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기자 #아누파르타넨 #북유럽모델

[주말에 뭐 읽지]  2021-03-11 #47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sharonmccutcheon
   
누가 더 지독한 개인주의자인가
아누 파르타넨 지음, 노태복 옮김
원더박스 펴냄  

핀란드에서 태어나 성장한 아누 파르타넨은 유력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녀는 하필 미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핀란드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자기는 영어를 할 줄 알지만 그 남자는 핀란드 말을 못하니까.

이건 해볼 만한 거래처럼 보였다. 복지는 잘되어 있지만 춥고 따분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핀란드에서, 역동적이고 기회와 혁신이 널린 미국으로. 하지만 그녀는 이 거래가 꽤 이상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휴가를 제대로 주지 않고, 경쟁원리가 교육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는 괴상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아프면 중산층도 거의 파산을 한다.

파르타넨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 미국식 자유주의를 그저 비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익숙한 구도 자체를 뒤집어버린다. 북유럽이 복지 시스템을 쌓아올린 것은 사람들이 국가에 의존해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와 독립과 기회라는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이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가족이든 회사든 마을공동체든 시민사회든 간에, 의존은 의존이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은 지독한 개인주의자들이 만들었다!

반대로 미국은 자유와 독립과 기회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내팽개치는 시스템이다. 교육을 할 때도, 의료보험을 구할 때도, 미국인들은 가족과 회사에 의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 시스템은 위험을 분산해주지 않고 개인이 감당하게 만들기 때문에, 개인은 의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미국식 자유주의는 사람들을 의존의 덫에 걸리게 만들고, 북유럽식 사민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만든다.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한 저널리스트가 도달한 기묘한 역설. 이 책을 특히 매력적으로 만들어준 힘이 여기서 나온다.

천관율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엘리 펴냄

“사전을 편찬하는 남자들이 고른 단어들로는 불충분했다. 너무도 자주 그랬다.”

돌봄은 자주 책상 밑에 있었다. 아빠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자였다. 딸 에즈미는 편집실 책상 아래를 굴러다니며 자랐다. 사전에 채 포함되지 못하고 버려진 단어들은 에즈미의 장난감이자 수집 대상이었다. 사전을 만드는 남자들이 인정하지 않은 그 단어들은 주로 여성에 관한 언어였다. 아빠는 사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했지만 에즈미에게는 절반만 그랬다. 느낀 것과 경험한 것을 나타내는 적확한 단어를 찾을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사전 밖으로 미끄러진 에즈미가 여성참정권 운동을 만난 건 어쩌면 필연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로 말과 글이란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작업임을 드러낸다. 우리는 당대의 단어들을 쥐거나 딛고 미래로 간다.
탈북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탈북자' 이야기
조천현 지음, 보리 펴냄

“아직도 반북 선교단체나 미디어는 10~20여 년 전 일을 요즘 현실인 양 이야기한다.”

조천현은 1997년부터 탈북자 문제에 천착해 북한과 중국 접경지역 등을 두루 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촬영해왔다. 중국 공안의 단속 위협을 무릅쓰고 10년 이상 탈북 문제 현장취재에 매달렸다. 
그가 본 탈북자는 세 부류다. 한국에 가려는 탈북자, 중국에 정착하려는 탈북자, 그리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탈북자. 그에 따르면, 우리 짐작과 달리 다시 북으로 돌아가거나 중국에 정착하려는 탈북자가 한국으로 가려는 탈북자보다 더 많다. 
이런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면 탈북자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탈북자 문제를 인권 문제로 위장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이데올로기 논리를 해체시키는 유일무이한 책’이라는 박현옥 교수(캐나다 요크 대학 사회학과)의 추천사가 인상적이다.
헌법에 없는 언어
정관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헌법은 서로 다른 우리가 유일하게 합의한 공동체의 언어다.”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라든가 ‘헌법적 가치와 맞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어떤 주장의 강력한 근거가 된다. 정작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상반된 주장이 섞여 나온다. 헌법에는 ‘근로의 의무’처럼 20세기 반공주의의 유산이 남아 있고 ‘평등권’처럼 소수자의 인권을 “낙동강 최후 방어선”처럼 보호하는 단어도 있다. ‘경영권’은 헌법에 없는 표현이다. 헌법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로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헌법은 실제적인 규범이다. 이를테면 재판부는 조종사가 턱수염을 기를 자유, 워킹맘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취업준비생의 불공정한 출발선을 지적하게 한다. 판결문과 결정문,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을 소개하며 헌법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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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이학범 지음, 포르체 펴냄

