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9 오후2시 용산역 광장
  1. 4월 9일 일요일 오후 2시 용산역 광장 앞에서 '낙태죄'폐지 2주년 공동행동 <우리는 더 이상 비밀이고 싶지 않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가 열렸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을 촉구하는 시민 약 2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습니다. 

 

  1. 이날 집회는 2019년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4년,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지 2년을 맞이하여 성과 재생산 권리보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며 국가가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자리였습니다. 참여자들은 정부가 '입법 공백'을 핑계로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을 비판하며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와 관련한 의료행위 건강보험 적용,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구축 등을 외쳤습니다.

 

  1. 2시에 시작한 본 집회에서는 플랫폼C 민희 활동가의 진행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최예훈님, 장애여성공감 고나영 활동가, 공공운수노조 김영애 여성위원장,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심청님(김현빈 플랫폼C 활동가 대독),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양지혜 활동가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싱어송라이터 신승은 님의 지지공연이 있었고 참여자 두 명의 자유발언이 있었습니다.

 

  • 최예훈님은 현직 산부인과 의사로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4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어떤 의지도 주관도 없이 방치하는 동안” 임신중지 관련하여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임신중지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이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 고나영님은 “장애여성은 몸과 장애에 맞는 병원을 찾지 못해 병원시설에 몸을 맞추거나 차별을 감수하며 병원진료를 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하며, 안전한 임신중지의 권리와 재생산 권리란, “월경 연애 섹스 등의 성과 재생산권리, 건강권, 임신 출산 양육의 전 생애과정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한 요구이자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 김영애님은 "임신, 출산뿐 아니라 월경을 비롯한 일상적인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권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기본권입니다."라며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제도를 구축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낡은 관행을 버려야합니다."라고 촉구했습니다.
  • 심청님은 "낙태죄는 65년동안 이어져왔고, 그 이후 정치인들, 보건의료계 등은 폐지 이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당장 필요한 것은 임신중지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상황 까지도 안전할 수 있는 국가책임이 명시된 법입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김현빈 플랫폼C 활동가)
  • 양지혜님은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가며, 원치 않는 섹스를 경험하고 임신의 가능성에 두려워하는 동료, 임신을 하고 자퇴를 결정한 동료들 청소년들"을 마주한 현실을 짚으며 "정부는 청소년이 보호자 없이도 충분한 정보 속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결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이어서 싱어송라이터 신승은 님의 지지공연이 있었습니다.

 

  • 다음 발언으로 이낭산님은 임신중지와 관련해 보고 느낀 경험을 이야기하며 

    "제가 경험한 세상에서 임신중절은 최소한의 비상탈출구였어요. 탈출구를 좀 안전하게 만들어주십시오."라고 촉구했습니다.

  • 플루토님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4년이 지났음에도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시기에 건강하고 안전하게 병원에서 시술을 받고 위축되지 않을 권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합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4. 퍼포먼스는 임신중지와 관련하여 더 이상 비밀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보이며
      색색깔의 연기로 존재를 드러낸다는 의미를 가진 퍼포먼스였습니다. 참여자들
      은 연기를 터뜨리며 "건강보험 전면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보건의료 체계
      구축", "종합 정보 제공 시스템 마련", "임신중지 권리 보장 교육 실행", "사회
      적 낙인 해소 및 포괄적 성교육 시행",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보장 법체계 마          련"을 외쳤습니다. 

   5. 마지막으로 참여자들은 "우리의 임신중지는 더 이상 불법도, 비밀도 아니다.

      임신중지는 모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며,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

      하기 위한 보건의료 환경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조건들을 바꿔나가는 것은 사

      회 전체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함께 바꿔나가기 위한 길이다."라고 말하며 정부

      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고 촉구하며 선언했습니다.


   6. 본집회 이후 이어진 행진은 용산역을 출발해 삼각지역, 용산 집무실, 녹사평역
      을 지났습니다. 참여자들은 "유산유도제 도입하고 필수의약품 지정하라!", "비밀
      상담 이제그만 공식정보 제공하라!", "입법공백 핑계말고 필수의약품 지정하
      라!",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구호
      제창은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또한, 행진에는 국가가 임신중지
      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는 내용으로 5명의 참여자가 발언을 하였고 녹사평역
      광장에서 3명의 자유 발언 이후, 구호를 다함께 제창하며 집회가 마무리되었
      습니다.

