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어.”  팩토리의 홍보라 대표 (이하 보라보라)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정말’은 진짜 정말인 게, 팩토리가 처음 만들어진 2002년부터 최근까지를 얼추 더듬어보면 주제, 분야, 장르, 프로그램, 표현, 공간, 심지어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작은 예술공간이 앞구르기 옆구르기 하며 만들어낸 촘촘한 시도는 대체 그 안에 무슨 에너지가 일었기에 가능했을까 싶다. 사진과 짧은 글들로 돌아보면 모두가 반짝이는 순간들이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으고, 시행착오를 겪고, 울다 웃으며, 밤을 보내고, 포옹했는지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본 인터뷰 시리즈는 팩토리 안팎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또한 앞으로 만들어나갈 풍성하고 아름다운 그간 함께 그린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를 기대하며 기록하는 것이다. 당신과 우리, 지난날과 앞으로의 시간, 그리고 지금 여기 모두로 열려 있기를 바라며. 

첫 번째 인터뷰이는 팩토리의 다정한 이웃, 이탈리안 가정식당 ‘두오모’의 허인 셰프님이다. 두오모에서 식사할 때면 식전 빵을 기다리는 동안 식탁 앞에서 음식을 먹거나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나의 식전 리추얼이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하다. 도무지 집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드레싱이 살포시 얹힌 계절 샐러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파스타, 엄마가 처음 해준 이유식은 아마도 이런 질감과 온도였을까 싶은 뇨키를 곧 만날 텐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바깥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두오모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이 순간만큼은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스스로는 아주 작은 반경에서만 활동할 수밖에 없는 한정된 에너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식사하는 모든 이에게 정성 담은 음식과 따뜻한 지붕과도 같은 미소를 안겨주는 허인 셰프님. 팩토리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은 어떤 것인지 나눈 이야기를 두 회에 걸쳐 전한다.
인터뷰. 이경희
 오늘 셰프님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팩토리에 왜 그렇게 마음을 보태시고, 또 이곳을 살펴주시나’ 하는 것이에요. 
처음엔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몰랐을 거야. 팩토리도 이렇게 될 줄 몰랐겠죠. 이탈리안 식당이 동네 백반집, 구내식당이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 이 동네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우리가 일이 같은 것도, 뭐로 엮인 것도 아닌데. 결국 엮였잖아요. 팩토리와 두오모의 변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기대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분명 특별한 관계. 
어찌 보면 팩토리와 두오모는 서로의 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를 거예요. 하지만 그 흘러가는 흐름을 보면 지지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나게 들거든요. 이 동네 수많은 갤러리 중 왜 하필 팩토리일까를 나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사전 질문지를 보고) 나도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이유가 뭘까... 뭐지? (웃음).

ⓕ 팩토리를 처음 방문했던 때가 기억나시나요?
그렇진 않아요. 두오모가 2008년에 처음 공사하던 두 달 동안 제일 많이 갔던 카페가 엠케이투(mk2)와 고희였어요. 그때 동네에 카페는 그 둘밖에 없었고, 같은 해에 다 오픈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팩토리가 그 사이에 있었는데, 그땐 ‘여기 갤러리가 있네’ 정도였죠. 
그러다가 두오모 처음 오픈했을 때는 ‘이 손님들이 다 어떻게 여길 알고 오는 걸까’ 싶었어요. 그땐 이 동네에 아무것도 없었고, 다들 삼청동에서 놀 때고, 지하철역에서도 800미터나 떨어져서 왜 이렇게 머냐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거든. 그런 중에 ‘이 동네 사람일 거 같다’고 느낀 사람들은 모두 팩토리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보라보라. ‘저 이는 뭐 하는 사람일까’ 하고 궁금한 정도였는데 그도 역시 팩토리 사람이었던 거지. 
오픈 직후에는 두오모가 잡지에 소개되고 우리가 인터뷰 하는 게 신기했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릴 알릴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3년 정도 지나니 동네 사람이 보였고, 두오모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 자주 오던 이들이 지금도 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암튼 그제야 ‘두오모가 동네 식당이 되면 좋겠다’ 했어요.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순간이 오더라고요. 
초기에는 우리와 취향이 맞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3년 지나고 ‘동네 식당이 되어가는구나’ 하던 차에 맞은편에 ‘퍼블릭’*이 생겼죠. 그러고서 커뮤니티라는 게 더 선명히 보였어요. 여기서 1차 끝내고 건너가면 좋은 사람과 새로운 동네 사람을 만나게 되는. 그런 연결이 좋다고 생각했죠. (*두오모 맞은편 영화제작자 구정아가 자매와 운영하던 펍)
ⓕ 셰프님은 자신만의 고요한 영역이 있는데 그 고요함이 무색하게 주변에서 시끌벅적 따르는 이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이곳 이름인 ‘두오모’처럼 사람들을 덮어주는 든든한 지붕 같달까요. 사실 그게 끌고 가는 것보다 더 강한 거잖아요.

