 공간 설계를 위해서는 구조와 운영 방식을 알아야 하는데 당시 전국 열 개 남짓했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둘러보면서 낙후한 시설과 서비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우리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머무르고 싶은 공간을 짓겠다’라고 다짐했고, 2014년 이윤호 이사와 21그램을 설립했다.
죽은 반려동물과 유가족을 상대하면서 힘든 순간은 없나?
하루에 수십 명의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이별을 돕는 일은 심리적,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21그램 구성원 모두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유가족분들이 장례를 치르고 남겨주는 후기와 감사 인사가 늘 큰 힘이 된다. 최근 반려동물 박람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마침 한 달 전쯤 장례를 치른 보호자가 우리를 알아보시고는 구성원들에게 애써 감사 인사를 해주신 것도 모자라 손수 음료수를 사다 주셨다. 이런 경험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좋은 서비스를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1000만 반려인 시대,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도 늘고 있다.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든 생명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랑하는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준비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잃은 후의 슬픔이 쉬이 줄어들 리 없다. 하지만 준비 없는 이별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와 고통을 준다. 그래서 노령 반려동물의 경우 예상되는 죽음과 이별에 대한 준비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보호자가 당황하지 않고 아이와의 이별과 슬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이때 보호자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보호자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배려가 없다면 자식과 같은 반려동물의 죽음은 위로받지 못하는 개인의 일로 치부되고, 펫로스 증후군은 더욱 심각해진다. 펫로스 증후군을 이겨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잘 준비된 이별의 과정을 통한 보호자의 회복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따뜻한 위로다.
지금 21그램은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에 집중해 보호자가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미리 준비하고 잘 떠나보낸 뒤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나아가서는 이별을 겪은 보호자와 유기 동물을 연결해 다시 한번 반려인으로서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펫로스 증후군의 극복과 유기 동물 증가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게 21그램의 장기적인 목표다.
지금, 깊이 읽어야 할 것을 추천해 달라.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건강한 삶과 아름다운 이별.” 21그램의 슬로건이다반려동물을 잘 키우는 것 못지않게 잘 떠나보내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가족을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21그램이 펫로스 증후군 극복에 주안점을 두는 이유기도 하다마침 반갑게도 이학범 수의사가 관련 책을 냈다《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이다시중에 나온 반려동물 장례 혹은 펫로스 증후군 관련 책은 대부분 외국 도서의 번역본인데 모처럼 국내 실정과 보호자들에게 적합한 책이 출간된 것 같다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길에서 21그램이 이 책과 함께 보호자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전찬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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