   7. 발언문 전문과 사진을 보내드리오니 많은 보도 바랍니다.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

"우리는 더 이상 비밀이고 싶지 않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 일시_ 2023년 4월 9일(일) 오후 2시

□ 장소_ 용산역 광장

□ 드레스코드_ 검정, 보라

 

■ 사회 : 민(플랫폼C)

 

■ 진행 순서(안)

□ 2시 본 집회(용산역 광장)

- 집회 안내 및 취지 소개

- 발언 1. 최예훈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 발언 2.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 발언 3. 김영애 (공공운수노조 여성위원장)
- 발언 4. 심청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 발언 5.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 공연 신승은
- 발언 6. 이낭산
- 발언 7. 플루토

- 연막탄 퍼포먼스

- 선언문 낭독

□ 3시 행진

- 용산역 - 세계일보 건물 - 삼각지역 - 용산 집무실 - 녹사평역 광장

- 행진발언 : 

  • 유지원 (학생사회주의자연대)
  • 난설헌 (녹색당 소수자인권위원장)
  • 유지연 (Women on Web)
  • 홍희자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 여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사랑해 발언 대독)
  •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 리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 4시 30분 집회 마무리

 

■ 주최_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노동당, 녹색당,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사회진보연대, 서울여성회,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시민건강연구소,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당 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 플랫폼C,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 문의_ 010-6369-2975 (시민건강연구소 김성이) 

              safeabortion2022@gmail.com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유산유도제 도입하고 필수의약품 지정하라!
입법공백 핑계말고 건강보험 적용하라!
모두를위한 포괄적 성교육 마련하라!
임신중지 방치말고 의료체계 구축하라!
비밀상담 이제그만 공식정보 제공하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끝까지 싸우자!
성재생산 권리보장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하라!
국가는 책임있고 신속한 대책을 마련하라!
임신중지권 외면하는 복지부 / 식약처 / 정부 / 국회를 규탄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는 임신중지 상담을 하고 시술도 하는 현직 산부인과 의사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4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어떤 의지도 주관도 없이 방치하는 동안 의료현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리고 그 책임을 물으려고 합니다.

 

병원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옵니다. 긴장된 목소리로 ‘임신인 것 같은데 당일에 진료 보고 곧바로 시술이 가능한지, 시술할 때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지, 비용은 얼마인지’를 묻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안전한 방법인지, 시술 후에는 얼마동안 안정해야 하는지, 별도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와 같은 자신의 건강이나 안전에 대한 질문은 없습니다.

불법인지 아닌지, 믿을 만한 병원인지, 비용은 적절한 것인지, 방법은 괜찮은 것인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채 인터넷이나 어플을 통해 온갖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고 시간을 겨우 내어 찾아온 병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유산은 휴가 보장이 되지만 임신중지는 안됩니다’, ‘약으로 하면 수술과 비슷한 효과가 있지만 정부가 아직 약을 허가해 주지 않았어요’, ‘그나마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약도 식약처에서 승인해주지 않았어요’, ‘시술 후 생리가 시작하기 전에 피임이 필요해요. 하지만 보험은 안됩니다’.