아, 그런가. 이불을 덮어주는 것처럼? ‘들어와! 이불 밖으로 나가면 얼어 죽어!’ 같은 (웃음). 그건 사실 의도했다기보다 내 성향인 거 같고, 억지로 모양을 만드는 걸 안 하려고 많이 한 거 같아요. 그전엔 기획 쪽에서 수퍼바이저를 했는데 너무 바쁘고 힘들었거든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다리는 게 이젠 좋아요. 시간이 지나도 몰라주면 모르는 거고. 설득의 기준은 없는 것 같아요.
ⓕ 최근 제가 드릴 부탁이 있다고 잠시 찾아뵈었잖아요. 그런데 셰프님이 저를 딱 보자마자 ‘뭐든 얘기해봐. 힘든 일이면 돈이라도 빌려줄 수 있어’ 이런 눈빛을 보내주셔서 찰나에도 혼자 몰래 감동했어요. 아주 짧은 순간에도 사람의 속을 다 내어놓고 기대고 싶게 만드는 힘이랄까요.
많은 시간이 지나며 나도 더 많이 부드러워졌을 거예요. 긴장감은 줄고, 노련함은 커지고. 
나는 식당을 운영해온 동안 ‘음식을 하는 일에 매우 자신 있어’ 하는 순간이 없었어요. 늘 너무 조심스러워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했던 일도 아니고 이제 겨우 13년 차잖아요. 40, 50년 하신 분들에 비하면 너무 아기인 거예요. 아직도 ‘셰프’라는 말을 듣는 게 간지럽거든요. 그건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게 한순간도 마음을 놓기가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걸 너무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꼭 사고가 터지거나 삐끗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러다 보니 낮은 자세가 되죠. 나를 보여주고 내세우는 일들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항상 ‘아직은 아니야’ 했던 것 같아.
ⓕ 두오모 운영이 10년을 넘었는데도요?
맞아요. 항상 무서워요. 그런데 이런 마음은 팩토리도 가지고 있을 거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고, 막 자신감 넘치고, 뭘 해도 돼, 하는 생각은 오히려 들지 않을 것 같거든요. 작년이랑 올해 우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코로나도 있었지만 그것 말고도 여러 의미로요. 다들 매 순간 노력하며 10년, 15년을 넘겼는데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메뉴를 만들 때마다 왜 이렇게 힘든가 싶은 거예요. 그리고 ‘갈수록 무겁다’ 싶으니 이걸 끌고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너무 잘하는 새로운 식당도 많고, 반짝반짝하는 데도 너무 많잖아. 내가 그걸 따라가겠다는 생각은 이제 하지 않지. 우리도 나름의 패턴이 생겼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겁이 나는 때가 된 거예요.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한 이 동네의 음식점, 갤러리, 카페들이 같이 버텨주길 바라는 거죠. 아마 보라보라도 내게, 나도 보라보라에게 그러할 테고. 작년은 특히나 ‘이게 이제 끝인가, 싶을 만큼 코로나를 돌파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단순히 빚을 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너무 고단했죠. 그때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두오모 친구들에게도 얘기했어요. ‘이렇게 가서는 내가 한두 달 이상은 못 버틸 것 같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놀라지 말아라.’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서포트를 해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이 동네 사람들이었어요. 작년 한 해는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문 닫았을 거예요. 근데 단골들이 돌아가면서 계속 와준 거지. ‘얘들 안 없어지나’ 이런 것처럼 (웃음). 이게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한, 너무도 복잡한 상황이거든요. 그 과정에서 팩토리도, 엠케이투도 힘이 많이 됐지. 내 마음이 팩토리 마음 아닐까.

