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N잡러 #먹고사니즘

[주말에 뭐 읽지]  2021-05-22 #57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요즘 것들'의 먹고사니즘
이혜민 지음, 정현우 사진
900KM 펴냄


30대 이혜민씨는 또래인 ‘요즘 것들’을 만나 이들의 삶을 인터뷰하고,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에 업로드한다. 결혼제도에 질문을 품은 부부들을 인터뷰한 ‘결혼생활 탐구’ ‘동거하는 요즘 것들’ ‘명절 파업’ 등을 다뤘다. ‘먹고사니즘’ 편에서는 2019년 8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1년5개월 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 10명을 만났다. 해당 영상 콘텐츠를 묶어 인터뷰집 〈요즘 것들의 사생활:먹고사니즘〉을 펴냈다.

저자가 만난 이들에게는 아리송한 수식어가 붙어 있다. ‘전업 덕후’ ‘디지털 노마드’ ‘백수 듀오’ ‘N잡러’ 등이다. 긴 설명이 이어지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어쨌거나 삶의 중심을 직장에 두지 않고 스스로 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들 ‘먹고살기’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산다. 생각보다 아주 잘 버는 경우도 있다.

특히 ‘디지털 노마드’ 애나씨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보통의 직장인은 며칠의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거나 퇴사하고 훌쩍 떠날 날을 기대한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애나씨는 4년간 해외와 국내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일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모인 팀 ‘노마드씨’에서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간 쌓아온 나름의 규칙이 있다. 1~3개월씩 머물 것, 생활비 마지노선을 지킬 것,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할 것.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다. 다만 ‘하고 싶은 걸 10년 동안 하겠다’는 다짐이 든든한 버팀목이다.

저자 이혜민씨 역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 주인공이다. ‘요즘 것들’이 느끼는 삶의 문제를 담아 콘텐츠로 만들고, 인터뷰하며 종종 강연을 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일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새로운 먹고사니즘 생태계를 보여주는 것이 유의미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라고 믿는다.

송지혜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평화는 처음이라
이용석 지음, 빨간소금 펴냄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정의롭게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어려운 단어도, 나쁜 단어도 아니라서 ‘평화’는 쉽게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기 쉽다.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인 저자는 평화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에게 평화는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며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가치다. “우리가 평화라고 부르는 상태 혹은 시기는 어떤 종류의 폭력을 은폐하거나 보이지 않게 만들어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혐오·배제·차별이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는 ‘좋은 토양’이 되는지도 점검한다. 저자가 무엇보다 힘주어 강조하는 건 시민의 역할과 힘이다. 그는 전쟁이나 군사적인 수단 대신 “평화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궁리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그 가이드북이 될 수 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흐름출판 펴냄

“숲이 고요하다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제대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시골 토끼는 대가족을 이루고 산다. 해 질 무렵이 아니면 굴 밖으로 잘 외출하지 않는다. 반면 도시 토끼는 소수가 모여 살고 수시로 굴을 드나든다. 심지어 혼자 사는 토끼도 있다. 토끼에게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전염된 걸까? 책에 따르면, 이는 사는 환경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인간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 짚신벌레 같은 단세포 생물에서 곤충·새·물고기·포유류, 심지어 식물뿌리까지도 서로 정보를 전달하며 의사소통을 해왔다. 그것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행동생물학자인 저자가 풀어놓는 ‘바이오 커뮤니케이션’의 신세계에 매혹되는 책. 유머러스해서 더 잘 읽힌다.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이브 로드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메이븐 펴냄

“언제 치약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걸 신경 쓴 적은 있는가?”

화장실 청소를 한다던 남편은 변기만 청소했다. 세면대와 바닥에 낀 물때나 수챗구멍 속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화장실 휴지는 비어 있었다. 책의 저자는 ‘보이는 일=가치’라고 주장한다. 남편에게 가사노동 일부를 책임지게 하려면 요정처럼 몰래 화장실 휴지를 채워 넣거나 세면대와 바닥에 낀 물때를 청소해서는 안 된다. 그는 대신 게임을 개발했다. 일명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다. 가사노동을 적은 카드 100장을 만들어 부부가 함께 나눠 가진 다음,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다. ‘청소’ ‘설거지’ ‘빨래’ ‘식사 준비(평일 아침)’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자녀 과제’ ‘반려동물 돌봄’ ‘이사’ ‘아픈 부모님 돌봄’ ‘집수리’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분류했다. 이 게임의 효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고종석 옮김, 
삼인 펴냄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고,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들의 아편이라면, 어린왕자는 어른들의 아편이다.”

〈어린 왕자〉 한국어판 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됐다고 해서 큰 이슈가 될 리 없다. 하지만 번역가가 고종석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시대에 언어를 다루는 데 가장 탁월한 감각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그가 한국어 다음으로 잘 다루는 언어가 프랑스어다. 그는 역자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텍스트는 한국어라는 옷을 입은 프랑스어다. 프랑스어에 완전히 밀착한 한국어! 그러나 그것이 한국어에 대한, 그리고 프랑스어에 대한 내 자부심이다.” 기존 번역판에서는 한국어식으로 고쳐놓은 대화와 거기 딸린 지문을 프랑스어 원문식으로 되돌려놓았다. 이런 식이다. “-다들 너무 잊고 있는 거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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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방에서 만난 사람

온몸으로 부정적인 기운을 풍기는 P씨.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P씨는 막무가내로 아들의 여자친구를 집에 불러들인다. 애인이 생기면 부모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이유를 들어서다.
결국 P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집을 나서던 길, 아들의 여자친구가 P씨에게 책 한 권을 읽어보라며 소개하는데.... │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 책방' 대표)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주는 희망' 전체 글 보기 >>

공교롭게도 가까운 지인 두 명이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더 공교로운 건 회사를 그만둔 뒤 둘 다 집을 짓거나 수리하는 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는 거였어요. 둘이 친구냐고요? 전혀 아닙니다. 집을 사거나 새로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둘 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기 드릴로 구멍을 뚫거나 용접을 하는 작업에 푹 빠져 있더라고요.
 
물어보았습니다. 뭐가 좋아서 그걸 배우고 있느냐고요. 한 친구는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즐겁다더군요. 참고로 그 전까지 이 친구는 벽에 못 한 번 안 박아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일은 늘 남자형제나 남자친구 차지였죠. 또 다른 친구는 “그냥 마음이 끌려서”라고 했습니다. 실업급여를 못 받게 되어 다시 일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는 그냥 마음이 끌리는 일들을 하고 싶다면서요.
 
재미있는 건 주변 친구들의 반응입니다. 이 친구들을 보며 혀를 차거나 한심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소규모 술자리나 줌 온라인 모임에서 이 친구들이 입을 열면 다들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하지요.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미생>의 유명한 대사대로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것을요. 그런데도 지옥을 향해 한 걸음을 뗀 이 친구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응원을 보내게 되는 것이 단순히 대리만족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의 추천책에는 청소일을 ‘먹고사니즘’ 방편으로 선택한 그림작가 코피루왁이 등장하는데요. 그가 말하더군요.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보다 중요했던 건,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고요. 어쩌면 저의 지인들이 거의 동시에 공구를 만지는 일을 시작한 것도 이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기대지 않고 삶의 중심을 스스로 틀어쥐고 있나?’ 묻게 만드는 '요즘 것들'입니다.
"

" 다양한 사회 이슈를 알 수 있는 책을 고루 추천받아 좋아요."
"잔잔한 책 서술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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