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번째 다카포 페이퍼

2021년 06월 28일 월요일

글: 꿀주먹 / 편집: 루바토, 유니쓰, 꿀주먹, 에스오

당신의 감성을 찾아 줄

클래식 음악 페이퍼, 다카포입니다.

피아노 에튀드 제3권 15번(Études pour Piano Book III, No.15)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 1923-2006)

안녕하세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탐미주의자 꿀주먹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름답게' 느끼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의심해 보신 적 있나요? '나는 왜 이것을 아름답게 여길까?', '내가 느끼는 미(美)는 진실한 아름다움일까?',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등의 생각 말이에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와 절친한 친구 중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된 H가 있습니다. 친구 H는 수학을 매우 사랑하는 친구이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수능 수리영역 5개년 기출문제를 뽑아서 푸는, 제 입장에서는 좀 이해가 되지 않는 친구예요. 어느 한 날 H에게 수학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왜 수학 문제를 푸는지 물어봤습니다. H는 "수학이 아름다워서 좋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엥. 이게 무슨 소리. 당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H에게 '수학이 왜 아름답냐'고 물으니 복잡한 문제가 풀려가는 과정, 논리적으로 정리되는 수의 인과 관계, 그것을 통해 답의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이 아름답다고 친구 H는 답했습니다. ?... 저는 정말 모르겠거든요.. 수학을 사랑하는 다카포리라면 이 아름다움을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학을 잘 모르고 수학에게 상처를 많이 받은 관계로(외사랑 경력 12년) 이 아름다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제가 지난주에 보내드린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 1923-2006)의 곡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 곡을 들으며 '아름답'다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잘 모르겠'다고 느끼셨나요? 이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움을 느끼셨다면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오늘 리게티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美, Beauty)'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의 작품 ⟪피아노 에튀드 제3권 15번(Études pour Piano Book III, No. 15)⟫ 입니다.

개인적 아름다움

리게티의 ⟪피아노 에튀드⟫는 작곡가가 63세 때부터 작업한 곡으로 그의 작품 활동 전반에 걸친 음악적 탐구가 응축된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리게티의 후기 음악 양식을 굉장히 농도 짙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때문에 음악 전공자들 사이에서 이 작품은 리게티의 음악세계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논문의 주제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피아노 에튀드⟫는 총 18곡으로, 1985년부터 2001년까지 총 16년에 걸쳐 작곡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작업 및 완성된 시기에 따라 세 권(Book I, II, III)으로 분류되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 1권: 6곡(1985)
제 2권: 8곡(1988-1994)
제 3권: 4곡(1995-2001)

오늘 여러분께 들려드린 ⟪피아노 에튀드⟫ 제3권의 15번은 "White on White" 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목처럼 흰 건반의 울림으로만 음향을 만들어 내는 곡이지요. 이 곡은 여러 성부가 대위적으로 모방되어 나타나고 이로 인해 여러 소리층이 다차원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에 더해 곡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빠르기, 다이내믹, 인토네이션, 음형적인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지요. 이렇게 도발적이고 과감한 형식은 관습에 국한되지 않은 리게티의 성향을 보여주는 한 예로도 볼 수 있습니다.

리게티는 14살에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고 합니다. 긴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 14살은 굉장히 어린 나이이지만 악기를 배우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였고 이 때문에 리게티는 늘 자신의 연주에 기술적인 부족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기술적 부족함이 고난도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에튀드를 작곡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리게티는 스스로 어떤 악파나 그룹에 속하는 것을 굉장히 거부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만의 고유한 음악 세계 구축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였고 이를 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부터의 탈피, 관습화되지 않은 다른 종류의 음악을 계속해서 찾아 나갔습니다. 리게티는 그의 출신지였던 동유럽의 민속 음악, 서구 유럽의 12음렬, 스티브 라이히(Steve Reigh), 테리 라일리(Terry Reily)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의 콜라주 기법, 낸캐로우(Conlon Nancarrow)의 자동피아노, 중앙아프리카 음악, 인도네시아 발리의 가믈란(Gamelan) 음악 등에서 고루 영향을 받았고 이 다양한 어법들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그의 음악에 녹여 냅니다. 그리고 리게티의 이러한 연구 방향은 그의 후기 작품인 ⟪피아노 에튀드⟫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연주자에게 고난도 테크닉 훈련과 하나의 장르로 국한하기 어려운 새로운 음향 탐구에 대한 도전, 이 두 가지 과제를 던져줍니다. 리게티의 음향은 전문 연주자들에게도 낯선 도전이었지요.

보편적 아름다움

그렇다면 지금도 리게티의 음악은 그저 낯설고 생경한 음향일까요?

누군가에게는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닙니다. 리게티는 그가 활동했던 당시에는 새로운 음악 어법을 구사하는 낯선 음향의 작곡가였지만 그는 이미 서양음악에서 "클래식"이라 불리는 예술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한 ⟪피아노 에튀드⟫의 18곡도 유수 피아노 콩쿠르와 연주회에서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알 수 없던 소리들, 아름다운 것이 아니던 소리들, 예술의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소리들이 "아름답다"고 인식되었음을 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의 기준이 조금 바뀌거나, 그 범위가 조금 더 넓어진 것이지요.

