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의 주장에 탄복한 사람들이 책장을 덮은 후 무엇을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하다

볕이 부쩍 따뜻해져 어쩐지 자꾸 마음이 부푸는 요즘입니다.  안녕하세요, 두 번째 안부 전합니다. 〈시사IN〉 미디어랩에서 일하는 장일호입니다. 

저는 최근 연이은 성소수자의 부고를 받아들고 자주 마음의 무릎이 꺾이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럴 때 결국 기대는 곳은 언제나 책입니다. 김현 시인의 시집 호시절〉(창비, 2020)에는 '생선과 살구'라는 시가 있습니다. 퀴어 인권활동가 곽이경씨의 말에서 출발한 시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여성이자 성소수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습니까/ 반으로 갈라진 것을 보면/ 소금을 뿌렸다 

음악교사였던 김기홍씨와 군인이었던 변희수 하사를 떠올리며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오월의봄, 2019)도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성소수자 친화적 직장을 만들기 위한 다양성 가이드라인'이라는 자료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어 동료들과 나눠 읽기 위해 갈무리 해두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링크를 나눕니다. 

'읽는 당신 x 북클럽' 선정도서를 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책이 아쉽게 탈락했습니다. 제가 아까워했던 책 중 한 권은 망명과 자긍심〉(현실문화, 2020)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본문은 말할 것도 없고, 추천사를 쓴 푸에르토리코 출신 작가 아우로라 레빈스 모랄레스의 글도 여러 번 읽을 정도로 무척 좋아합니다. 그는 "당신은 그렇게 많이 부러지고, 그렇게 많이 잃고선 어떻게 살아가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고 적습니다. 

"부서진 것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이야기예요." 

서점은 그런 '온전한 이야기'들이 책의 모양을 하고 누워있는 곳입니다. 저는 북클럽에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이 책을 통해 지역사회와 새롭게 관계맺기를 무엇보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북클럽이 시작된지 2주가 조금 지났습니다. 어떠신가요. 기자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낯가림이 심한 편인 저는 낯선 사람, 낯선 장소와 기꺼이 함께 하기를 선택한 여러분의 용기를 한껏 부러워하는 중입니다. 

국어교사 서현숙씨는 〈소년을 읽다〉(사계절, 2021)에서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마음을 들키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씁니다. 밑줄에는 책을 읽은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기 마련이라고요. 저는 또 함께 읽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다음 부분을 뭉클한 마음으로 밑줄 그었습니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 마음을 연다. 주변의 일들에 함께 물음표를 꽂아본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중략)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면서 자신을 돌보며 사는 연습을 천천히 한다."

북클럽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어가던 2월의 어느 날도 떠오릅니다. '(유료 북클럽) 모집이 잘 될까' 긍긍하는 여러 책방지기님들에게 〈섬에 있는 서점〉(문학동네, 2017)의 한 구절을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라는 문장이었지요.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문장은 오늘, '읽는 당신 x 북클럽' 회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책인 〈공정하다는 착각〉처럼 '유명한' 저자의 책을, 저는 북클럽이 아니었다면 챙겨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 능력주의의 수혜자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고, 책이 던지고 있는 질문('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이 그렇게 충격적인 화두인가도 의문이었습니다. 

책은 제 예상과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자가 매우 '안전한 논의'를 반복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있지는 않은지, 알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바꿀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그런 절망감을 내내 곱씹었습니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사라진 자리에 고인 '공정'이라는 망령은 우리의 시대정신이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이 책은 그래서 함께 읽을 이유가 있는 책일지도 모릅니다. 

4월1일(목) 오후 7시30분 김정희원 교수(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가 준비한 두 번째 북토크가 열립니다. 능력주의가 우리에게 안기는 굴욕을 넘어 연대로 가는 울퉁불퉁한 길을 함께 가보자고 손 내미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아래는 김정희원 선생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과 〈시사IN〉 좌담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기사입니다. 
나는 샌델의 주장에 깊이 감화된, 혹은 그의 주장에 탄복한 사람들이 그래서 책장을 덮은 후 과연 무엇을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무언가를 바꾸는 실천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공정은 우리 시대의 '블랙홀'이다. 일단 불공정 논란에 불이 붙으면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김정희원 선생님이 〈공정하다는 착각〉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해주신 책은 능력주의는 허구다〉(사이, 2015)입니다. 능력주의를 "교과서적으로 개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고른 〈공정하다는 착각〉의 '짝꿍책'은 능력주의와 불평등〉(교육공동체벗, 2020)입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문제의식이 '남의 나라' 이야기라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가능하다면,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저자가 여럿인 책이라 글마다 다소 편차는 있지만 우리가 발붙이고 서 있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라 더 밀접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특히 이유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기획운영위원의 글을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능력주의에 대한 질문을 새로 써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매우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의 문제를 대학(입시)의 문제, 청년 세대의 문제, 또 그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젠더와 인종, 비장애 중시주의의 문제, 노동의 가치와 위계의 문제로 이야기하고 국가, 시장, 기업은 이 구조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하는지 물어야만, 능력주의의 체제성을 고려한 관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질문과 논의가 뒤따를 수 있다." 

그밖에 제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검토한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참고문헌'이 있으시다면 아래 설문에 적어주세요. 다음 뉴스레터를 통해 나누겠습니다. 
  • 특권〉(후마니타스, 2019)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 세인트폴 학생들이 어떻게 '신엘리트'로 키워지는지를 다룬 책으로 연구자가 직접 교사로 일하면서 관찰한 결과가 담겼습니다. "학생들은 세상을 평등의 공간으로 여기기보다 가능성의 공간으로 여기도록 배운다"라는 문장은 얼마나 서늘한지요.
  •  우리 아이들〉(페이퍼로드, 2017) 기회 격차가 정치적 평등성을 손상시키고, 그 결과 민주적인 정당성도 훼손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에 우리 또한 연루되어 있음”을 양적 연구로 증명해냅니다. 
  • 능력주의〉(이매진, 2020) '능력주의'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의 책으로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상 '예언서'라고도 할 수 있겠죠. 
  •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글항아리, 2018) 똑똑함의 숭배〉(갈라파고스, 2017) 그리고 김정희원 선생님이 추천해주신〈능력주의는 허구다는 읽고 있습니다.  

두 번째 뉴스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당부하고 싶은 말 등 '답장'을 남겨주세요 . 4월1일(목) 오후 7시30분 열릴 두 번째 북토크 질문도 받습니다. 북토크 질의응답은 사전 질문을 우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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