더이상 낙태죄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환자도 알고 의사도 압니다. 이제 임신중지는 다른 의료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원한다면 최대한 안전한 방법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들을 여전히 진료실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지난 4년동안 무엇을 했나요. 무엇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했을까요. 정부는 현재 우리의 임신중지의 권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병원을 찾기 위해, 병원마다 천차만별인 임신중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임신한 몸으로 노동하기도 이로 인해 약을 통해 임신중지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기도 합니다. 인터넷과 어플을 통해 소위 ‘낙태약’을 구하기도 하지만, 약 복용과 복용 이후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얻기 어렵습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제공과 전문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홍보했던 인구보건복지협회의 러브플랜, 여성가족부의 가족상담전화는 임신중지 상담에는 정작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임신, 출산, 양육 지원단체들의 의료비 안에는 임신중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불평등의 피해는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의료 현장은 제각각 바쁩니다. 통과되지도 않은 정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따라 임신 14주만 합법이라는 곳부터 약은 불법이고 시술만 된다는 병원, 남편이나 파트너 동의가 필요하다는 병원, 1주가 지날 때마다 비용이 10만원씩 올라가고 자궁유착방지제는 필수라는 병원, 첫째, 둘째는 출산을 했으나 셋째는 임신중지를 하겠다고 하자 이를 거부하는 병원. 심지어 정부가 교육상담수가를 신설하면서 만든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상담자료에는 수술 이후 자살,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후회 및 사회적 낙인이라는 정신적 합병증이 남는다는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환자에게 이런 내용의 교육과 상담을 수술 전에 하고 비용은 본인이 알아서 부담하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니, 그나마 의료인들이 임신중지를 정당한 의료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고 있습니다. 임신중지에 낙인을 제거하기 위한 교육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질적으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인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력하게 하고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까지, 그러니까 낙태죄가 버젓이 그 효력을 발생하던 시절에도 전국적으로 가족계획요원을 배치하고,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으로 임신중지 시술을 하고, 무료로 피임시술을 제공하고,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주고 아파트 청약권을 주고, 심지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자녀 수까지 제한하는 식의 대대적인 행정력을 동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현재 정부는 임신중지 관련 법이 없어서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이 없어서 임신중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근거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법이 없어서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기껏 제약회사 하나가 유산유도제 허가 신청을 자진 취하했기 때문에 약을 수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정부가 임신한 사람, 임신할 수 있는 사람을 출산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출산율이 곧바로 경제 발전과 국가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임신중지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이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할 때 임신을 하고, 우리가 원할 때 안전한 방법으로 임신중지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요구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라.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라.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고 접근성을 확대하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정보 제공 시스템을 마련하라.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서 혹은 진료대에 올라가지 못해 진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이 임신중지 수술을 원한다면 휠체어 접근성이 확보된 산부인과를 찾아다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료실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해도 장애정도에 따라 진료대에서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용어를 기반으로 한 비장애인 중심 의료시스템에서 구어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은 진료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기 어렵습니다. 진료 시 필요한 조력을 의료진에게 요청해야하는데 의료진의 조력 의사 및 의지에 따라 진료가 가능할 수도 있고 아예 거부당할 수도 있습니다.

 

장애여성은 몸과 장애에 맞는 병원을 찾지 못해 병원시설에 몸을 맞추거나 차별을 감수하며 병원진료를 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물리적/정보적 접근이 어려워 가족, 활동지원사, 시설종사자 등 주변인과 함께 병원에 방문할 경우 모든 정보는 보호자에게 전달되고, 임신중지 등의 중요한 결정도 보호자에게 확인합니다. 몸에 대해 장애여성의 욕구나 결정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장애여성의 몸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보호자의 결정에 따라 정해지는 몸이 됩니다. 이것이 장애여성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장애여성을 자기 몸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대체 안전과 보호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명분인가요?

 

저는 20대 후반의 뇌병변장애여성이며,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임신과 출산을 원하거나 양육하는 삶을 꿈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임신, 출산, 양육 등을 꿈꾸지 않았던 제 삶이 정말 제 가치관에 의해 선택했던 삶인지, 장애로 인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비장애인인 저의 언니는 주변인들에게 결혼과 출산, 양육에 대한 질문을 받지만 저는 받지 않습니다. 언니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재차 이유를 묻고 설득하려 하지만 제가 말하면 그 누구도 ‘왜’ 원하지 않느냐고 묻거나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너는 건강하기만 하라고 말합니다. 저는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는 것을 원할 권리, 원치 않을 권리 모두 존중 받으면서 보장 받고 싶습니다. 제 스스로 암묵적인 기대없음을 받아들이거나 정상적 생애주기에 따른 압박적인 결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몸과 성적권리에 대해 결정하는 주체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정말 임신중지의 권리,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있습니까?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 건강권이 보장되는 과정은 물리적인 환경, 제도적인 지원과 함께 몸의 돌봄/조력을 필수적으로 동반합니다. 병원을 가는 것, 진료대에 눕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매우 한계적입니다.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해 가장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은 주변인/의료진의 장애이해,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입니다. 가장 필요한 태도는 접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지 않고, 장애여성을 지나치게 복잡해하거나 단순화하지 않고, 장애여성이 몸의 결정권을 행사할 때 짜증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 신뢰를 기반으로 상호 존중이 가능한 관계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의료진 개개인의 선의와 의지에만 기댈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발생하는 피로와 높은 의료적 비용은 오롯이 장애여성 개인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합니다.

