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의 딸〉(감독 김정은)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13 〈경아의 딸
6월 29일 오늘의 큐 💡   
Q. 둘 다 잘못했다구?👿
님, 혹시 형제자매가 있으신가요? 자주 투닥거리며 자라오셨다면 이런 말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둘 다 잘못했으니까 그만해!" 물론 둘 다 잘못할 때도 있긴 하지만, 어떨 땐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얘가 한 거라니까요?😫"
어린 아이들이나 들을 것 같은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이 너무 흔해진 것 같아요. 특히나 성범죄의 경우엔 유독 많이 사용이 되죠. 걱정처럼 포장했지만 사실상 '너도 잘못이 있네'의 의미를 지닌 말들이 세상에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항했어야지, 니가 받아준 거네, 왜 거기 있었어?...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경아 역시 딸 연수에게 이런 말을 하고 맙니다. "조심했어야지"

하지만 '조심'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연수의 남자친구가 몰래 찍어 유포한 동영상. 행위의 주체는 정확하지만 딸 연수와 엄마 경아는 서로를 향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로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보다 강한 두 사람은 실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보려고 합니다. 한 여성의 싸움은 모든 여성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영화 <경아의 딸>을 소개할게요.👩‍👦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가 얼마나 무방비하게 행해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체코 영화 <#위왓치유>도 소개해 드릴게요💻 흥미로운 방식의 다큐멘터리입니다. 20대 여성 세 명을 섭외해 10대로 위장시키고 온라인 채팅에 들어갔을 때 이들은 어떤 메시지를 받게 될까요? 열흘동안 무려 2500여명의 남성들이 그들에게 성적 행위를 바라고 접근합니다.
 
<경아의 딸> 속 연수의 남자친구가, <#위왓치유>의 채팅창 속 2500여명의 남성들이 정말 '미리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요? 두 영화 모두 피해자에게 향하는 화살들이 얼마나 근거 없고 무책임한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디지털 성범죄의 잘못은 명확히, 한쪽에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 안녕이 깃들기를 바라는 오늘입니다🍀

용서를 열망하는 세계에서

나는 당신이 용서에서 해방되길 빈다

〈경아의 딸


근래 들어철저한 오독이길 바랐던 사건이 참임에 통감하며 기상한다이제 두텁게 불러오던 여성의 이름이 트위터 트렌드에 있으면 우선 걱정이 된다씻는 공간에 가면 벽과 벽이 모이는 선 부근을 특히 길고 꼼꼼히 보게 된다설령 나의 집이어도 그렇다심야의 귀가는 낱낱의 기척마다 놀라게 된다나열한 행동은 성정의 이유만은 결코 아니기에나 단독에게서 이유를 찾는 독해 방식에선 이해될 리 없다내가 부러 조심하여도 공포 혹은 범죄가 절멸하는 건 아니니까여성인 친구들이면 다 알고 해봤을 행위들이 공유감이 유독 욱신거리게 슬픈 요즘이다범죄를 싣는 기사마저 피해자에게 이유를 뜯어내고힐난하는 어투가 빈번하기 때문이다심지어 제목엔 피해자의 신분만 드러내는 문법이 점점 늘어오히려 범인의 몽타주는 휘발된다범인은 그렇게 간편히 은닉하여 있지도 않은 유약함을 명목으로 기어코 감형된다이 반복이 거르지 않고 생기는 게매 기상마다 슬픈 구역감을 부른다세계는 가해 행위에 지나치게 이입해 어떻게든 상냥하게 구제해주려 하고 있다. 나의 분노는 이렇듯 꺼내어도 헤집어도 가득 찰박임에도, 무감한 말의 양에 눌리는 것만 같던 때에 다행히 〈경아의 딸〉을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입게 된 연수와 엄마인 경아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경아의 딸〉은 피해자에게 감내하라며 다그치는 모순과 폭력의 모든 면면을 꺼내 담았다상현(가해자)은 이별을 보복하기 위해 연수의 영상을 지인에게 보냈으며사이트에도 업로드했다영상은 경아에게도 전송되었다경아는 영화의 도입부터 연수에게 간수를 능숙히 하길 원한 인물이다. (...) 경아의 당부에는 물론 우려가 담뿍 있으나 크게 다정히 들리진 않았다너도 조심히 잘해야만방지가 가능하다는 압박이 번번이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범죄가 모녀 관계를 와해시키는 요인으로 등장하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그렇지만 경아가 연수에게 말한 언어가 가해였음을 인지하고 사과하는 장면, “여태 내가 걔 덕에 살았어.” 새삼 연수가 편을 해준 기억을 호명하는 장면, 폭력을 숱하게 한 남편의 잔여가 든 물건을 끝내 몽땅 버리는 장면 등은 아주 다른 상성이어도, 안녕을 소망하는 모녀 관계를 등장시켜 가능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연수와 경아가 서로에게 애써 횡단하려는 의지가 읽히는 장면마다 무척 좋았다. 연수와 경아를 무리하게 화해시키지 않아 더 좋았다.


