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_오늘에 갇힌 우리를 봐

캐롤이 울려퍼지면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 음료가 등장하고, 슬슬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었어요. 매년 저는 11월부터 캐롤을 틀어주는 카페에 대해 심술을 부리는 타입이었는데요. 아직 연말이 되려면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왜 벌써부터 연말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 한 해를 끝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캐롤은 크리스마스 1~2주 전부터만 틀어야 해! 하면서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연말 분위기는 분명 즐겁고 설레지만, 너무 서둘러서 한 해가 끝나간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올해만큼은 기분이 좀 다릅니다. 올해는 아직 카페에서 캐롤을 듣지는 못했지만, 11월부터 캐롤을 틀어준다고 해도 그렇게 심술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차라리 오늘이 빨리 끝나고 더 괜찮은 내일이 시작되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일찍 잠드는 날이 있는 것처럼, '차라리 2020년이 빨리 끝나고 조금 더 괜찮은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조금 더 비관적인 버전으로 말하자면, 2020년이라는 해에 이미 질려버려서 빨리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할까요.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2020년과 빨리 헤어지고 싶은 분들도, 또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려서 2020년에 미련이 남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과거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뭐 벌써부터 연말 타령이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네요! 어떤 마음으로 읽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2020년에는 조금 덜 애쓰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고 사소하더라도 기대하게 되는 연말 계획들을 조금씩 세워보면서, 어떻게 보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게 남은 2020년을 잘 채워나가고 싶네요. 벌써부터 기대되는 연말 계획이 있으시다면, 살짝 자랑해주세요🍋

크리스마스 시즌 메뉴가 먹고 싶은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이 주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청춘스케치 (Reality Bites)

"23살 때는 정말 뭔가가 되어있고 싶었어."

"23살 때까지 네가 돼야 할 건 너 자신이야."

-영화 <청춘 스케치> 中

'Reality Bites'라는 원제를 '청춘 스케치'라고 번역한 1994년도 작품. 두 제목의 의미가 영 딴판이라 촌스러운 번역이라는 평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청춘 스케치'라는 제목도 'Reality Bites'라는 제목도 영화와 참 잘 어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노나 라이더와 에단 호크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청춘의 얼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인데요. 대학 졸업을 한 이후, 꿈과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플롯이 인상적이라거나 대단한 반전 같은 건 없지만, 불안하면서도 열렬히 사랑하는 90년대 청춘물의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더라고요.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구석들이 있었고, 영화 속 사운드트랙도 너무 좋고, 무엇보다 위노나 라이더x에단 호크의 조합만으로도 한 번쯤 볼 만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 주의 보말 한 움큼🌲

김금희, 복자에게

복자네는 꾸준히 개를 키웠고 복자는 으레 눈썹을 그려주었다. 대체 왜 개에게 그렇게 하는 거야? 물으면 우리 제순이는 특별하니까, 라고 대답했다. 복자는 그런 제순이의 눈썹이 일종의 농담 같은 거라고 했다. 그리고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

- 김금희, 복자에게 中

'다정한 농담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잔잔하게 웃길 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해도 슬쩍 웃게 되는 말재주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세심하고 다정한 농담에 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툭툭 건네주는 주변 사람들의 세심하고 다정한 농담을 곱씹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엉망진창이지만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트콤들도, 든든하게 곁에 끼고 지냅니다.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서 이 시기를 조금이라도 사랑할 만한 구석이 생긴다면 그건 전부 다정한 농담 덕분일 거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Ps. 제주도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안고,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복자에게'를 충동구매해왔는데요. 이 책도 다 읽고 나면 후기를 가져올게요!

이 주의 초코라떼 한 잔🌴

오존 (O3ohn) - Clouds

언젠가는 가사가 와닿는 노래들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멜로디가 착착 달라붙는 노래들을 좋아했습니다. 요즘은 그냥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을 가장 즐겨듣는 것 같아요. 오존의 신곡인 Clouds는 날씨가 맑은 날,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을 바라볼 때 듣고 싶은 노래라고 할까요. 낯선 노래를 들을 때면 "도대체 이 노래가 어떻게 흘러갈까?" 싶어서 괜히 긴장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 노래는 처음 들을 때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그렇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감성에 주목한 것인지, 위의 영상은 같은 곡을 한 시간 반복재생하는 동안 페인트칠을 해서 구름이 가득한 벽을 만드는 과정을 담았어요.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Maybe I'll make you feel good"인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마음이 편안해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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