 

저에게 안전한 임신중지의 권리와 재생산 권리는 단순히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월경 연애 섹스 등의 성과 재생산권리, 건강권, 임신 출산 양육의 전 생애과정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한 요구이자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유산유도제 도입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자 내 몸에 대한 결정에서 타인의 통제를 거부하고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현재 저출산 시대의 국가적 위기를 말하지만 국가는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심지어 건강권, 성과 재생산 권리 등에 대해 판단, 결정, 실천할 수 있는 주체로도 인식하지 않습니다. 내재된 차별은 더 나은 진료를 가로막는 건강권 침해로 이어집니다. 장애여성, 청소녀, 이주여성 등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소수자들의 삶에 있어서 물리적/권리적 접근성 및 공공보건의료 체계 보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국가와 정부는 낙태죄 폐지 이후 법 개정만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과 재생산권리, 건강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것을 각성하십시오. 당장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고 임신중지를 건강보험으로 적용하는 것을 통해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 성과 재생산권리를 건강권으로 보장하십시오!

반갑습니다. 저는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여성위원장 김영애입니다. 그리고 노동안전위원장이기도 합니다. 처음 발언 요청을 받았을 때 제가 성·재생산에 대해 여기 계신 분들 만큼 알지 못해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현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일상을 떠올려보니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공부문 하면 대부분 정규노동을 떠올리시지만 실제 우리 여성조합원들은 병원, 학교, 급식소, 청소, 콜센터, 지하철, 기차, 버스, 택시, 공항, 화물, 연구소, 발전소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야간근무나 불규칙한 노동시간, 휴게시간이나 휴게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환경 등 위험하거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스트레스와 과로를 겪으며 노동자들의 성·재생산 건강도 항시 위협받고 있습니다.

 

임신, 출산뿐 아니라 월경을 비롯한 일상적인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권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기본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유·사산 휴가에 임신중지도 보장이 되어야 하고, 임신중지 후에도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유급휴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공공운수노조는 단체협약 지침으로 위에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근로기준법과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낙태죄가 폐지된지 이미 2년이 지났습니다.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제도를 구축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낡은 관행을 버려야합니다.

 

또한 하루빨리, 유산유도제 공식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으로 임신중지 비용 부담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이 과도한 노동을 해야 하거나, 파트너나 제3자의 개입, 폭력적 상황에 놓이지 않게 보장해야 합니다.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일하지 않는 정부와 보건복지부를 규탄합니다. 하루 빨리 임신중지 관련 의료 체계를 구축하여야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도 맘 편히 여성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임신중지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임신중지가 낙인이나 편견으로 비밀스럽게 상담해야 하는 진료가 아니라 공식 의료체계와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체계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지는 단순히 동떨어진 행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건강과 삶의 조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문제이고, 건강보험과 사회보장을 통해 안전한 임신중지, 제대로 된 양육 환경, 불평등을 해소하는 노력을 정부가 같이 해야 합니다. 공공운수노조도 이런 요구에 함께 하면서 같이 투쟁해 나가겠습니다. 투쟁!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 여학생위원회는 국가에게 현실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며, 발언 시작하겠습니다.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현실이 이렇다’라고 말하며 요구를 계속하여 세상을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저는 미레나를 6년째 사용 중입니다. 중학교 때 부터 생리통으로 한달의 반은 아팠고, 덕분에 대학입시를 망치고, 끔찍한 사회 초년기를 보냈습니다. 정보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시술받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의 피임에 대한 시선, 고통보다 중요한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타인이라면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은 가족이거나, 친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허황되고 잘못된 정보 따위에, 제가 안전하게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데에는 억겁같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학교의 일부 학생들은 익명 커뮤니티에 생리대 비치와 재생산권이 무슨 상관이냐는 글을 씁니다. 긴 시간을 돌아오는 여성이 없길 바라며, 발언하겠습니다.