개인이 느끼는 아름다움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고민해 본다면 개인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의미를 각자가 정의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개개의 범위들이 모여 사회에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또 주류가 되기도 하고요. 근현대의 예술 미학도 이런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의 음악, 리게티의 ⟪피아노 에튀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여러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소리는 무엇인지 한 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그 시간을 통해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생길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술은 그렇게 넓어집니다. :)

오늘의 잘난 척 😎

태초에 쇼팽이 <흑건>(Étude No. 5 in G-flat Major, Op.10 'Black Keys')을 만들었느니라.

오늘의 작품, 리게티의 "White on White"가 피아노의 하얀 건반을 연주한다면, 쇼팽의 <흑건>은 피아노의 검은 건반을 위주로 연주합니다.

쇼팽의 <흑건>은 대만의 유명 배우 주걸륜이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게 알려졌지요. 주걸륜과 '피아노 왕자'가 대결을 펼치는,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에서 피아노 왕자가 쇼팽의 <흑건>을 한 차례 연주한 뒤 '흑건'을 '백건'으로 바꾸어 연주합니다. 그리고 이 흑건백건을 주걸륜 또한 능숙하게 연주하며 첫판은 무승부로 마무리됩니다.

이번 주 지인들과의 티타임에서는 피아노 흰 건반으로만 연주하는 곡, 검은 건반으로만 연주하는 곡이 각각 존재한다는 사실로 클래식 지식을 뽐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 감상 포인트 ?

음악에서의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을 자신에게 질문하며 들어주세요. 🙂🙃🎧

No.15 다시 감상하기 🎧

🙋 유니쓰의 감상평: 에튀드 하면 빠른 곡이 생각나서 이렇게 감성적일 일인가 하면서 자세히 봤더니 손가락이 조용히 열일하고 있었네요. 화이트 온 화이트라는 부제가 확 와닿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갑작스러운 반전에 확 놀랐답니다. 그렇죠.. 에튀드가 이렇게 마칠리가 없죠..ㅎㅎ

🙋 루바토의 감상평: 앞부분의 캐논 형식이 말이죠, 돌림노래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아무튼 르네상스 시대 때 참 핫했는데 20세기에 와서 다시 마주하다니...! 이래서 돌고 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봐요.

🙋 에스오의 감상평: 미니멀한 반전 독립 영화를 한 편 본 느낌입니다. 아마 작곡가를 알려주지 않은 후에 이 곡의 작곡가를 묻는다면 스티브 라이히나 필립 글라스, 막스 리히터 등 각종 미니멀리즘 음악가들을 떠올리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는 라이히가 떠올랐어요.)제가 많이 들은 리게티의 음악을 토대로 저에게 리게티의 이미지는 왠지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먼 사람으로 느껴지지만 의외로 리게티의 음악에서 점점 소리가 중첩되는 페이징 기법 같은 미니멀리즘적 요소를 많이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꿀주먹의 감상평: 리게티.. 알면 알 수록 제 스타일이에요. 탐미주의자 pick! ☝🏻

✏️ 오늘의 이론: 연습곡(Étude)

독주 악기의 연습을 위해 작곡된 간단한 음악을 통칭 합니다. 연주 기교를 습득하기 위해 쓰여졌지만, 아주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거나 기술의 난이도가 높은 곡들은 연주회용 연습곡(Étude du concert)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에튀드의 대표적인 예로는 쇼팽의 <Étude Op.10>과 <Étude Op.25>,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Etudes d'exécution transcendante)>이 있습니다.

가까운 음악회 소식

<"이-음 콘서트" #우디 앙상블>

일시: 2021-07-01 (목) 19:00

장소: 서울 삼익아트홀

가격

전석 2만원

프로그램

C.Debussy

Petite Suite(Arr. G. Davies)

F. Danzi

Woodwind Quintet in Bb Major Op. 56, No. 1

D. Agay

Five Easy Dances

C. Nielsen

Wind Quintet Op. 43

출연

플루트 | 이수민

오보 | 박인영

클라리넷 | 홍정모

바순 | 안희진

호른 | 조현우

우디 앙상블

자세한 정보

<오페라가 들리는 48시간 이탈리아 여행 시즌 2>

일시: 2021-07-11(일) 14:00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가격

R석 5만5천원 / S석 4만5천원

프로그램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e)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난 죽어가고 있어(Ohime! Morir mi Sento!)

로시니, 오페라 <세르비아의 이발사>

그게 바로 저예요(Dunque io son)

방금 들린 그 목소리(Una Voce Poco Fa)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저녁별의 노래(O du Mein Avendstern)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

리골레토 4중창(Rigoletto Quartet 'Bella Figlia dell'Amore')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불꽃은 타오르고(Stride la Vampa)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아 그대인가(È Strano!... Ah, fors'è lui...)

파리를 떠나서(Pargi o Cara)

출연

소프라노 | 홍혜란

테너 | 최원휘

해설 | 김문경

자세한 정보

다카포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클래식에 대해 소통할 거예요. 네이버에 '다카포페이퍼'를 검색해서 많은 사람이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게 알려주세요.😀

오늘의 다카포 페이퍼는 어땠나요? 😆

1. 곡 선정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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