“반려동물의 마지막 순간에 꼭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매일 반려동물 1225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연간 45만명가량이 상실을 경험하는 셈이다. 그런데 수의사인 저자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펫로스(pet loss:반려동물의 죽음)가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적었다. 펫로스로 우울함에 빠져 있으면 ‘가족이 죽은 것도 아닌데’라는 말이 돌아온다. 동물 납골당에 다녀왔다고 하면 ‘괴짜’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펫로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을 잃은 당사자도 마찬가지다. 인프라 문제가 크다. 한국은 동물 장묘시설도, ‘마음을 위로받을 곳’도 부족하다. 주변의 몰이해와 사회적 도움의 부족으로 인해 반려인들은 슬픔을 속으로만 삭인다. 모든 슬픔이 그렇듯 펫로스 증후군 역시 드러내야 극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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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방에서 만난 사람

고등학교 2학년인 소년이 헌 책방을 찾아와 책 한 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소년이 기억하는 것은 책 제목이 세로로 쓰였다는 것, 그리고 제목에 '소중한 것' 또는 '소중하다'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는 것. 
도대체 이 정도 정보만으로 어떻게 책을 찾는단 말인가. 2000년대생인 소년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듣기만 해도 오래됐을 법한 이런 책을 찾는단 말인가..

“직접 읽고 쓰다 보니 
저절로 읽기 근육이 길러지더라고요.” 
“100일 프로젝트 중  취업에 성공했어요. 
매일 시사 이슈를 접한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하루 한 편 시사지 읽는 습관’(#하루시사)에 참여한 플백러들이 남겨주신 후기입니다.  
‘읽는 당신’을 만드는 특별한 습관, 지금 시작해 보세요.

“처음 북클럽 얘길 듣고 좀 이상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어요. 책은 혼자 읽으면 되지 뭣하러 온라인으로 연결돼 읽는단 말인가 싶어서요. 그런데 북클럽에 수백 명이 신청했다는 얘길 듣고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읽는 당신×북클럽 오프닝 북토크(3월4일) 강사로 나선 천관율 기자가 북클럽 참가 독자들에게 농담삼아 건넨 인사말이었는데요. 사실 신기한 일이죠. 재난의 시대, 사람들은 왜 연결되어 책을 읽으려 하는 걸까요? 이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북클럽을 찾았는지, 첫 온라인 모임을 하고 나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여기에서 살짝 엿보실 수 있어요(다음주 나올 시사IN 705호에도 북토크 스케치 기사가 실립니다).

오늘 메인에 추천된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는 북토크에서 천관율 기자가 짧게 언급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이기 위해서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건강해야 한다. 그러자면 팬데믹이 일깨운, 우리 모두가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 존재라는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라는 북토크 주제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책이었죠. 
 
님은 지금 무엇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있으신가요?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소개해 드렸지만 책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가까운 동네책방에서 준비되고 있는 책모임이 혹시 있는지 (주)동네서점이나 책 읽는 독앤독에서 둘러보시길요. 오는 3월22일 오픈하는 카카오 프로젝트 100에도 동네책방들이 여럿 참여해 온라인 완독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있네요. 그림책 읽기, 시 필사하기, 대하소설 끝까지 읽기...호기심 천국인 저를 유혹하는 주제들도 많고요. 그래도 하나만 고르고 자중해야겠습니다. 저의 상반기 최대 목표는 읽는 당신×북클럽을 완주하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좋아요, 믿을 수 있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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