 

낙태죄는 65년동안 이어져왔고, 그 이후 정치인들, 보건의료계 등은 폐지 이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출산을 해서 가정을 이룰 때, 혹은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할 때만 존재하는 현재의 법은 재생산권이 아닙니다. 그저 여성이 임신, 출산을 할 때 건강한 상태인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는 ‘생식권’에 불과합니다. 정부는 임신을 하지 않은 상태에는 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국가에 어떤 요구를 하는지, 보건의료인들, 정치인들은 파악할 생각이 없습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의 상징이 옷걸이였던 것을 아십니까? 많은 여성들이 옷걸이로 자가 낙태를 시도하다,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유산유도제인 미페프리스톤은 임신중지 약이 아니었습니다. 이 약의 임신중지효과를 발견한 것도 의사가 아니라,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위한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국내 산부인과는 건강보험 적용이 불가하도록 이 약의 싯가를 35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놀랍게도 미페프리스톤의 원가는 90원입니다. 약이 도입되면 시술 대신 약 처방을 할 테니, 시기를 늦추려는 산부인과의 이해관계가 국민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일까요? 진실로 의문입니다. 남성의 여성형유방이 보험이 되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보건의료계는 그 사람의 사회적 생활과 정신건강을 위해 보험을 적용하였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유가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성은 돈 걱정까지 해야 합니다. 임신중지는 정신건강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신체건강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재생산 정의는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와 관련된 사회적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재생산 권리가 ‘재생산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저희는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에게 요구합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임신중지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상황 까지도 안전할 수 있는 국가책임이 명시된 법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위티의 양지혜입니다.

청소년기에 받았던 성교육을 떠올립니다. 정자와 난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던 성교육은 피상적인 피임법에 대한 교육으로 넘어가더니, 곧장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이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태아가 뱃속에서 움직이는 초음파 영상을 보여주며, 낙태는 생명을 파괴하는 끔찍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신을 한 여성 청소년은 책임감 없고, 생명을 경시하는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여성은 문란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은 책임질 수 없는 나이기에 쉽사리 섹스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는 섹스를 선택했고, 임신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받았던 성교육은 그 자체로 섹스를 선택하고 임신을 겪어온 여성 청소년들에 대한 낙인이었습니다.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가며, 원치 않는 섹스를 경험하고 임신의 가능성에 두려워하는 동료, 임신을 하고 자퇴를 결정한 동료들을 마주했습니다. 섹스를 할 장소가 없어서 비상구에서 섹스를 했다는 고백, 피임약을 사러 가며 손이 벌벌 떨렸다는 고백, 임신 이후에 부모님께 알릴 수 없어 막막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여성 청소년의 성적 욕망은 부정되었습니다. 여성 청소년의 성적 실천은 당사자가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회는 안전한 성적 실천을 위한 그 어떤 권리도 보장하고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4년이 흘렀습니다. 2019년 이후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이뤄진 임신중단 상담 597건 중 절반 이상은 청소년이었습니다. '낙태죄'가 얼마나 많은 청소년을 권리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임신 중지에 대해 비로소 입을 뗀 시작한 청소년들에게 정부는 '낙태는 위기행동이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절망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침묵하게 했습니까? 청소년은 보호자의 동의 없이 임신중지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국가입니다. 청소년의 재생산권에 국가의, 법정대리인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국가입니다. 드라마처럼 부모에게 임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요? 여전히 임신중지를 원하는 청소년은 부모에게 알리지 못해 불법을 감수해야 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의료절차를 밟지 못해 일상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정부는 청소년이 보호자 없이도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결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합법적이고 안전한 유산유도제 도입부터 시작해 청소년의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청소년은 안전하지 않은, 불법적인 미프진 양도조차도 어렵습니다. Sns에 들어가면 돈이 없지만 유산유도제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청소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보호자의 경제력에 의존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불합리한 현실 때문입니다. 유산유도제가 도입되더라도 구매력을 가진 여성만 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청소년의 삶은 나아질 수 없을 겁니다.

