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산책 플레이리스트🌳

투룸 별책 부록
파리 공원 관찰기
에디터의 산책 플레이리스트
글 박예진


가을과 겨울의 사이, 차가운 공기의 텁텁한 향을 맡으며 공원을 산책할 때 음악을 듣곤 한다.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혹은 풀밭에 앉아서 타인의 삶을 풍경 삼아 멜로디와 다 이해하지 못한 가사를 곱씹다 보면, 어느새 공간 속에 완전히 스며든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휴가를 떠나지 못했던 여름, 시원한 그늘을 찾아 방문했던 Parc des Buttes-Chaumont에서 어느새 매번 자리를 잡는 나무를 기억하게 되었다. 내 한 몸 쉬이 뉘일 곳이 생겼다는 기분에 무작정 안도감이 든다. 책과 천으로 된 돗자리를 들고 가서, 텀블러에 담긴 음료를 음미하며 울창한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에 눈을 잠시 감았다 뜬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장소에서 어느새 내가 있어도 되는 풍경이 하나, 둘 씩 늘어난다. 

 

파리의 공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프랑스 팝과 전통 라틴계 발라드, 프랑스 인디, 얼터너티브 인디까지 음악을 들으며, 나만의 공원 산책 코스를 찾아보는 것도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다. 

Requin Chagrin – Aujourd’hui, demain


프랑스 혼성 인디 밴드인 Requin Chagrin은 얼핏 보면 심오한 뜻을 가진 듯하지만 사실은 어미가 같은 단어들의 조합이다. 어감을 살려 번역해보자면 ‘상어 상심’ 정도의 이름이다. 슈게이징과 인디 록을 오가는 Aujourd’hui, demain (Today, tomorrow)은 시리도록 맑은 어느 겨울날 저녁을 연상시킨다. 시원한 신스 팝 베이스의 밴드 사운드가 여성 보컬 Marion Brunetto의 몽환적인 목소리를 만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Adrian Quesada, iLe – Mentiras Con Cariño

 

푸에토 리코 출신 보컬리스트 iLe와 사이키델릭 발라드 밴드 Black Pumas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Adrian Quesada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Mentiras Con Cariño (Lies with love)는 6-70년대 라틴발라드와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섞어 가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독한 사랑을 노래한다. 가을 단풍이 모두 시들기 전에 들으며 공원을 거닐다 보면, 존재하지도 않는 가을날 추억에 잠겨 괜히 트렌치코트를 여며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Adé – Si tu partais


프렌치 팝과 컨트리 음악 사이를 넘나드는 Adé의 첫 솔로 앨범 [Et alors?]에 수록된 곡이다. Si tu partais (If you leave)는 이별에 대한 가사를 담담하고 부드러운 톤으로 노래한다. 프랑스 팝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담백한 이미지에 가장 비슷한 곡이다. 선선한 가을의 한가운데, 우울하지도 상쾌하지도 않은 상태로 거리에 나설 때 들으면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다. 

La Femme – Tu t’en lasses


프랑스 사이키 펑크 록 밴드 La Femme은 2010년 데뷔 이후, 프랑스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꾸준하게 유명한 그룹이다. The Cure 등의 콜드 웨이브 밴드의 영향을 받아 독특하고 완성도 높은 앨범을 계속 내고 있다. 2021년 발매된 앨범 [Paradigmes]의 수록곡인 Tu t’en lasses (You get tired of it)은 사랑의 아픔에 대해 연극의 대사처럼 풀어낸다. 과거를 회상하며 계절을 타고 싶을 때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thel Cain – Thoroughfare 감상하기


올해, 데뷔 앨범 [Preacher’s Daughter]을 발매하며 얼터너티브 락, 드림 팝 계의 신예로 떠오른 Ethel Cain은 깊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듣는 순간 전율을 느낄 수 있다. Thoroughfare의 둔탁하고 무거운 멜로디와 고독과 쓸쓸함을 노래하는 가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곡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일상의 걱정을 잠시 동안 완전하게 잊고 풍경으로 도피하고 싶다면, 볼륨을 올리고 사람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아보자. 

산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적어 내려간

에디터의 파리 공원 관찰기는

투룸매거진 15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