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클리: 재우요원, 먼저 헷갈리는 용어부터 물어볼게. 낙태와 임신중지, 임신중단은 같은 말이야? 다른 말이야?
재우 요원: ‘낙태죄’할 때 쓰이는 ‘낙태’는 말 그대로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뜻이야. 여성계에선 낙태 의미가 부정적인 가치판단을 전제하고 여성을 낙인찍는 표현이라고 비판하면서 ‘임신중지’나 ‘임신중단’ 같은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대체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한겨레> 젠더팀도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해서 낙태 대신 ‘임신중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단, ‘낙태죄’로 일컫는 형법 제269조나 제270를 이야기할 때 한정해서 ‘낙태죄’란 죄명을 인용하고 있어.
휘클리: 올해부터 낙태죄 폐지됐잖아. 그럼 병원에서 임신중절 수술해도 처벌받지 않는 거야?
재우 요원: 응. 헌법재판소 판결로 ‘낙태죄’ 조항이 무력화됐으니까, 수술한 여성이나 의사는 처벌받지 않지. 형법에 ‘낙태죄’가 존재했을 때도 예외사유는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했잖아. 다만 임신중지에 따른 상담과 의료지원 절차가 담긴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표류 상태라 의사에 따라 임신중절 수술 등을 거절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비용도 병원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혼란이 9개월째 이어지고 있어.
휘클리: 정부의 형법 개정안을 보면 예외를 두긴 했지만 14주 이상의 경우, 결국 낙태죄 다시 남겨두겠다는 거 아니야?
재우 요원: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계에서 정부안 중 가장 문제 삼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야. 형법에 ‘낙태의 죄’를 그대로 유지한 채 14주, 24주라는 주수 제한을 둔 게 정부안이야. 뒤늦게 임신중지를 택해야 하는 여성들이 처벌받을 수도 있는 거지. 장애나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임신 사실을 늦게 알았거나, 수술에 필요한 돈이 없어서 임신중지를 미룬 여성들도 임신 24주가 넘어 임신중지를 하게 되면 실형이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거야.
휘클리: 지난해 말 유엔인권이사회 여성·건강권 분야 전문가들이 한국 정부에 ‘낙태죄 폐지’를 권고하는 공식 서한을 보낸 것도 임신 주수 제한 때문이야?
재우 요원: 맞아
. 서한의 핵심 내용은
“여성이 임신중지로 인해 처벌돼선 절대 안 된다
”는 거야
. 정부안은 합법적 임신중지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들에게 ‘낙인’을 찍는 결과를 낳는다는 거지
. 이들은 정부안에 담긴 의사의 진료거부권
, 의무화된 숙려기간 등도 삭제하거나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어
. 정부안이 임신중지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
’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확인시켜준 셈이야
.👉기사보기
휘클리: 개정안들이 처리되기 전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텐데. 시급하게 논의돼야 할 과제는 뭐가 있어?
재우 요원: 임신중지가 올해로 비범죄화되기는 했지만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회나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아
. 특히 여성계는 법 개정 전이라도 정부가 일반인들과 의료진들을 위해
‘정보제공체계
’를 마련하고
, 임신 초기에 효과적인
임신중절약(미프진)을 품목 허가하고
,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임신중지를
건강보험 급여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낙태죄 없는 세상’ D-1, 새로운 세계서 풀어야 할 숙제들
휘클리: 일반인들과 의료진들을 위한 정보제공 체계?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야?
재우 요원: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자는 거야. 임신중지와 관련해 정보를 제공하는 공신력 있는 통로가 없다 보니, 일반인들이 수술하면 재임신이 불가능하다는 등 가짜뉴스에 손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약국 찾기 서비스’와 같은 기존 사이트를 이용해 임신중지가 가능한 필수의료시설 등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들이 제안되고 있어.
휘클리: 임신중지를 건강보험 급여화해야 한다는 건, 그동안 임신중절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는 거야?
재우 요원: 아직은 전과 마찬가지로 ‘일부 임신중절 수술’만 건강보험이 적용돼. 성폭행이나 혈족임신과 같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특별한 경우에만 정부에서 수술비를 지원해. 나머지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절수술은 비용을 여전히 당사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해. 그렇다 보니 비용도 병원마다 30만~100만원 등 제각각이야.
휘클리: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왜 임공임신중단 약물과 수술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반대하는지?