유산유도제 도입 뿐만 아니라, 임신중지를 비롯한 다양한 성재생산 의료에 건강보험을 도입하고 접근성을 확대해야 합니다. 국가의 책무는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와 감시, 허락이 아닙니다 이제는 국가가 안전하고 평등한 임신중지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국가의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위티 역시, 더 많은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함께 유산유도제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신중절을 경험한 지인이 늘어나며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공유드리려 해요. 작년 겨울 즈음 엄마한테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남동생이 결혼하게 됐다는 소식이었어요. 남동생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고 연휴까지만 해도 결혼에 대한 어떤 언질도 듣지 못했습니다. 예정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 여러분도 예상이 되시죠? 맞습니다. 피임을 하지 않았고 초음파 사진을 본 양가 가족들이 결혼을 진행시킨 겁니다. 교제한 지 3개월이 지났다고 했어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우려스러웠습니다. 남동생은 중학생때부터 집안의 가재도구를 수시로 부쉈거든요.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니터, TV, 식탁, 의자, 벽, 문까지 손에 잡히는 건 뭐든 부쉈습니다. 이 폭력성을 파악하기에 교제기간 3개월은 너무 짧은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이미 저를 제외한 양가 가족 모두가 낳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그 앞에서 임신중절을 제안하기는 어렵더라구요. 저에게 그럴 권한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사단은 벌어졌습니다. 결혼 준비 기간동안 다툼이 생겼거든요. 이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으로 인해 결국 상대방 여성분이 독단적으로 임신중절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결론적으로 결혼은 취소됐으나 시간이 많이 지체된 상태였습니다. 입덧도 마칠 즈음이었으니까요.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임신중절이었을 거라는 건 경험하지 않은 저조차도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출산하고 결혼해서 남동생과 공식적인 법적 관계로 얽히기 전에 탈출하신 것이겠죠. 임신에 수반되는 신체의 변화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임신은 제도와도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임신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결혼을 해야 하나요? 상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는데 불안한 상태로요? 제가 경험한 세상에서 임신중절은 최소한의 비상탈출구였어요. 탈출구를 좀 안전하게 만들어주십시오. 계단이 가팔라 넘어지면 생명이 위험한 탈출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안전한 탈출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호 외치겠습니다.

 

국가는 임신중지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방안 마련하라!