ⓕ 그럼 팩토리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팩토리에서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어떤 거였나요?
〈부엉학교〉였어요. 그게 사람을 모아주는 거잖아요. 게다가 매회 주제가 있으니 그 주제를 좋아하고 관심 있는 사람만 모이니, 자연스레 평화로웠던 거 같아요. 한번은 내가 가서 음식 설명도 했죠?
 저도 부엉학교에서 셰프님을 처음 뵈었어요. 그때 ‘오늘의 음식’을 소개해 주시는데, 너무 멋있으신 중에 차가운 도시 사람 이미지여서 다가가기 조심스러웠거든요. 근데 또 다시 봐도 멋있어서 흘끔흘끔. 그때와 지금 셰프님의 온도 차는 꽤 나요.
맞아요. 그리고 그때는 내가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을 때였어요. 그래도 당시 보라보라 부탁을 받아 거절하지 않았죠. 어떤 모임에 나선 게 아마 그게 처음일 거예요. 이후 팩토리에서 마켓 하면 참여도 하고. 그렇게 흐르며 나도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진 거지. 
 라보라가 사람을 잘 끌어내는 힘이 있나 봐요.
맞아요. 엮기도 잘 엮고, 판을 만들어 보여주는 역할도 잘하잖아. 보통은 나를 중심으로 동그라미를 만드는데, 보라보라는 그렇지 않아. ‘여기 조재원이 있고 저기 허인이 있으니, 이쯤에서 모일까?’ 하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을 누구와 이렇게 붙여줘서 요런 일을 해야겠다’ 하고 머릿속에 기획이 막 굴러가나봐 (웃음).

 팩토리가 기획 제작한 에디션 중 가장 좋아하거나 잘 쓰고 있는 ‘팩토리 에디션’이 있으신가요? 보라보라에 따르면 허인 셰프님이 에디션 최대 구매자시라고. (웃음)
나는 다 잘 쓰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많이 샀나? (웃음). 
근데 기획이 정말 좋았고, 디자인도 매우 좋았어요. 물건이란 게 여러 욕망이 얽혀 있겠죠. 여행 가서 샀던 의미가 있는 물건처럼 쓸 때 조금 불편하더라도 아끼는 게 있고, 반면 내가 마음 가는 게 아니면 아주 예쁘더라도 집에 쌓아두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그런데 팩토리 에디션은 누가 디자인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매우 선명하잖아요. 게다가 소량 생산하는 거고. 어디서 왔고, 왜 만들었고,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 물건. 이런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거예요. 그리고 다 너무 아름답잖아요. 마키시 나미의 수납장, 그 외 가방, 필통 등이 그런 맥락에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산 물건의 디자이너가 여기 와서 밥을 먹고 있어! 그게 너무 신기한 거지. 
어떤 아주 둥~근 느낌이 드는, 서로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라서 좋아. 사실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디자이너인지 나는 잘 몰라요. 알 필요도 없어. 그런데 맥락이 있는 물건을 가진다는 게 좋고, 그러다 보니 오래 쓰게 되더라고요. 지향사와 만든 파란색 가방도 기억나요. 뒤집으면 스트라이프가 있는 오래전에 산 천 가방인데 지금도 정말 잘 쓰거든요. 지향 씨도 아는 사람이지만, 팩토리 에디션이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아니까 어디 구석에 박아 두지 않게 되는 거예요. 
에디션을 사면서 물건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어요. 단순히 그 에디션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얘를 사면 잘 쓰겠지, 오래 쓰겠지, 누가 누가 만들었는지 아니까 함부로 버리지 못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고요. 도사(dosa) 파우치도 잘 쓰고 있어요. 예전 같으면 눈에 띄는 파우치를 사고 버리는 게 연속이었고 서랍에도 파우치가 여럿 굴러다녔을 텐데, 도사 파우치를 쓴 이후엔 더 이상 살 일이 없는 거예요. 내가 예쁜 물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실 물건 쌓이는 일이 무섭기도 해요. <이러다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지도 몰라. (웃음) 그런데 알면 오래 쓰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팩토리 에디션을 더 사용하는 지도 몰라요.

팩토리2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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