종종 연수에게 대사로 너무 치닫게 밀어 세우는 장면은 (쓰인 이유를 불문하고아쉽기도 했다그럼에도 꼭 쓰였어야만 하는 서사임을 확신할 수 있고이 시기에 볼 수 있어 기뻤다연수와 경아가 꼭 듣길 바랐던 말이 정확한 대사로 흐르는 장면마다 얼굴을 가리고 많이 울었다특히 연수가 어떤 일의 탓을 본인에게 돌리는 습관을 가진 엄마에게 엄마 탓 아니야내 탓도 아니고란 대사를 하는데문득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들였을 다정한 노고가 읽혔다그만큼 꼭 극장에서 모두가 들었으면 하는 문장이었다영화의 마지막에 끝까지 해보려고’ 한다는 말이 있어 가장 기뻤다그건 연수의 대사였지만영화의 말로도 들렸다긴 텀이 있더라도 부디 당신이 일하길 바라고죄는 영영 용서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무엇보다 살아내 주어 고맙다고 말이다그러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충만하다. <경아의 딸>에는 파티션 너머 동료 선생님, “소송 준비 같이 해요” 다정히 힘을 보탠 변호사연수의 담당 학생 등 여러 여성 인물이 나와 본인의 방식으로 연수에게 안부를 묻는다그 안녕의 힘은 예상보다도 더 컸고 셌다.

이 영화 덕분에 ‘합의’란 말의 잔혹성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더 알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려 한다. 다수의 문법이 무뎌진다 한들, 당신을 살리려고 힘껏 외치는 안녕의 언어는 절대 꺾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후에 태어날 너의 기상은 덜 슬프길 기원하며 매일 기꺼이 우려하고, 발화하고, 맞설 것이다.


인디즈 김해수

<경아의 딸> 감독 김정은|드라마|119분|15세이상관람가

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딸 연수는 독립한 뒤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가 유출한 동영상 하나에 연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버리고 
이 사건은 잔잔했던 모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키는데…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니 죄를 내가 알리리다 💻 

기록되는 세상 속에서

〈#위왓치유

 

공중화장실이 무섭다. 공용화장실이면 더욱 그렇다. 주체는 알 수 없지만 목적은 분명한 검은 구멍을 발견할 때마다 휴지를 밀어 넣었고, 붉은 셀로판지를 플래시 앞에 대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하지만 안전은 휴지와 셀로판지로 완성되지 않았다.

불안은 도처에 있고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조심해’라고. 하지만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우리가 조심하면 되는 일일까? 휴지를 밀어 넣고 셀로판지로 확인하고 짧은 옷을 입지 않고 밤늦게 혼자 다니지 않으면 해결될까? 불법 촬영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영화 <경아의 딸>에서 ‘경아의 딸’ 연수는 교사로 재직 중이다. 연수는 경아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가족,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모녀는 하나의 사건, 연수의 전 남자친구 상현이 그들의 성관계 동영상을 연수와 경아에게 전송하고 인터넷에 업로드 한 일을 기점으로 혼란해진다. 돈독했던 모녀의 관계도 어긋나고, 경아는 ‘그런 동영상을 왜 찍냐’며 조금씩 연수를 책망하기 시작한다. 상호동의하에, 연인관계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행위는 범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 영상을 유포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다. 사건으로 인해 연수는 매체를 통해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용도로 사용된 ‘핸드폰’은 범행도구이자 2차 가해 도구로 변질한다. 한때 가장 사랑했던 연인이 자신을 궁지에 몰고, 평생 낫지 않을 상처를 낸 것이다.

 

기록은 사람을 위로하고, 동시에 상처 입힌다. 기록 자체가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기록 자체가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매체가 일상화되고 인터넷이 생활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온라인 성범죄의 범주가 방대해질 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추려내고 검거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따른다. <경아의 딸>이 불법 유포의 피해를 담고 있다면 <#위왓치유>는 언택트 시대의 온라인 성범죄를 다루는 작품으로, 세트장을 꾸미고 12살 여성으로 설정한 페이크 계정을 오픈해 유저의 접촉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계정을 운영하는 열흘 간 총 2,458명의 남성 유저들이 접촉해왔으며 사진 요구, 협박 등 온라인 범죄가 발생했다. 누군가는 12세(로 꾸민) 여성들에게 기록된 몸과 기록할 몸을 원했다.

기록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조심해’를 외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조심해서 되는 세상인지도, 조심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 어떤 것도 피해자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다가 그런 일을 당했어’가 아니라 ‘왜 그런 짓을 벌였어’를 물어야 한다.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라고 연수가 경아에게 이야기 한 것처럼.

 

인디즈 이예본

<#위왓치유> 감독 바르보라 찰루포바, 비트 클루사크|다큐멘터리|체코|104분|청소년관람불가
평범한 집처럼 꾸며진 3개의 세트장,  12살로 설정한 페이크 계정을 만들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선 배우들. 
계정 계설과 동시에 전 세계 남성이 접촉해왔으며 열흘 간 나체사진 요구, 가스라이팅, 협박, 그루밍 등을 시도하는 남성은 총 2,458명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 중 21명과 대면하게 된다. 
범죄의 형식이 온라인으로 확산된 언택트 시대. 성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동·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충격적인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한다. 가해자들의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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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경의 또다른 얼굴   
경아의 딸, 연수를 연기한 하윤경 배우는 이미 많은 분들께 익숙한 얼굴이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를 통해 눈도장을 제대로 찍고 최근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단편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통통 튀는 단편작 <저 ㄴ을 어떻게 죽이지?>에서도 하윤경 배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번주 토요일,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2의 '방효린 배우 특별전' 섹션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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