재우 요원: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지’는 건강보험법의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야. 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1월엔 “미용성형 수술도 합법적인 의료서비스지만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내기도 했어. 임신중지를 ‘미용성형’에 빗대면서 급여화할 필요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 거야.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수가가 턱없이 낮게 책정돼 수술하는 병원을 더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될 거라고도 주장해.
휘클리: 미용성형?? 여성계에서 반대했을 것 같은데? 어떤 입장이야?
재우 요원: 임신중지를 ‘미용성형’에 빗대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절박한 상황을 지나치게 경시하고 사소화하는 발상이라는 거야. 출산과 유산, 난임시술도 질병은 아니지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고, 하물며 남성의 여성형유방증 수술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데, 임신중지에 건보를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거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결과 임신중절 수술을 한 여성 중 81.6%가 의료비용 부담을 호소했어. 중절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이 수술에 대한 적정 수가는 이 가격'이라고 국가가 공표하는 셈이라 병원이 자의적으로 수술비를 책정하는 관행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돼.
휘클리: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절약 도입에도 반대한다며? 왜?
재우 요원: “임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논리야. 현대약품이 허가 신청한 임신중절약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 1정 + 미소프로스톨 4정으로 구성돼 있어. 약학정보원에 따르면, 미페프리스톤만 사용하면 임신중지 실패율이 20~40%에 이르지만, 미소프로스톨과 함께 사용하면 성공률이 90~98%까지 올라간다고 해. 그런데 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지를 허가한 다른 나라에서도 미페프리스톤 단일제를 사용하지,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쓰는 경우는 드물어서, 병용요법에 대한 데이터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휘클리: 두 가지를 함께 복용하는 게 위험한 건 아냐?
재우 요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권고하는 임신중절약(미페르펙스) 복용법을 보면, 알약 형태의 미페프리스톤을 물과 함께 먹은 후, 24~48시간 이내에 미소프로스톨을 복용하도록 하고 있어.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기관도 복용 시점을 조금 달리해 두 약물을 병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거지.
휘클리: 낙태죄 대체법안 입법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데 현재 계류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는 거야?
재우 요원: 대체입법에 대한 국회 논의는 9개월이 되도록 거의 ‘전무’한 상황이야. 워낙 여성계, 의료계, 일부 기독교계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뜨거운 주제여서 ‘표’에 민감한 의원들은 논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거지. 지금으로선 국회의 기한 없는 입법 방기 탓에 법안 통과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야.
휘클리: 미프지미소는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 언제부터 자유롭게 사서 먹을 수 있는 거야?
재우 요원: 아직 가교임상 가능성 등이 남아있어서 올해 안에 품목허가를 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품목허가를 얻게 되면 한국에서도 임신중절약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돼. 더 이상 해외 불법사이트를 이용하거나 ‘위민온웹’과 같은 국외 시민단체릍 통해 임신중절약을 구할 필요가 없는 거야. 다만 복용 전후 산부인과 의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이나 검진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는데, 이런 절차는 품목허가 상황이 진전되면 같이 논의될 것으로 보여.
휘클리: 임신중지와 관련해서 다른 나라 사례 중에 우리나라에서 적용하면 좋을 게 있을까?
재우 요원: 낙태죄가 폐지된 지 올해로 33년이 된 캐나다 사례는 주목할 만 해. 주수 제한이나 사유 제한 등 임신중지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없는 캐나다의 임신중절률은 한국보다 낮다고 해. 2018년 기준으로 캐나다의 임신중절 건수는 8만5000건이고, 15살~44살 사이 인구 1000명 기준 11.7%인데, 한국은 15%에 이르거든. 임신중지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임신중지가 ‘남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것이지.
휘클리: 마지막으로 휘클러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재우 요원: 논쟁은 복잡하지만 낙태죄 폐지와 임신중지에 대한 전면적인 의료지원을 주장해온 쪽의 핵심 논리는 간단해. 누구나 ‘자신의 몸에 대한 사안은 자신이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지. 낙태죄의 역사는 여성의 몸을 ‘인구관리’의 대상으로 삼아 통제해온 인류의 오랜 ‘흑역사’와 일치해. 비단 임신을 한 여성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야. 정부의 소극적 대응과 국회의 입법 방기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사이에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급박한 상황에 몰린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이번 휘클리로 다시금 상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