임신중지 여성건강 국가예산 편성하라!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에 모인 동지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오늘같이 뜻깊은 날 여러분과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입니다. 여기에 함께하기 위해 타지에서 오신 분들도 계실까요? 저는 낙태 시술을 받은 당사자로, 제 경험을 나누고자 대전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낙태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66년생으로, 국가적인 산아제한 제도에 의해 자유로운 재생산권을 침해받은 피해자입니다. 이처럼 여성의 권리는 끊임없이 침범당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삶을 대물림해야 합니까? 우리 세대는 이 굴레를 끝내야 할 때입니다. 자유롭게 낙태할 권리, 지금 당장 윤석열 대통령이 대답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보건복지부가 행동해야 합니다. 헌법불합치 이후 4년동안 정부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술을 원하는 여성은 틀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술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서조차 눈치를 보고, 어떻게 책정이 된지도 모르는 거금을 한 번에 계좌이체로 내지 않으면 예약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비용이 부담돼서 위민온웹을 들어가도 그곳에서 주는 미프진이 언제 도착할 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더라도 세관에 걸리면 무용지물입니다. 만약 그 사이에 주차가 늘어나면 병원에서 청구되는 비용은 더 커집니다. 궁여지책으로 텔레그램에서 보관 상태를 알 수 없는 자궁수축제를 수십배의 가격으로 사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2차적인 성가해를 입을 위험에 노출됩니다. 저는 아주 운이 좋아 시술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한 달 넘게 원인모를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병원을 가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불친절하게 반복합니다. 마치 의사가 저에게 ‘낙태하면서 이 정도도 각오 안 했어요?’ 라고 말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무려 120만원을 일시불로 냈는데도요! 명백한 의사의 불친절에도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찢어진 콘돔이 마치 제 탓인 것 같아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낙태죄는 헌법불합치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낙인찍힌 기분이었습니다. 아직도 저와 같은 여성들이 불법도 합법도 아닌 애매한 경계 위에서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울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저처럼 눈물 흘리고, 스스로를 탓하는 여성이 없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 의료보험으로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시기에 건강하고 안전하게 병원에서 시술을 받고 위축되지 않을 권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약국에서는 미프진과 응급피임약을, 병원에서는 정당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제 더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비밀이고 싶지 않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임신중지는 임신이나 출산보다 위험이 적은 매우 안전한 절차이며 심각한 합병증은 매우 드뭅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여러분의 자녀 또는 파트너가 임신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경우 여러분은 그 과정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격을 갖춘 의료인(간호사, 의사 또는 조산사)으로부터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조치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괴롭힘이나 위협을 받지 않고 임신중지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뉴질랜드 보건부가 지원하는 임신중지 정보 사이트는 이와 같은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임신중지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부의 무상지원으로 안전하게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받을 원리가 있음을 알려주고, 본인과 의료인 뿐아니라 가족, 파트너, 지인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안내한다. 이와 함께, 거주지에서 가까운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 의료기관에서의 관련 절차, 임신중지 방법에 따른 정보, 임신중지 전/후에 고려할 것 등 당사자에게 필요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을 위한 책임을 지닌 정부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4년, 이에 따라 형법상 ‘낙태의 죄’가 효력을 잃고 임신중지 비범죄화가 이루어진지 2년이 지난 오늘, 한국에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정보들은 어떤 것인가? 관련법과 의료적 사실을 왜곡⋅과장하는 정보들, 비밀 상담을 강요하는 병원들 속에서 우리의 정당한 권리와 안전한 임신중지 지원체계에 관한 공식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포털사이트와 SNS에서 단편적인 정보들을 검색하고,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병원마다 전화나 채팅으로 상담을 하며, 병원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알 수 없는 비용에 가슴을 졸여야 한다. 산부인과 의료시설이 많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정보 차단·언어· 비장애인 중심의 여건으로 인해 필요한 정보와 의료시설을 찾기가 어려운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난민들은 더욱 힘든 상황들을 경험하고 있다. 매 순간 당연한듯 제시되는 ‘비밀상담’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지만 정부는 이 시간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여전히 아무런 관심이 없다.

 

유산유도제와 건강보험 도입 지연, 정부는 우리의 건강과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임신중지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이 개개인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며,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만큼 각국이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임신중지는 단지 한 순간의 선택이거나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 대한 인식과 성·재생산 건강,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조건들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회가 안전한 임신중지의 필요성과 권리, 이를 보장하기 위해 보건의료·교육·노동·사회복지 등의 각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를 논의하고 구축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이러한 책임을 방기한 채 우리의 건강과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안전한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기 위한 절차는 중단되었고, 건강보험 적용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의 건강과 권리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으면서 황당한 저출산 대책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이토록 무시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나라에서 정부는 감히 무슨 면목으로 저출산을 운운하고 있는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공식 보건의료 체계와 접근성 확대, 지금 당장 시작하라!

 

우리는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를 공식화하고,

-임신중지와 관련된 모든 의료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보장하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하고자 하는 보건의료인들이 비급여 수가의 결정과 비밀상담을 고민하는 대신 상담과 진료, 필요한 의료 조치를 안심하고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라.

-임신 기간과 임신중지 방법, 개인의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여 상급 의료기관 및 각 지역 의료기관에 연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라.

-누구나 안전한 약을 이용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하루속히 유산유도제를 승인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을 마련하라.

-임신의 유지 여부와 출산, 양육, 피임, 평등한 성관계에 대한 권리가 모두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게 하라.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이 우리의 권리임을 명시하고 이를 반영하는 성·재생산 권리보장 기본법과 관련 법체계를 구축하라.

 

우리의 임신중지는 더 이상 불법도, 비밀도 아니다.

임신중지는 모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며,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기 위한 보건의료 환경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조건들을 바꿔나가는 것은 사회 전체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함께 바꿔나가기 위한 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

 

 

202349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및

'낙태죄' 폐지 2주년 공동행동 참여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